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3 20:43

프리라이더 (1)

조회 수 493 추천 수 4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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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베른스크 민족은 온건하고 문화적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된 제국 내에서도 베른스크 민족은 비교적 제국에 우호적인 세력으로 통한다.


 다만 우호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친절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베른스크 지역은 여행자들에게 가장 불편한 곳으로 익히 알려져 있으며, 외지 상인들에게도 진입이 어려운 땅으로 알려져 있다. 베른스크 민족이 타지 사람들에게 그만큼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낯선 이가 오면 이 순박하지만 경계심 많은 민족은 각자 집 문을 닫아 걸거나 모습을 감춘다. 설령 그 사람이 자신들에게 적이건 혹은 은인이건 간에.


 마을 광장을 소란스럽게 하던 거인을 단번에 쓰러뜨린 소녀, 야나바 역시 제국 내에서도 익히 잘 알려진 베른스크의 민족성을 절절히 체감해야 했다.


 "여기선 뭘 먹을 수 있지?"

 "..."

 "뭐, 상관없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좋아. 일단 만들어줘. 가진 돈은 일단, 이 정도인데."


 다짜고짜 가게로 들이닥친 야나바는 곧장 빈 자리를 잡고 앉아 가까이 있던 가게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가진 돈이라며 소녀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건 제국 은화 한 개와 동화 예닐곱 개가 전부였다. 선술집 주인은 소녀가 올려둔 그것을 마치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라도 되는 양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야나바는 그제야 가게 주인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왜 그러지? 돈이 부족한가? 이거면 고급 식당에서라도 볼품없는 요리 한 접시 정도는 충분히 시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대체 뭐야? 아까부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지? 설마 벙어리인 건가?"

 "드웬 아저씨는 벙어리가 아냐!"


 소녀를 뒤따라 들어온 수습 기사 소년, 요한이 씩씩대며 말했다. 소녀 맞은편 의자를 끌어다 앉은 뒤, 요한은 조금 전 드웬이라고 불렀던 선술집 주인에게 말했다.


 "드웬 아저씨, 이 애한테 스튜 한 접시만 내주세요."

 "네 손님이니, 요한?"

 "뭐야, 말 할 줄 알잖아?"


 드웬이 입을 열자, 야나바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짐짓 과장스레 놀란 척했다. 드웬은 야나바를 상대도 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올려진 동전 가운데 동화 세 개를 집어들더니, 잠자코 부엌에 들어갔다. 그런 드웬의 등 뒤에 대고 요한은 이렇게 외쳤다. 말투에 다분히 귀찮아하는 기색이 묻어나 있었다.


 "저희 손님 아녜요! 어딘가서 굴러들어온 부랑자인가 보죠."

 "본인을 앞에 두고 부랑자라니, 그거 좀 심한 말 아닌가?"


 말은 그러했지만, 야나바에겐 표정이나 말씨에 화나거나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요한은 그녀를 뚱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야나바는 점잖은 몸짓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제 동전들을 챙겨 품 안에 넣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요한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지?"

 "너, 팜파냐 족이지? 팜파냐 족이 보름엔 뭐하러 온 거야?"


 팜파냐 족은 베른스크와 같이 제국 남부 변방에 속한 소규모 족이다. 그을린 피부색과 독특한 생활 방식 탓에 팜파냐 족은 제국 어디에 두어도 눈에 띄게 구별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변경 작은 마을 보름에도 그 이름이 알려질 만큼 팜파냐 족을 유명하게 한 건 바로 수 년 동안이나 제국을 괴롭힌 이들의 반란과 저항 시도들이었다. 제국이 지도자와 반란 세력을 처형하고 이들을 진압한 건 요한과 야나바가 만나기 불과 수 개월 전 일이었다.


 그렇기에, 요한은 야나바가 질문에 답한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그냥 세상 구경 중이지. 여기저기, 발 닿는 데로 둘러 보다 보니 어쩌다 여길 오게 된 거랄까."

 "왠지 수상하게 들리는데."

 "네가 수상하게 여겨도 어쩔 수 없어. 정말 다른 뜻은 없는걸."


 태연하게 대답하는 와중에, 야나바는 요한을 똑바로 응시하지 않고 눈을 거의 감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녀 표정이나 낯빛이 전혀 변하지 않는 걸 보면서도 요한은 아직 의심을 다 풀지 못했다. 그가 다른 화제를 막 꺼내려던 때, 두 사람 대화 사이로 새로운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저기, 아까 그 남자를 쓰러뜨린 기술 말인데,"

 "기술이라고?"

 "그 이교도와 말을 섞지 마라, 요한!"


 문을 박차고 들어와 두 사람 대화를 가로막은 건 마을 종교회의 담임 신정관 티르빌이었다. 티르빌의 난입에 요한은 말을 잊고 눈이 휘둥그레져 그를 쳐다보았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철괴 같은 얼굴을 한 티르빌을 앞에 두고, 야나바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맑고 황홀한 비취색 눈동자가 응시하자, 성난 티르빌조차 한 순간 말을 잊고 입을 떼지 못할 정도로 긴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천벌 받을 이교도 계집년! 감히 성전이 있는 이 보름 마을에 발을 들이밀다니! 신의 분노가 두렵지 않은가!"

 "호오, 그거 재밌는 소리를 하시는군."


 황소처럼 콧김을 뿜어내는 티르빌을 눈 앞에 두고도 야나바는 조금도 움츠려드는 기색 없이 당당했다. 보고 있던 요한이 조마조마할 정도로 둘 사이에 팽팽한 공기가 감돌았다. 어느새 왔는지, 작은 선술집 안팎을 마을 사람들이 가득 메운 채 야나바와 티르빌 두 사람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그들 거의 모두가 티르빌을 응원하는 건 당연했다.


 야나바는 앉은 자세 그대로 한 쪽 다리를 들어 꼬았다. 등받이에 깊이 기대 앉아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든 그녀는 보는 사람이 아찔해할 정도로 오만하고 도전적으로 보였다. 그녀 입술이 떼어지는 순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침을 꿀꺽 삼켜 마른 목을 축였다.


 "어디 한 번 얘기라도 들어볼까? 어째서 내가 그 신의 분노란 걸 두려워해야 하는지 말이야."


 조금도 주눅들지 않은 태도로, 야나바는 흔쾌히 티르빌의 도전에 응했다. 보름 마을 사람 모두가, 이 두 사람의 설전에 일제히 이목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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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습 연재 시작합니다.
 실은 하루 숨 좀 돌리게 되서, 조금이나마 써 올려보네요.

 앞으로 틈나는대로 조금씩 써 올릴 생각입니다. 목표는 일단 매 주 목요일 정기 연재입니다.
 회당 분량은 짤막짤막하게 해서 올릴 예정이니, 진행 더뎌 답답하시더라도 양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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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Yes늙은조카Man 2012.12.13 22:48
    잘 읽었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2.12.14 06:03
    감사합니다. 이어질 연재도 잘 부탁드립니다
  • ?
    乾天HaNeuL 2012.12.13 23:03
    추천 누르고 갑니다..... -ㅅ-
  • profile
    윤주[尹主] 2012.12.14 06:02
    뜻밖의 댓글이네요 ㅎ 감사합니다
  • profile
    yarsas 2012.12.15 05:35
    일전에 쓰시던 것은 잠시 중단하신 모양이군요. 일단 분위기가 무겁지 않아 잘 읽히는 게 좋습니다. 앞으로 계속 기대할게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12.15 06:19
    연재중이던 건....휴;; 일단 보류네요. 이번엔 가볍게 가볍게 써보려고 합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2.12.16 01:24
    짤막짤막해서 그렇게 느끼시는 걸지도요 ㅎ
    댓글 감사합니다
  • profile
    시우처럼 2012.12.28 10:30
    이제야 읽기 시작했어요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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