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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화 A.M. 5:26, 서울 아웃사이드(outside) – 서울 슬럼]


코발트는 눈을 떴다.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근육통과 두통에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나 쓰레기며 이러 저런 것들이 너저분하게 널린 그의 단칸방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는 화장실에 들어가 물때로 뿌옇게 된 거울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자신의 얼굴이 보이게끔 하였다.


짙은 검정색 더벅머리에 볼이 푹 패이고 눈 밑이 시커멓고 멍한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는 덜 깬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이 시커먼 색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잠시 수도꼭지에서 빠져 나와 배수구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그 구정물을 바라보다가, 다시 그 물로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세계에 반(反)하는 법전 / the Code of Mirinae
page 2. 애국지사. (上)















그는 단 하나뿐인 외출복, 허름한 2010년 군복재킷을 걸치며 현관문을 나섰다. 코발트가 여기저기 거칠게 벗어 던져놓은 바람에 쭈글쭈글하게 주름이 지고 흙먼지가 묻은 재킷. 엘리베이터의 깨진 거울에 비추인 자신을 보다가 그는 군에 머물 동안 달려 있었던 한글 이름표와 계급장들이 떼어진 자리를 발견하곤 그곳을 멍하니 주시하였다.


그가 지금은 그 본래의 이름을 잃고 das4라고 불리는 대한민국군의 중령을 그만두었던 그날로부터 벌써 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프로이센 제국과의 전쟁 중 다리를 다쳐 평생 다리를 절게 된 그는 프로이센 제국이 식민지의 패병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들의 군대에 낮은 자리를 내주는 정책까지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군에 머물지 못하였다.


대한민국 국군으로 지내던 동안 여러 가지 전설들을 만들어왔던 코발트 중령은 자신이 군에 더 이상 머물지 못 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였다. 그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알코올 중독에 다른 약물 중독까지 걸렸었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폐인이 된 그를 버리고 하나뿐이던 어린 자식과 함께 친정으로 가버렸고, 두 달 후에 이혼서류가 왔다.


그가 군에서 나온 뒤 7년째 되던 날, 그는 정신을 차리고 공사판에 직업을 얻었다. 그리고 2년째, 그는 쭈욱 공사판에서 일해오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은 평범한 날이었다. 그는 돼지우리나 다름없는 아파트를 나와 새벽의 차갑고 짙은 파란색 공기를 들이마시고, 절뚝거리며 일터를 향했다. 어지럽게 얽힌 전깃줄들 아래에서 부서지고 울퉁불퉁하게 휘어진 콘크리트 길 위를 걸으며 그는 군복재킷을 더듬어 찌그러진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거리는 조용했다. 낮에는 누군가의 고함소리와, 여자들이 그들의 남편, 자식들에게 질러대는 소리, 아기들의 굶주린 울음소리로 가득 찬 서울의 슬럼은 이른 새벽이어서 그런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4/16 화 A.M. 5:59, 서울 인너(Inner) – das4 총독부]


“무슨 일이냐.”


밤 늦게까지 장교들에게 지시를 내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시 의자에 앉은채로 잠에 들었던 에테넬 황태자가 ‘삐, 삐’ 하는 호출소리에 깨어나 헝클어진 금발을 손가락으로 빗질하며 팔 받침대의 회선을 열었다.


공중에 열린 작은 스크린 너머엔 검정색 장교 제복을 입고, 머리를 뒤로 넘긴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가 있었다.


“황송하옵니다. 휴식 중이셨사옵니까.”


“라인하트(Reinhard)자네인가…… 잠시 잠들었었네. 그래서? 채널알파34의 정확한 피해는?”


“완전히 소멸되었사옵니다.”


“푸우.”


에테넬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가 잠시 후 말했다.


“어떻게 된 것이지? 분명히 채널알파34엔 사이클롭스 1기가 배치되어 있지 않았나?”


“채널 핵이 파괴됨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아내진 못하였사옵니다. 황송하옵니다.”


라인하트가 무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네.”


에테넬이 말하며 회선을 닫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창문을 통해 비추는 떠오르는 아침 해의 밝은 빛을 한 손으로 가리며 중얼거렸다.


“아스모데우스(Asmodeus)……”



[4/16 화 A.M. 7:06 서울 인너(Inner)  – 센트럴]


지금의 일터는 그의 아파트로부터 걸으면 약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코발트는 공사장까지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지하도를 지나기 위해선 인너 구역의 거리를 잠시 동안 걸어야 한다는 게 언제나 거슬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하철을 타면 인너 시티를 지나칠 필요 없이 10분만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그에겐 지하철을 탈 여유조차 없었다.


한 시간 반쯤 걸었을까, 그는 아웃사이드 구역을 벗어나 das4의 중심가이고 인너 구역에 위치한 센트럴에 도착했다. 좀 전까지 그가 걸어오던 빈민가와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도시엔 은빛으로 빛나는 고층 건물들이 깔려있었고, 거리는 깨끗했다.


거리를 지나가는 깨끗하고 뻣뻣한 칼라의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허름한 차림으로 평평하게 깔린 센트럴의 도보를 걷는 코발트에게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시선을 던졌다. 마치 인간 이하의 무언가를 바라보듯이……


그가 시선을 의식하고 서둘러 공사장 주변까지 이어져있는 지하도에 들어서려는 순간, 녹색 강철로 된 전투복을 입은 경찰 두 명이 그를 가로막고 섰다.


das4에는 두 가지 종류의 경찰이 있다. 남색 제복을 입고 다니는 경찰들과 녹색 전투복을 입고 다니는 경찰들. 제복을 입은 경찰들은 주로 인너 사이드에서 교통질서 등을 관할하는 일을 맡았고, 전투복을 입은 경찰들은 아웃사이드에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투견되는 전투경찰들이었다. 하지만 간혹 인너 사이드에 거주하는 1등급 이상 시민의 요청으로 시내에 출동하기도 했다.

지금 코발트의 앞에 서 있는 이 두 자들은 초라한 행색의 코발트를 꺼려한 어떤 1등급 시민의 신고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아웃사이드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자들 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주로 아웃사이드에 거주하는 빈민들을 다루는 이들은 매우 거칠고 폭력적인 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아웃사이드 주민들을 매우 하찮게 여겼기에 이들에게 잘못 대했다간 몰매를 맞기 십상이었다.


“신분증.”


왼쪽에 서 있는 경찰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코발트는 재킷 안주머니를 뒤져 공사판 주임에게서 발급 받은 3등급 노동자 신분증을 내밀었다. 그에게 신분증을 요청했던 경찰은 그것을 낚아채듯 가져가더니 그의 얼굴을 가린 녹색 헬멧에 가까이 가져다가 읽었다. 잠시 후 그는 신분증을 바닥에 내 던지더니 경찰봉을 꺼내 들었다.


“신분증이 갱신되지 않았군.”


코발트가 그에게로 겨누어진 경찰봉을 보고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게…… 주임말로는 갱신을 하지 않아도 된다기에……”


경찰이 코발트의 어깨에 경찰봉을 세게 내리쳤다. 코발트는 갑작스런 타격에 주춤하다가 어깨를 싸 쥐고 낮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야 임마…… 내가 경찰이야 주임이 경찰이야?”


경찰이 코발트를 경찰봉 끝으로 쿡쿡 찌르며 말했다. 코발트가 고통에 대답을 못하자 이번엔 오른쪽에 있던 경찰이 그를 걷어찼다. 그 바람에 코발트는 바닥에 쓰러졌고, 그를 걷어찼던 경찰이 그의 얼굴에 발을 올려놓았다.


“네놈 행색을 보아하니 아웃사이더로군. 신분증 따위로 트집잡아 너 같은 녀석들에게 얼마 안 되는 벌금을 붙여봤자 소용 없겠고, 감옥은 이미 네놈들로 넘쳐나는 마당에 더 이상 냄새 나는 것 들을 처넣고 싶지 않단 말이지.”


코발트를 경찰봉으로 내려쳤던 남자가 말했다.


“하지만, 또 한번 네놈의 더러운 몰골을 인너사이드 거리에서 봤을 땐…… 아예 신분증이 필요 없게 해주지. 깨끗한 바닥을 네놈 얼굴로 더럽히지 말고 얼른 일어나 꺼져!”


그의 얼굴에 올려져 있던 발이 떨어졌고, 뚜벅거리는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코발트는 어깨의 고통을 참으며 천천히,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옆에서 한 소년이 그를 복잡한 감정이 섞인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코발트가 소년의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자 소년은 놀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서둘러 군중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코발트는 잠시 소년이 사라진 방향을 잠시 쳐다보았다. 어디서 본 듯한 그 얼굴에 코발트가 기억을 더듬으며 바닥에 떨어진 그의 신분증을 집어 들기 위해 팔을 뻗는데 갑작스레 현기증이 났다.


그 바람에 몸의 중심을 잃고 바닥에 다시 넘어지려는 그를 붙잡아 준 것은 수염이 덥수룩한 한 남자였다.


“괜찮으십니까?”


남자가 물으며 코발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리곤 쭈그려 앉아 코발트의 신분증을 집어 들어 그에게 내밀었다.


“감…… 감사합니다.”


깔끔한 복장의 남자에게 코발트가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말했다. 대충 깎은 수염이 그를 사람 좋게 보이게 했지만 깔끔한 그의 복장에 미루어 보아 그는 코발트보다 높은 등급의 시민이었다.


일반적으로 1,2등급의 시민이 3등급의 시민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은 없었고, 코발트는 이 남자의 예상치 못한 친절에 당황해 하고 있었다. 코발트가 자신을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남자는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코발트의 손을 잡아 들고 신분증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돌아서 군중 속으로 향했다.


코발트는 멍한 눈으로 손에 쥐어진 그의 신분증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멀어지고 있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의 신분증을 바라보았다. 그때 바닥에 떨어진 작은 물건이 그의 눈에 띄었다. 코발트가 허리를 굽혀 집어 들어보니, 그것은 ‘Mr. J’라고 쓰여진 이름표였다. 아까의 남자가 자신의 신분증을 집어 줄 때 떨어트린 모양이었다. 코발트가 절뚝거리며 이제는 저 멀리에서 걸어가는 남자를 불렀다.


“저기요! 실례합니다! 제이씨! 제이씨!”


그가 절뚝거리며 달려 남자의 뒤에 도착했을 때서야 남자가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코발트가 거친 숨을 내쉬며 허리를 구부려 무릎에 한 손은 얹고 다른 한 손으론 그에게 이름표를 내밀었다.


“아앗! 저도 모르는 사이에 떨어트린 모양이군요!”


남자가 이름표를 받아 들며 말했다.


“네…… 허억허억…… 중요한 걸지도…… 헉헉…… 몰라서……”


코발트가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누르며 말했다.


“이거이거…… 죄송하군요.”


남자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름표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헉헉…… 괜찮습니다……”


코발트가 간신히 숨을 고르며 말했다.


“땀을 많이 흘리셨네요.”


남자가 땀으로 범벅이 된 코발트의 얼굴을 보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지만 코발트는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손수건이 더럽혀 집니다……”


그 말을 듣더니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직접 손수건으로 코발트의 꾀죄죄한 얼굴에 난 땀을 닦아주었다. 그들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매우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아 코발트마저 얼굴이 붉어졌지만 남자는 둘에게 꽂히는 시선들을 전혀 개의치 않고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하얀 손수건을 더럽혀 가며 코발트의 땀을 닦아 주었다. 덕분에 세면대의 구정물로 얼굴이 새카맸던 코발트의 얼굴이 깨끗해 졌다.


“어라? 당신은?”


그의 얼굴을 닦던 남자가 깨끗해진 코발트의 얼굴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설마…… 중령님이십니까?”


“저를…… 아시는 겁니까?”


“당연하지요! 저 기억 안 나십니까?”


남자가 매우 반가워 하는 얼굴로 물었지만 코발트는 처음엔 그를 알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천천히,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형, 짙은 눈썹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귀 밑에 보이는 작은 흉터.


“자네는!”


코발트가 반가움에 남자의 손을 덥석 잡고 웃으며 외쳤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중령님.”


남자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아직도 das4에 있었을 줄은 몰랐군!”


“예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남자가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의식하며 말했다.


“그보다…… 아침 드셨습니까?”



[4/16 화 A.M. 7:29 서울 인너(Inner) – 센트럴]


스베냐는 분노로 터질 것만 같은 가슴을 억누르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전에 몸이 불편해 보이는 중년의 아웃사이드 거주민이 두 명의 경찰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하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강대국에게 민족의 이름과 나라의 이름을 강탈당하고, 마치 애완동물처럼 새 이름을 떠안게 된 약소국 국민의 슬픔, 나약함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꼭 쥔 채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는 엄청난 힘을 얻었지만, 그것은 불완전한 힘이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프로이센은 그런 막강한 병기를 지금껏 숨겨놓고 있었다는 것인가. 그 거대한 인간 형 기계를 발견하기 전까진 인페르날이 프로이센의 최고의 군 병기라 여겼거늘.


그렇다면 왜 프로이센은 지금껏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숨겨놓고 있었던 것인가. 그들이 아직 차지하지 못한 지구의 나머지 땅들도 어제 그가 박살냈던 나이트 오브 사이클롭스 딱 한대만 있었더라도 차지가 가능했을 터……


스베냐는 학교로 향하며 여러 가지를 의심해 보기 시작했다.



[4/16 화 A.M. 8:14, 서울 인너(Inner) – 아이슬러 공원]


“정말 센트럴에서 자네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못 꾸었군.”


코발트가 팥이 들어있는 빵을 한입 크게 베어 물며 말했다.
그와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는 아이슬러 공원의 한적한 벤치에 앉아 빵과 김이 피어 오르는 커피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수염의 남자는 코발트의 말에 대답 없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게걸스럽게 그의 빵을 해치우고 이젠 자신의 빵을 곁눈질로 바라보는 코발트에게 그는 웃으며 빵을 내밀었다.


“괜찮으시다면 제 것도 드시지요.”


코발트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빵을 받아 들고, 쩝쩝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지난 2년 동안 처음으로 하루에 빵을 두 개씩이나 먹은 날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그는 정신 없이 빵을 목구멍으로 넘기다가 시선을 느끼고선 말했다.


“그보다…… Mr. J라니? 자네, 2등급 인 것 같은데, 개명하지 않은 건가?”


“아아…… 물론 했지요. 근데 그런 이름은 쓰기 싫어서 말이죠……”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Mr. J는 제 필명입니다. 주로 기사를 쓸 때 붙이는 이름이지요.”


“기사?”


코발트가 빵을 전부 해치우고 이젠 뜨거운 캔 커피에 손을 뻗으며 물었다.


“아차…… 말씀 안 드렸군요. 요즘엔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뭐, 무소속 프리랜서라 명함 한 장도 없는 신세지만 말이지요.”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흠…… 그럼 자네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모르겠군. 기자님?”


남자가 그 말을 듣더니 소리 내어 웃었다. 얼마나 재미있게 웃던지 코발트가 무안을 느낄 정도였다. 남자가 잠시 후 웃음을 멈추더니 그에게 말했다.


“하하…… 그냥 편하시게 제이라고 불러주세요.”


“알겠네. 제이군.”


코발트가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며 그것에 시선을 집중시킨 채 말했다.



[4/16 화 A.M. 9:01, 서울 인너(Inner) – das4 총독부]


에테넬은 책상에 턱을 괸 채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양천구로부터 물건은 안전하게 회수했고, 양천구 주민들을 전부 제거함으로써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씨는 꺼졌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자신 외 프로이센의 중요 직 몇 명만이 알고 있는 채널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또 그것을 파괴하기 시작한다는 것.


아무리 채널알파34가 불안정한 상태였다 하더라도 채널 핵의 오류로 자멸하는 일은 없을 터, 분명히 타 세력에 의한 짓이었다. 그곳이 채널 중 가장 경비가 허술한 곳이었다 해도 보통 수준의 병력이라면 사이클롭스에게 전멸 당했을 텐데……


현재 그가 배치한 병력과 채널 핵을 파괴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병기는 단 하나뿐이었다. 누군가에게 강탈당한 로드 오브 아스모데우스(the Lord of Asmodeus). 채널 사이에 숨겨 두었던 그것을 훔쳐갔다는 것은 범인이 마도사라는 점이었고, 또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에테넬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는 책상 서랍을 열어 동그란 통을 꺼내 그 안에서 알약 대여섯 개를 집어 입에 넣었다. 진통제…… 아스모데우스와 양천구에서 탈환한 그 물건을 비밀리에 제작하는 동안 그는 엄청난 양의 스트레스를 받았고, 진통제를 떼고 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가 책상 위에 놓여진 물병과 컵에 손을 뻗는데 팔걸이의 회신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에테넬은 물과 함께 알약들을 목으로 넘기며 회선을 눌렀다.


“무슨 일이냐.”


“황태자 전하, 잠시 후 황제폐하께서 영상 면담을 가지신다 하옵니다.”


에테넬은 그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4/16 화 A.M. 9:12, 서울 인너(Inner) – 아이슬러 공원]


코발트와 제이는 가로수가 깔린 공원의 길을 걸었다. 제이는 발이 불편한 코발트를 위해 천천히 그와 걸음을 맞추며 걸었고, 코발트는 제이 옆에서 절뚝거리며 흥미 진진한 표정으로 뭔가를 신나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제이는 옅은 미소와 함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가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기도 했다.


“그래! 그때 자네의 아버지는 정말 굉장했었지. 모두가 무리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건물 에서 바로 탱크 위로 뛰어내리면서 총을 쏴 놈들을 전부 쓸어버렸지!”


코발트는 과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한 물 간 군인들은 죄다 자신의 젊었을 적 경험담 같은 그런 나부랭이를 즐겨 반복해서 이야기하기 마련이다. 제이는 미소를 띠고 말없이 듣기만 하고 있었다.


“하여튼 자네 아버지는 나의 우상이었다네. 내가 그 임무가 끝난 뒤 다른 부대에 배치 받은 후에도…… 음, 그러고 보니 그렇군.”


코발트가 과거 이야기를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 이곳이 das4로 개명 된 이후론 한번도 뵙질 못하였네.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


“프로이센과의 전쟁 중 돌아가셨습니다.”


제이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설마…… 그분이? 적군에게?”


“쉿.”


제이가 앞을 주시하며 그에게 낮게 속삭였다. 저 멀리서 두 명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이와 코발트는 대화를 중단하고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가까이서 보니 그들은 아침 산책을 나온 듯한 노부부였다. 키가 작고 윗머리가 동그랗게 까진 노인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무언가를 듣고 있었고, 그의 부인인 듯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코발트와 제이를 지나쳐 가며 ‘안녕하세요?’라고 정답게 인사를 보냈고, 제이도 미소를 던지며 인사했다.

노부부가 멀어질 때쯤 코발트가 물었다.


“사람을 많이 경계하는군?”


제이는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프로이센은 das4의 옛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어요.”


그가 여전히 무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저 das4 라고 불러야만 하지요. 웃기는 소리라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제이가 말하며 갑작스레 코발트의 앞에 우뚝 서 버리는 바람에 코발트는 깜짝 놀랐다. 제이는 아까와는 다르게 사뭇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코발트는 그의 시선에 당황스러워 하며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제이는 그런 코발트를 주시하며 말했다.

“지금 우리들을 보십시오. 마치 동물 사육장처럼 1,2,3,4 이렇게 숫자가 붙여져 구분 당하고, 우리의 부모님이 지어주신 자랑스러운 이름을 빼앗고 그들의 이름을 강제로 붙이며, 매국노들을 귀족으로 취급하고, 시민들에겐 등급을 나누어 차별합니다. 코발트 중령님 자신을 보십시오! 우리는 이런 불합리 속에 조용히 침묵하고 고개를 숙인 채 천민 취급을 받으며 매국노라는 이름의 개들의 지시나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겁니까?”


제이가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코발트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양천구 아웃사이드에 대한 소식 들어보셨습니까? 단순히 우리가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웠던 그들을 벌하기 위해 투견된 황태자 직속 군대가 여자, 아이 가릴 것 없이 전멸시켜버린 사건을 말이지요!”


제이가 열변을 토했지만 코발트의 귀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코발트의 마음속에서 죽어있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씨가 꺼져 어두운 마음 한 구석에서 쭈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영원한 잠에 빠졌던 영웅 코발트의 자아가 점점 더 열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하는 불길에 눈을 떴다.


코발트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제이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잊고 있었다네.”


제이는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코발트를 바라보았다.


“나는 잊고 있었다네. 나의 사랑, 나의 집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얼마나 짓밟혀 오고 멸시 받아왔는지를…… 내 한 몸 불편할지라도 나에게 총을 쥐어준다면 마지막까지 프로이센의 개들과 싸울 의지가 있거늘…… 분통하네! 분통해……”


영웅 코발트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아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추어 보려 했지만 뜨겁고 짠 그것은 멈추지 않고 그의 얼굴을 흘러내렸다. 제이는 그런 코발트를 보고 어딘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손수건을 꺼내 코발트에게 내밀었다.


코발트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제이가 내민 손수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누군가가 그의 뒤에서 그의 입을 틀어막았고, 동시에 따끔한 감촉이 목 줄기에 느껴졌다. 온몸이 나른해지며 힘이 풀리는 바람에 코발트는 바닥에 대자로 눕고 말았다.


의식이 점차 흐려지며 그의 눈에 보인 것은 그를 내려다 보고 있는 제이와, 또 다른 대머리 남자였다.






[2 page 下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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