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05 15:32

밤은 우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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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포프와 탈리 사이 미묘한 내부 갈등은 그다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대부분 사소한 말다툼으로 끝났고 큰 문제로 발전되는 경우는 없었다. 탈리는 포프를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그를 존중했고, 포프는 탈리에게 사사건건 반발하면서도 중요한 일에선 늘 협조적이었다. 솔직히 둘의 갈등은 우리에겐 퍽 이상적이었다. 그들이 우리의 방향성을 놓고 서로 다툴 때 비로소 우리는 광신도도, 패배주의자도 아닌 진짜 혁명가가 될 수 있었으니까. 정의로운 이상 아래 각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바로 그런 모습 말이다.



 진짜 장애물은 외부에 있었다. 어르신들, 오랫동안 대지에 안겨 살며 주위와 화합하고 균형을 지키는 데 익숙한 연장자들은 끝까지 인간과 분쟁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피에크람, 그러니까 젊은 혈기를 못 이겨 무모한 행동을 일삼는 철부지로 여겼다. 인간을 내쫓자는 우리 행동은 적에게도, 동족인 야수들에게도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탈리는 그들을 온건파, 위스류페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공식적으론, 탈리는 연장자들에게 항상 저자세를 취했다. 야수들에게 연장자란 아직까지도 침범할 수 없는 권위로 여겨진다. 탈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르신들 앞에선 탈리도 간혹 지원해주지 않는 데 불만을 말해둘 뿐 단 한 번도 비꼬는 투로 말하진 않았다.



 대체로 우리를 상대한 건 연장자들 가운데도 대표자 격인 리레드였다. 전형적인 귀족에 어떠한 일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일 없는 침착한 노인이었다. 선동가 기질이 다분한 탈리를 가장 잘 상대하는 것도 바로 그였다.



 "많은 지원을 바라는 게 아니잖습니까. 사실상 우리가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그에 대한 약간의 보상 정도는 해주셨으면 바랄 뿐입니다."



 탈리는 항상 동족의 도움을 원했다. 그가 원한 것은 우리가 최소한 식사 걱정은 하지 않고 인간들을 몰아내는 우리 본분에 충실하게 되는 것이었다. 인간과 싸워야 할 전력들이 식품 채집이나 하루 머물 장소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것이었다. 동족들이 식량을 대준다면 그건 가능했다.



 "하지만 자네들 불법단체 아닌가. 우리가 왜 우리와 뜻이 다른 자네들에게 지원을 하겠나."



 당연하지만 우리는 원로들이 보기엔 불법 단체였다. 대다수가 온건파인 그들에게 인간은 어떻게든 화해해야 할 상대인데 우리는 자꾸만 인간과 충돌하며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었다. 지지받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처음엔 탈리도 평소 우리에게 하듯 이상이나 신념 따위를 얘기해 보았다. 리레드에겐 그런 것이 들어 먹히지 않는단 걸 안 그는 보다 실질적인 혜택에 초점을 맞췄다.



 "인간과 싸우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질서 유지 활동도 하고 있고, 곤란한 이들을 위해 지원 봉사도 하고 있죠."



 지지받기 위해선 우리가 야수들을 위한 집단이란 걸 알려야 했다. 시시한 순찰이나 막노동 같은 일이 야수들에게 도움이 되듯, 인간을 몰아내자는 우리의 이상도 결국엔 야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임을 말해야 했다. 꿈을 꾸기 위해선 우선은 먹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바뀌어도, 윗대가리들이 보기엔 그저 폭력집단이요, 문제 많은 길거리 갱단일 뿐이었다.



 "자네들이 무얼 하고 있느냐는 중요한 게 아닐세. 솔직히 밖에서 보면 자네들 집단이 하는 일이라곤 단 한 가지뿐이야. 인간들을 몰아내고자 균형을 파괴하는 것."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분한 마음을 감추고 탈리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어떻게 해야 저희가 어르신들께 인정받겠습니까?"
 "모든 무장을 풀고 반납해라. 일체의 폭력 행위를 멈춘다면 인정해주지."



 리레드는 단조로운 어조로 답했다.



 내가 탈리와 리레드의 이 같은 협상 장면을 본 건 굉장히 우연한 기회였다. 탈리는 온건파에게 인정받을 성과, 그것도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걸 필요로 했다. 그는 우리가 버려진 천애고아를 거두어주고 있단 걸 금세 떠올렸고, 운 좋게 내가 그의 눈에 띄었다. 나는 부모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조금도 알지 못한다.



 수확 없는 협상을 마치고 나오는 탈리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상대에게 끝까지 비굴하게 굴었고, 심지어 자기 꿈마저 버리란 소리까지 듣고 난 후였다.



 "저들은 우리가 끝내 자기들 자리까지 요구할까봐 두려워하지. 탐욕스런 돼지 녀석들 같으니."



 그는 분개했지만 그것을 터트리지 않고 꾹꾹 눌러 참았다. 어쩌면 그는 그 같은 모욕을 동족에게서가 아니라 인간을 향해 푸는 게 보다 생산적이라고 여겼는지 모르겠다.



 포프가 나타난 건 그 때였다. 나를 보곤 그 주름진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더니, 곧바로 탈리를 보고 본론에 들어갔다.



 "습격 나갔던 팀 하나를 순찰조가 발견했다. 온 몸이 얻어터져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걸 겨우 부축해 데려왔지."
 "어떻게 된 거야?"
 "뻔하지. '집사' 짓이다."



 '집사'란 말을 듣자 탈리는 곧바로 얼굴이 시뻘게졌다.



 "대체 무슨 이유라던가?'
 "처음 보는 인간 남자가 어슬렁대는 걸 습격조가 발견하고 막 공격하려던 찰나였던 모양이야. 경고도 없이 다짜고짜 달려들었다더군."



 그건 굉장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집사'는 질서를 지키는 자다. 동족인 야수를 그녀가 공격하려면 항상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원칙주의자에 한없이 가까운 그녀는 이 때문에 공격에 앞서 일단 상대에게 경고부터 해 두었다. 이번엔 경고도 없었고, 습격조가 인간에게 해를 입히기도 전에 개입이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그 인간을 보호하려했다고 밖엔 설명할 수 없었다. 늘 중립적 위치에서 인간과 야수를 대하던 그녀의 행동치곤 이해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이젠 집사 그 년까지 인간 편을 드는군! 인간이랑 놀아난단 게 사실이었나?"



 탈리는 성을 냈고, 포프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중립 입장에 있어야 할 집사가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든 것이 탈리뿐 아니라 그 사람 좋은 포프에게도 불만스런 모양이었다.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두지. 집사를 조심하라고."



 사무적으로 탈리에게 보고만 해두곤 포프는 자리를 떠났다. 가만 보니 탈리는 자리에 선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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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본궤도 올리는 게 힘든 모양입니다. 설정이니, 인물 소개니...


 하긴 쓰는 일 자체가 지루한 거라고도 얘기하덥니다만;;


 


 좀 재미있게 보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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