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2 09:41

보물고블린

Rei
조회 수 771 추천 수 1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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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부스러기를 주워 담다 문득 하늘들 쳐다보았다.
하늘이 지독하게 흐리다. 여기는 언제나 이렇다. 악마가 찌푸린 인상처럼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보다 다시 땅을 고개를 돌린다.
모든것이 황폐하고, 오염되고, 파괴되었다.
죽음...
이곳은 언제나 죽음이 넘친다.
한줄기 산들바람이 코끝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것을 타고 온 것은 온통 죽음의 냄새다.
역한 유황과 답답한 쇠, 그리고 언제 나처럼 비릿한 피내음이 그것이다.
이곳도 언젠가는 푸른초목과 싱그러운 풀내음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생각해 내는것은 너무나 아득하다. 요정이었던 시절은 마치 신화속의 이야기 같다. 
입꼬리가 비틀리며 누른 이가 드러났다.
'멀어... 너무 먼 이야기야.'
지금은 구더기처럼 죽은 자들의 잔해를 먹고 살았던 기억으로 가득하다. 
등에 짊어진 자루속에 그러한 죽음의 잔해들이 가득하다. 
어떤 이의 죽음은 금으로, 어떤 이의 죽음은 칼로, 어떤 이의 죽음은 반지로 각자 자신의 흔적을 넘기며 사그라들었다.
나는... 글세...
습관처럼 왼 손목을 만졌다. 이빨에 낀 때처럼 누런 팔뚝 위로 우둘투둘한 진녹색 팔찌의 감촉이 느껴진다.
라쿠니 부족의 팔찌다. 누군가에게 도륙당한 라쿠니 부족의 전사가 끼고있던 것으로, 몸이 가벼워지며 빨라지는 신기한 마법 무구이다. 
이것 때문에 목숨을 건진것이 얼마나 되는지 셀수가 없다.
삶이란 이런것이다. 구더기처럼 바닥을 기어도 결국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죽어서 무엇을 남긴다? 다 개소리다. 죽어서 남기는 것은 썩어 문드러지는 시체와 역한 악취 뿐이다.
무거운 자루를 내려놓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더 이상 주을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것 같다.
이제 집으로 갈 시간이다.
집...
오래전 시작된 천사와 악마의 전쟁 이후 그 여파로 지금은 오물통 보다 못한 차원이 되었지만, 그래도 마음놓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그리운 가족들이 있는 그곳, 악마 전염병에 걸려 갈대처럼 마른 아내와 언제나 굶주리는 아이들 밖에 없는 곳이지만 그래도... 이곳 보다는 나은 곳이다.
차원문을 열기 위해 주문을 영창 하려는 찰나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운에 주문을 그만두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이다... '그것'이 왔다.
하늘을 찢어 발기듯이 뿜어내는 저 기운은 '그것'밖에 낼 수 없다.
네팔렘, 저주받을 이름이여!
악마와 천사들 조차 꿰뚫어 보지 못하는 요정의 투명술을 넘어 우리를 볼 수있는 저주받은 핏줄이다.
시간이 없다. 어서 빨리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네팔렘은 이미 멀찍히 떨어진곳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외쳐도 소리조차 닿지 않을 곳이지만, 공간을 넘어 그가 내뿜는 살의와 증오가 느껴졌다.
네팔렘이 한발자국씩 다가오지만 얼어붙은 몸은 도통 움직일 수 없었다.
소리없이 다가오던 네팔렘이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위치에서 돌연 걸음을 멈췄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있는 네팔렘의 눈을 보았다. 마치 보석을 박아 넣은 듯 한 호박색 눈동자엔 증오대신 탐욕의 불길이 이글거린다. 
나를 보며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엔 세상 모든 생명을 파괴하고도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살의가 광포한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천사와 같은 외모와 악마의 내면을 지닌 자들.
악마 사냥꾼... 인간들은 이들을 그렇게 불렀다.
분노와 살의, 그리고 증오로 가득찬 살육기계들.
이들은 악마의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겠는 생각으로 무자비한 살육과 파괴를 행했다.
악마사냥꾼은 천천히 등에 걸머진 쇠뇌를 꺼냈다. 
이자들에게 나는 자신들이 죽여 없애야 할 악마들과 다를바가 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나는 즐거운 사냥감이었다. 그들의 파괴에 저항할 수 조차 없는 미약한 힘과 자루에 가득한 금과 무구들...
그녀가 쇠뇌로 나를 겨누자 시리도록 빛나는 화살촉이 보였다. 아무리 죽음을 먹어도 멈추지 않는 아귀와 같은 살인병기. 그것이 나를 집어 삼키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죽을 수 없어!'
나는 정신을 차리고 옆에 떨어진 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온힘을 다해 달렸다.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화살과 폭약들을 피해 달렸다. 때로는 넘어지고 구르기도 했지만, 라쿠니의 팔찌는 효용은 나를 악마사냥꾼으로 부터 살아 남을 수 있도록 도왔다.
간신히 악마사냥꾼으로 부터 도망쳐 커다란 바위 뒤로 고꾸라졌다. 거리가 멀어져 추격을 포기한 것일까? 전신이 찢어지고 터져나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육신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나는 한줄기 희망을 가지고 재빨리 주문을 영창했다. 요정의 세계로 통하는 황금빛 차원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살아 남았다! 살아 남은 것이다!
마침내 차원문이 거의 완성 되었을 무렵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영원처럼 긴 시간이었다.
바위 위에는 나를 겨냥하고있는 악마사냥꾼의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그녀는 조소를 날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푹! 나의 인지를 넘어선 속도로 날아온 화살이 목에 박혔다.
"컥... 컥!"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목이 불로 지지는 것처럼 아팠다. 하늘이 핑핑 돌았다. 폐로 꾸역꾸역 넘어오는 핏물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아득히 멀어져 가는 의식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하늘을 바라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보였다. 그 위로 아내와 아이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손짓했다.
그래, 처음부터 내가 있을 곳은 저기였어.
희미하게 웃으며 붙들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았다.
모든것을 덮는 고요한 어둠이 살며시 내 몸위로 내려 앉았다.


--------


예전에 디3 하다가 써본글 -_-; 하드 정리하다보니 이런게 튀어나옴...

?
  • profile
    윤주[尹主] 2013.01.22 17:11
    디아블로 3에서라면, 주인공은 초장에 나왔던 그 시뻘건 건가요? 그렇게 생각하니 좀 묘하네요;
  • ?
    Rei 2013.01.22 18:59
    차칸 보물고블린과 나쁜 악마사냥꾼 이야기
  • profile
    신지 2013.01.22 18:49
    그동안 엘리트들을 무시하면서까지 돌진해 잡아죽였던 고블린들이 너무 불쌍해지잖아.
  • ?
    Rei 2013.01.22 19:09
    우리는고블린을 괴롭히면 안되는것이었던 것입니다.
  • profile
    예스맨... 2013.01.22 22:26
    디아3 ㅋㅋ 만렙찍고 접음... 보물 고블린 잡아도 좋은거 잘 안 줘서 가끔은 나와도 패스했다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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