2013.01.11 02:45

프리라이더 (5)

조회 수 1030 추천 수 1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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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요한이 마을 광장에 나왔을 때, 야나바는 성전 앞에서 티르빌과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전날 광장 한가운데 가져다놓았던 빈 술통은 이제 성전 입구 바로 옆에 놓여 있었고, 야나바는 바로 그 위에 걸터앉아 티르빌과 토론중이었다. 성전 앞에 술통이 놓여 있는 게 신성 모독이 아닌지 따지고들면 분명 티르빌의 입장이 곤란해질 테지만, 입장이 난처해질 그 본인이 묵인하는 셈이니 딴죽거는 사람은 달리 없었다.

 발을 꼰 채 턱을 괴고 앉아 야나바는 티르빌이 하는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요한이 다가가자, 먼저 알아챈 야나바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마침 잘 왔잖는가! 요한도 한 번 들어보지 않겠나? 방금 틸이 말인데,"

 "기승술이란 게 뭐야?"

 말이 도중에 가로막힌 탓에 야나바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요한이 던진 질문에 야나바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잘 알지 않은가? 말 등에 올라타는 것뿐인, 시시한 기교다. 그것보다 말인데,"

 "그걸 말하는 게 아냐."

 다시 한 번 요한은 야나바가 꺼내려던 말을 가로막았다. 당연하게도, 대꾸하는 야나바 말투엔 다소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럼 대체 뭘 말하는 것이냐?"

 "어제 그 남자를 쓰러뜨린 거! 나도 그걸 배우고 싶어!"

 잠시 동안 야나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한은 그녀 눈치를 살폈다. 한쪽 입가만 살짝 끌어올린 야나바에게서 다음 말이 새어나왔다.

 "어째서?"

 "어째서냐니...그건,"

 "예컨대 이런 거겠지. 강해지고 싶다던가, 그래서 폼 좀 잡아보고 싶다던가, 뭐 그런 거."

 "아니야! ...강해지고 싶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어찌됐건,"

 야나바는 요한을 제지하고 말을 계속 이었다.

 "어쨌건 네가 강해지길 바란다면, 이건 네가 배울 만한 게 아냐. 기승술은 네 생각처럼 싸우기 위한 무술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면 뭔데?"

 "한 마디로 '올라타서, 다루는 기술'이다."

 "정말 그것뿐이야?"

 "그것뿐이다. 진짜로."

 말을 마친 야나바는 자신이 앉아 있던 술통 가장자리 양쪽에 두 팔을 올려놓았다. 꼬았던 다리를 풀고 두 팔에 힘을 주며 몸을 조금 흔드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묘기처럼 두 팔 사이로 양 다리를 통과시켜 술통 위에 그대로 물구나무를 섰다. 요한은 물론이고 티르빌까지 입이 딱 벌어져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정작 야나바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상태로 말을 계속했지만 말이다.

 "기승술을 익힌 자, 우리 기승사는 어떠한 경우라도, 탈 수 있는 어떠한 것에라도 올라타서 다룰 수 있어. 야생말이나 물소, 표범과 같은 맹수들, 심지어 생물이 아닌 이런 것조차도 말이지."

 야나바가 한 쪽 팔을 놓자, 빈 술통은 아직 야나바가 팔을 지탱하고 있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야나바는 술통이 그대로 넘어지게 둔 뒤, 교묘하게 몸을 비틀어 통 측면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구나무선 상태로 불과 몇 번 조정을 한 것만으로도 술통은 굴러가버리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물론 야나바 역시 땅바닥에 손 한 번 대지 않고 그대로 거꾸로 선 채였다.

 "물론 상대가 남자라도 마찬가지다. 서 있건, 누워 있건, 설령 그게 침대 위에서건 상관없이 능숙하게,"

 "쓸데없는 얘긴 안 해도 돼!"

 요한이 성을 내자 야나바는 킥킥대며 저 혼자 즐거워했다. 술통은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그녀 손 아래서 완벽히 균형을 갖추고 있었다. 요한은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그럼 그건 뭐야? 어떻게 그 괴물 같은 녀석을 쓰러뜨린 건데!"

 "간혹 기수는 자기가 탄 말을 어쩔 수 없이 쓰러뜨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즉 말이 흥분해 진정시킬 수 없으며, 그대로 방치하면 말과 자신 모두가 크게 상처입을게 분명해 보일땐 기승사는 일부러 말과 자신을 안전한 바닥 위에 쓰러뜨려야 하지."

 "그래서?"

 "그것뿐이다. 나는 그 남자 어깨 위에 올라탔고, 위험해보이니 쓰러뜨렸다. 단지 이번 '말'은 너무 사나워서 어쩔 수 없이 그 생명까지 빼앗아야 했던 것뿐."

 얘기 도중 야나바 몸이 기울었기에 요한은 앗, 하고 비명을 삼켰다. 걱정과는 달리, 야나바는 통에서 내려와 사뿐하게 바닥을 밟고 일어섰다. 조금 전까지 이리저리 굴리던 통을 도로 일으켜세운 뒤, 야나바는 미소띤 얼굴로 요한을 보았다.

 "이거면 설명이 다 됐느냐?"

 "..."

 "어차피 내가 가르쳐줄 건 없을 거 같은데? 혼자 계속 훈련하고 있지 않느냐? 보아하니 검을 휘두르는 연습을 계속해온 거 같은데."

 "어떻게 그걸?"

 어제 처음 온 야나바가 어째서 자신이 검 연습을 해오고 있단 걸 아는지 요한은 의아해했다. 야나바는 대수롭지 않게 그 의문에 답했다.

 "팔이며 등, 어깨에 제법 근육이 붙어 있지 않은가? 자기 검이 있으니, 틀림없이 휘두르는 수련이라도 하는가 싶었지."

 "별로 티나는 것도 아닌데."

 "당연하지 않느냐. 성인도 아닌데, 눈에 띄게 근육이 붙을 리 없지. 자세를 보면 대략 짐작이 간다. 뭐, 손으로 만져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만져볼 필요 없어!"

 신경질적인 요한의 반응에 야나바는 다시 한 번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요한은 그런 야나바를 향해 눈을 흘겼다. 야나바는 한참을 더 낄낄대더니 겨우 진정을 되찾아 입을 열었다.

 "조언은 한 마디 해주도록 하지. 칼을 휘두르는 게 분명 훈련이 된 듯 하지만, 신체 전체적인 밸런스가 조금 나빠. 분명 휘두를 때 자세가 어딘가 잘못된 거겠지. 더 나빠지기 전에 제대로 된 스승에게 교정받는 게 성장을 위해 좋아. 왜, 듣자하니 수습기사로 임명해준 스승이 있다면서? 그 사람에게 묻는 게 어떠냐?"

 "스벤슨은 지금 없어."

 요한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야나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티르빌을 쳐다보았다. 티르빌은 고개를 내저으며 야나바가 말을 꺼내는 것을 만류했다. 그 사이 요한은 말을 계속했다.

 "스벤슨 아저씨가 가르쳐준 건 칼 휘두르기, 이거 하나뿐이야. 내가 뭘 더 할 수 있겠어? 수습 기사라곤 해도 말을 타는 법도 모르고, 갑옷을 입는 방법도 몰라. 심지어 검을 휘두르는 것조차 만족스럽지 못해. 하지만 여긴 질문에 대답해줄 만한 사람도 마땅치 않은걸."

 "그러면 마을을 떠나지 그러느냐?"

 야나바의 말에 요한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야나바는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여긴 제국 변경 가운데서도 가장 작은 마을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보다 더 큰 마을은 얼마든지 많고, 전직 기사나 검을 가르쳐준다는 사람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지. 물론 사이비같은 녀석들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굳이 검 실력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히는 건 도움이 될 테지. 그렇지 않나, 틸?"

 "그건 야나바 말이 맞구나, 요한."

 잠자코 있던 티르빌이 야나바 말을 지지하고 나섰다.

 "요한, 네가 정말로 기사가 되고 싶다면, 언제가 됐건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단다. 여기선 네가 원하는 데로 훈련도 만족스럽지 않고, 기사 작위를 받는 것조차 쉽지 않아. 여태껏 이민족 땅에서 제국 기사가 임명된 사례는 없으니 말이다."

 "누군가의 눈에 띄어 기사 작위를 얻고자 해도, 제국 직속령 내에 있을 때에나 가능하단 말이지."

 "하지만 저는, 스벤슨 아저씨는..."

 요한이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성전 뒤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그들 대화에 끼어들고 나섰다.

 "안 돼! 요한은 이 마을에서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을 거란 말야!"

 붉은 머리를 양 쪽으로 땋아 내린 소녀, 뮬리나가 야나바와 티르빌 두 사람을 노려보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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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rsas 2013.01.11 07:20
    현재까지는 내용 구성이 단순해서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흐름이 분명해서 이해하기 쉽군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공모전에 여러 작품 도전해도 상관없다는데 프리라이더도 이틀에 한번씩 올리는 식으로라도 연재했음 좋겠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3.01.11 15:45
    말씀 감사합니다. 계속 단순한 흐름 유지할 수 있게 해야겠네요.

    공모전엔, 야르사스 님 말씀하시는 바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 글론 안 나가려고요. 좀 더 길게 봐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공모전이 한 회만 하는 것도 아니고, 새 게시판까지 만들어 진행한다는 걸 보니 정기적 혹은 상시적으로 할 거 같은데 조바심낼 필욘 없지 않을까요?
    제가 <이그드라실>을 선택한 건, 그걸 먼저 보이고 싶어서입니다. 하나를 추가로 연재한다면, 차라리 <시크릿>을 하고 싶어요. <프리라이더>는 차회를 위해 아껴 두는 탄으로 삼으려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글로 승부를 본들, 한번에 되리란 보장도 없고 한 번에 되려는 생각도 없어요. 2, 3회는 도전해본다 생각하고 대비하렵니다 ㅎ;
  • ?
    용호박무(박수무당) 2013.01.1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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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rsas 2013.01.11 17:21
    오오.. 뭔가 윤주 님 말에 느껴지는 여유를 좀 배워야겠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자꾸 조바심도 나고 욕심나고 그러네요.. 어깨의 힘을 확 빼야겠습니다.
  • profile
    시우처럼 2013.01.11 17:41
    낯선여자와 소꼽친구가 완전 수라장... 인가요?
    이제 요한은 마을을 떠나겠네요. 뮬리나도 왠지 같이 떠나려나요?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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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박무(박수무당) 2013.01.11 17:41
    오늘 당신은 운수대통이다! 포인트를 받다니. 이 길로 로또를 사러 가야한다! 로또.. 아.. 어젯밤 꿈에서본 그번호... 2, 8, 25, 31, 34,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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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주[尹主] 2013.01.11 21:09
    그런 느낌이군요; 하긴 그렇게도 보입니다 ㅎ
    아마 예상하시는 바보단 훨씬 느긋한 전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약간 아쉽다 싶은 결말이 될수도 있겠습니다만...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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