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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삼 사랑이, 인류에게 주어진 영원한 테마란 생각이 듭니다. 글과 노래, 온갖 영상 매체와 같은 컨텐츠뿐 아니라 종교, 인간심리, 사회학 등 인류가 다루는 거의 전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죠. 딱히 종교인이 아님에도, 성경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 간혹 인간의 지상 과제인 양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얼마전 결말이 난 애니메이션 <도는 펭귄드럼> 역시 '사랑'이 테마인 이야기라고 생각이 듭니다. 24화 적지 않은 분량에 막장 뺨치는 전개, 난해한 우의적 표현들과 시간 흐름을 넘나드는 구성들 탓에 인내심을 갖지 않는 한 참고 끝까지 보기 쉽지는 않았지만, 가장 간단히 이 작품을 요약하자면 그렇겠죠. '이것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부모 없이 세 아이들만 사는 집안, 칸바와 쇼마 형제는 여동생 히마리와 함께 소박하지만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히마리는 병을 앓고 있고 그것때문에 금방이라도 죽을 지 모를 처지이지만 이들 남매는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죠. 어느날 갑자기 히마리가 쓰러져 그대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형제가 좌절에 빠진 그 때, 유원지에서 사온 펭귄 모자를 쓴 채 히마리가 부활하게 됩니다. 펭귄 모자를 쓴 채 전혀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히마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여자애의 목숨을 구해 주마. 그 대가로 내게 핑드럼을 가져와라. 여동생 히마리를 살리기 위해 두 형제가 핑드럼을 찾아 좌충우돌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초반부 시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며 시작한 애니메이션은, 점차 진행해갈수록 각 캐릭터들의 사정들을 풀어놓습니다. 사정이란, 모두 그들이 주거나 받았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던 칸바와 쇼마, 히마리 세 사람이 어떻게 가족이 되었는지, 또다른 등장인물인 링고는 어째서 죽은 언니 모모카의 사랑을 대신 이루어주려 하는지, 칸바와 쇼마 형제의 학교 선생님 타부키와 그의 연인 유리는 어떻게 관계맺게 되었는지 등등. 각각의 사정들은 모두 사랑받거나 사랑을 주었던 얘기들, 혹은 사랑받지 못하거나 사랑에 배신당한 이야기들입니다.


 애니메이션 초반 인물들의 사정은 주로 과격한 사랑, 막장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제멋대로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사랑 얘기가 위주입니다. 링고가 죽은 언니를 대신해 타부키 선생님을 좋아하며 스토킹 다름없는 행동을 한다거나,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히마리에 대해 칸바가 느끼는 애틋한 감정 따위가 그렇습니다. 또 링고와 타부키의 연인 유리 사이 경쟁 역시 사랑의 아름다운 일면이 아니라 처절한 암투 및 진흙탕싸움으로 그려지죠. 칸바에게 끈질기게 집착하는 붉은 머리 여자 마사코의 행동 역시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한편, 중반 이후 <펭귄드럼>의 전개는 사랑이 아닌, 증오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사랑받지 못한 채 자란 아이들, 세상이 자신들을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테러리스트 집단들. 이들은 누군가를 증오하고, 또 이 세상 자체를 증오합니다. 증오로 인해 사람들은 보복을 꿈꾸고, 그 때문에 누군가는 또 상처를 입게 됩니다. 링고의 언니 모모카가 죽은 이유도, 칸바와 쇼마 세 남매가 부모 없이 저들끼리 살게 된 것도 그런 증오 때문이죠. 증오하는 본인들 역시 외적으로뿐 아니라 내적으로도 상처입습니다. 타부키나 유리가 어린 시절 부모의 비뚤어진 애정 탓에 고통받고, 질투하고 끝내 망가지게 된 것처럼요.


 상처입은 인물들을 구원할 단서는 다시 사랑에 있습니다. 어린 시절 유리가 모모카에게 구원받았던 것처럼, 상처입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사랑받음으로써 치유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유리 역시 모모카처럼 무한정 자신의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는 존재를 만났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지만, 모모카와 같은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애니메이션 후반부 등장인물들은 제각기 사랑을 회복하려 발버둥치지만 그럴수록 그들을 둘러싼 문제들은 더더욱 심각해져만 갑니다. 히마리는 다시 쓰러지고, 칸바는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또 히마리를 그렇게 만든 세계와 운명을 증오하며 복수하기 위해 테러리스트들과 손을 잡죠. 쇼마는 순진무구하게 희망을 놓지 않으며 발버둥치지만 끝내 칸바와 갈라서고 맙니다.


 <펭귄드럼>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24화를 반드시 보아야만 합니다. 마지막 화에서 사랑과 증오라는 양 극단이 완전히 대척점을 이루면서 각각의 극단을 상징하는 인물 모모카와 분홍 머리 정체불명의 인물 사네토시를 기준으로 등장인물 모두를 하나의 축 위에 정렬할 수 있게 되니까요. 사랑 - 증오, 혹은 사랑을 주려고만 하는 사람 -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의 축 위에 말입니다.


 사랑을 주려고만 하는 사람은 모모카와 같이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건 인간이 아닌 성자나 신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행동이겠죠. 한편, 사랑을 받고자만 하는 사람은 사네토시와 같이 증오만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증오와 복수를 자신들의 '생존전략'이라고 하지만, 그 결과는 등장인물들의 삶에서 나타나듯 무분별한 파멸과 상처만 남기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결말 이후 보여주는, 남은 등장인물들의 모습들은 이 축 위에서 한가운데 가까이 모이게 됩니다. '중용'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유리와 타부키, 히마리와 링고가 그리하듯이 사랑은 주는 동시에 받음으로써 행복을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주고 받음으로써 행복을 창조하는 이 선순환을 '사랑의 선순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목의 '도는'은 이 선순환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결국 진정한 '생존전략'은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사랑이 애정이 되었건, 가족애가 되었건 말예요. 일방적이지 않은 사랑이라면 그것은 상대를 구원할 뿐 아니라 사랑을 주는 사람 그 자신 또한 구원할 수 있다는 것.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교환'을 이야기했단 것만으로도 <도는 펭귄드럼>은 높은 평가를 받을 가치가 있단 생각이 듭니다.


 진정 사랑은 인류의 영원한 과제입니다. 애니메이션 속 그들의 '생존전략'이, 지금 여기, 우리의 '생존전략'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

 최근 본 애니메이션 이야기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인물 위상이나 내용 전개 등이 질서 - 무질서 - 새로운 질서로 발전하는 것도 그렇고 사랑 - 증오의 대립 강도에 따라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로 진행하는 것, 또 주제를 중심으로 정교하게 각 에피소드를 짠 것 등등 글 쓰는 입장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았던 거 같네요.

 약간 의문이 드는 건,

 - 증오의 화신일 사네토시가 히마리가 짠 목도리를 더블H에게 전해주는 자폭을 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23화에서 소마가 칸바에게 찾아가는 결정적 계기를 준 게 펭귄모자라는 점이, 진행을 위해 억지로 끼워맞춘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었네요.

 개인적으론 애니메이션보다 글 형태였다면 더 보기 좋았겠다 싶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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