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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 가련다.”


 


“빛의 성지로 가시나요.”


 


“아마 너의 생전에는 돌아오지 못하리라. 모쪼록 좋은
기사가 되어라.”


 


“기사에게 버림받은 종자가 어찌 기사가 되나요.”


 


“기사의 사후 종자는 기사가 되는 법이다.”


 


“그러하면 쇤네는 기사가 아닙니다.”


 


“기사가 변절하면 종자는 기사가 되는 법이다.”


 


“그러하면 쇤네는 기사가 아닙니다. 종래와 같이 영원
토록, 가없이 사랑하는 당신의 종자일 뿐입니다.”


 


 



기사와 종자의 대화 中


 


 


 


 


제 2 장 - 방패(防牌)


 


 



해가 떠오른다.


 


세계적 관광명소인 일출산인 만큼 해돋이 무렵의 정상은 도심 한
복판에 비길 만큼 붐볐다. 각양각색의 등산객들이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해를 보기 위해 등정한 그들
은 해가 떠오르고 있음에도 해가 아닌 우리 일행을 보고 있다. 목적
을 확실히 하라고 윽박지르고픈 상황이긴 하지만, 확실히 우리가 눈
에 띄는 집단이긴 하다.


 


아니, 확실히 눈에 띄는 분이 우리 중 한 분 있긴 하다.


 


엘리제는 강철의 갑옷을 입은 채였다. 그 갑옷은- 고풍스럽다고
한다면 여러 의미로 잘 어울린다. 실제로 고대의 갑옷이기도 하고,
실용성만을 고려한 현대의 갑옷에 비해 더없이 신비롭고 화려하다.
이런 갑옷이라면 왕성의 연병장에서 보게 된다 해도 한동안은 눈을
빼앗길 것인데, 하물며 새벽 산정(山頂)이랴.


 


보통은 갑옷을 입고 등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눈길을 끌겠지만, 지
금은 다르다. 갓 떠오른 태양의 붉은 색조에 은발과 은빛 갑옷이 물
들어 엘리제는 지금 어떤 신성한 그림처럼도 보였다. 이런 그녀에게
서 눈을 돌린다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등산객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시선이 많구나. 범상한 이들이거늘 어찌하여 이토록 우리를 주시
하는 것일꼬?”


 


“…… 악의는 없으니까, 그러려니 하세요.”


 


“그러한가? 그대의 말에 따르도록 하지.”


 


노루스의 수도 데인은, 수도치고는 퍽 동쪽에 치우쳐 있다. 일출
산에서 서쪽으로 하산해 삼십 리(8km)만 걸어가면 데인이다. 우리
일행은 동굴에서 일출산을 넘어 데인에 직행하기로 결정했고, 마침
정상에 다다를 무렵 해가 뜨기 시작해 해돋이를 감상하고 내려가고
자 정상에 자리를 잡았다.


 


학자분들은 귀족인지라 대륙7경 중 하나인 이 「일출산의 해돋이」
를 한 두 번은 본 적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나와 일드에겐 꽤 호사
스런 경험이다. 일드는 무척 감격한 모양이었다.


 


“기사님, 해가 뜹니다!”


 


“그러하구나.”


 


“선배님, 해가 뜹니다!”


 


“어, 그래.”


 


일드는 그 감격을 함께 나누고 싶어 안절부절 못했지만 마땅한
대상을 찾지 못했다.


 


한쪽에선 백작가 커플이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아우렐리에 아가
씨는 임시 보모가 되어 해외파 소녀 학자들의 감탄을 웃으며 받아주
고 있다. 유리에는 노루스 토박이 주제에 릴리아보다 더 들떠서 태
양을 손가락질한다.


 


“해님이 뜬다! 해님이 떴다?!”


 


사실 날이면 날마다 뜬답니다.


 


그러고 있는데, 정상의 서쪽 부근이 소란스러워졌다.


 


“루포리여, 이 소란은 무슨 일이더냐?”


 


엘리제는 태양을 바라본 채 내게 물었다. 왠지 그녀에겐 뭐든지
알고 있는 박학다식한 녀석으로 오인되어 있는 것 같다. 사실은 남
들 다 아는 것도 모르는 나지만, 이런 소란은 임펠런에서도 자주 겪
었던 터라 원인이 대충 짐작됐다.


 


아니, 그렇지만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녀가 이 시대에 돌아온 이
유…… 그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


 


“저기, 먼저 뭐 좀 여쭐게요. 엘리제가 이 시대에 나타났다는 거,
사람들에게 알려야 되는 일인가요?”


 


“알려야 할 까닭은 특별히 없다만,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고?”


 


나는 안도했다. 혹시 대륙 연합군을 조직해서 마룡의 부활을 막는
다거나, 그런 스케일의 사명이라면 아무래도 기사님이나 종자나 힘
들어지게 마련이니까. 사람들에게 도래를 알릴 필요가 없다면 적어
도 그 부류의 목적은 아니란 게 분명하니, 한시름 놓은 셈이다.


 


“저도 가멸차게 동의합니다. 알려지면 엘리제는 무척 번거로워질
거예요.”


 


“가멸차게 동의하는 것이냐? 넉넉한 동의라니, 뜻을 모르겠구나.”


 


앗차, 또 틀렸다?!


 


“가, 가열차게…… 였던가?”


 


“그런 말은 모른다. 신조어이더냐?”


 


또 틀린 모양이다. 이제부턴 쓸데없이 수식어를 붙이지 않기로 다
짐한다.


 


“그, 그것보다 지금은 이 자리를 벗어나죠. 저쪽에서 귀족 행렬이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여기 있다간 이래저래 번거로울 거예요. 엘리
제는, 그, 좀 눈에 띄니까요.”


 


“그러한가. 알겠다, 그대의 말에 따르마.”


 


답변은 시원시원하지만, 사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면에서 눈에 띄
는지 잘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야 물론 은발이 세상에 전
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전의 고풍스런 갑옷을 입는 기사도 분명 있
고, 아름다운 여기사 역시 찾아보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
두를 갖추고 속세를 벗어난 듯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지닌 기사란 엘
리제 이외에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그녀는 누가 어디에서 보더라
도 쉬이 시선을 뗄 수 없는 존재감을 뿜고 있었다.


 


아무튼 귀족 행렬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난 일행을 불러 모았다.


 


“죄송합니다, 기사님께서 노루스의 귀족과 마주치는 건 문제가 좀
있을 것 같아서요, 지금 좀 출발해야겠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물론 그렇게 해야지.”


 


이미 엘리제의 추종자가 된, 아니, 애초에 그녀의 추종자로서 역
사를 공부해 왔던 페넬로페가 대뜸 동의한다.


 


그러고 보니 이 학자들은 다들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
만- 엘리제의 팬클럽으로서 그녀의 생가를 찾았던 사람들이다. 역사
속 우상과 대면한 놀라움은 이제 조금 가신 모양이지만, 여전히 엘
리제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의욕이 느껴진다.


 


“싫어! 싫어! 해님 보고 갈래!”


 


반동분자가 있었다 : 유리에 앰린.


 


“레이디 앰린, 이런 부탁 드려서 죄송하지만, 조금만 양보해 주세
요. 지금 기사님의 존재가 알려지면 엄청난 소란이 벌어진다구요.
본인도 원치 않으시구요.”


 


“응? 루포리 멍청아, 흥, 우리가 그런 말 안 하면 누가 알겠어?
우리가 실명해줘도 믿을까 말까거든요?”


 


그건…… 아마 ‘설명’을 잘못 말한 거겠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유리에의 말도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나로선 내가 모시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시킬 용기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거부감이 든다.


 


넉살 좋게 거짓말로 둘러대는 엘리제는 왠지 생각하기 싫다.


 


음, 그런 얘긴데, 이 말괄량이 아가씨에게 어떻게 설명하지?


 


“들어봐요, 레이디 앰린. 시올리나 경은 기사랍니다. 누구에게나
명예를 지킬 권리가 있다지만, 기사에게 그 명예는 이미 자신만의
것이 아니에요. 레이디 앰린도 기사의 맹서를 알고 있을 거예요. 그
맹서는 명예를 기사의 존재의미 자체라고 정의하지 않았나요? 물론
고귀한 사람도 그래야 할 까닭이 있다면 자신을 숨기고 가명을 쓸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시올리나 경이 꼭 그런 거짓말을 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은 아니지 않나요?”


 


아아, 아우렐리에의 설명은 정연하다 못해 예리했다. 옆에서 듣던
내가 뜨끔할 정도다. 당연히 직접 듣던 유리에는 아무 대꾸도 못한
채 시무룩해진다. 좀 안됐지만, 우선은 이걸로 출발 준비 완료.


 


일행이 짐을 챙기기 시작할 때, 난 살금살금 아우렐리에에게 다가
갔다. 싱글싱글.


 


“저기, 레이디 필모어, 감사합니다. 그, 엘리제를 대신해서요.”


 


아우렐리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겸허하게 웃었다.


 


“헤에, 벌써 이름으로 부르네요? 참 빠르기도 하셔라.”


 


아니 저기, 표정과 말씀이 다른데요? 그보다 캐릭터가 다른데요?!


 


몸을 홱 돌려 짐 쪽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잠시 멍청해
져 있다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일행을 인솔했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또 사면을 조금 돌아가게 되겠지만, 어찌됐건-


 


목적지는 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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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는 자르기가 애매해서 주루룩 올렸지만, 오늘은 짧습니다.
-짧고, 내용도 없습니다. 실은 어제 게임하며 놀다가 글을 전혀 못 썼습니다.
-그래도 주3회 연재는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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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0.08.31 16:42
    어느새 첫 파트 끝나고 둘째 파트 시작이네요;; 재미있게 봤어요^^
  • ?
    비벗 2010.09.01 07:41
    아아, 늘 감사합니다. 왠지 질질 끌고만 있어 부끄럽습니다 ㅠㅠ
  • ?
    乾天HaNeuL 2010.08.31 20:19
    게임은 글을 쓰는 최대 방해 요소 중 하나. 가장 큰 적은 귀차니즘...
  • ?
    비벗 2010.09.01 07:43
    예, 정말로... 게임이란 마치 바람기 같군요.
    하고 있을 땐 즐겁지만 나중에 후회하지요.
  • profile
    시우처럼 2010.09.05 03:19
    정주행으로 오늘 처음 비벗님의 글을 봤습니다.
    그런데 이건 뭔가 페이트 스테이츠 나이트에서 나왔던 아더왕의 느낌도 나는 것 같아요.
    물론,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지만
    고대기사가 현시대에 나타난다는 설정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아요.

    아무튼, 글 잘쓰시네요. 완전 부럽다는~ㅇ_ㅇ/

    앞으로도 계속 멋진글 기대할께요~
  • ?
    비벗 2010.09.05 18:48
    와, 감이 좋으세요! 페이트의 시나리오 굉장히 좋아합니다.
    우연히 텍본으로 읽을 기회가 있어서 정독을 했고, 영향도 적잖게 받았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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