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11 23:07

地獄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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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신부 이하 세 명의 신부는 다방을 나온 직후 여관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출발이 내일이기 때문에 오늘은 그리 바쁠 것도 없었다. 허름한 여관으로 향하는 동안 어느 새 폭격을 피하기 위한 연합군의 등화관제가 시작되었고, 거리는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거리는 어느새 칠흑같은 어둠 속에 침묵했다.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던 중, 신부 일행은 돌연 걸음을 멈췄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그들의 앞길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름이 걷히고 그믐달이 모습을 드러내자, 하얀 도복에 장검 두 자루를 허리에 찬 무사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그는 놀랍게도 누런 두건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건, 예정에 없는 일 같군요. 안드레아 형제.”

알렉산더 신부는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느끼며 입가를 기묘하게 뒤틀었다. 알렉산더 신부의 뒤에 서 있던 안드레아 신부가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만면에 띠고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형제님.”
“후훗, 볼 일이라면 많지.”

앞에 선 무사대신 뒤에서 듣기에 심히 괴로운 간드러진 음성의 영어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요사스런 기운을 풍기고 있는 일본인 사내가 하얀 비둘기를 쓰다듬으며 서 있었다.

신스케였다.

“자아, 볼 일이란 무엇일까? 후훗.”

신스케가 돌연 비둘기의 목을 비틀자, 비둘기는 외마디 비명도 없이 불길한 색으로 타들어가며 재만 남고 사라져버렸다. 그 모습을 역겹다는 듯 바라보던 리오테 신부가 차갑게 빛나는 눈동자를 번뜩이며 안드레아 신부에게 물었다.

“악취가 나는군. 저 자는?”
“야마토 신스케. 일본의 음양사라고 불리는 이교도로 두억시니 주식회사의 간부입니다.”

그의 악명을 익히 들어왔던 안드레아 신부는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신스케에게 역시나 유창한 일본어로 말했다. 전 세계 국어를 모조리 꿰뚫고 있는 안드레아 신부에게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야마토 신스케, 두억시니 주식회사에서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호오, 제법인데? 코쟁이 주제에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건가?”
“우린 갈 길이 멉니다. 볼 일이 없다면 이만 가겠습니다. 가시죠, 형제님들.”

- 쉬익!

안드레아 신부가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형의 날카로운 기운이 안드레아 신부를 향해 날아들었고, 순식간에 품속에서 총검 두 자루를 꺼내든 알렉산더 신부가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안드레아의 앞을 막아섰다. 알렉산더 신부는 총검을 십자로 맞댄 뒤 쇄도한 날카로운 검기를 막아냈지만, 은으로 코팅한 특수 합금 총검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다행히 검기는 방향이 바뀌어 애꿎은 공기만 가르고 지나갈 뿐이었다.

“키킥, 제법이군.”

알렉산던 신부는 기괴하게 웃으며 품속에서 다른 총검을 느긋하게 꺼내든 뒤 검기가 날아온 방향에 서 있는 조선인을 노려보았다. 두 눈을 가린 조선인은 어느새 검과 도의 중간에 위치한 조선 특유의 검, 환도 두 자루를 꺼내들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자신의 검기가 도중에 흩어진 것을 느끼고 놀라워하고 있었다. 리오테 신부도 은구슬로 이루어진 묵주를 손에 쥐고 알렉산더 신부와 안드레아 신부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서서 신스케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들이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을 때 신스케가 요사스런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런이런, 조센징들이란...”
“으음.”

조센징이란 말만 알아들은 조선인 무사-무영이 만면을 구기며 신스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섣부르게 행동하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재밌다는 듯 바라본 신스케가 말했다.

“무영, 우린 대화를 위해 여기 온 거야. 생각 같아선 나도 이놈들을 도륙내고 싶지만 회장님의 전언이 있으니 어쩔 수 없잖아? 후훗.”

이 말을 알렉산더 신부가 들었다면 바로 총검이 날아들었을 테지만 다행히도 알렉산더는 한국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 말을 알아들은 안드레아 신부가 신스케를 돌아봤다. 성경을 손에 들고 있는 그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성스러운 오오라(Aura)가 스멀스멀 새어나왔고, 그는 여차하면 공격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말했다.

“자, 이제 말씀을 해보시죠. 시비를 거시겠다면 굳이 마다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건 오히려 역효과였다. 그 기운을 황홀한 듯이 바라보는 신스케가 흥분을 느끼며 몸을 비비꼬고 있었던 것이다. 안드레아 신부는 그 역겨운 모습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아아아, 그렇게 나오면 일 같은 건 집어치우고 시비가 걸고 싶어지잖아.”

신스케의 그런 모습에 폭발한 것은 어이없게도 같은 편인 무영이었다. 그는 노성을 지르며 신스케에게 검 끝을 겨누었다.

“신스케! 일이 먼저다. 공사를 구분하지 않는다면 너부터 베어버리겠다!”
“하아. 그것도 나름대로 좋지만 어쩔 수 없지.”

사실 무영이 신스케에게 한 말은 협박이 될 수 없었다. 그는 두억시니 주식회사의 모든 에이전트들과 겨루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의 힘에 대한 어긋난 투쟁심은 같은 편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신스케도 사리구분은 확실한 사람이었고, 그는 아쉽다는 듯 안드레아 신부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회장님이 말씀하시길, ‘냄새나는 코쟁이’들이 우리의 허락도 없이 이 동방의 성지를 밟은 까닭이 궁금하시다는 군. 아, 조약을 파기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말하라고도 전하라던데?”
“건방진 놈!”

리오테 신부가 노여움을 내비치며 달려들려 했으나, 안드레아 신부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우리들이 이곳에 온 이유쯤은 두억시니의 정보망으로도 쉽게 판단이 될 텐데요, 형제님.”

안드레아 신부는 말을 아꼈다. 굳이 이 이단자들에게 ‘금서’의 내용을 발설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두억시니는 알고 있을 것이다, ‘블라드 대공’이 이곳으로 오고 있으며 교황청의 개들은 그를 이곳에서 맞이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들이 ‘중국’도 아닌 ‘한국’(그것도 한창 전쟁 중인)으로 온 이유를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두억시니의 회장은 그것을 떠보기 위해 신스케와 무영을 보낸 것이다. 여차하면 없애버리겠다는 뜻까지 함께.
안드레아 신부는 느긋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들은 곧 이어 이곳으로 올 ‘그 자’를 맞이할 뿐. 조약을 깰 생각은 추호에도 없으니 회장님께 심려 놓으시라고 전해주십시오. 그럼 저흰 이만 가도록 하겠습니다.”
“후훗, 좋아. 그럼 다음에 보게 되길 고대하고 있겠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신스케는 요염한 눈을 가늘게 흘겨 안드레아 신부를 본 뒤, 그림자 속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정말 끝까지 요사스러운 사내였다. 그와 대조적으로 무영은 환도를 검집에 스르륵 집어넣은 뒤, 조용히 몸을 돌려 밤의 어둠 사이로 사라져갔다.

안드레아 신부는 조용히 묵례를 한 뒤, 몸을 돌렸다. 그러자 아직까지 얼굴을 뒤틀고 있는 알렉산더 신부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사라진 이교도들을 생각하며 아직까지도 들끓는 피를 억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안드레아 신부는 알렉산더 신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성스럽고 청명한 기운을 흘려보내주었다. 이제야 조금 진정이 된 알렉산더 신부가 상처투성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인자한 미소를 보여주며 감사를 표했다. 조금 전까지 심하게 일그러져 있던 얼굴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후우우- 정말 감사드립니다, 안드레아 형제. 간만에 이교도들을 보았더니 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드레아 신부는 알렉산더 신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린 뒤,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부드러운 미소와는 달리 그의 말은 그렇게 유(柔)하지 않았다.

“허허, 너무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알렉산더 형제님.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킥킥, 이교도들의 피로 내 몸을 씻을 지어다.”

알렉산더, 안드레아 신부를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던 리오테 신부가 은 묵주를 손에 휘감은 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슬쩍 냉소를 지었다.

“모든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대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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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오랜만에 써봤습니다~ 요즘 의욕이 없어서 짧게 쓰고 있다는.

다르칸님 안드레아 신부랑 리오테 신부 저렇게 맘대로 설정했는데 괜찮나요? ㅡㅡ;;

Who's 갈가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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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명이 사라졌다능!!! 내 텔레토비 랩이 사라졌다능!!

 

여긴 어디?! 난 누구?!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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