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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에게도 항상 어려보인다는 말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지금 같은 때,

 "그쪽이 너무 어려보이셔서 그래요."

 상대방 남성이 이런 말을 했을 때, 물론 한순간 잠시 가슴설렜던 건 사실이다. 물론 때와 장소, 상황에 따른 맥락을 제외하고 본다면 말이다. 자, 어디 한 번 생각해 보자. '그쪽이 너무 어려보이셔서.' 뭇여성들을 가슴설레게 하는 말임엔 분명하다. 말 꺼낸 상대가 훈남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 설령 훈남이 아니면 또 어떤가. 80먹은 할머니라도 이제 갓 학교에 들어간 어린 손주가 빈말로라도 '할머니, 젊어 보이세요'라고 말하면 내심 기쁜 게 여자 마음인데.

 문제는 이하 세 가지다.

 첫째, 시간. 요즘처럼 한겨울 추운 날씨, 밤은 깊었고 달리 잡은 약속도 없는데도 집구석에서 꾸물꾸물 기어나오는 건 다 자기 나름대로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특히나 여자라면, 츄리닝 차림에 화장도 지운 맨얼굴로 밖에 나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설령 집에서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마찬가지고. '그쪽이 너무 어려보이셔서' 하는 말을 들어도 집에 되돌아갔다 다시 나와야 한다면 열이 뻗치는 게 당연한 거다.

 둘째, 장소. 혹시나 클럽, 술집이나 대학 캠퍼스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치자. 뭐, 그래. 조금은 기분 좋아질 수도 있겠지. 한껏 꾸민 여시들 사이에서 유독 나에게만 '어려보이셔서' 같은 멘트를 던지는 건, 100% 그쪽이 작업 거는 거라고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반대로 있는 사람이라곤 상대와 나, 단 둘 뿐인 데다 코딱지만한 편의점 안에서 듣는 말은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들릴 수밖에. 특히나 상대가 계산대 건너편에 있고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면 더더욱.

 셋째, 상황. 이게 가장 문제다. 그 편의점은 집 앞에 있어 평소에도 자주 들르던 가게였다. 어쩌다 친구들을 집에 불러 놀다 맥주가 땡길 때, 급하게 생리대를 사야할 때, 돌아가는 길에 주전부리를 사가야겠다고 생각할 때 항상 그 편의점을 이용해 왔다.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주로 들르다보니 매번 같은 알바와 계산대에서 마주쳤고 그 알바생도 같은 여자라 물건을 사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같은 시간 똑같은 편의점에 들렀더니 계산대엔 낯선 알바생이 앉아 있었다. 새 알바생은 젊은 남자였기에, 젠장, 하고 속으로 욕하곤 머릿속에 넣었던 구매 목록 가운데 생리대를 지워야 했다.

 "말보로 라이트 한 갑 주세요."

 필요한 걸 다 사지 못해 내 말투에 짜증이 좀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가게에 온 손님을 곁눈질로 훑어보는 건 또 무슨 경우람? 불쾌함이 뚝뚝 묻어날 내 얼굴에 대고 그 알바는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신분증 좀 보여 주세요."

 지금 장난하는 건가? 황당한 마음에 그 알바생을 빤히 쳐다 보았다. 자주 오던 가게에서 담배 한 갑 사는데 설마 신분증이 필요할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저기, 지금 마침 신분증을 안 가지고 와서요."

 "그러면 안 되는데요?"

 안되긴 뭘 안 돼, 빌어먹을.

 "저기요. 제가 여기 자주 오는 가게거든요? 집도 가까운 데고, 여기 알바하던 사람도 잘 알아서 민증 없이도 그동안 계속 샀는데요."

 "전에 알바하던 사람 그만 뒀어요. 집 가까우시면 민증 가져오세요. 그럼 드릴게요."

 알바의 말투에서 노골적으로 귀찮아한단 기색이 묻어났다. 그렇잖아도 짜증이 난 상태에서 그 말이 좋게 들릴 리 없었다.

 "아니, 꼭 민증이 필요해요? 저 올해 스물네살이거든요? 깜빡하고 민증 안 가져올 수도 있는데, 그냥 한 번 눈감아 줄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렇게 시시콜콜 따지는데요?"

 "그쪽이 너무 어려보이셔서 그래요."

 아, 그래. 바로 이 말이다. 잠자코 있던 날 빡치게 만든 말. 시간도, 장소도, 상황도 다른 경우였다면 좋게 들릴수도 있었겠지만 하필 이 순간이라서 짜증을 한껏 북돋은 말. 상대가 '그쪽'이라고 했으니 나를 얕잡아 보는 게 분명하고, '너무 어려보이셔서'라고 하는 말은 민낯에 츄리닝 차림인 내겐 비꼬는 걸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요컨대 이 새파랗게 젊은 알바는 나를 붙잡고 싸움을 걸고 있는 거다.

 "저기요, 정 확인해봐야 겠으면 이전 알바하던 분 전화 걸어서 확인해 보시던가요."

 "전에 사람 전화번호 모르는데요."

 "전에 일하던 사람 연락처는 못 챙겼으면서, 담배팔 때 민증검사하는 건 챙기셨나 보죠?"

 내 말에 남자는 눈을 치켜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상대도 약이 올랐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먼저 물러설 마음도 들지 않았다. 나 역시 계산대를 사이에 두고 서서 남자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대놓고 무시하고 비아냥대는 사람에게 꼬리를 내리고 싶지 않았다.

 먼저 입을 뗀 건 둘 중 누구였을까? 그게 누구였건, 다음 순간 양쪽 모두 이전보다 목청을 높였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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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아무튼 힌트 얻은 것 하나 골라서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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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yarsas 2013.01.02 06:38
    죄송한데 어디가 반전인지 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이해력이 딸리는지 감이 잘 안 옵니다 뉴누..
  • profile
    윤주[尹主] 2013.01.02 06:45
    음...반전이라고 할 만한 구석이 없네요; 이건 금주중에 좀 더 적어볼게요
  • ?
    모쟁 2013.01.02 07:49
    민증요구가 당연한건데 이런다는게 반전일까요...
  • profile
    시우처럼 2013.01.02 22:53
    일반적인 사회적인 통념으로
    "어려보인다" 라는 문구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아마, 제 생각엔 윤주님께선
    그 단어의 의미를 뒤집는다는 의미에서 반전의 뉘양스를 주신 것 같아요.
    하지만 보통 반전이라고 하면 상자속에 '반전의 요소'를 숨겨놓고 머리카락정도만 살짝살짝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서프라이즈' 하며 독자의 예상을 뒤집는 그런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글은 오히려 화두를 던저 놓고 글 전체에서 반전이 일어나는 글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반전의 요소를 감춰두었다가 짠하고 한꺼번에 보여주는게 아니라
    저 멀리서 누군가 다가오는거죠
    점점 다가오면서 결국 그가 누군지 알게되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요?
    처음엔 여자인줄 알았는데 점차적으로 문장을 읽다보면 남자인줄 알게 되는 그런 느낌?

    하지만 원론적으로는
    이것을 반전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천천히 보여주기 방식은 보통의 이야기 서술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요.
    허를 찌르는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님 극적 반전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있어서는
    반전의 느낌이 잘 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3.01.03 07:55
    ...정확히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핀트가 어긋났네요;
    전에 맘속으로 흥얼거리면서 써올린 노래가사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어떻게 그렇게 속마음을 잘 읽으시는지;;;
    감탄스럽기만 합니다. 원래 말 안하고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거든요 ㅋ 나중에 다른 글 올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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