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0 10:17

[UNDEAD] 3. 되찾은 미소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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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AD] 3. 되찾은 미소 - 3   

 

 

 

 세상에서 지옥으로 통하는 입구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엘헤미아인들 대부
분은 엘몬데드를 그 입구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괴기하기 짝이
없는 이 지옥의 아가리는 엘헤미아에 중심부인 엘라임과 수도 엘파하 사
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수도 엘파하의 위치가 굉장히
특이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위치상으로만 따지면 엘헤미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엘라임이 차라리 수도인 것처럼 보인다. 다만 오랫
동안 이어져 온 전통 때문에 엘파하는 여전히 국가의 수도로써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지리적 여건이 나아지
는 것은 아니다. 곤란하기 짝이 없는 엘몬데드란 장애물은 단순히 여행자
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정도가 아니라 물자를 운송하는 데도 굉장한 방해
물이어서 엘헤미아가 겪는 손실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수도 엘파하
의 비행수단인 트로고스가 발달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전부
터 엘몬데드 협곡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
었지만, 그 말은 하늘에 성을 짓자는 말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말이어서
고려조차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런 저주받은 위치 때문에 수도 엘파하에
서 가장 가까운 항구인 펠튼으로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도시의 숫자는
상당했다. 평면적으로만 생각하고 엘몬데드를 넘는다고 가정했을 때 엘파
하에서 펠튼 항구까지 거쳐야하는 마을이 단 두 개인 것에 비하면 실로
막대한 손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엄청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한다면 얼
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절감할 수 있을까. 알다시피 현월단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엘몬데드를 넘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두 장소를 주파한 이들이 될 것이다.
 북쪽으로 가장 빨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북쪽으로 직행하는 것이
정석이다. 겨울의 땅 루이즈번으로 도주하기 위해서라면 엘몬데드의 북쪽
이자 엘헤미아의 중심부인 엘라임 방면으로 향하는 편이 훨씬 시간과 거
리를 단축할 수 있겠지만 도주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정석은 더 이상
정석이 아니게 된다. 엘헤미아의 북벽을 넘어 다시 엘헤미아의 북벽-하이
막스를 만난다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큰 일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알자로
와 피트는 계획을 세우던 초창기 때부터 십인장 하이막스를 피해가는 것
이 최우선이 되도록 계획을 세웠다. 하이막스가 담당하고 있는 엘헤미아
최북쪽 옵슬레이는 발키리와 수차례 싸우며 살아남은 최정예 중에 최정예
만이 남아있는 지역이었다. 개개인의 병사가 수도 엘파하의 기사 급과 맞
먹는다면 지나친 과언이라고? 살아있는 전설이 지휘하고 있는 옵슬레이의
명성은 지금도 사그라질 줄을 모르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이 북쪽에 도
착할 때쯤이면 가장 느린 트로고스라 해도 옵슬레이에 도착한다. 불시의
습격을 당했던 수도와 달리 하이막스는 어떠한 기습에도 대응할 수 있도
록 만전을 기해놓았을 것이다. 완전히 가시로 무장한 고슴도치에게 맨손
을 내미는 멍청이는 없다. 소수의 현월단이 수도에서 전대미문의 행패를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엘헤미아의 북벽을 넘는 것에 주저하는 이유는 거기
에 있다.
 하이막스가 지휘하는 옵슬레이는 너무 위험하다.
 그 이유만으로도 알자로는 그 지역을 피해 바다를 선택하기로 했다. 바
다를 통해 루이즈번으로 가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엘몬데드를 넘음으로써 그들은 북벽으로도, 서쪽으로도 더 빨리 향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얻었다. 추격자가 생각보다 빨리 따라붙은 것이 변수
였지만 계획의 차질은 없었다.

 

 “달라트도 그냥 지나가는 편이 좋겠죠? 단장.”

 

 “그래. 쓸 때 없는 충돌은 피한다. 우리들의 행적이 남는 것도 좋지 않
으니까.”

 

 특별히 보급과 누울 자리에 구애받지 않는 언데드에게 있어 여행자들의
필수 선택지인 마을은 선택사항일 뿐이다. 야생동물처럼 살아도 전혀 문
제가 없기 때문이다(야생동물 입장에서는 그들을 맹수라고 판단하겠지만).
그래서 그들은 첫 번째 마을에서 그랬듯이 두 번째 마을인 달라트도 지나
치기로 결정했다.

 

 “인실롭이 있는 한 그들은 아마 달라트를 들릴 것이다. 그는 인간이니
까. 우리 속도라면 오늘 펠튼 항구에 도착한다. 적들의 속도를 생각하면
따라잡힐 가능성이 있지만 여차하면 내 능력을 남발해서라도 격차를 벌린
다.”

 

 “괜찮으시겠어요?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아껴두시는 편이…….”

 

 “발락이 끝이다. 더 이상의 추격자는 단언컨대 없다. 이제는 앞에 있는
장벽들을 고려해야 할 때지.”

 

 단장의 말은 세 번째 추격자가 결코 없으리라는 뜻은 아니었다. 또 다른
추격자가 있다 하더라도 이제 와서 따라잡힐 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보
다 현실적인 장벽들을 고려하자는 말이었다. 앞으로 고려해야 할 장벽은
또 하나의 십인장이었다.
 십인장들의 숫자가 10명이라는 사실은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
면 수도를 지키지 않는 나머지 4명은 어디에 있을까? 수차례 언급된 적이
있듯 하이막스는 엘헤미아의 최북단 옵슬레이에 있다. 그 밑 엘라임 방면
에는 루이나와 더불어 또 한 명의 여성 십인장인 알리사가 있다. 그녀는
허영심에 가득 찬데다 하이막스가 부임한 이래 단 한 번도 뚫린 적이 없
는 북벽 때문에 게으름까지 더해져 엘라임에서 사치를 누리고 있다. 루이
나랑 맞붙여 놓았다가 망신이라도 당해야 정신을 차릴지는 두고 볼 일이
다. 나머지 두 명인 반과 루더는 각각 엘헤미아의 동서쪽 해안선을 담당
하고 있다. 그 넓은 해안선을 십인장 혼자 맡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다고
판단한다면 옳은 지적이긴 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주 간과하는 것이 있
는데 엘헤미아의 인재는 십인장만 있는 게 아니다. 십인장보다 모자란다
할지라도 나머지 부분을 메울 인재는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해상으로는
대군을 파견하기가 쉽지 않고 루이즈번은 애초부터 해상에는 취약한 나라
였다. 그래서 반과 루더는 해적 소탕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해군을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주 업무는 무역과 상업을 통한 엘헤미아에 물자공
급이었다. 이쯤 되면 눈치 빠른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무보다는 문에 능하고 칼에 대한 지식이라면 그 가치가 얼마인지 계산하
는 게 더 빠른 이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세이건과 튜더는 십인장의 역량
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수도를 지키기에 실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머리는 더 잘 돌아간다.
 그 점을 높이 사 해안선을 담당하게 시킨 것이다. 애초부터 대군을 파견
하기 쉽지 않은 해상은 치명적인 문제가 터질 가능성이 극히 적다. 만약
군사적인 문제가 일어난다 해도 수도에 넘쳐나는 십인장과 기사단을 파견
해 지원해주면 그만이다. 군사력이 너무 수도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 다소
우려되는 점이지만(특히 루이즈번을 생각한다면 옵슬레이 쪽에 십인장이
더 많이 배치되어 있어야 하는데도), 이런 시스템이 엘헤미아의 부를 유
지하고 전체적인 치안도 유지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반과 루더는 해상으
로 들어올 루이즈번의 침공도 대비할 줄 아는 인물들이었다. 그렇지 않다
면 십인장의 직위를 얻지 못했을 테니까.
 알자로가 말한 장벽은 그런 해안선을 담당하는 십인장 루더였다. 서쪽
해안선을 담당하고 있는 루더는 가장 거대한 펠튼 항구에 분명 주의를 기
울이고 있을 것이다. 루더는 젊은 반과 달리 노련한 인물이다. 좀 더 도주
하기 쉬운 쪽을 고려했다면 거리가 좀 멀더라도 반이 지키는 유켈만 항구
쪽을 선택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엘로린의 간청이 없었다면 말이다.

 

 “루더는 악살라스처럼 교활하지는 않지만 노련하다는 면에서는 공통점
을 가지고 있지. 그 성격이라면 분명 해상으로 도주하지 못하도록 많은
대비를 해두었을 거야.”

 

 “출항은 금지 되어 있겠지?”

 

 로한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을 짚었다.

 

 “물론이지.”

 

 “그럼 어떻게 배를 탈거야?”

 

 세이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왔다.

 

 “아무리 그래도 상업은 이어져야 하지. 무역은 물자를 벌어들이는데 최
선의 방법이니까. 그것을 멈추게 되면 당장 생계가 곤란해지는 상단들의
반발이 엄청날걸. 분명 자유무역선이나 상주가 선주인 선박은 출항할 수
있을 거다.”

 

 “훔칠 거야?”

 

 단장은 빙긋 웃었다. 세이지는 어리지만 엄연한 도적단의 일원이었다. 그
녀의 발언은 단장을 몹시 흡족하게 만들었다. 참을 수 없는 즐거움에 미
소 지은 알자로는 그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세이지의 말을 받았다.

 

 “몹시 끌리는 제안이긴 한데 유감스럽게도 아냐.”

 

 “아! 몰래 타는 거구나?”

 

 “가면 알게 돼. 다 방법이 있다.”

 

 

 


 궁성 에펠의 음침한 지하 관리실. 클로드는 언데드들이 거주(그렇게 말
할 수 있는지 참으로 의심스럽지만)하는 곳보다 한층 더 깊은 곳에 위치
한 독방에 묶여 있었다. 양쪽 팔이 수갑에 묶인 클로드는 무표정하게 땅
바닥만을 바라보았다. 그런 무신경함에 루즈라벤은 속이 뒤집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극히 화가 나 있었지만 성질대로 다루기에 클로드는 너무
어려운 상대였다. 클로드는 고상함을 좋아하는 자존심이 무척이나 센 인
물이었다. 그가 여전히 자신들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을 때 유대감을 유지
하는 편이 좋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나면 체면이 안 서지.

 

 “클로드! 오늘 네 행위는 도가 지나쳤다!”

 

 꾸짖고 있는 루즈라벤 옆에 해결사 루만이 서있었다. 그의 눈빛은 무심
하게 클로드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사실 지금 그가 부리는 능력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십인장들을 무시하다시피 한 클로드가 이렇게 무력하게
묶여 있는 이유가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루만의 별명이 해결사인 것은
그의 능력에 있다. 귀족원들은 모든 언데드들이 지하 관리실에서 관리-감
금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귀족원이 이 사실을 알
게 되면 노발대발할 테지만 루만의 정체는 언데드였고 그는 낮에도 버젓
이 궁성을 활보하고 다녔다.
 그는 다른 언데드와 다른 점이 있었다.
 언데드는 거의 대다수가 본의의 의사와 상관없이 실험용 쥐처럼 만들어
졌다. 하지만 개중에 실험용 쥐를 자청한 소수의 인물도 있었다. 루만은
바로 그런 소수의 언데드 지원자였다. 그는 튜더의 비서 역할을 하다가
언데드 프로젝트에 매료되어 본인을 실험대 삼기로 결심했다. 튜더는 그
의 의견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그를 루즈라벤에게 인도했다. 그래서 그
들에게 있어서도 귀중한 행운인 루만의 능력이 탄생했다.
 루만의 능력은 인간에게는 어떠한 위해도 끼칠 수 없지만 언데드에겐 상
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그의 능력은 바로 직경 50미터 안에 있
는 모든 언데드의 능력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었다. 그 능력은 그의 의지
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발동하는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수면을 취한 상태
에서도 지속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바꿔 말하면 언데드의 능력으로는 루
만을 죽일 수 없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두 번째 능력은 언데드를
꼼짝도 못하게 구속할 수 있는 능력이었는데 한 번 발동시키면 무생궁 정
도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다. 인간한테 전혀 쓸모가 없어서일까? 그의
능력은 다른 언데드들과 달리 시전 하는데 큰 체력을 소모하지 않았고 수
면시간을 제외하면 남용에 가까운 능력을 부릴 수 있었다.
 그는 언데드가 되어서도 예전처럼 튜더의 비서직을 맡았다. 물론 표면적
으로. 대외적인 그의 직함과 달리 그는 말 안 듣는 언데드들을 교육시키
는 선생님인 것이다(이쯤 되면 반항룡이 어떤 대접을 받았을지 상상해보
는 게 좋겠다). 그런 그에게 해결사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영혼살해자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갖춘 클로드도 그
능력에 예외는 아니어서 지금처럼 구속당해 있다. 루만이 동행한다면 산
책을 해도 좋다는 조건은 그래서 나온 것이었다.
 근데 그마저도 무시하고 클로드가 독단적인 발걸음을 했으니……,

 

 “말해! 클로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리를 협박한 거지?”

 

 ……루즈라벤의 체면이 말이 아닐 수밖에. 애달파하는 루즈라벤과 달리
클로드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묶여 있는 모습만 아니었다면 오
후에 차 한 잔 마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여유였다. 하지만 그의 입에
서 나오는 말은 신랄한 것이었다.

 

 “자꾸 창조자라고 착각하는 것 같아서 주의를 좀 준 것 뿐입니다. 저는
루즈라벤 씨가 저를 만들어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당신을 ‘부모’라고 생각하길 바란다면 그건 곤란
한 부탁이군요. 제작자라면 모를까.
 우리는 무기입니다.
 최강의 칼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군요. 저는 얼마든지 당신들이 원하
는 성과를 거둬줄 수 있습니다. 성벽을 부수라면 부술 것이고 악마의 날
개를 뜯어오라면 뜯어오겠습니다. 무사도 자신의 칼에 경의를 보낼 줄 아
는데 당신들이 최강의 칼인 저희들을 우습게 대하지는 말았으면 좋겠군
요. 당신들이 저희를 경멸하면 경멸할수록 저희들은 더욱 통제 불능이 될
겁니다. 우리는 자아를 가진 양날의 검이니까요. 댁들이 끝내지 못한 전쟁
을 최단기간에 끝내줄 우리한테 경멸을 보내는 당신들이 우습군요. 필요
해서 만들었다면 존중은 있어야죠.”

 

 클로드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본인이 언데드라는 고고한 자존심이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절망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다른 존
재가 된 것을 즐기고 있었다. 언데드와 인간 사이에서 고뇌하는 다른 이
들과 달리 완전히 인간에서 발을 뗀 존재가 된 것이다. 루즈라벤은 그 당
당한 모습을 보며 화가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다른 차원의 존재에게
보내는 경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아. 히브레에게 그렇게 대한 것은 나빴다고 인정하지. 평소에 자네들
한테 조금 과하게 굴었나 보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장군의 면전에서
그런 무례한 짓을 한 것은 용서할 수 없네.”

 

 클로드는 빙긋 웃었다.

 

 “그래서 반성하려고 이렇게 묶여 있잖아요?”

 

 “자네는 지금 농담이 나오나!”

 

 루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보게 클로드. 당분간 산책은 금지야. 산책하려면 더 이상 날 따돌리
지 말게.”

 

 루만의 얘기를 들은 클로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마치 그가 이 자리에
없는 양 혼잣말을 했다.

 

 “넘버 14 루만. 능력은 언데드 구속. 별명은 해결사. 튜더 씨의 발가락
을 핥으며 사는 존재.”

 

 루만이 미간을 찌푸렸다.

 

 “클로드!”

 

 클로드는 담담한 표정으로 루만의 화난 얼굴을 마주보았다.

 

 “아, 미안해요. 루만 씨. 거치적거리는 것을 달고 다니면서 산책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말이죠. 산거인의 분노가 없었더라면 그래도
당신을 존중해주었을 텐데. 따돌려서 삐진 거라면 한 번만 나를 용서해주
세요.”

 

 루만은 최대한 차분하게 있으려고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굉장히 우스워
보이는 표정을 짓게 되었다. 루즈라벤은 두 손 들었다는 듯 한숨을 내쉬
었다.

 

 “정말 침착하게 남을 비꼬는 건 자네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칭찬으로 받아들이죠. 이젠 혼자 있고 싶으니 나가주셨으면 좋겠군요.”

 

 루즈라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방을 나가며 루만에게 손짓했다.

 

 “명색에 넘버 1이니 자네가 수면을 취해야 할 때쯤 풀어주게.”

 

 루만은 클로드와 함께 자신까지 같이 벌을 받아야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인실롭 일행은 엘몬데드를 넘은 후 펠튼 항구를 향해 지속적인 추격을
해왔다. 펠튼 항구까지 가는 길목에는 두 개의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그
들은 만약을 위해 처음 마을에서 현월단의 흔적을 찾았지만 별다른 수확
을 얻을 수 없었다. 마을에서 소비한 시간 때문에 그들의 추적은 다시 숨
가쁘게 이어졌다. 히브레가 빠져서 인실롭을 대신 업게 된 몬반은 손이
자유롭지 않아서 자신의 도끼를 탄소조작으로 형태를 변형시켜 자신의 몸
에 일부처럼 붙여놓았다. 먼 곳에서 누군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굉장히
망측한(?) 물건이 앞에 달려 있다고 착각할 모습이었다. 인실롭 입장에서
는 히브레에 대한 급호감(?)이 생기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거대한 덩
치여서 그만큼 승용감이 좋았던 히브레와 달리 몬반에게 업혀 있는 것은
굉장히 불편했다. 게다가 저토록 거대한 물건이라니! 인실롭은 업혀있는
상태에서 몬반의 뒤통수를 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발락은 업혀가는
인실롭에게 벼락의 똥침을 놔주고 싶다는 심술궂은 생각을 했으며, 그 뒤
에서 달려오는 리더스카이는 몇 번이나 자신에게 벼락을 던진 발락을 엘
몬데드 협곡에서 떨어뜨렸어야 했다는 안타까운 후회와 즐거운 상상을 하
고 있었다. 팀워크를 강조하는 인실롭 입장에서는 통탄할만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어째 거나 그들은 두 번째 마을인 달라트까지 오게 되었다.

 

 “두 번째 마을이 보이는 데……. 이름은 잘 모르겠군.”

 

 몬반이 코웃음 쳤다.

 

 “지휘관 맞는지 정말 의심스럽군. 어디로 도망칠지도 모르는데 루트
정도는 확실히 파악해둬야지. 저 마을은 달라트다.”

 

 “어떻게 알고 있지?”

 

 “내가 저 마을 출신이니까.”

 

 인실롭은 루즈라벤과 악살라스가 인원 편성을 하면서 이런 것까지 고려
한 것일까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우연의 일치일지도.

 

 “어차피 그들이 마을을 들리지는 않았겠지만 우리는 들릴 수밖에 없군.
특별히 유의할만한 점은?”

 

 “흑맥주 좋아하나?”

 

 “제법.”

 

 “그럼 썩 좋아할 마을일거야.”

 

 인실롭은 크게 웃었다.

 

 “공무수행 중에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이거 큰일인걸!”

 

 그가 보여주는 경이적인 능력 때문에 곁에 있는 언데드들도 가끔 까먹지
만 인실롭은 인간이다. 엘몬데드와 수도 엘파하는 남쪽에 위치해 있기에
겨울이라 해도 제법 따뜻한 편이다. 그렇다 해도 겨울이란 계절이 의미하
는 바는 분명했고 보통은 내리지 않는 겨울비가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어
인실롭의 몸은 평소보다 빨리 녹초가 되어 있었다. 젖어버린 옷은 불쾌한
기분만을 안겨주어 몸을 더 무겁게 만들었고 쌀쌀한 날씨는 그를 더 피곤
하게 했다. 단장이 알았으면 쾌재를 불렀을 텐데 인실롭은 펠튼 항구 도
착 전에 현월단을 따라잡을 것을 단념하고 있었다. 어차피 펠튼 항구에는
십인장 루더가 나타날 것이고 그들은 앞뒤에 적을 다 상대해야만 한다.
완전히 고립된 그 순간 승부수를 띄우면 된다. 조급할 필요가 없었다. 지
금은 체력을 비축해둬야 될 때였다. 그들은 달라트 입구에 도착했고 입구
바로 앞에 서있는 클라보를 발견했다.

 

 “저기 있군.”

 

 발락의 표정이 밝지 않았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몬
반의 뒤로 숨었다. 클라보는 소매로 입을 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 왜 이렇게 늦게 오죠? 기다렸잖아요.”

 

 “날씨가 춥군. 복장이 불편하다보니 체력소모가 심해서.”

 

 “업혀온 주제에. 발락은 말썽 안 부리던가요?”

 

 “애 취급 하지 마!”

 

 “시끄러워요. 발락. 가만히 있어요.”

 

 뚝.

 

 “인실롭 씨가 이쯤 되면 피곤해 하실 거라 생각했어요. 인실롭 씨는 따
뜻한 식사도 해야 되고. 그리고 몬반. 그 흉측한 거 어떻게 좀 해봐요. 징
그럽군요.”

 

 “동감이다. 그대로 마을에 들어가면 그대는 인류 최고의 대물로 인정받
기 보다는 변태로 오인 받게 될 거야.”

 

 몬반은 대꾸도 하지 않고 그것을 다시 도끼로 바꾸었다. 보다 정상적인
모습이 된 그들이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클라보는 현월단의 행적을 깔끔
하게 요약했다.

 

 “예상대로 그들은 달라트를 그냥 지나쳐 갔어요. 바깥에서 야영을 하고
내일 아침 펠튼에 들어가는 방법 또는 새벽에 펠튼 항구에 도착해 수면
후에 배를 타던가 하는 방법이 있겠죠.”

 

 조용히 있던 몬반이 끼어들었다.

 

 “펠튼에도 분명 수배령이 떨어져 있을 테니 멍청이가 아니라면 바깥에
서 자겠군.”

 

 “틀려. 몬반. 단장의 능력이라면 검문 따윈 소용이 없어. 얼마든지 들키
지 않고 내부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펠튼 항구는 큰 도시다. 숨어 들어가
면 쉽게 찾지 못할 거야.”

 

 “숨는 건 도적들의 장기지.”

 

 지리에 익숙한 몬반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펍(Pub)으로 이끌었다. 인실
롭은 간만에 느끼는 훈훈한 온기에 온몸이 녹는 것을 느꼈다. 몬반이 노
곤 노곤한 표정에 인실롭을 보며 웃었다.

 

 “한잔 할 텐가?”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군.”

 

 클라보와 발락은 술에 흥미가 없었고 리더스카이는 술을 마시기는 했으
나 여자 쪽에 더 흥미가 있어 보였다(물론 그의 촌스런 억양이 여성들에
게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흑맥주를 마시는 사람은 자
연스럽게 인실롭과 몬반이 되었다. 그들은 어느 샌가 전우 비슷한 느낌으
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카아! 이렇게 맛있는 흑맥주가 어떻게 유명해지지 않은 거지? 수도에
서도 이런 맛은 못 마셔봤는데!”

 

 “토양도 좋고. 직접 재배해서 만든 곡주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들렸다
가 이 맛에 빠져 며칠을 허비하는 여행객들도 많았지. 취할 가치가 있는
맛이라고나 할까.”

 

 “언데드도 술에 취하나?”

 

 “취해. 인간의 주량보다야 훨씬 세겠지만. 깨어나서 숙취 같은 것도 없
고. 그냥 강제수면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거지. 독도 마찬가지야. 우리
를 죽일 수는 없지만 강제적으로 수면상태로 만들 수는 있어.”

 

 “것 참 편하군. 실컷 퍼마셔도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할 수 있
다는 거지? 나도 언데드나 될 걸 그랬군. 더 편히 일할 수 있을 텐데.”

 

 클라보가 놀라서 물었다.

 

 “진심이세요?”

 

 “놀고 나서도 일 찾는 거? 난 내 일에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아니요. 저희들처럼 되고 싶다는 거요.”

 

 인실롭은 쾅 소리가 나게 맥주잔을 내려놓고는 호탕하게 말했다.

 

 “당연히 농담이지.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아.”

 

 클라보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괴물이라 부르지 마세요. 엄연히 인간입니다.”

 

 “글쎄. 그대들 스스로가 잘 알지 않나.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몬반은 거대한 흑맥주 잔을 단번에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너희들도 아냐.”

 

 “뭐?”

 

 “우리 같은 괴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내는 너희들.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친 너희들도 인간은 아냐.”

 

 인실롭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만들어낸
조각상이 조각가를 평가해서일까? 몬반이 지적한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임에도 피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너희들은 우리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책임을 져. 괴물을 만들어낸 인
간이 평범한 말년을 기대하지는 않겠지.”

 

 인실롭은 그토록 당기던 흑맥주가 갑자기 왜 쓰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
었다. 튜더를 통해 들었던 알자로의 말이 그의 뇌리 속에 각인 되어 사라
지지 않았다.

 

‘명심해둬. 미소를 앗아간 자들의 말로는 비참하지. 그게 너희들의 미래
가 될 것이다.’

 


==================================================================
 언데드와 인간의 갈등.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던 과학자가 그에게 죽임
을 당했듯 괴물을 만들어낸다는 건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할 일이라
고 생각합니다.

?
  • profile
    욀슨 2012.08.12 02:58
    마지막 대사가 가슴에 와 닿는군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 profile
    yarsas 2012.08.12 19:59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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