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17 17:26

프리라이더 (6)

조회 수 1141 추천 수 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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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럽게 뮬리나가 끼어든 탓에 세 사람 이야기는 곧바로 중단되었다. 뮬리나는 도끼눈을 하고선 티르빌을 한 번 쳐다본 다음, 바로 앞에 있는 야나바에겐 시선조차 건네지 않고 그 곁에 선 요한에게로 다가갔다.

 "요한, 떠나지 않을 거지? 그치? 요한이 말했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요한은 이 마을을 벗어나지 않을 거라고. 남아서 나나 마을 사람들을 계속 지켜줄 거라고. 잊어버린 건 아니지?"
 "뮬리나,"
 "어떻게 아빠가 이럴 수 있어요?"

 시위는 돌연 티르빌에게로 돌려졌다. 티르빌은 뭐라고 변명하려 했지만 뮬리나는 그것을 가로막고 제 얘기를 계속했다.

 "어째서 요한을 마을에서 내몰려는 거냐구요! 요한이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요? 행여나 잘못을 저지른 게 있다 해도, 그게 아빠에게 해가 되기라도 해요?"
 "뮬리나. 내 말 좀 들어봐라, 얘야."

 간신히 뮬리나를 진정시키고서야 티르빌은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어째서 내가 요한을 쫓아내려고 하겠니? 얘야, 그건 잘못 안 거다. 난 그저 이 젊은이가 보다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준 것뿐이야."
 "성장이요? 요한이 뭘 더 성장해야 한다는 거죠?"
 "뮬리나, 그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나?"

 이윽고 불똥이 야나바에게까지 튀었다. 야나바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단 듯 침착한 태도이면서, 마치 크게 놀란 양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몸짓했다. 뮬리나는 그런 야나바에게 바짝 다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너 말야! 네가 어제 도중에 그렇게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그 남잔 요한이 쓰러뜨렸을 거야! 요한은 너 따위보다 훨씬 강한걸! 네가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요한은 아빠 앞에서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그걸 네가!"
 "참으로 못난 여자다."

 그 상황에서도 야나바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도리어 눈 앞에 있는 뮬리나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이미 짐작했듯, 상황이 더욱 악화되자 티르빌은 머리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는 가급적 이 자리를 피하고 싶어했지만, 마을 원로란 지위와 딸인 뮬리나의 보호자란 책임감 탓에 섣불리 물러나지 못했다.
 그런 티르빌 태도를 본 척 만 척 하면서 뮬리나는 오로지 야나바에게로 온 신경을 쏟았다. 천적을 앞에 둔 맹수처럼 행세하는 뮬리나에게, 야나바는 비교적 여유있게 응수했다.

 "지금 뭐라고?"
 "못난 여자라고 말했다. 내 말이 틀린가?"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날 보고 하는 얘기야?"
 "그럼 여기 여자가 나와 너 말고 또 누가 있느냐?"

 야나바의 비취색 눈동자가 번득였다. 그녀는 뮬리나를 도전적으로 응시하며 상대가 입을 열기 전 먼저 말을 꺼냈다.

 "좋은 여자라면 남자를 치마폭에 담아 헤어나오지 못하게 놓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여자는 남자를 정나미 떨어지리만큼 곁에서 떼어내 밖으로 보낸다. 그녀는 사랑이 바람에 이는 갈대 줄기마냥 이리저리 흔들리는 감정임을 이해하고, 같은 상대에게 항상 같은 사랑을 준다는 게 불가능하단 걸 안다. 방법은 오로지 상대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뿐이다. 현명한 여자는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매번 변화하여 그때마다 새로이 감동을 주는 남자의 일면 일면을 사랑한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남자가 변모하길 기다리지 않고 남자가 늘 새롭게 변모하도록 그를 이끈다."
 "뭐라고 말하는 거야? 그 잘난 입으로 어떻게 이겨볼까 생각하나본데, 그런 수법 나에겐 안 통해!"
 "물이 한 군데 모이면 언젠가 썩듯이, 사랑도 고이면 썩은 늪과 같이 변하기 마련이다. 사로잡히면 헤어날 수 없고 결국 서로를 모두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네 그 비뚤어진 마음에선 썩은 진창 냄새가 난다. 그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한에게도, 그리고 네 자신에게도 말이다."
 "뭐야? 이게 진짜!"

 뮬리나가 참지 못하고 한 손을 들어올렸다. 자신을 내리치려는 손을 야나바는 피하려 들지도 않았다. 허공에서 휘둘러지는 뮬리나의 손을 막기 위해 요한은 뒤늦게 제 팔을 조금 뻗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티르빌이 뒤에서 뮬리나의 양 팔을 붙잡고 그녀를 말렸다.

 "아빠! 이거 놔요!"
 "이 이상 무례하게 구는 행동은 그만 두거라! 하룻밤을 함께 묵었으니, 그녀도 우리 마을 손님이야!"
 "뭐가 손님이야! 무례한 말을 하는 건 저 여자잖아요! 아빠도 들었을 거 아냐!"
 "잠자코 종교회 안에 들어가 있거라! 어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티르빌에게 불만을 표현하던 뮬리나는, 종교회 뒤뜰 쪽에서 팔짱을 낀 채 자신을 지켜보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며 혀를 차던 티르빌은, 문득 고개를 돌려 자리에 남은 야나바와 요한을 보았다. 그는 먼저 야나바에게 정중히 사과하며 양해를 구했다.

 "내 잘못이오. 용서해 주시길 바라오."
 "신경쓸 필요 없다, 틸. 어차피 손찌검당한 것도 아닌 걸."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잠시 좀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야나바가 허락하자, 티르빌은 곁에 있던 요한을 불렀다.

 "요한, 이 쪽으로 오거라."

 어째서 티르빌이 자신을 따로 불러내는 건지 의아해하면서도 요한은 잠자코 그의 뒤를 따랐다. 티르빌은 요한을 데리고 종교회 안이 아닌, 마을 외곽 야트막한 둔덕으로 걸음을 옮겼다. 홀로 남은 야나바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맑고 화창한 날씨였지만 야나바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한 무리 구름떼가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는 걸 놓치지 않고 보았다. 초원에서 가축떼를 몰고 이동천막을 치며 생활해온 야나바는 그 사소한 징조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밤중엔 구름이 달빛을 가릴 거야."

 그 때에 보름 마을 인근 무성하게 자란 수풀 너머에서부터 웅성이기 시작한 바람이 돌연 기세를 더해 마을 광장 한가운데서 한 차례 휘몰아쳤다. 놀란 짐승들이 울부짖고, 치마를 입은 아가씨들이 흩날리는 옷자락을 붙들어 놓느라 안절부절못해했다. 동네 불량배 무리가 그 모습을 보며 휙, 휙 소리를 연달아 내었다. 그 바람 줄기에 실려 오는 옅은 피 냄새가 야나바의 코를 자극했다. 야나바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마을 광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번 소동을 겪은 후에도 여전히 이 곳 사람들은 평온하고 별 걱정 없이 생활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천성이 낙천적이라?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어서?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위험 신호를 마을 사람들은 대책 없이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적어도 야나바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야나바는 일단 그 문제를 무시하기로 했다. 소동이 벌어진다면 어쩔 수 없다. 야나바 자신은 그것을 막지도, 피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사태에 편승(Free-Ride)하여 파도를 타고 넘듯 그것을 즐길 뿐.

 "정말 귀찮은 일들뿐이라니깐, 여행하는 동안엔."

 홀로 중얼대면서, 야나바는 술통에 기대어 그대로 낮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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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야데 2013.01.17 17:52
    오호라 이래서 제목이 프리라이더군요. 잘 봤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3.01.17 18:44
    눈치채셨을지 모르지만, 자유자재(Free)의 기승사(Rider)란 의미도 있습니다. 순전히 말장난이지만, 실은 그것 때문에 쓰기 시작한 글이기도 하죠 ㅎ;
  • profile
    야데 2013.01.17 19:00
    저는 그 뜻인줄 알았습니다 ㅎ
  • ?
    용호박무(박수무당) 2013.01.17 19:00
    오늘 당신은 운수대통이다! 포인트를 받다니. 이 길로 로또를 사러 가야한다! 로또.. 아.. 어젯밤 꿈에서본 그번호... 2, 8, 25, 31, 34,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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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우처럼 2013.01.18 05:13
    일단 에피소드가 하나 일단락 났군요. 이제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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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주[尹主] 2013.01.18 07:34
    실은 조금 막혀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중이네요;
    일단 다음주 목요일 연재는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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