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6.02 00:28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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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EXIT’에 오게 된 것을 환영합니다. 레이디 라튼.”

해럴드가 해맑게 웃으며 라튼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두려움에 흔들리는 갈색의 생기 없는 눈동자뿐이었다. 라튼이 몸을 움츠리고 뒤로 물러나자 해럴드는 내민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휴우. 경계가 심하시군요. 무리도 아닙니다. 저도 처음엔 머리가 뒤죽박죽이었거든요. 이쪽도 마찬가지고...말이죠.”

해럴드는 슬쩍 죠엘쪽을 바라봤다. 죠엘은 뭔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지 낯빛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직 아무런 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오스워드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건 분명히 자신이 원한 것도 아니었고, 금지된 연금술의 대가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미 이쪽 세계로 넘어왔고 저쪽 세계에서의 자신은 죽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꼬여서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난감했다.

‘아버지를 살리지도 못했어. 그럼 난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단지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죠엘은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고 방 한가운데 아담하게 있는 둥근 탁자에 걸터앉아 머리털을 움켜줬다. 해럴드와 오스워드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죠엘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해럴드는 라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대화를 시도했다.

“숙녀분을 너무 오랫동안 세워둔 것 같군요. 이쪽에 앉으시겠습니까?”

해럴드는 부드러운 말로 라튼의 마음을 열어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라튼은 그렇게 쉽게 마음을 열어줄 생각은 없어보였다. 몸을 더욱 움츠리고 뒷걸음질치는 라튼의 모습을 보자 해럴드는 걱정스러운 낯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해럴드씨...”

갑자기 죠엘이 낮은 음성으로 해럴드의 이름을 불렀다. 잠시 묵직한 침묵이 방 안에 흘렀고 죠엘은 해럴드의 대답 없이 대화를 진행시켰다.

“당신은 동생을 부활시키고 이곳에 온 거... 맞죠? 그리고 신의 목소리를 들은 거고.”

역시 해럴드로부터의 대답은 없었다. 잠시 거칠게 숨을 고른 죠엘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나는 뭐죠?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뭐죠?”
“당신이 깨달은 비밀 때문에..”

덜컹, 해럴드의 대답을 듣자 죠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딴걸론 내 머릿속에 들끓고 있는 의문을 잠재울 수 없어! 내가 깨달은 비밀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당신도 동생을 연성하기 전에 이곳으로 불려왔을 거야! 그 알량한 목숨을 대가로 바치고!”

죠엘은 오스워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화가 잔뜩 난 죠엘의 얼굴은 어느새 붉게 타오르고 있었고, 언성은 점점 높아만 졌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답은 하나 밖에 없어! 당신이 날 이곳으로 억지로 데려온거야! 자신이 연성한 저 괴물을 이용해서!”
“,,,,,,”

해럴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조용히 눈을 감고 죠엘의 분노에 찬 음성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 모습에 죠엘은 더욱 더 화가 났다.

“어디 한번 말 좀 해봐! 정말 당신이 날 이곳으로 불러들인거야? 내가 깨달은 이 지식을 시험해볼 틈도 안주고?”
“시험? 어디에다가요. 당신의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말입니까?”

잠자코 죠엘의 말을 듣고 있던 오스워드가 나지막히 말했다. 죠엘은 오스워드를 노려봤다.

“형에게 뭐라 그러지 마세요. 제가 당신을 불러들인 거니까요.”
“왜! 니가 무슨 권리로 내 생명을 대가로 바치고 날 이곳으로 불러들인거야!”

죠엘은 오스워드에게 다가가 멱살을 움켜쥐었다.

“!”

갑작스레 손에 닿은 기분나쁜 촉감에 죠엘은 오스워드의 멱살을 황급히 놓아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죠엘이 잡은 부위가 거무죽죽한 액체로 변해있었다. 놀란 죠엘에게 오스워드가 쓸쓸한 어조로 말했다.

“봐요. 전 괴물이에요. 몸의 절반이상이 피로 이루어진...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인간이랄 수 없는 존재.”

오스워드는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가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전 당신의 아버지가 이런 꼴이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어요.”
“그런......!”

죠엘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오스워드의 몸을 생각하자 그럴 수 없었다. 죠엘은 그 자리에서 힘없이 주저앉았다.

‘하지만 내 공식은 완벽했어. 아버지를 되살리기에 충분했다고!’

그는 성공할 수 있었다. 자신의 공식은 완벽하다고 자부했고 고지가 눈앞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머릿속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 이론은 완벽했어. 하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 만물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신. 과연 신은 내 아버지의 생명을 돌려줬을까? 설령 내 생명과 영혼을 그에게 주었다 치더라도 그가 가치를 정하기 때문에 결과는 알 수 없어. 그렇다면....
‘내 공식은 완벽했어! 신의 눈도 속일 수 있었어!’
- 자신을 속이지 마. 그렇다고 믿고 싶은 거잖아. 오스워드를 봐. 그리고 해럴드를 봐.

또 다른 자신의 목소리에 따라 죠엘은 서서히 눈을 돌려 오스워드와 해럴드를 연달아 봤다. 그리고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해럴드도 자신의 공식은 완벽하다고 여겼을 거야. 그리고 결과는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의 동생과 함께 이곳 EXIT로 오게 됐지. 넌 저렇게 된 아버지의 모습이 보고 싶었나?
‘닥쳐! 빌어먹을...’
- 그런 식으로 현실로부터 도망가려 하지 마. 넌 지금 자신의 연구의 결과물을 보고 싶은 것뿐이잖아!
‘그렇지 않아. 나는... 나는... 아버지를...’

목소리는 사라졌다. 하지만 남은 것은 더욱 혼란스러워진 자신의 모습뿐이었다.

“....연구를...계속해야 돼.”

죠엘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말했다.

“소용없어요. 카트린. 이곳은 EXIT. 당신이 살던 세계가 아닙니다. 그 세계를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들과 이곳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는 완전히 달라요.”
“그렇다면 어떻게해서든 돌아가겠어요. 난 이미 한번 죽은 몸이니 시간은 충분하겠죠.”

이성을 되찾은 죠엘은 다시금 해럴드에게 경어를 붙여 대답했다. 이젠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해럴드는 죠엘에게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죠엘은 천천히 일어나 오스워드 뒤쪽에 있는 문으로 다가갔다. 오스워드의 곁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죠엘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그대로 문을 열어젖혔다.

“윽.”

갑작스러운 빛의 세상이 펼쳐지자 죠엘은 신음을 흘렸다. 빛에 어느정도 익숙해지자 끝도 없이 펼쳐진 녹색 언덕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잘 닦여진 길이 죠엘이 나선 문을 지나 멀찌감치에서 보이는 마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이 동화같은 풍경에 죠엘은 감탄이 흘러나왔다.

- 펑! 펑! 펑! 덜컹 덜컹

갑자기 멀찌감치 마을쪽으로 향한 길에서 규칙적인 폭발소리가 들려왔다. 죠엘이 그곳을 살펴보자, 뭔가 새하얀 연기를 뿜고 있는 마차 같은 것이 언덕 아래에서 삐죽 모습을 드러냈다. 이 놀라울 정도로 기묘하게 생긴 마차는 말이나 소같은 것도 없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차 위로 삐죽하니 솟아 있는 연통에서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올때마다 마차는 심하게 덜컹거렸다. 마차 앞엔 전형적인 집사라고 생각될 정도로 늙은 신사가 앉아 있었는데 그는 양손에 둥근 바퀴 같은 것을 쥐고 있었다. 이 기괴한 마차는 죠엘의 눈앞에서 멈췄고 마차 위의 늙은 신사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시오. 젊은 친구. 못 보던 얼굴인데 안에 해럴드씨 계시오?”
“아, 예. 안에....”

해럴드를 찾는 노신사의 말에 죠엘은 문 앞에서 비켜주며 대답했다.

“안녕하십니까. 노스페라투씨.”

밖의 소란을 눈치 챘는지 해럴드와 오스워드가 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이미 노신사와 안면이 있는지 반가운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허허, 이번에 새로 데리고 온 사람들이 있다 해서 이렇게 들렸다네. 어디. 이쪽의 청년이 이번에 새로 데리고 온 사람인가?”
“예, 그렇습니다. 카트린씨. 인사나누세요. 이쪽은 노스페라투씨입니다. 저 증기 기관을 발명한 천재과학자지요.”
“증기 기관? 저 저절로 움직이는 마차 말씀입니까? 대단하군요.”

죠엘은 증기 기관이라는 생소한 단어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허허허. 그러고보니 현실세계는 아직까지 증기기관이 없다고 했던가? 하긴 이곳에만 있는 연료가 그쪽엔 없을테니 무리도 아니겠군. 하지만 천재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네. 미스터 해럴드.”
“겸손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 노스페라투씨. 덕분에 이 알케미토피아가 더 살기 편해진 것은 사실이니까요.”

노스페라투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해럴드와 죠엘을 내려다보았다. 노스페라투의 눈이 죠엘을 지긋이 바라보자 죠엘은 그제야 뭔가 빼먹은 사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죠엘 카트린입니다. 노스페라투씨.”
“으음.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하네. 젊은 친구. 얘기는 이 친구로부터 다 들었을 터이고. 어때, 이곳이 마음에 드는가?”
“아, 그게......”

죠엘은 노스페라투의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곳이 마음에 안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심정이 꽤나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적응이 안된 모양입니다. 무리도 아니지요. 그나저나 어디로 향하시는 중이십니까? 노스페라투씨.”
“음, 그게 말이지. 연구에 필요한 자재가 부족해서 이웃마을로 가고 있었네.”

죠엘이 대답을 머뭇거리자 해럴드가 나서서 화제를 돌리고 나섰다. 죠엘을 배려해준 것이다. 내심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죠엘은 내색하지 않았다.

“이웃마을로 향하는 것치곤 짐이 너무 많은데요. 어르신.”

해럴드가 자동 마차의 좌석 옆에 실려있는 커다란 배낭을 가리키며 묻자 노스페라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자네 눈은 속일 수가 없구만. 해럴드. 실은 말이지. 저쪽 심홍의 산기슭너머 한 마을에서 사고가 일어나서 말이지. 연구자재를 찾으로 가는 겸 그곳에 들렸다가 올 생각이었다네.”
“사고요?”
“그래, 마을 하나가 깡그리 없어지는 대 사고가 일어났지. 이미 이 지역 조사대가 파견되었다고는 하지만, 자네도 알겠지? 알스하임에 사는 괴짜노친네 이야기말일세.”

괴짜노친네? 죠엘은 무슨 이야기인지 호기심이 동했다. 노스페라투의 말에 해럴드가 대답했다.

“시공의 연금술사, 제리코 말씀이시군요.”

시공의 연금술사. ‘시공’이라는 말에 죠엘은 적지않게 놀랐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그래, 그 자가 있던 알스하임이 지금 먼지하나 안남기고 그것도 깨끗하게 사라졌다고 하더군. 과학자 겸 연금술사로서의 호기심이 날 가만히 놔두질 않는구만. 난 지금 그 일의 전말을 알고 싶어 두근두근거린다네.”

그건 죠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쉴 새 없이 뛰는 심장소리에 그는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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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힘들군요.. 역시 저에게 이런 고차원적인 내용은 힘든 듯.. 쿨럭.

증기기관의 경우 17세기인가? 18세기인가에 실용화에 들어가니까. 현실과는 한 3세기 정도 앞섰군요.

비밀을 깨달은 천재들이 우굴우굴 몰려 있는 건데 이정도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개인적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동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여하튼.... 시공을 연구하던 연금술사 제리코에 의해 알스하임이 사라졌고, 제리코는 현재 모습을 찾을 수 없는 상태랍네다. 얼쑤 ~ -_- ~

자, 우리의 죠엘군 이제 어디로 갈까나~


PS:크악! 어려워~ 내가 이걸 언제까지 이어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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