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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AD] 5. 생과 사에 걸친 자 - 3   

 

 

 

 루만은 최근 수도 엘파하에 퍼지고 있는 소문에 대해 알고 있었다. 대부
분의 소문이 단지 소문에 불과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 힘을 잃는데 반해
지금 수도에 돌고 있는 소문은 날이 갈수록 그 영향력을 키우고 있었다.
세상에 뿌리 없는 소문이란 없는 법. 간혹 다른 조미료가 첨가돼 본질이
변하고 심히 왜곡되기도 하지만 결코 무(無)에서 파생되지는 않는다. 그
렇기에 소문 속에 숨겨진 ‘진실이란 보석’을 파헤치는 맛에 대중들은
쉽게 빠져들고 열광한다. 그것이 결코 진실에 닿아있지 않다 할지라도.
 소문의 뿌리를 파헤치는 배후가 누구인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 대장군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이는 한 명 밖에
없다. 루만은 칵테일을 마시는 척 하며 조심스럽게 바함의 눈치를 살폈다.
록셀 공작과 치안대 일개 소대장이라, 어처구니가 없는 조합이다.
 바로 그 점이 걸렸다.
 말이 안 된다는 건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이다.
상대방이 눈치 못 채게 정보를 캐낸다는 것은 정보수집의 백미라 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바함의 존재는 그 조건에 멋지게 부합한다. 눈에 띄
지 않는 치안대의 일개 소대장이 록셀 공작의 소속이라면 완벽하게 허를
찔린 셈이다. 루만은 그제서야 허술해 보이는 바함의 모습이 거짓임을 깨
달을 수 있었다. 바로 그가 소문의 근원지일 것이다. 루만은 평온함을 가
장한 채 바함의 말에 대답했다.

 

 “재미있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는 들었었는데, 그 소문이 바로 당신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군요.”

 

 보좌관의 개인비서에게 직접 접근하다니. 바함은 무엇을 알고 있기에 이
렇게 강수를 두는 것일까? 왜 정체를 드러내는 것일까?

 

 “소문이 돌고 있소이까? 그런 건 몰랐는데. 하긴, 그럴만한 놀라운 얘기
지. 언데드의 배후가 대장군이라니. 그 정도의 위치에 있는 분이 뭐가 아
쉬워서 괴물을 만들겠습니까, 하핫. 믿을 수 없는 얘기죠. 그런데 놀랍게
도 궁에서 진짜 그들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말이 딱 나오지 뭡니까? 이거,
이거 수상하지 않습니까?”

 

 “글쎄요. 그들의 말만을 믿고 모든 정황을 해석한다는 것은……”

 

 바함은 루만의 말을 끊었다.

 

 “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면 그들이 그 소동을 일으켰을까요?
왕궁의 식단이 형편없어서? 정말 그들이 에펠에서 관리를 받고 있었다면
이 정도로 거대한 테러를 일으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오. 누가 봐도
오래전부터 계획했을 것이 분명한 일인데.”

 

 루만은 입을 다물었다. 바함의 말은 놀랍도록 설득력이 있었다.

 

 “이번 사건에 배후가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오. 애초부
터 능력자들 때문에 혼란이 올까봐 몰래 관리를 하고 있었다는 말부터가
이상하지 않소? 그것이 정말 우연발생적인 존재에다 수도테러사건 때처럼
압도적인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들이라면 그것은 숨긴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올시다. 분명 드러나게 될 테니까. 그럴 바엔 시민들에게 공표
하고 주의를 주는 편이 훨씬 낫소. 나는 그쯤에서 그런 생각이 들더이다.
언데드란 자연발생적 존재가 아닌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 그럼 누가 가장 확실하겠소? 바로 처음부터 관리하고 있었다는 사람
들이겠지. 자, 그럼 각하 쯤 되시는 분이 왜 그런 존재를 만들어야 했을까?”

 

 매끄럽기 그지없는 바함의 유려한 말투에서 그가 얼마나 많이 이 상황을
상상하며 연습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루만은 그가 작정하고 나타난
것임을 알았다. 루만은 자신의 표정을 숨기는데 결국 실패했다. 바함은 루
만의 딱딱한 표정을 느긋하게 쳐다보며 계속해서 그를 몰아붙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오. 대장군은 이 나라를 엎을 군사력을 만들고 있
소. 괴물을 만들면서까지.”

 

 “말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추측일 뿐이 아니요!”

 

 루만이 탁자를 치며 바함을 노려보았다. 발렌타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
로 그 둘을 쳐다보았다. 바함은 마시던 칵테일을 내려놓고는 루만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는 빙긋 웃었다.

 

 “그렇소이다. 추측일 뿐이지. 하지만 아까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하지 않
으셨소? 소문도 뿌리가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는 법이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거대한 음모론에 아이처럼 좋아하며 빠져들지. 스케일이 클수록
전달력도 빨라질 것이오.”

 

 루만은 자신이 완벽하게 한 방 먹은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록셀 공
의 술수가 무엇인지, 앞으로의 전개가 어떠한 것인지 충분히 그려낼 수
있었다. 바함이 제시한 것을 뒷받침할만한 물증은 없다. 하지만 단순한 소
문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대국민적 규모로 커지게 되면 귀족원은 대장군에
게 해명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언데드의 진실이 모든 이에게 밝혀진다면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
른다. 그 시점에서 록셀 공이 여론을 장악하게 된다면 패배는 불 보듯 뻔
하다. 그렇다면 바함이 지금 정체를 드러낸 것은 무엇일까? 뻔하다. 권력
싸움을 종식시킬 물증을 찾기 위해 강수를 둔 것이다. 바함을 제거한다
해도 록셀 공은 잃을 것이 없다. 애초부터 같이 엮을 수 있을만한 레벨도
아니며, 분명 증거를 남겨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다르다.
언데드가 되기 이전부터 보좌관의 비서로 일 해온 자신은 상대적으로 얼
굴이 많이 팔렸다. 대장군이 언데드를 관리하고 있었다고 공표한 지금, 자
신을 통해 무언가가 밝혀진다면 타격을 입는 것은 대장군 쪽이 될 것이
다. 루만은 바함의 배짱에 기가 질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최대한 자신의
동요를 억누르며 물었다.

 

 “그런 말을 제게 하는 이유가 뭐죠?”

 

 “그건……”

 

 퍽! 루만은 코가 나가떨어지는 충격을 받으며 뒤로 쓰러졌다. 젠장! 방
심했다! 루만이 뒤로 한 바퀴 구르며 일어섰을 때는 이미 바함이 발렌타
인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루만이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발렌타인은
바함에게 잡혔고, 이내 그녀의 목에 단검이 겨누어졌다. 품속에 숨기고 있
었던 모양이다. 바함이 서늘하게 말했다.

 

 “당신이 이 계집 때문에 에펠리에 온다는 걸 알아내는데 그리 긴 시간
이 걸리지는 않더군. 그러니 협조 좀 해줬으면 좋겠어.”

 

 바함은 ‘안 그러면’이나 ‘그렇지 않다면’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루만은 더더욱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움직이면 그녀는 죽
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들어올 것을 기대하지는 마. 바깥문에 ‘금일 휴업’이라
는 팻말을 걸어놓았으니까.”

 

 이 정도의 인물이 치안대 소속이라고? 루만은 기가 막힌 심정이었다. 그
는 자신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다. 넘버 14에다 해결사라는 별명
까지 붙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농락당하고 있다니!

 

 “자, 슬슬 상황주도권이 나한테 넘어왔음을 인정했으면 좋겠는데.”

 

 자신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상대방을 녹일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루만은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었다.

 

 “협조하겠다. 그녀만은 다치지 않게 해다오.”

 

 

 


 인실롭은 정면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성격상
지금의 해프닝은 도저히 용납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옵슬레이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이 가득한 그에게 있어서 지금의 상황은 그 마음 그대로 유지해
도 좋다는 증명서류를 받은 거나 다름없었다.

 

 “현월단을 잡아라! 저놈들 상금이 어마어마하다지?”

 

 물론 인실롭 일행이 이런 경박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인실롭은 한숨
을 내쉬고는 칼을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을 부러트렸다. 그 자신은 두터운
방한복 때문에 평소보다 동작이 굼뜨다고 느껴졌지만, 화살을 쏜 무리들
은 인실롭의 몸놀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역시 보통이 아니군! 더 쏘아 붙여!”

 

 인실롭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칼을 쳐다보았다. 장갑을 끼고 만지는 칼
자루의 감촉이 무뎠다. 방한복의 무게 때문에 불편해지는 걸음걸이도 마
음에 들지 않았다. 인실롭은 자신이 폭발할 것만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무리들은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었다.

 

 “대장! 저 놈들 3명밖에 없는데요? 나머지 5명은 어디 있죠?”

 

 “닥치고 잡아! 잡고 나면 알겠지!”

 

 인실롭이 조우한 것은 옵슬레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무뢰배들이었다.
처음에 그들이 나타났을 때 인실롭은 상황이 이 지경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인실롭 일행은 여느 때처럼 현월단을 쫓아왔을 뿐이었고 신속한
추격을 위해 리더스카이에게 정찰을 시킨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게 실수였다. 어디서부터 따라와서 언제 나타났는지 알 수도 없는 무리들
에게 리더스카이의 변신이 목격된 순간, 인실롭 일행은 현월단이 되었다.
너무나 기가 막혀 인실롭은 웃을 수도 없었다. 지금 와서 십인장이라고
밝혀봐야 먹히지도 않을 것이다.

 

 “계속 쏘아 붙여! 녀석들은 고작 3명이다! 그 조류 새끼 쪽은 어떻게
됐어? 쫓고 있나?”

 

 “그럼요, 대장! 오늘 양념치킨 먹겠는데요?”

 

 “나는 후라이드다!”

 

 “제발, 대장! 오늘은 양념으로 가자고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척박한 땅에 거주하는 거친 이들의 환대를 몸소 체
험하게 된 인실롭은 결국 쓴웃음을 지었다. 하이막스는 이런 땅에서 주인
노릇을 한다는 말인가. 인실롭의 눈에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나는 반드시 그대를 뛰어넘을 것이다. 하이막스.’

 

 인실롭은 괴성을 지르거나 기합소리를 내지도 않으며 적들에게로 돌진했
다. 그의 칼날이 옆으로 흩뿌려졌다. 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나무를
피해가지도 않았다. 대체 언제 칼을 휘두르는지도 알 수 없는 인실롭의
돌격에 나무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리고 그 놀라운 광경의 절정은 인실롭
이 무리들 앞에 당도했을 때 벌어졌다. 인실롭의 능력이 발현되자 그 어
느 누구도 인실롭 앞에서 한 호흡 이상 버티지 못했다. 많은 문장가들이
‘빗발치는 공격’이란 문구로 화려한 공격을 묘사하곤 한다. 인실롭의
돌진은 그 설명만으론 부족했다. 그의 칼은 소나기였다. 억수처럼 퍼붓는
칼날에 피할 길 없는 이들이 통째로 썰려나갔다. 시원시원한 광경이었다.
날이 닿기만 해도 몸이 두 동강 나는 광경은 그 어처구니없는 폭력성에
질리기보다 아름다운 예술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잔인한 학살의
현장이 아니라 마치 미술가가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는 것 마냥. 인실롭
의 붓이 휘둘러 질 때마다 하얀 도화지에는 붉은 물감이 물들었다.
 짜릿한 아름다움이다. 파괴의 미학이다. 피의 예술이다. 인실롭의 싸움은
아름다움의 극치다.
 취할 것 같은 모습을 바라보던 몬반도 전투에 가담했다.

 

 “민간인을 그렇게 학살해도 되나? 인실롭?”
 
 인실롭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이런 무장병력이 민간인이라고? 옵슬레이의 땅에서는 강한 자만이 살
아 남는다. 약한 것은 죽을 뿐. 내 앞길을 막는다면 그 어떤 자라도 두 발
로 설 수 없다.”

 

 몬반은 그 솔직담백한 패기가 맘에 들었다. 그는 자신의 도끼를 양손으
로 꽉 잡았다. 그리고는 양팔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내뻗었다. 도끼는 순
식간에 두 개가 되어 그의 양손에 들려 있었다. 몬반이 통쾌하게 소리쳤
다.

 

 “맘에 드는군! 좋아. 다 베어 버리고 빨리 쫓아가지.”

 

 두 사내가 무기를 휘두르자 학살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공격당하는
입장에서는 가히 재난이라 할 수준의 것이었다. 하지만 가엽게도 그들의
진짜 재난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인실롭과 몬반의 뒤로 발락이 천
천히 걸어 나왔다. 평상시에 떠들어대던 그의 모습이 아닌 몹시 차분한
모습이었다. 클라보가 죽은 이후 발락의 마음 속 무언가가 변한 게 틀림
없었다. 인실롭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 해도 발락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평정심 속에 남아있는
발락의 반항심에 불이 붙었다. 발락이 양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비켜. 아저씨들.”

 

 인실롭과 몬반이 욕설을 내뱉으며 내빼기 시작했다.

 

 “젠장! 상황 좀 봐가며 쓰라고!”

 

 발락이 투명하게 웃었다. 그의 양팔 금속보호구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일
기 시작했다. 대전쟁용 최강이라 꼽히는 발락의 능력이다. 땅에 쌓여있던
눈들마저 휘날리게 만드는 강렬한 파괴력이 옵슬레이 땅에 내리꽂혔다.

 

 

 


 옵슬레이 땅에 사는 모든 거주민들이 존경심과 공포감을 담아 부르는 엘
헤미아의 북벽, 브라말로카 요새. 겨울의 세력들이 입에 담기조차 꺼리는
춘신의 무장 하이막스가 주인으로 있는 곳이다. 브라말로카 요새에 하이
막스가 부임한 이후로 그들은 감히 옵슬레이 땅을 밟을 엄두를 내지 못하
게 되었다. 국경 전부를 막고 있는 이 긴 요새는 수직과 수평 모두 세상
에서 짝을 찾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요새다. 워낙에 긴 길이 탓에 건축미
따위는 고려의 대상조차 될 수 없었던 요새의 외형은 몹시 투박해 보이지
만 대신 그만큼 견고하다. 그리고 요새의 출입문은 그 견고함에 어울리게
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중간 중간에 있는 작은 소문(小門)을 제외하고는
5개 밖에 없는 요새의 출입문이다. 현월단이 통과하려는 중앙문 역시 5개
의 철문 중 하나이다.

 

 “키야! 정말 요새 한 번 길기도 하구만. 어떻게 이 긴 성을 지을 생각
을 했을까?”

 

 “원래는 중간 중간에 성이 지어져 있던 것을 나중에 하나로 이은 겁니
다. 덕분에 성과 성 사이의 통로는 길 외에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고
있지요.”

 

 매튜의 질문에 피트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셈이지?”

 

 로한이 빙긋 웃으며 ‘물건’을 들어보였다.

 

 “이걸 던지는 거지.”

 

 매튜는 로한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고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브로
말로카 요새는 수직적으로 높게 지어져서 밧줄이나 사다리를 타고 넘기가
용의치 않았다. 설령 성벽 꼭대기에 밧줄을 매달 수 있다 해도 성벽 전체
에 미끄럽게 얼어붙은 얼음을 타고 올라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현월단
은 보다 화끈한 방법으로 그들의 성벽을 뚫기로 결정했다. 바로 수도테러
때 쓰인 ‘염뢰’였다. 단장이 훔친 4개의 염뢰 중 마지막 한 발이었다.
로한이 염뢰에 불을 붙여 매튜에게 건네주었다. 매튜는 불붙은 염뢰를 하
늘 높이 던졌다. 그리고는 마치 야구를 하듯 크게 스윙했다. 태어날 때부
터 전투민족인 매튜는 천부적인 감각을 이용해 정확하게 요새의 정문으로
염뢰를 날려 보냈다. 매튜가 쾌활하게 웃었다.

 

 “명중!”

 

 수도에서도 그 놀라운 파괴력을 자랑했던 염뢰가 문에 부딪히자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강렬한 진동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
다. 일반적인 요새라면 성벽 전체가 무너질만한 타격이지만 엘헤미아의
북벽은 그렇게 녹녹치 않을 것이다. 연기가 걷히기 시작하자 그들의 예상
대로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군데군데 부서져 내린 성벽은 그
견고함을 더 이상 자랑하기 힘들어 보였고, 가장 핵심인 철문이 찌그러져
그 사이로 성내부가 보였다.

 

 “좋았어! 단숨에 돌파한다!”

 

 “반대편 성문까지 달려가면 됩니다!”

 

 압도적인 방어를 위해 건축되는 건물은 설계가 복잡할 수 없다. 온갖 편
의시설을 감안하다 보면 건물 내구성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북벽이라 자
칭하는 그들의 요새에서 호화로운 만찬을 열 거대한 홀 같은 것은 사치일
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안쪽 구조도 단순할 터, 피트는 루이즈번으로 향
하는 성문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인 것이다. 현월단은 연기가 다 걷히기도 전에 요새 내부로 진입했다.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릴 정도의 충격이었기에 복도 내부의 피해도 만
만치 않았다. 군데군데 부서져서 조만간 다시 무너질 것 같았다. 현월단은
지체 없이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예상대로 복도의 형태는 그다지 복잡
하지 않았고 대부분 직선코스였다. 수직과 수평이 모든 긴 브라말로카 요
새는 역으로 놀랄 만큼 폭이 좁다. 이 속도로 달린다면 금방 반대쪽 성문
에 도달할 것이다. 앞에 있는 적들만 없다면.

 

 “단참나무 기사단! 침입자를 막아라!”

 

 상식적은 측면에서 생각해 봤을 때 기사단이라면 검을 들고 있는 편이
어울린다. 당연히 검법도 왕국검법을 익혀야하고. 그런데 그들 앞에 나타
난 기사단은 양손에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행여나 복식도 깔끔함이라고
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중구난방이었다. 피트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이 사람들 소수민족인 것 같은데요?”
 
 소수민족이 기사단이라니. 대체 하이막스는 자신의 성을 어떤 취향으로
구성해놓은 것인가? 로한은 시간에게 고민이란 먹이를 주지 않았다. 지금
은 한시가 급하다.

 

 “쳇, 적이 누구면 어때! 뚫는다!”

 

 현월단의 주 전력인 로한과 매튜, 스캇이 앞쪽으로 돌격하자 적들의 대
열은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적이 아무리 많건 돌격속도는 줄어들지 않았
다. 한동안은 파도에 휩쓸리는 것처럼 병사들이 튕겨져 나갔다. 갑자기 나
타난 거대한 쇠몽둥이가 매튜의 망치를 튕겨내기 전까지 말이다.

 

 - 콰아앙!

 

 저릿저릿한 손목 때문에 매튜가 당황했다. 압도적인 덩치를 가진 남자는
결코 매튜의 체격에 뒤지지 않는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세이지가 말했다.

 

 “매튜 동생이야?”

 

 “세이지! 대체 날 뭐로 보는 거야? 못생겼잖아!”

 

 “네랑 똑같이 생겼구만, 뭘.”

 

 “닥쳐. 너는!”

 

 린의 말에 매튜가 버럭 성을 냈다. 매튜는 자신의 망치를 부여잡으며 상
대방을 쳐다보았다. 양 손에 거대한 쇠몽둥이를 든 사내가 입을 쩍 벌렸
다. 목젖이 다 보일 정도의 괴기스러운 미소였다.

 

 “난 단참나무 룸바다! 춤 한 판 거하게 벌여 볼 텐가?”

 

 “춤?”

 

 “시끄럽고! 신명나게 몸을 흔들어!”

 

 잠깐만 지체했어도 매튜는 자신의 머리가 목 안 쪽으로 쑤셔 넣어질 뻔
했다. 룸바가 들고 있는 쇠몽둥이는 두 손으로도 휘두르기 힘든 크기였는
데도 그는 한 팔만을 이용해 가공할만한 속도로 휘둘러대었다. 반쯤 미친
것 같은 룸바는 거대한 이를 드러내며 격렬하게 팔을 휘둘러대었다. 쇠몽
둥이가 휘둘릴 때마다 바람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매튜는 상대방이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이막스의 다섯 그루로군!”

 

 매튜는 도저히 몸을 빼지 못한 채 그와의 전투에 돌입했다. 매튜의 망치
와 그의 쇠몽둥이가 부딪힐 때마다 격렬한 불꽃이 일었다. 룸바는 결코
매튜에게서 거리를 벌리지 않았고, 그 격렬한 싸움 때문에 로한과 스캇이
연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다.
그들이 부수고 들어온 성문 쪽에서도 병력들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뒤
쪽에서 큰 고함 소리가 들렸다.

 

 “룸바! 칼립소다! 벌써 죽은 건 아니겠지?”

 

 “푸캬캬캬! 떡갈나무가 오셨군! 칼립소! 간만에 신나게 춤 춰 볼만한
것들이 나타났어!”

 

 로한은 앞뒤를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한 것보다 적들의 대응속
도가 너무 빠르다. 마치 그들이 이곳에 올 것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두
그루의 나무가 나타났다. 아무리 옵슬레이 땅이 전설적이라지만 이것은
너무 하지 않은가.

 

 “상황이 안 좋다. 빨리 뚫는 수밖에 없겠어. 스캇! 어떻게든 매튜를 도
와 룸바라는 저 괴물을 처리해라. 내가 뒤에 칼립소를 맡는다. 나머지는
알아서 잔챙이들을 밀어!”

 


==================================================================
 그간 밀렸던 전투씬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군요. 불쌍한 인실롭
은 몇 챕터 째 현월단 뒤만 쫓고 있다 지금 누구랑 싸우고 있니.

 

 언데드의 넘버는 루즈라벤의 개인적인 분석의 결과이지 그들 개개인의
실력을 반드시 확정짓는 것은 아님을 밝힙니다. 넘버 6 클라보와 넘버 4
몬반은 사실 그 승부를 예측하기 힘들죠. 넘버 14 루만과 넘버 16 매튜
도 비슷한 얘기입니다. 매튜한테 벌벌 떨던 바함이 어떻게 루만에게 공격
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대답도 여기 있습니다. 그가 루만을 저렇게 당혹
스럽게 만든 것은 정식적 압박과 발렌타인을 잘 이용한 결과이지 결코 바
함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아니면, 루만은 매튜처럼 전투민족이 아니니 의
외의 상황에서 대처가 느린 걸 수도 있죠.

?
  • profile
    yarsas 2012.11.09 21:43
    아, 숙사 인터넷이 맛이 가서 저번 주에 정상적인 연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주 내로 다음 화도 올릴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뉴_=..
  • profile
    욀슨 2012.11.10 01:40
    어떻게 보면 저번에도 나왔었던 상성의 문제인 모양이군요. 그건 그렇고, 생각지도 못하게 옵슬레이의 무법자들이 현월단에게 시간을 벌어준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직 하이막스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지금 닥친 상황도 충분히 현월단에게는 가혹해 보이기는 하지만요.
  • profile
    yarsas 2012.11.10 23:40
    하이막스의 나무들도 만만치 않은 실력자들이지요. 국경을 지키는 인물들이니 만큼 전투 경험 및 실려이 월등하다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현월단 같은 소수의 조직이 성의 정면으로 쳐들어간다는 건 자살이나 다름 없습니다.
  • profile
    역전 2012.11.11 02:32
    내용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멀리왔네 이글 ㅠㅠ 언제다보지
  • profile
    yarsas 2012.11.11 03:16
    전개 속도가 엄청 빨라서 한 화만 빼먹어도 꽤나 많은 정보를 잃게 된답니다 :)

    분량이 제법 되는 글이니 만약 읽으신다면 시간이 꽤나 걸리실 거에요. 뉴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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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주[尹主] 2012.11.12 07:50
    수도전에 이어 또다시 볼 만한 난전이 펼쳐지겠네요 ㅎ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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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rsas 2012.11.13 07:49
    아, 난전을 좋아하시나요.. 하하. 전투씬에 그다지 자신이 있는 편은 아닌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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