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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알람도 맞추지 않았는데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아직 밤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새벽 시간에 눈이 떠졌다. 새벽녘 도시의 풍경은 푸르스름하게 질려있는 것 같아 꺼림칙하다고 언젠가 그 사람이 말했던 적이 있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침대 위에서 가만히 눈을 뜨고 창 너머로 넘실대는 새벽의 기괴함을 더듬어보았다. 그가 말한 감각이 내 몸 속에서 꿈틀대는 것 같다가도 이내 작은 여운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일어나야지 하고,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을 때는 벌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여름나절이라 아침 해가 일찍 떠오르기는 했지만, 일찍 일어난다고 해서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요즘엔 계속 그런 식이다. 일어나기가 싫다.


 


 침대 앞에 걸려있는 거울에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산발한 머리에 눈동자는 흐리멍덩했고 표정은 딱딱하게 굳은 것이 영 추레해 보였다. 언제부터 거울이 저기에 걸려있었더라? 치워버려야 갰다는 각오를 했지만 그제도,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이라고 다를 바가 있을까? 꾀나 무거워 보이는 거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은 자신의 제일 추한 모습을 보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며 거울을 달던 그 사람의 뒷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때도 나는 침대 앞에 무슨 거울이냐고 반대를 했었지.


 


 그 사람하고 나는 항상 다투는 게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인데, 그때는 뭐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서로 목소리를 높였던 걸까? 그리고 사실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대부분 내 의견을 따라주는 편이었다. 빨리 일어나라고 늦잠을 자고 있는 그 사람의 등짝을 힘껏 내리쳐도 화를 내기는커녕 아침밥은 뭘 해놨느냐며 멋쩍게 웃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도...


 



 전기밥솥을 열어봤다. 먹는 입이 적어서 인지 며칠 전에 해놓은 밥이 누렇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침밥을 해야 하나? 나는 먹기가 곤란해진 밥을 음식물 처리기에 집어넣으며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역시 귀찮았다. 아침밥이 뭐 대수인가. 어차피 해놓으면 며칠도 안돼서 방금처럼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텐데. 사실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입맛도 없었고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덕분에 몸무게가 5kg이나 빠져서 평소에 그토록 그리던 44사이즈 옷에 몸이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그다지 기쁜 마음은 들지 않았다.


 


 결국 우유 한잔 마시는 걸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그리곤 마음 같아선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워버리고 싶었지만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에 서둘러야만 했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다. 여름이라고는 해도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리고 오늘도 차가운 물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서야 보일러가 망가졌단 사실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문득 수리공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또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매일 아침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한지도 벌써 몇 주가 지났다.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나와 화장실 앞에 걸린 거울을 본다. 아직 젊은 육신이 내 눈 앞에서 서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른 수건으로 온몸을 훑어 내렸다. 하지만 아직 몸에 남은 물기 때문인지 온몸이 서늘해졌다. 서둘러 거울 밑에 서랍장에서 속옷을 꺼내 입고는 다시 거울 앞에 서서 이번엔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문득 짧게 쳐버릴까 하는 충동이 일었다. 아침마다 머리를 말리고 정돈하는 것은 꾀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누구를 위해서?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내 긴 생머리에 반해 프러포즈를 했다는 그 사람의 속삭임이 귓가에서 윙윙거렸다.


 


 머리를 말리고선 주섬주섬 외출복을 입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얇은 카디건을 걸쳤다. 사실 어제도 입었던 옷이긴 하지만 매일매일 옷을 바꿔 입는다고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편한 옷차림이면 족했다. 옷을 다 입은 후엔 차마 그냥 나가지 못하고 가볍게 화장을 했다. 스킨을 바르고 에센스에 수분크림, 컨실러와 파운데이션, 블러셔, 그리고 끝으로 립스틱. 화장을 하면서도 이게 뭐하는 짓인지 싶다. 화장을 한번 시작하면 20, 30분은 금방 흘러가고야 만다. 하지만 살아온 습관이 그러한지라 맨 얼굴로 외출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누가 본다고 이렇게 화장을 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의문이었지만,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대충 준비를 마치고서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보았다. 7시 50분. 이제 슬슬 출발해야할 시간이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오늘도 역시 전단지가 문 앞에 잔득 붙어있다. 신경질적으로 그것들을 떼어내고서는 서둘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1층에 머무르고 있던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쉬지 않고 8층까지 올라왔고 또 막힘없이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조금 늦긴 했어도 출근 시간이라서 혹시 누군가 마주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늘은 다행히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관심에도 없는 안부를 묻는 척하며 하이에나처럼 씹어댈 소문거릴 물색하는 그들의 싸구려 동정을 마주하는 것은 마냥 피곤한 일이니까.


 



 아파트 공동현관을 빠져나오자 드문드문 비어있는 주차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저기 구석에 뿌연 먼지를 뒤집어 쓴 우리 집 자동차가 보였다. 중고로 사긴 했어도 그이가 자동차 정비는 능숙해서 별 문제없이 타고 다녔었는데 이젠 굴러나 갈지 의문이다. 저렇게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방치되어 있으면 뭐라도 망가지는 법이다. 마치 그 사람이 그랬듯이. 그리고 내 마음 역시도.


 


 예전에는 항상 어딜 나갈 때면 그 사람이 운전을 하곤 했었다. 그런 날이면 자기가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사모님. 하면서 너스레를 떨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왜 그의 그런 장난스러움에서 행복을 찾지 못했던 것일까. 내 냉랭한 반응에 무안한 듯 멋쩍게 웃으며 차를 출발 시키던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며 언제까지나 너무도 당연하게 내 옆에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아니 너무도 당연해서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마치 공기처럼, 있는지 없는지 의식하지도 못한 채 소중한 사람과 싸우고 다투며 그렇게 살았었다.


 


 숨이 막혀.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횡단보도 앞에 다다르자 울컥울컥 숨이 거꾸로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젠 많이 담담해 졌다고 생각했는데. 길 위에 그려졌던 흰색 마카가 지워진 것처럼 내 마음도 역시 그런 줄 알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또다시 가슴이, 심장 언저리가 딱딱하게 굳어져 오는 것이었다. 갑갑해진 시선이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곳을 향했다. 저기 바로 저기, 횡단보도에서 조금은 떨어진 1차선과 2차선의 사이, 너무도 작은 공간위에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며 사람이 아닌 형상으로 그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어쩌면 내 생각을 하면서 욕이라도 진탕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상관없었다.


 


 잠시 서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신호가 바뀌었는지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황망한 마음에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넜지만 길을 건너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잊혀진 그 날의 흔적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의 장막을 뚫고 34번 버스가 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였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목에 찬 시계를 봤지만 아직 다행히 약속시간엔 늦지 않은 듯싶었다. 다만 저 버스를 탄다는 전제하의 말이지만. 나는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버스는 신호등에 걸려 멈춰 서있는 상태였다. 뛰는 듯 걷다보니 아침을 대충 우유로 때우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화석처럼 굳은 밥 덩어리를 생각하면 또 여전히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다행히 노력 끝에 버스에 올라타긴 했지만 만원에 가까운 인파를 보자니 질색할 노릇이었다. 이래서 아침 시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싫다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버스가 이 동네에서 병원으로 향하는 유일한 교통편인데다가 약속시간도 이제 간당간강했다.


 


 한참을 뒤척인 끝에 간신히 손잡이를 잡자 드디어 버스가 출발을 했다. 비록 급가속으로 인해 사람들이 뒤로 밀려나며 아우성을 질렀지만 버스기사한테는 귓등에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번엔 버스가 좌회전을 한다. 창문 쪽으로 쏠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리창 너머로 횡단보도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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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이라서 글의 연재가 상당히 늦혀졌습니다.기다리셨던 분이 계시다면(과연?)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글은 드디어 에필로그의 시작입니다. 이번에 쓰는 글이 뭐랄까, 3부작이 서로 시점과 주인공이 다른 이야기지만 중심 내용은 일통하는 그런 글이거든요.이번엔 여성의 관점에서 써보려고 했는데 과연 제가 여성의 느낌을 잘 살린것인지 영 모르겠네요.


 


여성의 심리라는게, 물론 여성만이 아니라 사람이란 것이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긴 하지만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런고로 이성의 감정을 풀어나간다는 것은 현격히 부족한 필력을 가진 저로써는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아무쪼록 이쁘게 봐주시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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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0.06.21 15:30
    어쩌다 미리 보고 왔네요 ㅎㅎ 추천 드릴게요~
  • profile
    시우처럼 2010.06.21 18:16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여성의 느낌이 느껴지는지 궁금합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0.06.22 03:18
    그 부분은 제가 뭐라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닌 듯;; 제가 보기엔 어색하지 않아 보이네요;;
  • profile
    클레어^^ 2010.06.23 04:09
    우에에... 지금은 여자가 남자와 헤어진 후인건가요?
    (절실한 느낌이...)
  • profile
    시우처럼 2010.06.26 01:46
    그런 셈이죠. 그것도 자신의 잘못때문에 해어졌다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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