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11 07:55

Machine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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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그래 이름이 뭐라고?”

  준서는 헛기침을 큼큼거리며 쇠사슬에 칭칭 감겨 있는 안경잡이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교복을 입은 이 소녀는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해 언더마이너 겸 경찰을 습격했고 공공기물을 파손했으니 취조를 해야 했다. 물론 머신 파더가 만든 사이보그라고 해도 법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

  여자아이는 꽤나 낯을 가리는 듯 어깨를 움츠리고 쭈뼛거리면서 준서의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그 모습에 준서는 괜스레 짜증이 치밀었고 말아 쥔 왼손을 소녀의 턱에 대며 협박조로 중얼거렸다.

  “폐기 처분 되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불어.”
  “저…. 저어….”

  소녀는 뭐 씹은 표정으로 구겨진 준서의 험상궂은 얼굴을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안경 뒤로 보이는 이국적인 녹색의 눈동자가 파들파들 떨리며 금방 눈물이라도 쏟아낼 듯 울먹거렸다.

  “멍청이!”

  그 때, 뒤에 서 있던 안제희 소장이 준서의 후두부를 경찰봉으로 세차게 후려쳤다. 깡! 하는 깡통을 차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준서는 크게 부풀어 오른 혹을 움켜쥐며 억울하다는 듯 안제희 소장을 노려보았다.

  “어쭈? 노려보면 어쩔거야? 이 여자아이는 ‘인간’이야! 폐기처분이고 뭐고 그런 인격모독적인 발언은 삼가도록 해! 병신같은 놈. 쓰레기같은 인간 말종.”
  “벼, 병신…? 그런 인격모독적 발언을 하시다니! 저는 인간도 아닙니까?!”
  “닥쳐, 쓰레기.”

  없는 기운을 다 내가며 소장에게 대들었지만 돌아온 것은 가차 없는 욕설뿐이었다. 한쪽 눈으로 눈물을 찔끔 빼며 한층 침울해진 준서는 힘없이 안경잡이 소녀에게 눈을 돌리며 말했다.

  “이름.”
  “류, 미애에요.”
  “사는 곳.”
  “이, 이곳에 온지 얼마 안돼서 주, 주소를 알 수가 없는데요.”
  “특이사항, 바보다…. 악!”

  또 다시 안제희 소장에게 한대 얻어맞은 준서는 맞았던 곳을 또 맞은 터라 더한 고통을 느끼며 타자기로 손을 옮겼다.

  “가족.”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지금은 할아버지랑 같이 살아요.”
  “으음, 할아버지라. 할아버지 성함은 어떻게 되지?”
  “류자, 진자, 호자요.”
  “류진호… 류진호라. 어라? 류진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으음….”
  “야, 쓰레기. 난 잠시 나갔다 올테니까 알아서 취조하고 보고서 작성해. 알아들었어?”
  “아, 예,”

  준서의 기계적인 대답을 듣고 안제희 소장은 어두운 방 안에 둘 만을 남겨두고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으음.”

  한 편 준서는 떠오를 듯 말 듯한 그 이름을 생각하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뭔가 그 이름에 대해 영감이라도 얻으려는지 주변을 산만하게 두리번거리던 그는 이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해버리고 류미애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좋아, 취조는 이쯤해보고 그럼 다음으로 진행해보실까?”

  응큼한 눈으로 자신을 주시하는 준서의 눈빛에 미애는 순간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뭔가 온 몸으로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다, 다음이라니요?”
  “아, 별 거 아냐. 나의 취미… 아니! 아니! 단지 몸을 좀 수색하는 것뿐이야.”

  전신 스캔을 빙자한 합법적인 투시. 그러나 관음증 환자처럼 침을 질질 흘리는 준서의 모습을 봐선 목적이 전도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순간 낌새가 이상한 것을 느낀 미애가 몸을 잔뜩 움츠리며 소리쳤다.

  “시, 싫어!”
  “엥? 뭐가 싫어?”
  “뭔지 몰라도 싫어요!”
  “흐흐흐 싫다고 해도 소용없어! 우헤헤헤!”

  뭔가 변태같이 돌변한 준서의 얼굴, 14살짜리 꼬맹이처럼 보이는 거시기에 털도 안난 꼬맹이가 포르노를 보는 40대 아저씨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여자를 보는 꼬라지가 말도 아니게 추해보였다.

  쿠르르릉!

  그 때, 미애를 살려준 것은 다름 아닌 건물을 통째로 진동시키는 거대한 지진이었다. 굉음을 내며 흔들리는 땅 때문에 미애는 본의 아니게 쇠사슬에 묶인 채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아?”

  그 때, 갑자기 미애가 쓰러진 바닥이 갈라지면서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활화산처럼 볼록하게 위로 팽창했다.

  “위험해!”

  때 맞춰 본 얼굴로 돌아간 준서가 재빨리 미애의 뒷덜미를 낚아채 자기 쪽으로 휙 끌어당겼고 뒤이어 개구리 배처럼 뽈록 솟아오른 땅이 폭발하듯 솟구치며 거대한 드릴이 대리석 바닥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거대한 모습은 좁아터진 취조실이 수용하기엔 무리가 있었고, 이내 천장을 뚫고 올라간 드릴 때문에 천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준서는 미애를 안은 채 취조실 문 쪽으로 몸을 날려 가까스로 무너지는 방 안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취조실 밖으로 빠져나왔지만 진동은 멈추지 않았고 그 여파가 이 경찰청 건물 전체에 미치고 있었다. 거미줄처럼 금이 가는 천장을 바라보던 준서는 창밖을 바라봤다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미애에게 시선을 옮기며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쳇. 귀찮아 죽겠네.”

  준서는 의자채 딸려온 미애를 앉히고는 왼손으로 쇠사슬을 와드득 부숴버렸다. 그리곤 아직도 사태파악을 못하고 어리버리하게 있는 미애에게 말했다.

  “방해되니까 알아서 튀어.”
  “예?”
  
  투두둑, 드디어 진동이 멈췄다. 그러나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와 섞인 기계음이 저 벽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뭔가가 거기에 있는 게 분명했다.

  “저기….”

  미애가 걱정스러워 준서에게 뭐라고 하려는데 그녀의 가슴 호주머니에서 쥐새끼 한마리가 새하얀 털로 뒤덮인 머리를 불쑥 내밀며 놀랍게도 사람 말로 속삭였다.

  “미애 아가씨. 이때예요. 빨리빨리 도망쳐요!”
  “하, 하지만… 햄토리. 저 사람도 위험해 보이는데.”

  미애가 준서를 가리키며 속삭이자, 햄토리란 이름의 쥐새끼가 준서를 흘낏 보곤 말했다.

  “걱정마세요! 저 사람 저래뵈도 박사님의 아들이니까요.”
  “뭐?! 할아버지의 아들?!”

  아무리봐도 14살 안팎의 나이로 밖에 안보이는데 80세에 가까운 할아버지의 아들이라니, 그렇다면 자신과는 친인척 관계라는 소리가 아닌가!

  미애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준서와 햄토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해 허둥지둥거리는 미애를 바라보며 햄토리가 중얼거렸다.

  “자세한 얘기는 돌아가서 해드릴게요. 지금 여기 있으면 위험해요! 도망갈 기회가 있으면 잽싸게 도망쳐야죠!”
  “그, 그래. 알았어.”

  콰앙! 미애가 천천히 뒷걸음질 칠 때, 갑자기 굉음과 함께 벽면이 통째로 부서져 사방으로 파편과 먼지를 날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휘몰아치는 돌풍에도 불구하고 준서는 자신의 왼팔을 으드득거리며 여유롭게 관절을 풀어주고 있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먼지폭풍도 그의 눈에는 문제될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위이이이잉!

  드릴이 회전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 속에서 거대한 로봇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한궤도(캐터필러)를 가진 탱크처럼 생긴 단순한 형태의 로봇은 차체 옆으로 길게 솟아있는 오른손엔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는 드릴이, 왼손엔 전갈같은 거대한 집게손이 달려 있었다.

  “뭐야, 저건?”
  “빌어먹을, 어떤 개자식이 경찰서를 부수나했더니 저런 센스없는 로봇이라니!”
  “야! 연장 가져와! 저 새끼 해체해서 안에 든 놈 면상이라도 보자!”

  주변에서 먼지에 범벅이 된 경찰관들이 삼삼오오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때 갑자기 탱크 상부의 뚜껑이 열리더니 대머리에 뚱뚱한 사내의 그림자가 불쑥 그 위로 튀어나왔다. 하도 뚱뚱해서 뱃살이 구멍의 옆으로 삐져나올 정도였다. 돼지같은 들창코에 노란색 광부 모자, 물안경처럼 생긴 검은색 고글을 쓴 사내는 뒤룩뒤룩한 몸을 연신 씰룩거리며 관중들이 많아 기분 좋다는 듯이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하하하하하하! 나는야 언더마이너! 내 이름은 ‘보보보 보보보보’! 저번에 당한 형님 ‘바바바 바바바바’의 복수를 하러 왔다! 망할 민중의 회초리들아!”

  탕탕탕! 타타타탕! ‘보보보’라는 괴상한 이름의 뚱보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주변을 둘러싼 살기등등한 경찰들의 권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화들짝 놀란 그는 마치 두더지잡기 게임의 두더지처럼 구멍 속으로 쏙 하니 들어갔다가 당황한 목소리로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 야 이 개념없는 자식들아! 니들이 그러고도 세금을 받아쳐먹는 경찰노무 새끼들이냐?! 어디서 경고도 없이 총질이야?! 이 나라는 법도 없냐?! 적어도 사람 말은 들어야 할 거 아냐?!
  “닥쳐 돼지!”

  안제희 소장의 도발성 짙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싸늘한 침묵이 이어졌다, 물론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들은 경찰들이 대다수였고 그 중엔 최전방에 서 있는 강준서도 있었다.

  “저…. 소장님? 도, 도발은.”
  
  - 크아아아아악! 뒤졌어! 너희들 오늘 죽었다고 복창해!

  쾅쾅쾅!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저 탱크같은 로봇이 드릴 손과 집게손을 이리저리 미친듯이 휘두르며 경찰서를 박살내기 시작한 것이다. 햄토리가 기겁을 해서 멍청하게 서 있는 미애에게 소리쳤다.

  “아, 아가씨! 빨리! 빨리!”
  “아, 아, 알았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도망치는 경찰들과 미애, 그리고 그 틈에서 준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치는 안제희 소장의 앙칼진 목소리가 준서의 귓가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야! 쓰레기! 알아서 처리해!”

  준서는 ‘내가 저런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싸워야 하는 이유가 뭐지?’라고 생각하며 자괴감과 함께 고독이 물밑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정의와 자신의 사명이라는 것에 대한 고찰하며 사념에 잠겨 있던 준서는 문득 기둥을 부수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로봇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는 부풀어 오른 왼손을 어깨높이까지 쳐들고는 언더마이너의 로봇을 향해 힘차게 도약했다.

  “무단 침입죄!”

  쾅! 그의 주먹질에 옆에서 짓쳐오는 집게손이 박살나버렸다. ‘보보보’는 꽤나 놀랐던지 잠시 엉거주춤하더니 이내 드릴 손을 준서를 박살내기 위해 창처럼 찔러들었다.

  “기물 파손죄!”

  와지직! 그의 왼손과 정면으로 맞닿은 드릴손이 그 끝에서부터 처절하게 분해되며 찢겨진 종잇조각처럼 너덜너덜 걸레가 되었다.

  - 이, 이럴 수가! 적금을 탈탈 털어 만든 나의 티타늄 초 특제 엘레강스 뷰티풀 합금이!

  부서진 자신의 팔을 못 믿겠다는 듯 허둥지둥거리던 언더마이너의 로봇이 돌연 탱크같은 몸체 이곳저곳을 열어 수많은 팔을 뽑아냈다. 그 형상이 꼭 문어와도 같았는데, 팔은 가위, 망치, 드라이버 등 갖가지 무장이 장착되어 있었다.

  - 이이익! ‘바바바’ 형님의 원수 죽어랏!

  수십 개의 문어 팔이 준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는 몸을 살짝 틀어 그것들을 피하였고 왼팔 겨드랑이에 다발로 변한 팔들을 끼고는 사악하게 미소 지었다.

  “공무 집행 방해죄!”

  부웅! 그대로 팔과 함께 언더마이너의 로봇이 공중을 한 바퀴 돌아 준서 뒤로 처박혔다.

  “경찰 상해죄!”

  콰직! 준서는 그렇게 소리치며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팔의 다발들을 잡아당겨 모조리 끊어버렸다. 시퍼런 스파크가 이미 그것들이 생명을 다했다는 것을 말해주듯 사방으로 튀겼다. 준서는 입가를 씰룩거리며 천천히 거북이처럼 뒤집혀져 바닥이 훤히 드러난 탱크로봇을 향해 다가갔다.

  - 허, 허억!

  “자, 그럼 이 모든 것을 합친 것은 무엇일까요?”

  우드득. 준서의 왼팔이 근골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는 오른쪽 팔의 두 배가 넘게 부풀어 오른 왼손을 위로 치켜들어 탱크 로봇의 배를 겨냥하며 소리쳤다.

  “사형이야! 사형! 이 빌어먹을 자식아!”

  꼭지가 돌아버릴대로 돌아버린 준서가 그대로 주먹을 탱크로봇의 배를 향해 내리꽂았다.

  - 꺄아아아아아~

.
.
.

  아무것도 아니었다. 새하얀 빛과 함께 방출된 에너지가 언더마이너의 몸을 삼키고 뒤이어 경찰청 전체를 삼켜버렸다. 그리고 경찰청과 주변에 장승처럼 늘어서 있던 몇몇의 건물들이 와르르 무너지며 도미노처럼 주변 건물도 무너트린 정도? 겨우 그 정도였다.

  “와아.”

  미애와 햄토리, 그리고 그것을 구경하던 경찰청의 인원들은 눈만 동그랗게 뜨고 마치 지고 있는 노을을 구경하는 노친내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감상에 젖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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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무...

움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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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명이 사라졌다능!!! 내 텔레토비 랩이 사라졌다능!!

 

여긴 어디?! 난 누구?!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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