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95 추천 수 1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5. 유레카!

-It Don't Mean A Thing

 

실제로 떠나는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베이스캠프까지의 거리도 꽤 있었던 편이고, 영감쟁이들이 떠나도 좋다고 승인한 것도 한참 뒤의 일이었고. 사무실 밖에서 주주들이 소리치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모든 준비가 끝난 뒤 나는 동기와 함께 냉동수면 캡슐에 들어갔다. 한 켠에는 그 지긋지긋한 행성에서 가져온 샘플들이 무슨 선물 보따리처럼 실려 있는 채로. 무사히 본성으로 돌아왔더니 착륙한 곳은 또 엄한 분화구였다던가, 거기서부터 항성의 빛만 의지해서 복귀했다던가 하는 사소한 착오가 있긴 했지만, 아무튼 우리는 그 지긋지긋한 별에서 살아 돌아왔다. 뭐, 며칠간은 좋았다. 보너스로 주머니도 두둑하고, 섭취하지 못한 것도 섭취하고, 애인들이랑 같이 오붓한 시간도 보낼 수 있었으니까. 회사(와 영감쟁이들)의 사진이 미디어에 나기도 했다.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모래와 폐허로부터 찾아낸 최후의 문명의 잔해. 그들은 마지막까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가.’ 지독하게도 감상적이고, 덜떨어진 문장이었다. 물론 그런 걸 신경 쓸 틈도 없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얇은 회상에서 떠올라, 장치 내부의 투과 사진을 봤다. 일일이 세 보지는 않았지만, 두세 번만 더 보면 아마 백 번은 족히 본 게 되겠지. 안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어떤 식으로 연결해야 작동할지도 모르는 단자에, 시간이 좀먹어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바스러질 법한 빈약한 기판과 그 위에 얹힌 원시적인 부속품들까지. 지금까지 알아낸 건 이게 일종의 기억장치고, 어딘가 연결해서 데이터를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걸 연결할 수 있을 법한 샘플들은 죄다 절망적으로 망가져 있었다. 스폰서들은 우리가 부주의하게 취급해서 그렇다고 했지만, 정지된 시간장을 걸었어도 그 물건들을 살려서 오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일 골치 아픈 건, 다른 샘플들은 여기서 뭔가 건져내지 못하면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해독하는 데 필요할 법한 건 모두 빠져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이게 초석이었던 셈이다. 눈이 빠져라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쉬어가면서 하라고.” 동기였다. 나는 그가 건넨 약한 각성제를 받아 마셨다. 끔찍한 맛이었다.

 

“운 좋게 빠진 주제에 팔자도 좋구만. 이것 때문에 아주 미쳐버리겠다.”

 

“운 좋게 빠지기는, 잡놈아. 나는 이것들이 어떻게 생겨먹었을지 짐작도 안 가는데, 인형 만들라는 주문까지 받았다니깐.” 즉, 내가 일 끝날 때까지는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려도 상관 없다는 이야기였다. 어째 쌩쌩해 보이더니. 지금도 몰래 땡땡이 치고 슬그머니 들어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혹시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냐? 너도 빨리 집에 가고 싶으면 한번 생각해 보라고.”

 

“뭐? 나보고 물어보면 답이 나올 것 같냐?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물건 아냐, 이거.” 동기는 굉장히 건성건성 대답했지만, 뭔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확 불이 붙는 느낌이 왔다. 왜 지금까지 이걸 붙잡고 이러고 있었지.

 

“역시 너밖에 없다, 친구야.” 내 말을 듣고, 그는 어딘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내 일이 조금이라도 더 끌었으면 했다는 양.

 

“별 말씀을.” 동기가 나가자마자, 나는 그 길로 박물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무슨 상황인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관장에게 협박과, 사탕발림과, 거짓말을 적당히 섞인 말을 계속 쏟아낸 결과 구형 컴퓨터를 하나 받을 수 있었다. 그 빌어먹을 별에서 가져온 놈과 가장 비슷한 물건이었는데, 구형보다는 유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한 놈이었다. 아무튼, 꽤 복잡한 과정 끝에 내용물을 볼 수 있었다. 자세한 과정은 나도 떠올리고 싶지 않고, 누구도 알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 생략하지. 이 미개한 종족들 기준으로는 꽤 큰 수준이었을 저장장치에 무엇이 들어있었을 것 같은가? 행성의 한때 아름다웠던 자연광경? 틀렸다. 그들이 이룬 찬란한 문화와 도시, 그리고 예술작품들? 그것도 틀렸다. 그들의 사상을 집대성한 데이터베이스? 또 틀렸다.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안은 뼈의 주인들로 추정되는 종족들이 일련의 짝짓기 활동을 하는 영상이니 사진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다시 말해, 포르노가 가득 들어 있었다. 큰 고비를 하나 넘겼다는 안도감 가운데, 헛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나는 마지막에 남은 자료라고는 이런 것밖에 없어, 음탕하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될 이 이름 모를 종족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어쨌거나 내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 주는 건 그들이었으니까.

 

6. 구형 전뇌는 포르노그라피의 꿈을 꾸는가

-Sad But True

 

“수고했네. 자네들이 아니었으면 우리 회사는 어떻게 됐을지......” 사장이 말했다. 그는 다른 늙은이들과 함께, 축 늘어진 눈알 여섯 개를 굴리고 있었다. ‘그러면 제발 월급 좀 올려주시고, 위험수당은 아끼지 마시고, 다음 탐사 때는 제발 비행정 좀 딸려 보내 주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결국 나오는 건 억지웃음과 직각인사, 그리고 입에 발린 말 뿐이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죠.” 동기가 말했다. 그 역시 다리미로 편 것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는 옆에 있는 사람 셋이랑 동시에 악수하고 있었다. 그래도 팔 하나는 놀고 있는 거 보니 나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아휴, 저희가 뭐 한 게 있나요. 그건 그렇고, 참 멋지게 조성해 놓았군요.” 우리 앞에는 ‘지구 박물관’의 하이라이트, 지구인 파노라마가 전시되어 있었다. 확실히 한 달 동안 급조한 것 치고는 제법 그럴싸한 모습이었다. 생식기 주위만 간신히 얇은 직조물로 가리는 복식이라던가, 번식 활동에 금기 같은 것은 거의 없어서 그야말로 문란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생활상이라던가. 자료가 없는 부분은 대충 상상으로-암컷 개체가 절대적인 다수를 차지하며, 주식은 돌연변이 벌레였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리고 이들은 겉으로 보이는 내골격 동물 특유의 연약해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그 벌레들과의 생존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신체능력을 갖췄던 것으로 보인다-지어낸 부분도 있긴 했지만, 어차피 아무도 모를 테니까 상관은 없었다. 내가 저장장치에서 복원해낸 영상을 최대한 참고해 만든 수컷 개체와 암컷 개체의 등신대 상 앞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인간이 가장 문란한 동물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들 지구인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것 참, 신문 기사랑 비교해서도 눈곱만큼도 나을 것 없는 문구였다. 못 잔 잠이 보복하는지 자꾸 눈꺼풀이 끈적끈적해져서, 나는 오른쪽 아래 눈을 비볐다. 지구인들은 대체 눈 한 쌍만 가지고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당분간 저 아무것도 없는 황폐한 행성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많아지겠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절대로 안 갈 거라고.

 

E(pilogue)

-Ballad of a thin man


(아래 내용은 저번 탐사에서 찾아낸 메모를 분석한 것이다.)

 

이제는 먹을 것도 없다. 안전할지 어떨 지도 알 수 없는 물을 마시고, 종이니 이런 것을 주워 먹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며칠 전에는 제비뽑기로 ......를 나눠먹었다. 늙은이 치고는 크게 질기지도 않았다. 동물의 ......를 먹는 것은 오랜만이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와 ......를 ......이고, ......다. 며칠이나 ...... 수 있을까? 옛날에 봤던 이야기처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내 몸을 ...게 될까. 아직 뭔가 ... 수 있는 기력이 남아 있는 동안에-누가 주워 먹지 않은 종이를 찾는 건 정말 힘들었다-이 메모를 적는다.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 인트라넷은 완전히 통제 불능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 원인은 바이러스였다. 끊임없이 증식하고 변이하여, 결국에는 통신망을 헤집고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내용물을 마구 후벼 파내는 그런 바이러스. 그 결과로 .......가 유출되었다. 더 바보 같은 건, ......을 사이좋게 .........고 나서 그의 소지품을 봤더니 ...... ......가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그걸 컴퓨터에 연결해 보고 나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마 플레이타임을 다 이으면 열 살배기의 일생 정도의 길이겠지. 모든 조각이 제 자리에 모이는 것 같았다. ................ 남는 건 이 웃기지도 않는 ............... 뿐. 아무리 ...... 것이 ...어도 종이 ...고 .........을 수 있는 것은 바닥의 충전재나 옷, 가죽 정도일 테니까. 그래. 인류는 멸망했다. ......... ......를 집무실에서 볼 생각을 한 ..................와 어쩌다가 심심풀이로 .........에 바이러스를 심어 놓은 풋내기 덕분에. 기가 찬다. 한 정부의 수반이니 요인, 어쩌면 인류 최고의 엘리트일지도 모르는 놈들이 남기는 유산이 고작 이딴 물건이라니. 어차피 오래 버티지 못할 건 안다. 이ㅁ

 

(잉크가 없었는지, 다음 부분부터는 펜으로 누른 자국밖에 없었다.)



FIN.  


==

기(생략)결. 일단은 끝났으니, 다른 것도 쓰러 가야겠네요.

?
  • profile
    윤주[尹主] 2012.11.24 08:43
    연결고리가 포르노라뇨 ㅋㅋㅋ
    재밌게 읽었습니다. 인류 마지막에 남기고 가는 건 의외로 저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ㅎ
  • profile
    욀슨 2012.11.24 09:38
    로제타 스톤이라고 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외계인들이다 보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그쪽으로 대체했어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2451 프리라이더 (1) 9 윤주[尹主] 2012.12.13 493 4
2450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1 시우처럼 2012.12.11 342 3
2449 <사진 이미지> 고립의 갈증 6 file Yes늙은조카Man 2012.12.11 386 2
2448 [사진이미지] 장난감 6 file ☆XatraLeithian 2012.12.11 444 4
2447 애완견 5 윤주[尹主] 2012.12.10 468 3
2446 여로에서 5 욀슨 2012.12.09 522 4
2445 [사진 이미지] 가장 아름다운 꽃 13 file 윤주[尹主] 2012.12.09 434 2
2444 이데아 2화 5 모에니즘 2012.12.09 299 3
2443 희귀동물 추적관리국-그것은 분화구 너머에서 왔다 3 욀슨 2012.12.08 419 3
2442 프리라이더 - pilot 6 윤주[尹主] 2012.12.05 449 4
2441 『1999년 6월 4일』타임슬립 로맨스! 장기일【15화】 1 ♀미니♂ban 2012.12.05 291 1
2440 서라벌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 - pilot 6 윤주[尹主] 2012.12.04 434 2
2439 [사진이미지] 길거리 무술대회 3 file 시우처럼 2012.12.03 332 1
2438 [가본 장소] 제주공항에서 5 윤주[尹主] 2012.12.03 432 2
2437 이데아 1화 4 모에니즘 2012.12.03 1215 2
2436 [UNDEAD] 5. 생과 사에 걸친 자 - 6 5 yarsas 2012.12.02 403 1
2435 [2주만에 올리네요]기억해줄래 - 16. 되살아나는 기억 2 클레어^^ 2012.12.01 270 1
2434 [Test]ㄱ, ㄴ 그리고 ㄷ 2 칠흑 2012.12.01 366 2
2433 [UNDEAD] 5. 생과 사에 걸친 자 - 5 4 yarsas 2012.11.25 495 2
» [단기기획] Planet Strangelove(完) 2 욀슨 2012.11.22 395 1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130 Next
/ 130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