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09 08:53

밤은 우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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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은 갑자기 찾아왔다. 비가 억수같이 내렸고, 간간히 벼락까지 쳤다. 우리는 커다란 나무를 피해 숲에서 나와 질퍽이는 저지대로 내려갔다. 진흙과 비에 젖은 옷과 신발이 끔찍이 무거웠다. 빗소리 탓에 서로 이야기하려면 고함을 질러야만 했다. 처음에 우리는 비를 막을 간이 천막이나 굴이라도 만들려고 했다. 거센 비는 간신히 덮어씌운 지붕을 찢고 토굴을 침수시켰다. 모두 체념하고 그저 이 비가 빨리 그치기만 바랐다. 오직 탈리만이 초조하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곁에 다른 두 형제와 앉아 있었다. 그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궁금했다. 가급적 이 폭우 속에서 빠져나갈 방법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전령이 와서 포프가 죽었다는 말을 전했다.



 "뭐라고? 누가 어떻게 됐어?"



 처음 그 말을 듣고서 탈리는, 손으로 흠뻑 젖은 얼굴 물기를 훑어냈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서, 방금 자신이 들은 얘기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되물었다. 전령은 포프가 전사했으며, 그를 따르던 이들도 대부분 죽었다고 했다.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일제히 침묵했다.



 "누구 짓이냐? 어떤 놈들한테 당했지?"



 탈리는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까지 그가 학수고대 기다리던 것이 바로 포프였다. 포프는 그의 제안에 따라, 우리들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고자 인간의 도시를 수색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들입니다. 좁은 길에서 숨어 있던 녀석들에게 공격당해……."



 탈리가 무섭게 몰아세우자 전령은 처음엔 쭈뼛대다가, 나중엔 울먹임이 섞여 말꼬리를 흐렸다. 포프의 죽음이 그에게 있어서도 큰 충격이었다. 다른 이들도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을 쳐다보았다. 나는 아연히 전령과 탈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난날 크게 다툰 이후 나는 포프를 단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빗소리만이 요란했고 아무도 말이 없었다. 틀림없이 흐느낌 소리가 비에 묻혀 들리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여겼다.



 "아직 시신은 거기 있나?"



 한참 후에 탈리가 다시 전령에게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침울해하는 사람들의 어깨를 두들겨 일으켜 세우며 그가 말했다.



 "형제들을 수습할 이들을 불러 모아라. 내가 직접 간다. 굿맨!"



 그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다. 슬픔과 죄책감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랐던 나는 반쯤은 넋을 놓고 있었다. 탈리는 다시 한 번 나를 불렀다.



 "굿맨! 어서 일어나! 너도 그에게 빚이 있잖아! 아니면 평생 후회할 건가!"



 물론 탈리는 내가 포프와 싸운 건 알지 못했다. 탈리는 그저 포프가 어린 내게 얼마나 잘 해 주었는지, 어떤 기대를 걸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선한 아이들, 야수의 자손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거란 포프의 꿈을, 탈리 역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같은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포프와 정적 관계였던 탈리가 그의 죽음을 가장 기뻐했을 거라고 말하는 이도 보았다. 사사건건 의견 차이를 보이며 대립했을 뿐 아니라, 알려지진 않았지만 주먹다짐도 있을 거라고 이런저런 소문들을 끄집어내 증거랍시고 떠들어댄다.



 분명 포프가 죽은 후 우리는 더 이상 예전 같진 않았다. 탈리의 지휘 아래서 우리는 서서히 혁명가 기질을 잃고 점차 광신도 집단처럼 변해갔다. 포프 외에는 어느 누구도 영웅을 비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포프의 죽음으로 탈리는 제 입맛대로 다룰 수 있는 집단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나는 탈리가 정말 포프의 죽음을 기뻐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거라곤 그때 탈리가, 진심으로 포프가 죽은 것에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단 것뿐이다. 그는 아직 적이 매복하고 있을지 모르는 인간의 도시, 포프의 시신이 눕혀진 장소로 앞장서 향했다. 유독 포프의 시신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그 죽음을 자세히 들여 보았고, 시신을 수습해 나를 때도 항상 포프 곁에서 떠나지 않고 가장 가까이에서 행렬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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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죽는 얘기는 오랜만에 써 보네요.


 


 읽고 계셨던 많은 분들이 미리 예상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은 전개입니다만, 진부하려나요? 이런 식으론 처음 써보네요^^::


 오늘 드디어 결말을 썼습니다. 생각만큼 잘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럭저럭 모양새가 나왔네요. 내일 다시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토요일 밤입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밤 날씨 추운데 조심하시구요. 저는 찬공기 탓인지 체하고 감기 기운까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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