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03 07:58

제로드 -00- 그 녀석

조회 수 594 추천 수 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0. 무리들

어두운 밤. 놈은 산에서 내려와 비탈길을 내달렸다.
몸집은 성인보다 작지만 어린아이 보다 크고 꼬리는 제 몸의 비율이 거의 1:1로 긴 놈이다.
뒷다리는 크고 강한 반면 앞발은 상대적으로 작은 데다 긴 발톱을 가지고 있어 결코 달리기 위해 태어난 몸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나무에서 생활하는 습성 덕에 체중을 아무렇지 않게 버틸 정도로 발달된 뒷다리였고, 나무 껍질을 파 그 속에서 무방비로 안식 중인 벌레와 그 벌레들에 상처 입은 길로 수액이 농축되어 곪아버린 나무 속을 파먹기 위한 앞 발톱이다.
가끔 먹이를 찾아 나간 나무의 둥지를 습격해 알을 훔쳐 먹기도 하여 맹금류의 분노를 받을 때라던가, 무분별 하게 나무를 파먹다가 일대의 모든 나무를 죽여버리는 바람에 서식지를 옮길 때를 제외 하고는 땅을 기는 일이 거의 없는 놈이다.
그런 놈이 지금 멀쩡한 나무를 뒤로 하고 달리고 있었다.
어쩌면 동족 들중 특이하게도 질주 본능을 가진 놈일 지도 모르나 그렇게 보기에는 놈의 눈이 회까닥 가버린 것 처럼 풀려 있었다. 거기다 나무 껍질도 뜯어버릴 강한 앞 발톱이 부러져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지나치게 달리고 있었기에 결코 정상적인 놈이 아니다.
천적에 속하는 맹금류나 나무를 잘 타는 고양이과에 쫓기더라도 그 강한 앞 발톱이 저 지경이 될 정도로 달리지는 않는다.  보통  도망치다가 그렇게 되기도 전에  따라잡혀 죽게 되기 일 수 니까.
맹금류 라면 숲 속을 날아 새끼가 아닌 이상 제법 몸집을 가진 다 큰 놈을 쉽사리 노릴 수 없을 것이고, 나무를 잘 타 천적에 속하는 고양이과라면 발톱이 부서질 정도의 장거리를 이동하기전에 잡혀서 싸우다 죽던가 쫒아네던가 둘중하나다.
그랬기에 놈의 신체 구조 상 천적을 따돌려 발톱이 부러지도록 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동족 통틀어 단시간에 장거리 이동한 최초의 놈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달리는게 놈하나라면 말이다. 그 일대 주위에는 이미 놈과 같은 상태인 동족들이 수 없이 있었다.
모두 눈이 회까닥 간 것처럼 풀려 지금 달리고 있는 것 자체가 본인의 의사과 상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 뒤로는 쫓아오는 천적은 없다.
사실, 천적이라면 뒤가 아니라 앞서서 달려 나가도 있었다.
놈은 앞에 천적이 있음에도 계속 해서 달려 간다.
앞을 보고 달리는 지도 의문이다.
주로 낮에 활동하는 주행성을 띈 놈이 아무리 보름 달 이라지만 그 달빛에만 의존 한 채 잘 볼 수 없을테니 말이다.
그들은 천적들과 같은 방향을 등지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달려 나갔다.
장거리 주행에 약한 천적들은 전력 질주를 하다 힘이 급속도록 떨어져 이제는 놈의 무리에 따라 잡히더니 결국에는 한 무리가 되었다.
천적 무리들은 평소 강인한 앞 발톱 때문에 샤냥이 쉽지 않은 놈들이 버젓이 무방비 상태로 옆을 지나가는데도 거들 떠 보지 않았다.
그 저  놈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오로지 산을 등지고 달려 나가는 것에만 급급 했다.
어딘가에 산불이 난 것도 아니고 지진이나 다른 천재 가 일어난 낌새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놈은 천적들을 지나쳐 그저 앞으로 나아 갔다.
그리고 저 멀리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자 녀석은 본능 적으로 빛을 향해 달려 나갔다.


1. 댕기머리 여성

그 곳은 몆몆 사람들이 모여서 꾸린 작은 촌락이다.
촌락의 외부와 내부를 구분 짓는 것으로 보이는 목책은 불에 타오르고 있는 중이다.
타오르는 목책의 불길로 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길목에는 한 여성이 자신의 키와 맞먹는 거대한 검을 들고 서있었다.
길게 엉덩이 까지 내려오는 댕기머리를 한 여성이다. 
여성은 한없이 무심한 눈으로 앞을 보았다.
앞에는 불과 오 미터 거리도 안되는 위치에 이빨을 들어 내며 사납게 으르렁 거리는 맹수 세 마리가 몸을 팽팽한 활 시위 처럼 잔뜩 낮춰 여성을 노려보고 있다.
온 몸이 피 범벅인 여성. 맹수들 눈에는 살아있는 고기덩어리 그 자채처럼 보일것이다.
세 마리 다 여성보다 덩치가 커 그 크기 만으로도 굉장한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여성은 그런 맹수를 앞에 두고서 식은 땀은 커녕,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핏기 없이 창백한 피부로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 맹수를 재대로 보고 있는 게 맞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로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주변을 에워싸 열기를 내뿜는 불길 또한 여성의 창백한 피부에는 전혀 자극을 주지 않는것 같았다.
피를 흘리고 있는 다친사람의 모습은 전혀 아니다.
후각이 발달된 맹수들은 의문을 가졌어야 했다. 여성을 뒤덮고있는 피의냄새가 왜 한 둘이 아닌 것인지에 대해.
"크헝!"
첫 번째로 가운데에 있는 맹수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거리를 좁히더니 여성을 물어 뜯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다.
뒤를 이어 두 마리의 맹수 또한 양 앞으로 달려 들었다.
여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키와 맞먹는 길쭉한 장 검을 한손에 쥐고서 옆으로 슥 그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로, 오른팔로 그 큰 검을 나무 작대기 휘두르듯이 아주 편하게 말이다.
여성에게 있어 그냥 손을 들고 옆으로 슥 그은 것 외엔 그 어떤 변화도 없었지만, 달려든 맹수의 결과는 처참했다.
벌려든 아가리를 시작으로 그대로 포를 뜨듯이 등과 몸이 깨끗하게 양단 되었다.
등과 몸이 분리 된 녀석은 생명이 꺼졌지만 추진력까지 꺼뜨리지 못하여 여성을 덥쳤다.

[투두둑]

피와 내장이 여성의 얼굴은 물론 온 몸에 튀었음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달라진 것 이라고는, 단지 검을 들고 있는 위치가 달랐을 뿐. 처음 보인 무심한 표정 그대로다.
게다가 피가 튀어 얼굴과 옷을 범벅으로 만들었음에도 검 날에는 한 방울도 묻어나지 않았다.
검 날에는 뭔가 미묘하게 시퍼런 예기가 서려있다. 마치, 검 날을 보호라도 하는 듯이 검의 날 전체를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예비 동작 없이 그대로 몸을 뒤로 빼자, 댕기 머리가 여성의 움직임에 궤적을 긋듯이 딸려 움직였다.
검을 아래에서 위로 한번 그었다.
그 동작 만으로 옆에서 달려 들던 맹수 하나가 몸이 앞 뒤로 양 분 되어 깨끗하게 잘려 나간다
뒤로 움직이는 와중에 검을 치켜 새우고 있던 터라 그대로 뒤로 넘어 갈 것만 같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 남은 맹수가 도약해 그대로 여성을 올라 타려 하였다.
하지만, 치켜세운 검을 다시 아래로 내려 마지막 맹수의 미간부터 전신을 세로로 쪼개 버렸다.
앞으로 내려친 검의 무게로 인해 뒤로 넘어질 것만 같았던 여성의 몸이 오뚝이처럼 앞으로 쏠리는가 싶더니 다시 똑바로 섯다.
단순히 크기만 한 검이 아니다. 
자신의 체중에게 까지 영향을 줄 만한 무게의 검을 한 손으로 격하게 휘둘러 놓고 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결국 처음 모습 그대로 였고 긴 댕기머리만이 흔들리며 여성이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움직였음을 알려 왔다.
주변에는 이미 앞서 세마리의 맹수와 비슷한 운명을 맞이한 사체들이 널려 있었다.
뎅기머리 여성만 짐승들과 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촌락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검과 무기를 꼬나 쥐고서 땀과 피를 흘리고 고함 치며 싸우고 있었다.
더 이상 시비 거는 맹수가 없는 것을 확인한 여성은 그들을 돕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등을 돌리려는 데 또 다시 맹수 한 마리가 여성이 위치한 길목을 향해 달려 왔다.
분명 저 짐승은 결코 이곳에서 볼 수 없는 놈이다.
그럼에도 낮 선 곳에 발을 들인 놈은 불에 반 쯤 뛰어들어 대일뻔 하자 화들짝 놀라더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길목을 막고 있는 뎅기머리 여성을 발견하고서 으르렁 거리더니 그대로 달려 들었다.
똑같은 유형.
놈이 달려들라 치면 뎅기머리 여성은 한번의 검 짓으로 바닥에 널린 것들과 똑같이 만들 것이다.
그럴 것인데,
"...."
뎅기머리 여성에게 미묘한 변화가 일어 났다.
정확히는 여성이 들고 있는 검에.
눈에 보일 정도로 시퍼런 예기가 일 순간 일렁임을 보였던 것이다.
여성은 처음으로 눈의 정 가운데 에서 미동 한 번 없던 눈동자가 움직임을 보인다.
표정은 그대로 눈만 내리까며 자신을 검을 보더니 이내, 입을 열어 또 다른 반응을 보였다.
"큭."
그 한번으로 여성은 인형 같던 모습이 허물어 졌다.
이마에 송골 송골 땀이 맺히고 창백한 얼굴에 약간의 혈색이 돌았으며  오랫동안 열기에 노출된 피부가 벌겋게 익어갔다.
"하악- 하악- 하악"
여성은 힘든지 가뿐 숨을 몰아 쉬었다.
오른손 만으로 잡 던 검도 힘겨운지 부들부들 떨리자 왼손도 움직여 두 손 꼭 잡았다. 그래도 들고 있는 거 자체가 힘겨워 보인다.
마치 오랫동안 숨을 참아 고요하게 있다가 갑자기 토해내 숨을 몰아 쉬는 것처럼, 변화는 한꺼번에 찾아 왔다.
여성은 자신 보다 큰 거대한 맹수 셋을 쓰렸을 때 만 해도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더니, 지금은 그 반도 안되는 짐승 한 마리에게 얼굴 가득 괴로움을 내보이고 있었다.
여성은 불안이 가득한 눈으로 두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았다.
아주 정교하게 정제된 것 같았던 예기는 이제 바람 속의 촛불 처 럼 불안하게 일렁이며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희미해져 있었다.


2. 노인

정말 완벽하게 새하얀 수염과 머리를 가진 노인이 사납게 눈 꼬리를 치켜세우며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움켜쥔 지팡이 머리는 삼지창 같은 구조물이 세갈래로 벌어져 둥글게 말린 갈고리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 갈코리 안에는 화염의 구체가 형성되어 맹렬히 회전을 하고 있었다.
노인의 주위로는 불타 검게 그을린 짐승들이 여럿 널브러졌다. 그 중 아직 성한 녀석이 노인을 향해 달려들던 차다.
"으르르르 으캉!"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이 안 가는 놈이 곧 목덜미를 물어 뜯을 듯 한 기세를 물씬 풍기며 달려들자, 노인은 화염이 맹렬히 회전하는 지팡이를 겨누며 허연 입김과 함께 한마디 읊조렸다.
"이 잰장 맞을 녀석이!"
그러곤 허리의 회전력까지 동원해 지팡이를 힘껏 휘두른다.
"캐앵!"
회전하는 화염을 감싸고 있는 딱딱한 갈고리 구조물이 달려들던 짐승의 턱을 가격했다.
그대로 달려들던 짐승은 지팡이 머리에 처 맞아 나가떨어져서 비틀거리더니 이내 일어 나지 못하고 픽 쓰러 졌다.
"흐으-, 흐으-"
노인은 더 이상 쓰러진 짐승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한 숨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완전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딱 맞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짐승들끼리 서로 물어 뜯고 싸우는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동시 다발적으로.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보통 저들끼리 영역 이라 던 가, 발정기 때 다투는 것을 본 적은 있어도 대놓고 포식자인 늑대를 상대로 사슴이 도망가지도 않고 뿔로 들이받는 것도 진귀한 광경인데, 그 사슴을 향해 다른 초식 짐승이 들이받아 사슴의 다리를 물어 뜯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육식과 초식의 구분 없 이 서로가 미친듯이 싸우고 있었다.
노인의 일생 에 단 한번 들을 까 말 까 하는 그런 일들이 지금 눈앞에서 흔하게 펼쳐지는 건 기본인 데다가, 대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온갖 해괴한 짐승들이 수 없이 튀어나와 너도 나도 동족 구분 할 것 없이 모여 들어 서로 으르렁 거리며 물어 뜯고 있었다.
눈 앞에 펼처진 광경을 바라보면 노인은 지금 자신이 환각에 시달린 게 아닌가 착각을 잃으킬 것만 같았다.
산을 통째로 뒤 집에 털어야 나올 만한 무리 들이다.
지진이 일어 난 거 같지는 않았고, 산불이라던가 화산이 폭발 해도 도망가기 바쁘지 이렇게 미칠 수는 없었다.
정말 기상천외한 광경이 아닐 수가 없다.
노인이 이 작은 촌락을 둘러 싼 목책을 전부 불태워 접근을 막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좀 전 처 럼 한두 놈이 아니라 저들의 수십 마리 들 과 뒤 엉켜 너나 할 것 없이 지팡이를 휘둘렀을 것이다.
물론 목책만 깨끗하게 타지 않고 집도 몇 채 같이 불태운 것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긴 했지만 말이다.
목책에서 불똥이 튀어 집에 옮겨 붙거나 옮겨 붙은 집에서 집으로, 심지어는 노인이 불사른 짐승 몇 놈이 발광하다 집에 뛰어 들어가 본의 아니게 방화된 집도 몇 채 있긴 했지만 노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튼 덕분에 노인의 주변은 온통 불길의 열기로 가득했지만 노인에게 닿지는 않았다. 오히려 노인 주위로만 한기가 서렸고 입에서 숨을 내 쉴 때마다 입김이 나왔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불길이 당분간 짐승의 접근을 막긴 하겠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사람들이 잘 대처하고 있어 아직 까지 눈에 보이는 사상자는 없어 보였다.
애초에 이 작은 촌락에 지내는 모든 이들이 훌륭한 사냥 기술을 갖고 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이곳은 저 짐승의 무리에 쑥대밭이 되고도 남았으리라.
하지만 지금으로 선 그것도 곧 시간 문제 일 것 같았다.
짐승 무리들의 수가 너무 많았고 어딘가로 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불길이 짐승들의 접근을 막아주긴 하지만 동시에 이목을 끌어 모으는 역활도 동시에 하고 있어 목책의 불길은 물론 사람들이 도저히 계속해서 몰려드는 짐승들의 수를 감당할 수 없어 보였다.
노인 또한 물론.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무리들이 서로 지들 끼리라도 물어 뜯는 다는 것 정도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 와중, 한 사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사내를 보자 노인의 눈쌀이 절로 찌푸려 진다.
이 촌락에 살면서 두 세 번째로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기에.
생김새도 다르다.
피부도 하얀 데다가 머리 또한 이곳 사람들과 다른 고동색 계열이다.
눈에 안 띌래야  안 띌수가 없는 모습인 데다가 그가 들고 있는 검에 서린 시퍼런 기운이 그가 이곳에서 독보적인 존재임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사내는 일 미터 안되는 길이의 하얀 검신을 한 장검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신에는 시퍼런 예기가 서려 검을 에워 싸 한 몸을 해 검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짐승들을 일격에 꽤 뚫었다.
단 순히 꽤 뚫는 정도가 아니라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 상태로 짐승들열 절명 시켜버린다.
사내 주위에는 왜 죽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짐승들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분명 머리나 심장만을 노려 깔끔하게 꿰뚫거나 베면서 치명상을 입혔을 것이 분명하다.
사내가 들린 검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상처 부위는 좀처럼 벌어 지지 않았고 끽해야 조금 피가 베어 나올 뿐이었다.
지금은 사내의 검에 서린 예기가 처음과는 달리 일렁 거리며 그 형상이 고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처음과 마찬가지의 예리함을 보였고, 이 많은 짐승을 살펴보지 않는한 어떻게 죽였는지 알 수 없는 상흔만 남겼다.
"흥. 시간은 무슨 얼어죽을..."
노인은 코웃음 치며 사내로 부터 시선을 돌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녀석들을 걱정했던 자신을 저주 했다.
하긴, 이런 상황일 수록 속이고 더 날뛰어 주는 게 노인으로서도 좋긴 하지만, 그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음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쓸데없는 사념을 접고 다시 현재 주변 상황을 정리하려는 데.
[털썩]
"응?"
노인이 다시 고개를 돌리자 사내가 검을 땅에 박아 무릅을 꿇는가 싶더니 너무나 쉽게 허물어져 버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쯧쯧.. 가지가지 하는구만 정말."
노인의 마음속에 더 짜증이 일었다.
무적이라 생각된 놈이 가장 먼저 쓰러진다니.
지금이야 사내 주변에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없긴 하지만 시간 문제일 뿐이다.
사력을 다해 기를 쓰고 정리한 모양이다.
이곳을 아에 막아버리고 사내에게 가야 되나 싶을 때였다.
갑자기 사내가 벌떡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더니 고함을 질렀다.
"누나!!"
하지만 사내는 바닥만 허우적 될 뿐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노인은 바로 사태를 파악하고 사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에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일단은 그 방향으로 무작정 달렸다.
그리고 보았다.
"이런!"
사내와 같은 고등색 머리를 한 여성이 바닥에 누워 있었으며 그 위에 여성의 반 만한 크기의 좀처럼 보기 힘든 짐승이 올라타 있었다.
나무도 씹어 먹는 굉장히 예리한 이빨에 의해 여성의 오른팔이 피범먹이 되고 있었다.
짐승을 그 팔을 계속 물어 뜯고 있었고 여성은 물린 팔에 힘을 주어 뜻대로 휘둘리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왼손으로 간신히 쥔 검으로 짐승의 목덜미를 밀었지만 예기를 잃은 새하얀 검은 이제 여성의 팔에서 튄 피에 물들어 갈 뿐, 그 어떤 절삭력도 보이지 않았다.
오른팔을 물고 있는 짐승의 고개 짓에 여성의 어깨가 들썩인다.
팔의 상처가 점점 벌어지고 흐르는 피도 점점 늘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 저대로 놔 둬나간 출혈 과다로 죽게 될 것이다.
"크윽!"
노인의 손에 들린 지팡이 머리에서 회전하던 화염들이 더 빠르게 회전하며 화염의 구체가 점점 짖어졌다.
반면, 노인의 입에서 내뿜는 입김 또한 점점 짖어져 갔다.
'안돼! 거리가 너무 멀어.'
이 거리에서 화염을 저 지점으로 유도 시켰다가는 짐승은 물론 여성까지 휘말리게 된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달렸지만 노인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거리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을 더 자세히 볼 수는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서야 이미 짐승의 앞발에 돋아난 긴 손톱이 여성의 가슴을 꿰뚫고 들어 갔음을 깨달았다.
'늦었다.'
꿰뚫고 들어간 위치가 좋지 않았다. 설사 정말로 운 좋게 비겼다 해도 폐가 손상됐기에 살릴 가망성은 없을 것이다.
여성은 사실은 죽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뭐란 말인가. 노인의 눈이 돈 게 아니라면 여성은 분명 아직도 짐승과 힘 싸움을 겨루고 있었다.
팔에서 흐르는 피의 양이 점점 많아 지는 것이, 적어도 저 손톱이 심장을 파고들어 혈액 공급이 중단 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정신력이란 말인가. 노인은 여성의 정신력에 절로 치가 떨렸다.
지팡이를 양손으로 움켜 쥐자 지팡이를 잡은 손에서 부터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화염구는 이제 화염이라고 말 할 수 없을 정도의 농도를 지닌 체 회전 했고 그 회전력은 아까보다 현저히 느렸다.
여성까지 불살라 버린다면 사내가 노인을 어떻게 대할까.
노인은 유도 지점을 여성에게 올라탄 짐승이 아닌 더 위의 허공에 만들었다.
화염에 놀란 짐승이 겨우 비겨나간 심장을 건드리면?
상념의 꼬리를 문다면 끝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노인은 비슷한 짓을 되풀이 할 생각이 없었다.
"크아앙!"
그때, 아까 노인이 아가리를 후려친 맹수가 노인 뒤에서 달려 들었다.
노인의 힘으로는 녀석을 한번에 뇌진탕으로 보내버리기엔 역부족 이었던 모양이다.
노인은 즉시 유도 지점을 여성의 허공 위가 아닌, 지금 달려드는 맹수의 몸으로 바꿨다.
[후화화학!]
엄청난 불길이 맹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검게 숯이 되어 버렸다.
반면, 지팡이 머리에서 맹렬히 회전하던 화염이 그 화염 구체의 중심으로 소용돌이 치듯 빨려 들어가기 시작해 맹렬한 회전을 보였다.
"크크- 크으으윽-."
노인의 주위에 냉기가 점점 짖어 졌다. 노인의 피부가 창백해 지면서 눈썹과 머리는 얼음알갱이에 응결지고 있었고 지팡이는 심지어 회전하는 머리를 제외하고는 하얗게 덥힌 서리에 얼어 버렸다.
"크앆!"
노인이 고개를 치켜세우며 비명을 지르자 빨려들어 가던 화염 구가 멈추고는 다시 제 자리에서 회전 했다.
"으으--"
노인은 심하게 몸을 떨었다. 유독 노인의 몸에서만 지독한 한기가 맴돌았다.
지팡이로 부터 손을 때려 했지만 지팡이와 함께 얼어붙은 손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지지익
노인은 강제로 지팡이를 손으로 부터 떨쳐냈다.
손의 살점 일부가 지팡이에 붙어 같이 떨어져 나갔지만 노인은 한기 이상의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으으으으--"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란 말인가.
노인은 웃고 싶었지만 얼굴이 움직이지 않았다.
한심하다.
자신이 여기서 뭘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싫은 놈들 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것인가.
노인은 크게 웃고 싶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란 말인가.
모든 게 공상 같은 게 자신은 그저 노망난 늙은이 뿐이었다.
허무.
그녀석은 이런 자신을 보면 비웃을까?
'크크크'
갑자기 떠올랐다. 이런 순간 조차 가장 싫어 하는 그 녀석이 떠오르니 우습기 그지 없다.
이건 집착인 건가 아니면....
두 게의 구체다.
노인의 망막이 얼어 붙고 있었던 터라 얼음 알갱이라고 생각 했지만 아니었다.
"?"
두 구체가 둥둥 떠 빠르게 쏘아져 가더니 팔에 피를 흘리며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여성의 앞에 멈췄다. 구체는 노란 빛으로 자전을 돌고 있었다.
두 구체가 거리를 벌리더니 여성 위에 탄 짐승을 사이에 두고 그 자리 고정된 체 맹렬히 회전한다.
[퍼석]
여성의 팔을 물어 뜯던 짐승의 몸이 그대로 폭발했다.
여성에게는 짐승의 피 외에는 어떤 충격도 주지 않은 채, 짐승은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 한 채 그대로 죽었다.
 두 노랑 빛을 발산하는 구체가 하늘 높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이미 세 개의 노란 구체가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노인이 싫어 하는 그 녀석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 귀를 막고 눈을 감아요!"
그 말 뜻을 이해한 사람이 몇 이나 될까.
'이번에는 또 무엇을 보여 주는 게냐. 프리실.'
노인은 곧 그 뜻을 알게 되었고 그 싫은 녀석에게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쾅쾅쾅쾅 파지지지짖 팡 쿠우우우우]
귀청을 찢어 버릴 듯한 엄청난 고음이 다섯 구체로 부터 번개 치며 터져 나왔다.
그리고 다섯 개 의 구체 중 가운데 구체의 노랑 빛이 점점 강해지는가 싶더니 백색 빛을 내뿜었다.
서리에 뒤덮혀 사라져가는 시아 보다 빛에 의에 먼저 시력을 아사갔다.
태양 그자채 처럼 엄청난 빛이다. ,녀석의 말을 들었다 해도 눈꺼풀 만으로는 별 도움은 되지 못됐을 정도로다.
그것은 노인이 마지막으로 본 빛 되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4180 맵배치 항구마을 포트하디 8 부초 2014.01.23 690 1
4179 제로드 -01- 환청 만다도리 2013.12.16 713 0
» 제로드 -00- 그 녀석 2 만다도리 2013.12.03 594 0
4177 강지혜, 목지혜2-3(리얼) 1 1 다시 2013.01.24 1074 1
4176 [예상은 하셨을려나?]기억해줄래 - 20. 또 다른 진실(2) 1 클레어^^ 2013.01.23 809 1
4175 보물고블린 5 1 Rei 2013.01.22 771 1
4174 강지혜, 목지혜 2-3(작성중) 1 다시 2013.01.22 1109 0
4173 소드엠페러 -Prologue- 9 1 핑크팬더 2013.01.22 1177 2
4172 천하제일(天下第一) - 1 - 7 Rei 2013.01.21 879 1
4171 강지혜, 목지혜 2-2 1 1 다시 2013.01.21 1891 1
4170 강지혜, 목지혜 2-1 1 1 다시 2013.01.20 868 1
4169 강지혜, 목지혜1-3 2 다시 2013.01.18 1016 1
4168 프리라이더 (6) 6 1 윤주[尹主] 2013.01.17 1141 1
4167 오분 전 4 예스맨... 2013.01.16 737 0
4166 러브스토리 in 마법소녀 - (3) 2 Chelsea 2013.01.16 825 1
4165 강지혜, 목지혜1-2 2 1 다시 2013.01.16 954 1
4164 <악마의 독후감> yarsas님의 "UNDEAD" 2 1 예스맨... 2013.01.15 1020 1
4163 노래방 금목걸이님이 허락해주신 암얼론 보컬라인을 땃습니다 file 만화狂고릴라 2013.01.15 1030 2
4162 노래방 Zedd - Clarity(KARUT Remix) 1 KARUT 2013.01.15 1055 2
4161 『2012년 5월 6일』타임슬립 로맨스! 장기일【18화】 3 1 ♀미니♂ban 2013.01.15 882 1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220 Next
/ 220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