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05 08:20

프리라이더 - pilot

조회 수 449 추천 수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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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 변경에 보름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변경이라고는 하지만 주민들은 순박하고 온순해 제국에 병합된 이래 단 한 차례 사건이나 소동도 일으킨 적 없었다. 이 지역, 베른스크 사람들은 보름을 비롯해 곳곳에 크고 작은 마을을 이루며 제국의 진출 이전부터 평화롭게 살아오고 있었다. '무기라곤 일절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베른스크 주민들에 대한 제국 학자들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그런 보름 사람들에게, 지금 맞닥뜨린 이 상황은 다소 가혹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쩔 거냐, 꼬맹아! 네녀석도 여기 드러누운 녀석들처럼 되고 싶으냐?"


 마을 광장 한가운데 몸집 커다란 사내가 한 명 바위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사내 발치에는 마을 사람 몇 명인가가 피떡이 된 채 쓰러져 있었다. 모두 그 남자가 난동을 부린 결과다.


 그리고 그 남자 앞에 마을 소년이 한 명, 사내를 경계하며 마주하고 있었다. 소년의 손에는 장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일반적인 장검보단 짧지만, 그렇기에 소년의 작은 몸집엔 알맞은 크기였다. 마치 애당초 소년에게 맞추어 제작된 무기인 것처럼. 낙관적이고 평화로운 베른스크 민족에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소년이 든 장검 끝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런 소년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광장을 에워싼 군중 틈에서 하나둘 새어나오고 있었다.


 "요한! 조심해!"

 "괜찮아, 요한은 우리 마을의 자랑이니까!"

 "그래, 요한은 수습 기사잖아! 진짜 제국 기사가 임명했다고!"


 여기저기서 새어나오기 시작한 목소리는 어느새 함성이 되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사내는 불만스런 표정을 하고서 주위를 흘겨보더니, 별안간 노성을 내질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일순 잠재워 버렸다.


 "관계없는 사람들은 아가리 닥쳐! 입만 산 것들이 어디서 감히!"


 검을 든 소년의 손에서 떨림이 멎었다. 각오를 다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잔뜩 긴장하고 겁을 먹어 몸이 굳어버린 탓이다. 머릿속에선 주마등 대신인 양 스승인 스벤슨의 모습만 거듭 떠올랐다.


 '기사가 되고 싶다고?'


 자뭇 단호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코찔찔이 어린애를 바라보며 스벤슨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너 같은 기사도 하나쯤 있어야지. 이런 시대 아닌가.'


 지금도 소년은 기억한다. 그 날 늙은 기사는 즉석에서 자신에게 기사 서임식을 해 주었다. 허허벌판 위에서 무릎을 꿇게 하고, 자신의 검을 뽑아 소년의 양쪽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앞날의 영예를 위해 축복해 주었다. 마을 대장장이는 소년에게 어울리는 검을 만들어 선물해 주었다. 한동안 소년은 그 검을 안고 잠자리까지 들어갈 정도로 그것을 애지중지했다. 아이들은 부러워하고, 어른들은 대견해했다. 모든 게 다 좋아 보였다.


 조금 전 저 괴한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어...어째서 이렇게 일이 꼬여버린 거야!'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 정도로 소년은 위압감을 느꼈다.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가는 느낌이라 몇 번이나 억지로 침을 내어 삼켰는지 모른다. 소년은 애처로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광장을 빙 둘러싼 마을 사람들 누구 하나 소년을 대신해 나서려는 이가 없었다. 소년은 그런 마을 사람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으으..."

 "뭐냐! 덤빌 생각이 없는 거냐! 이 겁쟁이 녀석이!"


 소년이 발을 떼지 못하자 거한은 그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일순 소년의 눈에 불길이 확 일었다. 비록 아주 잠시뿐이긴 했지만 말이다.


 "푸하하하! 봤냐? 이 녀석, 방금 내 눈을 피했다고!"


 잠깐 자신과 마주쳤던 시선을 소년이 돌리자, 사내는 폭소를 터트렸다. 소년은 전에 더없이 비참함을 느꼈다. 여기저기서 안타까움과 응원이 담긴 목소리가 일었지만, 사내가 주먹을 들어 위협하자 다시금 사그라들었다. 모든 이가 긴장한 채 소년과 괴한에게 집중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어느 누구도 마을 광장으로 들어선 낯선 이에 대해 알아채지 못했다. 심지어 그 한가운데서 대치하고 있던 남자와 소년마저도 말이다.


 "이래서 촌구석 놈들은, 칫."

 "우우....우아아아아아!"


 결코 좋은 타이밍이라고 할 수 없는 순간에, 소년은 사내를 향해 돌진했다. 사내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소년의 몸놀림을 응시했다. 역시 별볼일 없는 놈이다. 제법 단련을 했는지 몸은 그럭저럭이었으나 검 휘두르는 폼이나 돌진하는 폼이 너무나도 제멋대로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스벤슨이 스승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그가 소년에게 가르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마구잡이로 돌진해가던 소년의 눈 앞에 무언가가 어른거렸다. 무의식적으로 소년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실을 꼬아 만든 술 장식 여럿이 바람에 흩날린다. 울긋불긋한 헤어밴드가 소년의 눈 높이에서 스쳐 지나가며 모호한 잔상을 남긴다. 다음 순간 소년은 무언가에 발을 채여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졌다. 꼴사납게 땅바닥에 넘어진 소년의 눈에 조금 전 자기 곁을 지나쳤던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당당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아이였다.


 술 장식 달린 가죽 판초를 검은 머리칼과 함께 휘날리며, 여자아이는 망설임 없이 거구의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사내는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주먹을 여자에게 휘둘렀다. 남자 주먹 앞에서 풍압이 이는 걸 보았다고 소년은 착각했다. 주먹이 닿기 직전, 그러나 여자는 우아한 몸짓으로 그것을 피해 곁으로 흘렸다.


 정말 놀라운 건 그 다음 벌어진 일이었다.


 사내가 주먹을 회수하기 전, 여자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사내 팔을 짚고 물구나무를 섰다. 거목 줄기마냥 우악스런 근육덩어리 팔 위에서, 여자는 마치 재주라도 부리듯 공중재비를 돌며 사내의 어깨 위로 옮겨갔다. 눈깜짝할 사이 여자는 사내 어깨 위에 무등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사내의 육중한 몸이 숨죽은 갈대풀마냥 힘없이 무너져 버렸다.


 "앗!"


 모두가 경악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조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누구 하나 제대로 알지 못했다. 거한이 쓰러진 자리에선 희뿌연 흙먼지가 크게 일었다.


 가까운 곳에 있던 소년도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킬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득 그는 정신을 차리곤, 자신이 떨어뜨린 칼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검은 가까운 곳에 떨어져 있었다. 소년은 검 손잡이를 잡아 끌어당기곤 안도했단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의 앞에 낭랑한 목소리가 불현듯 나타났다.


 "너 괜찮아?"


 말을 걸며 손을 내민 건 조금 전 거한에게 달려들었던 그 소녀였다. 소년은 그 손을 잡는 대신 경계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새하얀 피부인 소년에 비해 갈색인 소녀의 피부는 어둡고 거무칙칙해 보였다. 소년은 그녀가 마녀나 악마일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이라면 그렇게 어두운 피부색을, 그렇게나 새하얗고 고른 이를, 또 그리도 아리따운 비취색 눈을 갖고 있을 리 없을 테니까.


 "너, 정말 무모한 애로구나."


 자기보다도 몸집이 큰 소년을 어린애 다루듯 하면서 소녀는 미소지어 보였다.


 이것이 요한과 야나바,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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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행 업로드 제 2탄, <프리 라이더>입니다. 보시다시피 <서라벌 밝은 달에...>와는 전혀 다른 얘기에요.
 충분히 분위기나 인물 소개가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느낌입니다. 어떤 걸 연재하는 게 좋을지 추천해주셨으면 해요.
?
  • profile
    윤주[尹主] 2012.12.07 15:50
    선행화다보니 궁금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서;;;
    의견 감사합니다.
  • profile
    시우처럼 2012.12.07 02:22
    둘다 좋지만 익숙하게 읽히기엔 이쪽이 더 나으려나요?
    그런데 이런 판타지 물이라도 윤주님이 쓰시면
    전형적인 판타지 구조를 따르기 보다는 새로운 세계를 만드실 것 같다는.. ㅋ

    어쩄든 주인공이 강해지는 성장물인지라(맞나요?) 읽기도 재밌고 흥미로울 것 같아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12.07 15:52
    아니에요! 짤막하고 전형적인 판타지로 쓸 겁니다! ㅎ
    가닥은 성장물 쪽으로 잡았는데, 어느 정도까지 구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 profile
    욀슨 2012.12.09 09:40
    소년이 소녀를 만나다......라. 뭐든 더 재미있고 윤주님도 즐겁게 쓰실 수 있는 쪽으로 고르셨으면 좋겠습니다. 잘 봤어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12.10 04:57
    뻔한 얘기긴 하죠? 조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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