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7 18:06

발큐리아! 5화

조회 수 2780 추천 수 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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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껏 여러 차례 멸망할 위기를 맞았던 모양이다. 위기는 전부 인간 때문이었다.


 어째서 인간 때문에 세계가 멸망하는가?


 "그건 인간이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몇 겹이나 되는 안전장치로 봉해진 감정 말이다."


 여신, 이그드라실의 설명은 이랬다. 언어, 종교, 법률 등등 '안전장치'가 사람들의 감정을 절제하게 한다. 안전장치들은 인간 스스로가 만든 것도 있고, 신들과 계약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그렇게까지 해서 감정을 억누르는 건, 그것이 자칫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난 몇 번이고 이 세상이 너희들의 감정 탓에 무너질 뻔한 사건들을 보아 왔다. 또 그 때마다 너희 인간들의 도움을 받아 이 세계를 지켜 왔고 말이지."


 어째서 감정이 세상을 멸망시키는가?


 "감정은 불꽃이다.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너희가 품은 그 불꽃이 너희를 살아 움직이게 한다. 기술 따위로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너희 몸은 신이 축복하여 내린 것이지만, 너희가 가진 감정은 사방 거인들이 내린 불꽃에서 왔다. 이 세계에 적의를 품고 있는, 그리고 이 세계를 확실히 훼손할 능력이 있는 거인들에게서 말이다."


 즉, 누군가 감정이 폭주해 버리면, 그 안에 품은 거인의 불씨가 세상에 옮겨 붙게 된다. 옮겨 붙은 불씨는 이 세계를 불태워 멸망시켜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불씨를 사전에 진화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여신은 무언가를 곁에 불러냈다. 그 애의 그림자 속에서 크기를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가 소름끼치는 두 눈을 빛냈을 때,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이건 미드가드오름. 거인의 불씨를 진화하는 거대한 수호 뱀이다. 자잘한 불씨는 이 녀석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여신은 조금 말을 아꼈다. 안타까운 듯, 애처로운 듯, 무언가를 생각하며 여신은 서글픈 눈빛을 잠시 내비쳤다.


 "다만, 여기서는 어떤 사건이 있었다고만 해두겠다. 그 일이 있던 뒤부턴 이 미드가드오름만 가지고 불씨를 전부 제압할 수 없게 된 거다. 너희 인간들이 협력해 주지 않으면 말이다."


 그러면 어째서 하고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인가?


 "하나 확인해두자. 누군가 감정이 폭주해 그 불씨가 세계에 옮겨 붙으면 위험하다. 이건 이해한 것이냐?"


 나와 호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신은 이야기를 계속다.


 "감정이 폭주한 자는, 얼마나 폭주가 진행되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상이 있는 자는 너희 눈에도 이상해 보인다는 말이다. 행동이든, 말이든..."

 "평소와 달라 보이는 사람을 찾으라는 건가요?"


 호진이 묻자, 여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질문을 던졌다.


 "어디 사람이 한둘이야? 학교에만 해도 수백 명은 있을 텐데."

 "그게 너희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유다."


 여신이 한 말을 우리는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덧붙여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3일 이내 예고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그 자를 진정시키면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건, 그 폭주할 사람이 너희들 주변에 있는 누군가라는 것뿐이니라."

 "우리 주위 누군가라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해서 호진을 보았다. 나와는 달리, 그는 곰곰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여신이 한 말을 듣고, 뭔가 떠오르는 거라도 있었던 걸까?


 "짐작가는 거라도 있어?"


 내가 묻자 호진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조금 멍한 표정으로 내 쪽을 쳐다보는가 싶더니 곧이어 이렇게 말했다.


 "아뇨, 죄송해요. 조금 다른 생각 중이었어요."

 "휴, 뭐 됐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정말 아무 상관없는 것이냐? 이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여신은 이전에 던졌던 질문을 반복했다. 몇 번을 물어도 내 대답은 같다.


 "이미 말했잖아. 난, 이 세상에 아무 미련도 없는 사람이야. 빚진 것도 없고, 지켜줄 의리가 남은 사람도 없어."

 "하지만 누나도 부모님이나 가족이 있잖아요?"

 "그딴 인간들 누가 신경이나 쓴데!"


 호진이 흠칫 놀라 몸을 움추렸다. 분이 풀리지 않아 나는 연신 제길, 제길 하면서 욕을 퍼부었다. 조금 화가 가라앉자 잠자코 있던 여신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네가 오늘 그 여자랑 싸운 거, 다 네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더냐?"

 "..."

 "누가 제 피붙이를 욕하면 누구나 싫은 법이다. 그 피붙이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느냐? 지금은 이렇게 아무 상관 없다고 얘기하지만 말이다."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나도 강요는 하지 않는다. 네가 원하는 데로 해보거라."


 다만, 하면서 여신은 말을 덧붙였다.


 "다만 정말 세상이 멸망할 위기에 닥치면, 너도 생각이 좀 바뀔지도 모르지."

 "안 바뀐다고, 시팔!"


 나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그들과 헤어졌다. 그 년들과 싸울 때도 이렇게까지 기분이 더럽지는 않았다. 그 여신이란 꼬맹이가 한 말은, 아무리 애를 써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었다.


 하염없이 몇 시간이고 길거리를 헤맸다. 시비를 거는 녀석들이 간혹 있었지만 무시하거나 욕설만 주고받곤 물러났다. 속으로 몇 번이나 젠장할, 하고 내뱉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깨달은 순간,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렇게까지 말해 놓고도 결국 도착한 건 여기인 거냐.


 자조섞인 쓴웃음을 삼키며, 나는 우리집 낡은 대문을 열어 젖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끼릭, 하는 듣기 싫은 쇠소리가 길게 텅 빈 마당 안에 울려 퍼졌다.


==================================================

 며칠만에 겨우 다음 화를 올립니다.
 설명 가득한 화입니다만, 너무 난해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가급적 간략한 배경설명만 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보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내일 6화 적어 올리겠습니다. 그 이후 연재는 비정기적이 될 거 같네요. 웬만하면 한 주 1, 2화 가량은 올리고 싶은데 말예요;
 그럼 내일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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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2.05.28 08:47
    주인공 순정은 '안전장치' 따윈 없는 인간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주위에 누가 달라져 있었을까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05.28 08:55
    폭주하고 있긴 하지만, 진짜 안전장치가 없는지, 자기만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는 두고봐야겠죠 ㅎ 안그래도 그 얘긴 다음 화에서 조금 쓰려고 하던 참이었어요;

    누가 달라져 있을까, 그러니까 '누가 범인인가'하는 건, 나름 큰 반전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기대해 주세요^^;
  • ?
    乾天HaNeuL 2012.06.05 18:09
    후우... 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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