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24 07:37

E.M.A.

조회 수 144 추천 수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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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지? 벌써 여러 차례 은비는 원인을 찾으려 애썼다.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자, 은비는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떠올렸다. 처음 그 비밀이 생긴 건 언제였을까? 은비는 천천히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차례차례 상기해 보았다. 지극히 평범한 아침 시간, 쳇바퀴처럼 늘 반복되는 한낮의 평화로운 시간들.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가던 그녀는 문득 자신이 그 날 이상한 체험을 했다는 걸 떠올려냈다. 그 날 밤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기억은 연이어 또 다른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어째서 한밤중에 그런 곳을 걷고 있었더라, 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니,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 중간에 지나야 했으니까, 란 대답이 돌아오고, 왜 그럼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갔을까, 라고 묻자 버스 탓이란 답이 되돌아왔다.



 그래,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게 그 놈의 버스 탓이었다. 항상 야자 끝나고 집에 가는 학생들로 가득 찬데다, 배차 간격도 짜증나리만치 긴. 첫 장면으로 되돌아가자 다음 장면을 떠올리기란 훨씬 수월했다. 은비는 어느새 그 날 저녁 있었던 일들을 하나둘 떠올리며 눈앞에 그리기 시작했다.


 


 야간 버스는 드문드문 학교 앞을 지났기 때문에 한 번 놓치면 꽤 오랜 시간 기다리거나 조금 걸어서 큰길가로 나가 집 방향으로 가는 다른 버스들을 잡아타야했다. 야자 시간이 끝나자마자 은비는 서둘러 나왔지만,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정류장에 남아서 기다리는 애들도 있었고, 다른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기는 애들도 있었다. 정류장 앞에서 은비는, 같은 반 혜미, 소리와 마주쳤다.



 "어, 너도 아직 안 갔어?"
 "아, 탈 수 있었는데. 막 달려왔는데 눈앞에서 버스가 출발하려고 문을 닫더라? 멈추라고 소리까지 빽 질렀는데 그 버스 기사 그냥 지나가는 거 있지. 완전 짜증이야."
 "은비야 너 어쩔 거야? 여기서 기다릴 거야?"



 혜미는 짜증을 내고, 소리는 의향을 물었다. 아깝게 버스를 놓친 두 사람은 큰 길까지 나갈 작정이었다. 은비는 잠깐 그들과 같이 갈까 생각하다가, 무슨 변덕에선지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다.



 "나 그럼 그냥 걸어갈래."
 "왜? 20분 넘게 걸리잖아."
 "골목으로 가면 15분이면 되잖아. 기왕 버스 놓친 거, 차분히 좀 걷지 뭐."
 "얜 또 왜 이러니? 너 그러다 다리 굵어진다?"



 뭐가 그리 웃긴지 혜미는 깔깔대며 웃었다. 은비도 같이 웃다가 그들에게 물었다. 같이 안 갈래?



 "음, 어떻게 할까."
 "난 같이 갈래."



 혜미가 고민하는 사이 소리가 먼저 대답을 했다. 혜미는 푸념했다.



 "뭐야, 나만 혼자 갈 순 없잖아. 할 수 없네. 우리 은비 씨 심심할 텐데 말상대라도 해줘야지 않겠어?"
 "너 그냥 혼자 버스타고 갈래?"
 "싫다, 뭐. 같이 가달라는 데 마음씨 좋은 내가 어떻게 거절하겠어?"



 장난스럽게 티격태격하고 웃고 떠들며 세 사람은 밤길을 따라 걸었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절친 인데다 같은 동네서 살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도 같은 반이어서 학교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친한 삼총사로 통했다.



 물론 계기도 여러 차례 있었다. 가장 최근 계기는 소리가 반을 바꾸게 되었을 때였다. 본래 은비네 학교는 1학년 때부터 대학 지망에 따라 인문계 반과 이공계 반을 따로 운영했다. 때문에 처음 고등학교에 들어왔을 때 이공계 지망이었던 소리는 인문계 지망인 혜미나 은비와 반이 갈리게 되었다. 하지만 1학기를 마치고 어떤 이유에선지 소리는 인문계로 희망을 바꾸었다. 지망을 바꿀 때 이래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았었던 듯하지만 다른 두 친구도 자세한 사연까진 알지 못했다. 다만 2학기가 되어 소리가 같은 반이 되었을 때 유난스럽게 살갑게 대해 주었다. 그게 두 사람이 할 수 있었던 전부였기 때문이다. 2학기 들어 갑자기 바뀐 환경에 조금 주눅들어있던 소리도 덕분에 차차 예전처럼 밝게 변했다. 세 사람 사이는 전보다 훨씬 더 각별해진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한밤중에 은비가 집까지 같이 걸어가자는, 다소 부담스런 부탁을 쉽사리 꺼낸 건 그 끈끈한 우정을 조금도 의심 않고 믿기 때문이었다.


 


 같은 길이라도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 즐거움은 배가 되고 체감 시간은 반이 되지만, 결과적으로 걸리는 시간은 두 배가 되곤 한다. 정류장에서 기다렸어도 이미 버스를 타서 사는 동네 근처까진 도착했을 시간에 은비 일행은 아직 가는 길 도중에 있었다.



 은비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길 도중에 골목길을 거쳐야 했다. 은비 일행은 그 골목길 바로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주택가 가까이면서 근처에 초등학교며 중학교가 있어서 분식집이나 문방구, 복사점 등이 이차선 도로를 따라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야, 저거 안 먹을래?"



 혜미가 떡볶이 냄새에 군침을 흘렸다.



 "벌써 10시 넘었어. 지금부터 먹는 건 전부 살로 간다니까."
 "되게 깐깐하네. 넌 별로 군살도 없잖아."
 "평소 노력이 맺은 결실이란다, 너도 지금부터 신경 안 쓰면 졸업할 때 곤란해질걸?"
 "웃겨, 무슨 평소 노력이야. 멀대같이 큰 지 키 생각은 안하고."
 "캬악! 죽는다, 혜미 너!"



 이런 식으로 떠들썩한 건 주로 은비와 혜미고, 소리는 주로 곁에서 듣고 조용히 웃는 타입이다. 가끔씩 두 사람이 끌어들일 때를 빼고는.



 "얘, 소리야. 잠깐 먹고 가자~. 두 접시만 시켜서 셋이 나눠 먹으면 되잖아~."
 "얜 또 착한 소리 가지고 괴롭힌다. 신경 쓰지 마. 저런 악마의 꼬임."
 "싫어~. 소리야, 말 좀 해주라~. 은비 쟨 네 말밖에 안 듣는단 말이야."
 "난 괜찮은데."



 소리가 다소 소극적으로 편을 들어주자 혜미는 그것 보란 듯 기세등등해졌다. 은비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럼 한 그릇만 먹기."
 "역시 우리 은비. 통도 커라. 아줌마, 저희 떡볶이 일인분씩……."
 "죄송합니다. 일인분만 주세요."



 철판 위에 새빨간 빛깔 뽐내던 떡볶이가 한 그릇 수북이 담겨 나오는 걸 나누어 먹으며, 세 사람은 그날 학교서 있었던 얘기를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갈수록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 라거나 '솔직히 야자 때 EBS 인강 보는 거 시간낭비 같아.'같은 푸념은 하루에도 서너 번씩 하는 얘기지만 그것만 가지고도 끝없이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담임 시간만 되면 졸려 죽겠어. 왜 문과 교실인데 담임이 수학 샘일까?'하고 얘기를 시작하는 건 주로 혜미고, '주마다 한 번씩 생물 지구과학 수업 든 것도 웃기지 않냐? 우리 인문계인데.'식으로 짜증내며 맞장구치는 건 은비 몫이었다. 소리는 가끔씩 호응해 주다가 다른 쪽에서 물어오면, '아직 국사나 한국지리는 어려워서, 그냥 혼자 공부해서 사회문화 볼까봐.'하고 대답해 주었다.



 "나 딴 건 몰라도 사탐은 자신 있는데."



 소리 말을 듣고 혜미가, 저요, 저요, 하며 손을 흔들어댔다.



 "넌 머리 하나는 알아주니까."



 은비는 한숨을 쉬더니, 짓궂게 웃으며 혜미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 이 떡볶이도 사야 되는 거 아냐? 솔직히 이번 수리영역 선방했지? 그거 소리 덕분이잖아."
 "어. 근데 너 덕분은 아니다? 은비 너 먹은 값은 줘. 난 소리 몫까지만 낼 테니까."
 "그 정돈 덤으로 쳐줘야지. 아줌마, 계산은 얘가 한데요!"



 너 좀 치사하다. 불퉁대면서도 혜미는 순순히 떡볶이 값을 내주었다. 옆에서 가만히 보던 은비가 돌연 어묵 꼬치 하나를 꺼내 소리를 들려주었다.



 "얘, 혜미야. 기왕 낸 김에 하나 더~."
 "윤은비, 죽을래요?"



 은비는 꺅꺅대며 능청떨고, 소리는 곁에서 키득키득 웃는다. 혜미는 다시 지갑을 열지만 그리 싫어하진 않는 눈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은비는 밤이 싫지 않았다. 학교 책상에 앉아 있으면 언제나 셋이 함께 하는 하교 시간만 기다려지고, 까르르 웃으며 한밤중 골목길을 함께 달려 나가기보다 행복한 일이 없을 정도였다. 그 평범하지만 행복했던 기억이, 그것을 회상하는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아련한 옛 추억 정도로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은비를 끝도 없이 서글프게 했다.


 


=====================================================================================================================


 해묵은 고등학교 기억을, 경험도 해보지 않은 여학생 시점에서, 수다로 풀어내는 건 역시 힘드네요;;


 


 어쨌거나 입맛에 맞으시기를...


 


 혹시나해서 말이지만, 는 다소 편견이다 싶은 생각들이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여성에 대해서라던가, 파트 2는 남자들에 대한 얘기고...그런 편견들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물론 조언은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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