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3 16:18

프리라이더 (4)

조회 수 445 추천 수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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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부터 궁금했었다만, 그 검은 네 것이냐?"


 밤이 늦어 집으로 돌아가는 요한 곁으로 야나바가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왜?"

 "좋아 보이는 검이지만... 정말 네 것이란 말이지? 네가 사용할 수 있도록, 오로지 너에게 맞추어 만들어진 검 말이다."

 "그렇다니깐."

 "흠...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만,"

 "잘 어울리는데 뭘!"


 어느새 따라왔는지, 뮬리나가 둘 사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뮬리나의 얼굴을 보자, 야나바는 곧바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너냐, 덩치 큰 꼬맹이?"

 "누굴 보고 꼬맹이래! 그보다 너, 요한에게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이상한 소리라니? 방금 그 얘기 말인가?"

 "어울리지 않느니 하는 얘기... 당연히 어울리지! 요한은 기사인걸!"

 "그러고보니 아까 그 괴물 같은 녀석 상대할 때도 주위에서 그런 말을 했었지."


 야나바는 바짝 요한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요한이 한두 걸음 주춤주춤 물러섰지만, 야나바는 개의치 않고 얼굴을 들이민 채 요한의 몸을 샅샅이 살폈다. 뮬리나가 요한을 자기 뒤로 잡아 끌다시피 해 감추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 하는 짓이야!"

 "음...진짜 제국 기사란 말이지?"

 "그래! 요한은 기사야! 스벤슨 아저씨 - 전에 찾아왔던 기사 아저씨가 서임식까지 치뤄 줬다고! 이 검은 그 때 아저씨가 요한을 위해 특별히 주문해 만든 거인걸?"

 "뮬리나, 스승님 - 스벤슨 아저씨 - 은 분명 수습 기사로 임명한다곤 했지만 정식 기사라고는 전혀..."


 요한이 말을 정정했지만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야나바는 아주 잠깐 동안도 뮬리나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건 뮬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사 서임식이라고?"

 "그래. 그러니까 아까 낮엔, 네가 그렇게 끼어들 필요도 없었단 말야. 그깟 덩치만 큰 남자, 요한이 한 방에 쓰러뜨릴 수 있었는 걸!"

 "뮬리나!"


 당황한 요한이 목소리를 높였다. 야나바는 평소와 다르게 딱딱한 표정을 하고 뮬리나를, 그 다음엔 요한을 바라 보았다. 자기 영혼 가장 밑바닥까지 꿰뚫어보는 듯한 야나바의 시선에 요한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추렸다. 야나바는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이 잔혹하리만큼 순진한 사람들.

 그 차가운 목소리에 요한은 전율하여 온 몸을 떨었다.


 "물론 어린아이에 기대하는 건 어른의 책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아이에게 기대는 것도 어른의 책무인 건 아니잖는가."

 "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넌?"

 "네가 진 굴레는 잘 알았다."


 뮬리나의 물음엔 아랑곳없이, 야나바는 요한을 똑바로 마주한 채 그에게 말했다. 요한은 새삼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건 야나바가 아니었다. 매일밤 자신이 꾸는, 바로 그 악몽이 형체를 갖추어 현실에 나타난 것이 틀림없었다. 야나바의 갈색 피부는 악몽을 불러들이는 밤하늘에서 직접 태어난 것인 양 거기에 자연스레 섞여 본래 형체를 분명하게 알아볼 수 없었다. 요한은 그런 야나바가 어쩐지 두렵게 여겨졌다.

 마치 요한의 머릿속을 헤집어 보기라도 하는 양 야나바가 말했다.


 "그런 굴레, 난 지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기왕 지고자 스스로 선택한 거라면 좀 더 잘 해보는 게 어떤가? 이대로라면, 넌 틀림없이 오래지않아 목숨을 잃게 된다."

 "나로는...무리라는 거야?"


 요한의 물음에 야나바는 대답하지 않았다. 요한은 다시 한 번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어린애라서, 무리라는 거야?"

 "그럴 지도 모르지."

 "잘난 척 말하지 마! 너도 어린애잖아!"

 "그래서 말했잖느냐? 나라면 그런 굴레, 지고 싶지도 않다고 말이다."


 하지만, 하면서 야나바는 말을 이어 붙였다.


 "하지만 나라면 훨씬 더 잘 해낼 수 있을 테지만."


 그렇게 말하는 야나바의 말과 행동은 자신만만하고 거침이 없다. 먼저 걸음을 떼어놓은 야나바를, 요한은 잠시 동안 가만히 노려보았다. 어째서 그녀는 그토록 당당한 것인가! 요한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었다.

 "그 기술이야."

 "요한?"

 "아까 그 남자를 쓰러뜨린 무술 말야! 그건 뭐였지? 마법이라도 부린 거야? 네가 지금 뽐낼 수 있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이잖아!"

 "무술? 마법?"


 야나바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요한을 보았다. 어둠 속에 파묻힌 그녀 표정을 요한은 읽어낼 수 없었다. 그저 상대방의 목소리만이 허공에서 바람에 실려 전해져올 뿐이었다.


 "그건 기승술이다. 무술도 아니고 마법은 더더욱 아니지."

 "기승술...말에 올라타 모는 기술 말이야? 그걸로 그 거인을 쓰러뜨렸다고? 말도 안돼!"

 "네가 믿지 못한대도 상관없다.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단 건,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까."


 야나바는 말을 마치고, 다시 걸음을 옮겨 숙소인 선술집으로 향했다. 곁에 있던 뮬리나가 요한을 다독였다.


 "괜찮아, 요한. 저 이방인 여자 말 따윈 신경쓰지 않아도 돼. 요한은 충분히 강하니깐."

 "..."


 요한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런 그를, 뮬리나는 한참 동안 걱정스런 표정으로 지켜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람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 잠든 늦은 새벽, 한 무리 낯선 자들이 마을로 들어섰다. 대장장이 스미스가 소변을 보러 집 밖으로 나오다, 막 골목길로 들어서는 그들을 보았다.


 그들이 발걸음을 멈춘 건, 전날에 야나바가 쓰러뜨린 사내 앞이었다. 광장 한가운데 쓰러진 남자를, 마을 사람 여럿이 마을 외곽 구석진 곳에 옮겨 놓았던 것이다. 낯선 사내들은 소리도 내지 않고 한참 동안 거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조금 후에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다른 이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사내들은 일사분란하게 지시에 따라 쓰러진 거구 사내를 짊어진 채 어딘가로 향했다.


 이 과정을, 스미스는 담벼락 그늘에 숨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사내들은 단 한 마디 소리도 내지 않고 그대로 마을을 빠져 나갔다. 그들이 마을 입구를 빠져나갈 때, 스미스는 맨 뒤에 선 대장 사내가 잠시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는 걸 목격했다. 사내는 스미스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실은 보름 마을 전체를 노려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잠시 후 사내들이 떠난 뒤, 스미스는 모골이 송연해져서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누구에게도 이 얘기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아침까지 잠을 못 이룬 채 뒤척이다가 이를 이상하게 여긴 부인에게 자신이 본 모든 걸 털어놓았다.


 그날 오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낯선 사내들에 대한 소문은 모두의 입을 타고 마을 전체에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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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yarsas 2013.01.03 16:42
    글의 분량도 그렇고 묘사 구간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흐름이 짧아 읽는데 굉장히 편합니다. 분명히 진일보 하셨는데 저번에 댓글 다신 분 말처럼 어떤 경지에 오르려 하시는 것 같군요. 하하.
  • profile
    윤주[尹主] 2013.01.03 17:14
    감사합니다. 최대한 편하게 읽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쓰고 있네요.
    아직 배울 게 많죠 뭐; 다른 분들 글 읽으면서 배울 수 있는 게 많은 거 같아요. 야르사스 님 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ㅎ
  • profile
    시우처럼 2013.01.04 17:42
    낯선 사내는 누구길래 저렇게 처리되는걸까요?
    궁금증이 더해지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 profile
    윤주[尹主] 2013.01.05 05:19
    너무 기대하셔도 곤란....하지만 재밌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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