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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의 엘리베이터 안은 무척이나 밝다. 무언가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까지 한다. 정말 이곳이 죽음으로 향하는 문턱이긴 한 걸까? 나는 휠체어를 탄 환자와 그 보호자에 밀려 구석으로 내몰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야말로 끔찍한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들이었다. 환자와 가족의 고통과 번뇌 따위는 무시당한다는 비참한 느낌이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자기네들의 감정적인 평화를 위한답시고 밝고 경쾌한 환경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은, 그래. 그저 타인의 문제일 뿐이지. 고통도 죽음도. 겉으로는 위하는 척 해도 다 알아. 사실은 그다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정작 우리가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매달린다 싶으면 떨떠름하게 뒷걸음질 치며 어색하게 웃는 너희의 모습을 한두 번 봤는줄 알아? 슬슬 악이 바쳐오기 시작했다. 가슴 한가운데 무언가 콱 막히는 듯 답답해져 온다. 하지만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가빠오는 것은 나만의 사정일 뿐. 마침내


 


 8층입니다.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내가 내릴 층이었다. 문이 열리자 잠시 만요 하는 소리와 함께 뒤에 서있던 과일 바구니를 든 남자가 나를 옆으로 밀쳐 내며 서둘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나도 내릴 참이었는데. 덩달아 욱해지는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고 그를 뒤따라 내렸다. 그는 82병동으로 향하는 듯 했다. 정형외과 병동이었다. 누가 아는 사람이 교통사고라도 당했는가 싶었다. 교통사고.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같은 교통사고라도 누군 기껏 몇 군데 부러지고 다치는 것으로 끝나고, 어떤 이는 인생을 끝마치기도 하니 말이다. 만일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참으로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임에 분명해. 이랬다저랬다 변덕이 심하니까 말이다.


 


"안녕하세요?"


 


 간호사실 앞을 지나자 몇몇 간호사들이 아는 체를 해왔다. 나도 마지못해 얼굴에 간신히 미소를 띄우고 그들에게 아침은 드셨냐며 인사를 건넸다. 간호사들은 이제 먹어야죠. 하더니 그 중에 한 명이 수현씨는요? 하고 되물었다. 그러곤 내가 머뭇거리자 금방 교대 시간이니까 식당에 내려가서 같이 먹자며 친한 척을 한다. 이 간호사는 늘 이런 식이다. 김희진이란 이름의 나보다 몇 살 많은 이 병동의 수간호사였는데 처음부터 이래저래 오지랖이 심했다. 하지만 이상한 건 그녀의 귀찮기만 한 간섭을 내가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대답을 하고 시선을 올리자 간호사들 너머로 인턴의사의 모습이 보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거멓고 허연 것이 아마도 뇌 사진을 보고 있는 듯했지만 자세한 건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사람의 사진인지도 몰라. 하지만 역시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81병동 자체가 남편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게다가 무려 2년이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쭉 그래왔으니까. 이제 와서 인턴이 그이의 사진을 본다 한들 상황은 변하지 않을 터였다.


 


 카운터를 지나면 바로 8106호실이었다. 베이지 색의 문 앞에 서서 은색의 손잡이를 아래로 꺾어 내렸다. 그러자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커튼 사이로 병실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병실의 맨 끝, 창가의 옆에 언제나처럼 그 사람이 누워있었다. 밝은 햇살이 그의 눈언저리에서 아른거렸다. 눈이 부실 텐데. 아무리 늦잠을 잔다고 해도 눈이 부실 텐데. 그는 여전히 깨어날 줄을 모른다. 비 오는 겨울 밤. 그 날 밤 이후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꿈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점차 사라져 갈 뿐이었다. 어떤 음색이었지? 이럴 줄 알았으면 녹음이라도 해 놓을걸. 목소리도. 그에 대한 추억도 모든 것이 이렇게 점점 잊혀져 가는 걸까? 내 안에서 그의 흔적이 사라져 간다. 나라는 인간이 싫어진다.


 


"왔구나."


 


 문득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지친 듯 한 음성이었지만 누군지는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뒤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네, 어머님. 식사는 하셨어요?"


"나는 걱정 말거라. 아까 간단하게 먹었다."


 


 그러시더니 너는 잘 챙겨 먹었냐고 물어보신다. 사실은 우유 한잔 마신게 전부였지만 그럭저럭 잘 챙겨 먹었다고 말씀 드렸다. 요즘 들어 살이 부쩍 빠졌다며 볼 때마다 네 몸도 좀 챙기라고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셨다. 사실 마르기는 당신께서 더 마르신 것 같은데도 항상 내 걱정만 하신다.


 


"회진은 왔다 갔나요?"


 


 침대 앞에 걸쳐져 있던 접이식 의자를 피며 그이의 상태를 묻자 어머니는 아까 전에 왔다 갔다며 한숨부터 내쉬셨다. 어머님께 앉으시라고 권하고는 나도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앉았다. 그래 별 차도가 없었겠지. 그랬다면 저렇게 꼼짝도 않고 누워있을리가 없으니까.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을 뿐이었다.


 


 잠시 아무런 말없이 앉아 계시던 어머님께서 이만 가보마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나도 서둘러 일어나며 어머니를 따라 병실을 나섰다. 나오지 말라고 하시지만 엘리베이터 앞까지만 이라도 배웅을 해드릴 참이었다.


 


 카운터를 지나 81병동과 82병동이 만나는 곳에는 승강기뿐만이 아니라 작은 대합실이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몇몇 사람들이 소파에 앉아 벽에 걸린 TV를 보고 있었다. 무슨 아침 드라마 인 듯 남녀가 서로 으르렁대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우스웠다.


 


 마침 우리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 덕택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어머니도 잠시 TV를 보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엘리베이터가 왔다고 알려드리자 아쉬운 듯 고개를 돌리며 문안으로 들어서셨다. 닫히는 문 사이로 어머니의 들어가 보라는 목소리가 삐져나온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병실로 돌아와 남편의 얼굴을 본다. 오늘 아침에는 어머니가 면도까지 해주셨는지 조금 야윈 것만 빼고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마치 흔들어 깨우면 조금만 더 자겠다며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갈 것 만 같았다. 잠깐 정말로 한번 그래 볼까 하는 충동도 일었지만 역시 관두기로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여전히 잠만 잔다면 괜히 더 우울해 질 테니까.


 


 의사말로는 뇌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남편의 끔찍했던 상처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두 아물었지만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서 깨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식물인간. 주변에선 그 사람을 그렇게 불렀고, 중환자실에서 지금의 82병동으로 옮겨진 것도 벌써 2년이 다 되었다.


 


 꿈틀


 


 한참을 병원 대합실에서 가져온 잡지를 읽고 있을 때였다. 책을 읽고 있는 시선 위쪽으로 뭔가가 움직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접고 잠시 그쪽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남편의 손이 침대 위에 놓여져 있었다. 언제나처럼 아무런 미동도 없이 창백해진 손등을 하늘로 향한 채였다. 빈혈인가? 요즘 들어 조금 어지럼증을 느껴오던 터라 시야가 잠깐 흔들렸을지도. 나는 다시금 옆에 내려놓았던 잡지를 들어올렸다. 마침 식물인간 상태에서 회복한 어떤 여자의 사연을 읽던 중이었다. 글씨가 빼곡해서 한참을 헤매고서야 간신히 아까까지 읽었던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꿈틀


 


 또, 또. 이번에는 틀림없었다. 여자가 아이의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는 이야기를 보고 있을 쯤에 또다시 남편의 손이 움직였다. 혹시 착각인지도 몰라. 어쩌면 마침 읽고 있는 내용이 그런 내용이라 부러운 마음에 헛것을 본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봤는걸. 가슴이 쿵쿵 뛰었다. 두 눈을 남편의 손으로 집중했다. 한번만 더, 한번만 더 움직여봐 현수씨.


 


 꿈틀


 


 잠시 머뭇거리던 그의 손가락이 마침내 또 움직였다. 이번엔 확실했다.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의사선생님을 불러야 한다. 그이의 손가락은 이제 주기적으로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발작이든 뭐든 좋았다. 이 기적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의사선생님에게 이 광경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 이가, 그 이가… 움직였어요. 움직였다고요. 어떡하죠? 의사선생님을 불러야 하나요?"


 


 내가 문을 박차고 나와 소리를 지르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간호사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그러더니 곧 상황을 파악한 듯 수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의사선생님을 호출 할 테니 일단 진정하고 환자 옆에 가 있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간혹 환자가 움직이기도 하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말라며 찬물을 끼얹는다. 덕분에 좀 냉정해 질 순 있었지만. 밥맛이었다. 자기 가족이 아니니까 저 따위 말을 지껄이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면? 간혹 움직일 수도 있다라는 범주 안에 그 사람이 포함되는 것이라면? 나는 간신히 찾아온 변화의 징조가 아무런 의미도 없이 끝나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병실로 향했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이런 내 의심도 눈 녹듯이 사라지리라.


 


 그리고 다시 들어간 병실에는. 정말 말도 안 되지만.


 


 남편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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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으로 완결을 지을려고 했는데 막상 써보니 분량이 조금 많아져서 두편으로 나눠서 올리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다음편에 진정으로 우리의 자세 쓰리즈가 끝이 납니다.


 


처음으로 글을 완결지어보는 것 같아요.


그동안 쓰다가 말다가를 반복해서 대부분 중도폐기 했던 경우가 많았거든요.


아무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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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0.06.26 07:46
    헉! 서, 설마 현수씨가 죽는 건 아니겠죠?
  • profile
    시우처럼 2010.06.26 18:31
    완결을 기대해 주십시오~ ^-^ 뭐, 엄청난 결말은 아니지만요. ㅎ
    아무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클레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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