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1 21:48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조회 수 342 추천 수 3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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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 내려쪼이는 태양볕이 무척 따스하다. 10월의 바람이 시원하게 털 사이로 파고든다. 오늘도 어김없이 수염을 축 늘어트린 채 담벼락 위에 웅크려 있던 나는 지가던 차의 경적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잠이 들고 꾀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깔고 앉았던 오른쪽 뒷다리가 저려왔다. 서서히 다리를 빼보려고 했지만 관절에서도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만 일어나볼까?'

 

 나는 천천히 자리애서 일어났다. 그리곤시원하게 등을 쭉폈다. 두둑거리며 관절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했다. 몸도 후드득 털었다. 침이 흘러내린듯 축축한  앞발을 혀로 햝았다. 이제 뭐하고 놀까나. 조금씩 잠에서 깨어나자 심심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사실 해야할 일이 아침 부터 밀려있었지만 딱히 누가 보채는 사람도 없고 잠시 농땡이 부린다고해서 세상이 뒤집어 지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오늘은 유난히 수염을 바짝 치켜세워도 감지되는 위험은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자기 소개를 아직 하지 않았군. 나는 라시우스. 누가 지어준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시우스라는 이름이 적힌 목걸이가 목에 걸린 걸 보면 그게 아마 내 이름이겠지. 덧붙여 하얀색에 얼룩덜룩 노랗고 검은 반점이 매력적인 수컷 고양이가 바로 나다. 왜 하필 수컷인가 하고 묻는다면 할말은 없지만, 나도 그래서 언젠가 내가 수컷인 이유에 대해서 고민도 해봤지만, 수컷이 수컷인거에 무슨 이유가 있겠어. 왜 나는 수컷인가요! 하고 어느 날은 조물주를 탓해본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나의 성 정체성에 대해 크게 불만이 있는건 아니었다. 뭐랄까. 그저 할일이 없으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하면 할일은 있지만 그다지 의욕이 없다고나 할까? 아님 적적하다고나 할까? 이왕에 만들어 줄꺼면 말벗이라도 같이 만들어 줄것이지 혼자서 말하고 대답하는 것도 매번 참 고역스러운 일이었다.

 

 슬슬 걸어볼까 하여 폴짝 담 위에서 뛰어내렸다. 폭신한 발바닥으로 바짝 마른 흙먼지가 달라붙었다. 잠시 이 먼저를 털어낼 수 없을까 고민해보지만, 과연 어떻게 털어낼 것인가. 나는 앞발을 들어 발바닥을 흔들어 털어댔다. 이제 됐나 싶어 발을 내려놨지만 텁텁한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아, 하고 잠시 신세한탄을 해본다. 고양의 사회의 문명이 인간만큼 발달 했더라면, 신발을 신거나 아님 양말을 신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 따위는 지금의 쓰레기봉투를 뜯어대는 동족들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 백만년이 지난들 이루어질 일인가 싶다.

 

 차가 한대 지나간다. 저 안에는 인간이 타고 있을것이다. 이 지구라는 공간을 자기 멋대로 쪼물닥거리는 종족. 용서할 수 없게도 얼마 전에는 내가 주로 낮잠을 자던 공터를 폐쇠해버렸다. 무슨 빌딩이라도 지으려나 본데, 나는 허락한바 없지만 자기들 멋대로 내 구역을 침투하고선 사과 한마디 조차 없다. 저런 싸기지 없는 인자들을 내가 왜 굽어살펴야 하는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 밖에 없었다.

 

 [라이우스]

 

 이래저래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마침 눈에 띄인 가로수에 등짝을 긁으면 참 시원하겠어 하고 생각하는 찰라, 머리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 정체는 알 수 없지만 가끔 뜬금없이 심지어는 똥을 눌때도 들려오곤한다. 

 

 [무슨 일이야, 또.]

 

 나는 퉁명스러운 어투로 생각했다.

 

 사실, 머리속을 읽어대는 이런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맘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뭐라고 해도 이 녀석은 항상 혼자 떠들고선 사라져 버려서 이젠 거의 자포포기한 상태라고 할까나.

 

 [P-13 구역, 개체 넘버링 7731, 상시 모니터링 필요]

 [뭐? 변이점들을 찾아내 수정하는건 어떻게 하고?]

 

 하지만 내 질문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는 거기서 끝나버렸다.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이 터져나온다. 갑자기 뭐야 이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정도것이지. 그러니까 이젠 나보고 스토커라도 되라는건가.  불쾌해진 나머지 꼬리가 빳빳해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든지 간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저런 명령조의 말투를 들었어도 하루종일 낮잠을 자든, 고양이들과 사교생활을 하든 상관 없는 일이었다. 마침 공원에서 간식도 얻어먹을 시간이고, 결국 나는 목소리가 지정한 곳과는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하지만 간식도 먹고, 고양이들과 몇시간 놀고 난 다음, 혹시라도 시간이 남으면 그 때가서 잠시 둘러나 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어찌됐든 나는 고양이고, 그것도 할일이 없어 무료한 고양이니까. 그러니까 이건 그 목소리가 시켜서 하는게 아니라 할일이 없는 김에 겸사겸사 하는 일이라는 거다. 

 

 나는 이렇게 넒은 마음씨를 가진 내 자신에게 감탄하며 공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어떤 간식을 가지고 나왔으려나.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점점 빨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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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늙은조카Man 2012.12.11 22:34
    2010년에 이상문학상 우수상 받은 황정은의 묘씨생이라는 소설이 생각나네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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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우처럼 2012.12.11 23:06
    2011아닌가요? 제가 2007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부터 모으기 시작 했는데
    2011년만 안샀거든요. 공지영씨 글 별로 안 좋아해서,
    아, 찾아보니 2011 맞내요 묘씨생이라고 올라와 있네요
    안읽어봐서 모르겠지만 그분의 글은 엄청더 스킬이 농후하겠죠? 부러운 일이에요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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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늙은조카Man 2012.12.11 23:11
    2011이였나 ㅋㅋ 헷갈렸음 ㅋ 뭐 저는 그 해 공지영이 댜상 받은 걸 매우 못마땅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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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우처럼 2012.12.12 00:49
    뭐랄까, 다른 년도의 작가보다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요? 제가 볼때는 상받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이상문학상을 받은 글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도가니니 뭐니 공지영씨가 쓴 글을 보면 문장도 그렇고 그렇게 고급스러운 느낌은 안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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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늙은조카Man 2012.12.12 02:31
    공지영 글 몇개 안 봤지만 일단 글의 주제부터가 맘에 매우 안듬... 글도 읽어보면 매력적이지 않고, 심지어는 트위터로 꼴보기 싫은 짓까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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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주[尹主] 2012.12.12 07:20
    뒷얘기가 있어도 좋을 것 같은 글이네요. 혹시 쓰고 계신지?

    2011년 <맨발로 글목을 돌다>를, 저는 그럭저럭 괜찮게 봤었어요. 적어도 위로받을 순 있었던 거 같네요. 그 해랑 올해, 지금까지 해서 서점가 베스트셀러 트렌드가 '위로', '위안'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시기적절한 선정이 아니었나 합니다. 다만 어떤 작가들 글로부터 느낄 수 있던 묵직함 같은 감상은 없었던 거 같기도 하네요.

    일련의 트위터 사건들 겪은 후에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 망가지긴 했지만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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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늙은조카Man 2012.12.12 15:37
    뭐 제 개인적인 취향입니다만 차라리 그 해에 우수상을 받은 김경욱이나 김숨 김언수 황정은 같은 작가들이 더 낫다고 봅니다 물론 우수상을 받은 작품들이 대상을 받기는 부족하다는 느낌은 받았습니다만 ㅋㅋ 그리고 저는 공지영 작품을 좋아한다고 해서 뭐라고 하진 않아요 ㅋ 그것도 그 분 취향일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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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우처럼 2012.12.12 21:14
    사실, 생각하는 글이 있긴한데 그 설정을 바탕으로 단편적인 글을 써봤어요
    인물 성격도 설정하고, 글 연습도 할겸.
    그런데 예전에도 좋지 않았던 실력이 한동안 쉬었더니 문장도 어색하고 글도 잘 안써지고 그러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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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늙은조카Man 2012.12.12 22:04
    괜히 공지영 얘기만 해서 죄송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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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우처럼 2012.12.13 00:21
    공지영씨 이야기는 제가 먼저 꺼냈는데요 뭘. ^^ ㅋ
    그리고 이 글도 사실 그렇게 의미있는 아닌지라 이렇게 관심가져주신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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