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13 18:03

영웅의 발자취 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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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끝나고, 5기 아이들은 쉴 틈도 없이 달려 냇가에서 몸을
씻고 돌아왔다. 아침식사를 준비할 녀석들이니 위생을 한 번 점검하
고 통과시켰다. 취사도구를 가지러 짐말로 가던 5기 중 한 명이 내
게 슬쩍 말을 건다. 통통한 볼살을 가진 이 녀석은, 이름이 뭐였더
라?


 


“일스터 선배님, 5기 일드입니다.”


 


5기 15번인가 16번인가, 일드 에손이었다.


 


“헤헤, 아까 멋졌습니다. 설마 했는데 싸울 땐 진짜 성격이 달라
지시네요.”


 


“어…… 누가 그러든?”


 


“여왕님이요, 헤헤.”


 


음, 캐롤린이 술 한 잔 걸치고 애들 앞에서 내 흉 좀 봤나보군.
캐롤린이라면 일찍이 대장님의 따님만 아니었음 내 혼쭐을 내 주리
라 다짐한 바 있는 말썽쟁이 아가씨다. 용병들 사이에서 자라 그런
지 왈가닥도 그런 왈가닥이 없어 감당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애들
사이에 용병대의 마스코트니, 여왕님이니 하고 받들어지는 건 내가
이해하기 힘든 이유가 있는 듯하다. 여자 볼 일 없는 용병들이라 그
런 건가?


 


5기 애들의 작업을 독려, 또는 감시하며 둘러보고 있는데 학자 한
명이 다가왔다. 수려하다는 말은 그를 위한 것인 듯 눈길이 가는 화
사한 외모에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는 듯 탄탄한 몸을 가진 친구다.
난 그냥 학자들 중 젊은 축의 대표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까 이름이……


 


“좋은 아침이군, 루포리. 난 컨프턴 백작가의 데니스라네.”


 


음, 데니스로군.


 


“반갑습니다, 닥터 컨프턴. 좋은 꿈 꾸셨습니까?”


 


데니스는 한 번 끄덕거린 후, 무표정하던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하고자 왔네. 자네들의 무훈에 감명 받은
친구들이 몇 있거든. 그 커다란 마물들을 상대로 아주 용맹하게 싸
우더군.”


 


하급 마물들일 뿐이지만 학자들은 그 덩치로 미루어 강한 마물들
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치하라면, 상금은 있는 걸까? 염두
를 굴려 보며 나도 씨익 웃었다.


 


“영광입니다, 닥터 컨프턴. 저희가 잘 하는 단하나의 재주지만 학
자 여러분께서 보시기에도 좋았다니 기쁩니다.”


 


“음, 확실히 그랬어. 정말 멋졌네. 이에 우리 젊은 친구들이 뭘
좀 선사하려고 하는데…….”


 


그러면서 그는 1, 2기 선배님들의 막사를 보는 것이다. 나도 뭔가
팍 떠오르는 게 있어 함께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좋아, 보고
있는 사람은 없군!


 


“자아, 이거 좀 받게. 알지 모르겠지만 「붉은 숨결」이라고 꽤 비
싼 술이야. 우릴 지키느라 고생했는데 괜찮다면 맛이라도 좀 보게
나.”


 


“감사합니다, 닥터 컨프턴. 저희 쪽 애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실
겁니다.”


 


실실 웃는 나의 말에 그는 멋쩍은 듯 시선을 돌렸다.


 


“그건 민망하구만. 우리 청년 학자들이 함께 선사하는 거라네. 부
디 들키지 않고 즐기길 바라네.”


 


내 감사의 시선이 꽤 강렬했는지 감당하지 못한 듯한 그는 헛기
침을 좀 하며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그 쪽을 한 번 보자, 다른 청년
학자들이 날 보며 손을 흔들어 준다.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이곤 품
속의 보물을 조심스레 내 배낭에 숨겼다. 오늘 밤에 경계 서는 애들
한테 한 잔씩 마시게끔 해야겠다. 실전 경계라곤 해도, 한 잔 술쯤
이야 괜찮잖아? 멍청히 보내는 두 식경(食頃=30분)은 꽤나 지루하니
까, 혼자 먹는 술이지만 홀짝 홀짝 꽤 괜찮을 것이다. 더구나 비싼
놈이라고 하니…… 흐음. 그냥 내가 먹을까?


 


아니, 아니다. 독차지하고 싶은 욕심만큼이나, 애들과 나누고 싶은
자비로움이 내면 깊은 곳에서 솟구친다. 핫핫, 아유, 착한 루포리.



식사 준비가 끝나갈 때 즈음, 여성 학자 천막에서 젊은 여학자들
이 걸어 나왔다. 이미 거울을 보며 몸가짐을 갖춘 듯 어제와 다르지
않은 모습들이다. 음, 그녀들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아우렐리에 아
가씨는 놀랍게도 아까보다 더 아름다워져 있었다. 해님의 조명 효과
가 아니라 분명 변했다! 그렇다면 내가 새벽까지 가까이서 지켜본
그 뽀얀 피부와 붉은 입술, 발그레한 볼이 화장의 혜택을 입지 않은
수수한 모습이었단 말인가? 문화적 쇼크를 받은 사람 마냥 조금 굳
었다.


 


그런 날 보며 그녀가 작게 손을 흔들었다, 방긋 웃으며.


 


한 번 꾸벅 한 후 선배님들의 천막으로 걸어간다. 마음 같아선 그
녀에게 다가가서 많이 놀라진 않았는지, 날 걱정하진 않았는지 다정
하게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이미 그녀의 주변엔 다른 학자
들이 어미를 따르는 아기 오리들처럼 북적북적 하고 있다. 어제도
느꼈지만 역시 그녀는 저 그룹의 중심이다. 데니스는 대표고, 그녀
는 중심. 조금 차이가 있다.


 


그런 터에 그녀와 내가 친한 모습을 보이는 거나, 그녀의 나에 대
한 말투는 좀 문제가 될 수 있다. 상냥한 그녀는 오늘 새벽, 평민인
내게 잠깐의 고민도 없이 존대를 해 왔던 것이다. 나야 마냥 좋았지
만, 혹시라도 다른 학자들이 그런 모습을 본다면 그녀의 체면에 결
코 좋지 않으리라.


 


선배님들의 천막 앞에서 크지 않은 목소리로 안부를 여쭸다.


 


“3기 6번 루포리 일스터입니다. 선배님들, 방금 식사 준비를 마쳤
습니다.”


 


사실은 신분상의 장유유서로 학자들의 것은 이미 완성해 배달해
주고 있었지만, 순서야 어찌됐건 내겐 하늘같은 선배님들이시다.


 


“수고했어, 수고했어.”


 


제일 먼저 천막을 나오신 마린 형님이 내 어깨를 토닥거린다. 2기
선배님들 중 성격 좋기로 손꼽히는 분이시다.


 


“좋은 아침입니다, 올리에 선배님.”


 


“응, 고생 많았다. 로펠메니스 열네 마리였냐?”


 


오오, 마린 형님!?


 


“정확하십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상기된 내 얼굴에 마주 웃어주며 마린 형님은 내 어깨에 팔을 걸
쳤다. 그는 취사장으로 가면서 설명했다.


 


“꽤 예전 일인데- 네가 들어온 후였든가, 전이었든가, 나랑 동료
몇 명이 포로로 잡힌 일이 있었어. 구출대가 볼 수 있도록 흔적을
남겼기에 큰 걱정은 안 하고 있었는데, 좀 별난 일이 벌어졌지. 구
출이 예정된 밤에 두 군데에서 침입이 시작된 거야. 양동작전이 불
가능한 협곡이었는데 말이지. 별난 우연이지만, 한 쪽은 마물들일
터였지. 무기도 없고 많이 지친 우리 포로들은 간신히 포박을 풀고
나왔지만 어느 쪽에 구출대가 있는지 알 수 없었어. 내게 결정권이
주어졌지. 이쪽이냐, 저쪽이냐.”


 


“오오, 그 때 지금 보여주신 능력으로 구출대 방향을 잡으신 거군
요?”


 


“으하하, 아냐, 아냐, 그 때 난 잘못 선택해서, 동료들을 데리고
반대쪽으로 향했지. 그 쪽 놈들이 마물들을 해치우고서는 숨을 몰아
쉬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는 광분해서 덤비더군. 다행히 구출대가 빠
르게 도달해 줘서 죽은 놈은 없었지만 진짜 아찔한 순간이었어. 그
때 결심했지, 적어도 우리 동료들 기합 소리, 외침 소리만큼은 확실
히 외워 두자고.”


 


오오,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애들의 외침 소리로 적의 전력까지 예상하시다니, 경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으하하, ‘경탄’이야, 이 돌팅아.”


 


앗차.


 


마린 형님한테 끌려서 배식을 받고 한 곳에 앉은 잠시 후, 난 곧
꿈같은 현실에 직면했다. 막강하신 다른 2기 선배님들과 함께 내겐
법이고 진리고 전설이신 분께서 내 쪽으로 다가오신 것이다. 손에
식판을 든 채로!


 


“으핫, 뭐 하냐 너?”


 


벌떡 일어서서 굳어버린 내게 마린 형님이 웃으며 하신 말씀.
난 정신을 차리고 전설에 대하여 경례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다, 클링턴 선배님!”


 


멋진 아침 인사…… 가 아닌가? 내 커다란 목소리에 왠지 좌중은
웃음의 도가니가 되었다.


 


…… 으헉?!


 


난 내 멍청한 실수를 깨닫고 좌절했다.


 


오션 클링턴 1기 선배님께선 다행히 폭소하진 않으셨다. 부드럽게
미소하며 선배님은 한 마디만 남기셨다.


 


“나도 잘 잤다, 루포리. 앉아서 밥 먹어.”


 


엉엉,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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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한 친구 한 아이가 서울에서 놀다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모든 게 허무해."


... 이 자식, 의대생은 그 따위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야!


-착한 저는 그 아이의 고민상담을 해 주었습니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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