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01 00:53

괴물산장 이야기

조회 수 3598 추천 수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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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5일이군. 모집마감까지는 3일 남았지만 중간에 뭔일이 생길지 모르니 일찍 가볼까. 오시는 길이라 쓰여진 종이쪼가리를 냉큼 뜯어내 주머니에 쑤셔박자 마치 만사가 다 잘될것같은 기분이들었다. 아무리 험난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견딜수있으리라는 그런 느낌? 돈에 눌려살았던 내가 돈을 번다고 생각하니-그것도 왠만한 회사원 뺨치게 말이다-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직은 이상기후때문에 바람이 찼기때문에 나는 서둘러 아파트 방으로 기어들어갔다. 뭐 워낙 오래되고 관리도 허술한데라 보온효과는 별로지만.

어디보자, 오시는 길...하루에 한번씩 정기운행되는 버스가 한대 있습니다. 그 버스는 당신이 편한대로 타고싶은곳에서 딱 멈출것이며, 당신을 태우고 산장을 향해 출발할것입니다. 뭐 이런 말도 안되는 개소릴 찌글거리냐고요? 보통이라면 맞는말인데, 구인공고지에 분명히 적었습니다. 눈앞에서 상상이상의 일이 일어나도 제정신을 유지할수있는 분만 오시라고. 집앞에 바로 버스가 탁 서서 타라고 하면 당황하는게 보통이지만 우린 보통이 아닙니다. 정신줄에서 광대가 24시간 줄타기를 하실것같으면 여러분의 사랑스러운 미미-아니면 컴퓨터? 아무래도 좋죠. 좋아하는거 껴안고 행복하게 사세요. 아, 이 앞의 말들을 보고도 타실거라면 충고 한마디 하는데, 버스에 지옥행이라고 써져있는거 보고 썩소날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만약 그러시면 아마 진짜 지옥을 맛보게 되실겁니다. 저희 버스기사분이 좀 짱이셔서 말이죠. 종이쪼가리가 워낙에 작아서 많이는 못적겠군요. 하여튼 짐싸들고 나오면 바로 오실수있습니다. 선택은 당신 자유라는거.

라니, 뭐야 이거. 사람 웃길려고 써놓은거야? 구인공고지 맞아? 무엇보다 이렇게 써놓으면 누가 올까. 진짜라고 해도 아마 낚시라고 생각하고 그냥 버릴게 틀림없다. 사람이 필요해서 쓰는주제에 이렇게 해놓으면 올사람이 있나? ..지금 아쉬운건 내쪽이다. 정리라도 할겸 생필품을 가방에다 쳐박아두는건 상관없겠지. 방구석 여기저기에 참혹하게 널부러져있는 두루마리 휴지, 핸드폰, 옷이나 랜턴 따위를 가방속에 차곡차곡 넣고있으니 점점 방이 넓어져보인다. 역시 청소는 몰아서 할때 보람이 가장 크군. 충격도 가장 크고... 덜덜덜덜덜. 근처에 트럭이 지나가는건지 창문이 덜그럭거린다. 안그래도 허술한 건물인데 이러다간 자다가 유리창이 깨져서 다음날 유리박힌 고기덩이가 될게 틀림없어. 얼른 돈벌어서 자다가 죽을 염려정도는 하지않을 그런 방에 묵어야지...

『빠앙---』

이 골목에서 시끄럽게 경적이나 울려대고. 뭐하는 사람이야? 쳇, 알게뭐냐. 자기도 눈치가 있다면 몇번하다가 그냥 말겠지. 난 내 가방이나 싸고있으렵니다~

『빵- 빵 빵-』

「흥~흥흥~ 루루루루루루루~」

『빠빵-빵---』 『거기 소년!! 얼른 뛰어나와! 안탈건가?』

「루루..컯!?」

뭥미?! 나 보고 하는 말인가? 창문에 서있는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 설마, 아니겠지.

『그래, 거기 낡아빠진 아파트에 있는 소년! 이름은 한준호랬던가?』

뭐야. 저사람. 투시안이라도 가졌나? 전지전능한 능력의 소유자냐? 메시아냐? 내가 여기있는걸 어떻게 아는거야!! ...이 좁은동네에서 나때문에 경적 울려대는거면 민폐니까 얼렁 나가봐야지. 저 버스가 진짜 그 버스인가? 문을 열고 나오자 세상에. 진짜로 버스가 와있다?

『얼른 좀 타게! 자네만 승객인게 아니야! 얼른!』

「아앗, 예, 예!」

안타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난..

「...지대로 걸렸다...」

이미 버스 좌석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이뭐병....

엔진이 울리면서 버스가 출발했다. 이거 몰카같은거 아냐? ..나같은걸 뭐하러? 어감이 너무 암울하네. 젠장. 기분전환이라도 할겸 둘러볼까. 앞에서 버스를 운행하고있는 사람은 클래식한 버스기사 복장을 하고있었다. 무엇보다 교묘하게 눈을 가린 저 제독모자 비스무레 한것의 신비주의+100 옵션이 붙은 저 모자.. 몸의 골격같은걸로 볼때 나이가 삼사십대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였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난 하마터면 썩소를 지을뻔했다. 왜냐하면 그도 그럴것이...

「지옥...지옥행...버스...큽....」

내가 더 부끄럽구만. 저런거 써붙여놓고 운행해왔던거야? 필사적으로 얼굴을 수그리고 나름대로 손짓까지 해가며 안웃으려고 발광을 떤덕에 겨우 들키지않았다. 구인공고지의 약도라고 되있는 그 쪽지의 내용은 매우 전지전능했으니 썩소를 지었다간 진짜 지옥을 갈지도 모를일이다. 다시는 쳐다보지말자. 지옥가긴 싫다. 숫총각에 엔조이라이프(?)도 못해보고서.. 오른쪽으로 계속 시선을 돌리다보니 어떤 여자애 하나가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어이 이봐. 개념을 어디다 팔아먹었길래 그나이에 알바를 하겠다고 버스를 탄거야? 초딩주제에...

「안녕하세요?」

「어, 어..안녕.」

시선을 느낀것일까, 창밖을 멍하니 보고있던 여자애는 나에게 인사를했다. 갑작스런 인사라 당황하고말았다.

「넌 아직 초등학생같은데. 여자애가 왜 알바를 하려고 하는거냐?」

꿈틀. 중학생인데 발육부진이라던지 그런 경우인건지.. 분명히 몸이 꿈틀한것같은데. 어어라. 여자애가 왠 죽도를 메고있는거야? 검도하나?

「저...남잔데요. '형'.」

「....네?」

「저 남자라구요. '형'.」

「...미안!!!!!」

저 예쁘장한 얼굴에 남자라고?! 남자가 머리는 왜 길러! ..아니 뭐 기르면 안된다는 이야긴 절대로 아니지만. 내 얼굴은 삽시간에 극도의 쪽팔림으로 인해 달아올랐다. 버스기사는 조그맣게 '쿡쿡..' 하고 웃고있다. 아오...알면서 말 안해준것이여?!

「미...미안...근데 몇살이지? 이름은? 」

「초등학교 4학년...올해로 만 11세 입니다. 이름은 박 찬양. 후박나무 박에 기릴 찬, 오를 양자를 씁니다」

「어...응....그러니?」

젠장! 저 나이에 너무 예의바른 말투라니! 거기다가 정확한 한자명까지?! 나도 모르게 어른을 상대하는것같은 기분이 든다. 몸은 이미 긴장 비슷한걸로 경직된채 막대파이프 마냥 꼿꼿이 세워져있다. 보통은 쫄아서 말 안붙이거나 그러는게 정상인데 저녀석은 뭐여! 먼저 인사하고! 오해받아서 화났을텐데도 존댓말하고! 내 생애 최초의 개념초등학생이다! 신은 세상을 버리지 않았어!

「제가 왜 이 버스에 타고싶으신지 알고싶으신건가요?」

「...왜? 내가 알고싶다는 표정 지었니?」

「아뇨......」

으악! 젠장! 개념있는 어린애를 상대해본적이 없다보니 어느새부턴가 윽박지르는것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안돼...안돼! 본인은 남자라고 하고있지만 저 외모를 보면 도저히 남자로 안보여..여자애를 윽박지르고 있는것같다고!! 으악!!

「으..음. 심심하면 말해보고... 말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는거지...」

뻘쭘한 탓에 창밖을 보자 언제부터서인가 버스는 터널을 지나고있었다. 대체 이동네의 어디에 터널이 있었지? 거기다 아깐 분명히 골목이었다. 어떻게 속도한번 안줄이고도 사고를 안낸거야? 사고 안낸건 다행이지만 무슨 신이 내린 드라이빙 스킬도 아니고 뭐냐고! 아깐 투시안 쓰더니! ...눈앞에서 확실히 상상이상의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구나. 이대로 가다간 정신줄에 광대가 줄타기 하겠어, 그 작자말대로.

그나저나, 이 남자아이의 대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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