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3 09:30

[UNDEAD] 3. 되찾은 미소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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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AD] 3. 되찾은 미소 - 2    

 

 

 

 “어떻게 우리들이 이 방향으로 가는 줄 알았지?”

 

 클라보는 자신의 몸을 인간의 형태로 되돌렸다. 깔끔한 하얀 피부에 갸
름하게 빠진 턱선, 단장은 그의 얼굴에서 여성적인 도도함을 느꼈다. 클라
보는 지금도 소매로 입을 가리며 여성스럽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 쪽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사실 선택의 폭이 좁지 않나요? 바
다로 간다면 동으로 유켈만 항구, 서로는 펠튼 항구. 내륙 쪽으로 가는 건
엘헤미아의 북벽을 향해 엘라임으로 갈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엘헤미아의
북벽으로 직행한다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죠. 어떻게 보면 수도 엘파하
이상으로 위험한 곳이니까요.”

 

 클라보는 계집애처럼 입 꼬리를 올리며 왼손으로 단장을 겨누었다.

 

 “그럼 선택할 곳은 결국 바다인데 그럼 동서쪽 밖에 없잖아요? 동쪽은
리더스카이가 맡고 서쪽은 제가 맡았죠. 제 능력을 다 알고 계신다고 했
던가요? 알자로 씨?”

 

 매튜는 참을 수 없는 메스꺼움에 미간을 찌푸렸다.

 

 “사내새끼가 몸을 베베 꼬니 정말 얼굴을 짓이겨주고 싶은걸.”

 

 놀랍게도 린이 매튜의 말에 동의했다.

 

 “동감이야. 밥맛인걸.”

 

 클라보는 그들의 반응에 굴하지 않았다.

 

 “비가 오면 저의 능력은 강화되죠. 완전한 액체 상태를 비가 그칠 때까
지 유지할 수 있어요. 땅에 이만큼이나 수분이 가득하면 저는 완전 액체
화되어 리더스카이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대지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보
셨다시피 말이죠. 서쪽으로 쉬지 않고 쫓아온 보람이 있네요. 당신들은 펠
튼 항구로 향하고 있었군요.”

 

 “그래서 홀로 먼저 추격해 왔군요. 단신으로 공을 세워보겠다는 겁니까?”

 

 클라보는 이미 충분히 피트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허튼 짓은 하지 말아요. 안경잡이. 난 발락처럼 저능하지 않아요. 당신
의 능력은 알고 있으니까 목을 비틀어버리기 전에 관두는 게 좋을걸요.”

 

 피트는 흠칫하며 물러섰다. 클라보는 다시 소매로 입을 가리며 말을 이
었다.

 

 “완전 액체 상태인 저를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칠걸요.”

 

 클라보가 양팔을 액체화 시켜 땅바닥에 쏟아 붓자 강렬한 진동과 함께
거친 물보라가 일어났다. 얼굴로 튕기는 물방울이 따가울 정도로 맹렬한
기세였다. 쏟아 부운 액체들이 점차 형태를 갖추며 위로 솟아올랐다. 물보
라는 더욱더 세차고 거칠게 형태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사방으로 튀는 물
은 훨씬 거세졌다. 강력한 물보라로 인해 대지가 흔들릴 정도였다. 지속적
으로 부피를 키우던 물보라는 한번 탄력을 받자 누구도 말리지 못할 기세
로 높아졌다. 그것은 더 이상 물보라가 아니었다. 물기둥이라고 불러야 할
클라보의 업적은 이윽고 하늘에 구멍을 뚫었다. 세이지와 엘로린은 너무
나도 강력한 풍압(風壓)에 결국 주저앉았다. 로한이 으르렁 거렸다.

 

 “대체 뭘 하는 거야?”

 

 단장과 피트는 직감했다.

 

 “신호다. 우리들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으르렁 거린다는 의미에서 로한보다 훨씬 더 사실적인 스캇이 포효했다.
기습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변신할 수밖에 없었던 스캇의 상의는 찢어져
너덜너덜 거렸다. 스캇이 거친 풍압을 뚫고 앞으로 돌진했다.

 

 “멈춰라!”

 

 스캇은 처음의 공격을 되갚아 주려는 듯 늑대인간으로 변신해 달려들었
다.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는 생각이 채 들기도 전에 그의 상체가 폭
발했고 수북한 적갈색 털이 온몸을 뒤덮었다. 질주하는 속도만큼은 단에
서 따라갈 자가 없는 스캇의 돌진이었다. 날카롭게 변한 야수의 발톱이
클라보의 몸을 찢었다. 물론 파괴의 결실은 없었다. 린은 특별히 창의적인
표현을 빌릴 필요도 없이 그 상황을 정리했다.

 

 “칼로 물 베기군.”

 

 완전히 액체로 변한 클라보에게 물리적인 공격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클라보가 오른팔로 스캇을 올려치자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늑대인간
의 몸이 손쉽게 떠올랐다. 세상 어떤 늑대도 그만큼 높은 하늘을 날아보
지는 못했을 것이다. 쿵! 불쌍한 스캇은 오늘 같은 경험을 두 번이나 겪
어야 했다. 빗물이 없었다면 아마 늑대의 육체를 가진 스캇이라 해도 더
이상 일어서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클라보는 거만한 시선으로 스캇을 내
려다보았다.

 

 “이미 늦었어요. 최소 몇 분은 갈걸요?”

 

 거세게 휘몰아치는 물기둥 때문에 풍압이 장난이 아니었다. 모두들 휩쓸
려 따라 올라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비가 온다는 단순한 조건
하나로 압도적인 역량을 과시해보인 클라보는 얼굴만 사람 형태를 유지하
며 수분을 흡수해 몸을 키우고 시작했다. 능력의 원천인 수분이 자연에서
무한히 공급되고 있었기에 그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당신의 잘난 그 능력도 저한텐 소용없어요, 알자로 씨. 인실롭 씨가 결
국 당신 능력을 알아냈다는 사실을 전해 드리죠. 당신 능력은 바로……”

 

 단장은 동요 없는 낯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적들을 농락하며 한껏 도
취되어버린 클라보는 황홀감에 젖으며 마지막 쐐기를 박아주려 했다. 촥!
계속해서 부피를 늘려가던 그의 몸이 일순간 폭발했다. 독설에 둘째가라
면 서러운 린이 그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거참, 더럽게 말 많네. 한 모금이면 끝날 조연이. 애교는 네 남자친구
한테나 해라. 물리적인 공격이 의미가 없다고? 그럼 나랑 상대하면 어떨
까?”

 

 클라보는 잘 융합되지 않는 자신의 몸에 크게 당황했다. 린은 손을 뻗쳐
클라보를 밀어내었다. 액체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그의 몸이 순식간에 뒤
로 튕겨져 나갔다. 단장은 빙긋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는 더 이상 클라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 능력이 소용없어도 괜찮다. 난 좋은 동료들을 두었으니까.”

 

 뒤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피트가 클라보에게 달려들었다.

 

 “저희들은 개인이 아닙니다! 우린 현월단이니까요!”

 

 피트가 능력을 발동시켰다. 클라보는 최대한 빨리 몸을 변화시켜 땅속으
로 스며들었다. 그리곤 맹렬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그들이 이제껏 달려온
방향을 향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피트의 능력은 수면을 잠재우는 데는 별
효력이 없었다. 피트가 팔을 거두며 아쉬움을 표했다.

 

 “놓쳐버렸군요.”

 

 “생각보다 강적인데다 목적지까지 들켰군. 뭐 걱정할 것 없다. 변하는
건 없으니까. 그보다……,”

 

 “푸하하하! 들었냐? 피트 대사 죽이지 않냐?”“나는 개인이 아니야!
우린 현월단이니까!”“푸하화학! 안녕? 우린 현월단이라고 해. 킥키킥!”

 

 “……저것들부터 진정 좀 시켜야겠군.”

 

 피트는 포복절도하고 있는 린과 매튜로 인해 귀 뒤까지 얼굴이 빨개졌다.

 

 

 


 넘버 10 히브레는 그 자체만으로 압도적인 위압감을 보여주는 이였다.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유일무이의 덩치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인물과 방안에 같이 있다면 누구라도 자신이 원래부터 폐소공
포증을 앓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착각에 빠질 것이다. 거대한 3인용 소파
를 홀로 차지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세이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실롭이 자네를 보냈다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탑승 불가 때문에 온 것이어라. 제가 좀 크자나유.
다친 리지 때문도 있구유. 아! 전할 얘기도 있어유.”

 

 소파에 앉아 있는 히브레 앞에는 수도 엘파하를 지키는 십인장들이 주욱
도열해 있었다. 대장군이나 왕이 아니라면 수도 내 어떠한 작위를 갖춘
인물도 그들이 전부 모여 있는 모습을 볼 기회는 흔치 않다. 지금도 업무
로 인해 인실롭이 빠져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십인장들이 이만큼이나 모
여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충분히 진귀한 광경이었다. 오늘은 회의에 잘 참
석하지 않았던 여성 십인장인 루이나도 참석해 있었다. 그녀도 인실롭처
럼 언데드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편이었다.

 

 “정말 끔찍하게 크군. 역겨워.”

 

 루이나의 독설에 히브레는 싱긋 웃으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리지라 하면?”

 

 “넘버 9을 부여받았죠. 이번 임무에서 알자로의 공격을 받고 오른팔을
잃었습니다.”

 

 세이건의 질문에 루즈라벤이 재빨리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튜더는 일
말의 감정도 없이 내뱉었다.

 

 “서열 10위에서 떨어져 나가겠군.”

 

 루이나의 말에도 반응이 없던 히브레가 튜더의 말에 울컥했다.

 

 “싸우다 다친 리지에 대해 할 말이 그 것밖에 없는 것이어라?!”

 

 루즈라벤은 킥 하고 웃었다. 반항룡이라는 별명을 그가 지었듯 별명 짓
기를 좋아하는 그는 히브레에게 ‘산거인’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히
브레의 분노는 정말 산의 분노라 할 만한 기세였다. 하지만 튜더는 눈 하
나 꿈쩍하지 않고 차갑게 대답했다.

 

 “너희들은 전쟁도구다. 너희들의 판단기준은 오로지 전투력이야. 도구가
고장 났으면 당연히 바꿔야 하지 않나?”

 

 히브레는 기어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섰다. 단순히 일어서는 것만으
로도 소파는 아작 났다. 본인이 나이가 들어서인지 골동품에 대해 애착이
깊은 악살라스가 탄식했다.

 

 “저게 얼마짜린데!”

 

 산거인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이 부풀어 올랐다.

 

 “우리들은 ‘인간’이어라! 소모품이라고 생각하지 마시어유!”

 

 “우리들은 너희들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어. 너희들을 인간이라 생각했
다면 그런 실험을 자행하지도 않았다. 너희들은 기사단보다도 훨씬 유용
한 ‘살인병기’이자 ‘전쟁도구’다. 살아있는 척 하지 마라.”

 

 바깥에 내리는 빗줄기조차 튜더의 무도함에 움츠러들 것만 같았다. 감정
없이 내뱉는, 언성을 높이지 않은 폭언은 히브레의 뇌를 허옇게 녹였다.
화산이 폭발하는 기세로 부풀어 올랐던 그의 분노는 거기서 끝이었다. 어
느새 뽑힌 루이나의 칼이 히브레의 몸 곳곳을 꿰뚫자 그는 결국 몸을 가
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우아한 동작으로 끔찍한
파괴를 선사한 루이나의 칼끝이 다시 칼집으로 돌아갔다. 히브레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소용없다. 힘줄을 다 끊었으니까. 아무리 언데드라 해도 재생하기 전까
지는 일어설 수 없다. 돼지가 난동부리는 추한 꼴은 못 봐주겠군.”

 

 튜더가 쓰러진 히브레에게 다가와 몸을 숙였다.

 

 “임무에서 실패한 이라면 쓸모가 없지. 네가 돌아온 것은 인실롭의 말
을 전하기 위해서다. 자, 너의 가치를 증명해봐.”

 

 히브레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처음부터 이런 것이었다. 자신들이 만들어
진 이유. 자신들이 존재하는 이유. 이제는 인간이 될 수 없는 괴물이 걸어
야 할 길은 비참했다. 히브레는 참을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 루이
나는 추한 것을 더 이상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루즈라벤은 여전
히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세이건은 보다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히브레. 우리는 너희들이 맡은 바 임무만 잘 수행하면 너희들을 잘 대
우해줄 것이다. 날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마라. 이 이상 우리에게 칼날을 겨
누는 건 용서치 않겠다.”

 

 임무를 잘 수행하는 도구. 그들이 말하는 대우는 도구에 대한 애착인 것
인가. 히브레는 좌절감을 느꼈다. 넘버 10? 숫자놀음이었다. 한때는 권력
과 힘을 얻었다는 기쁨에 새 삶을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들이 부여해준 숫자의 의미는 학교에서 부여해주는
등수만큼의 의미도 없었다. 가축의 품질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
다. 히브레는 자신의 마음 속 어딘가가 부셔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
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 때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로
나타나리라 예상할 수 없는 인물이 그들 앞으로 걸어 나왔다. 히브레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안도했다. 그래. 이 한명이라면 숫자가 의미가 있다.

 

 “도가 좀 지나치군요. 십인장들, 세이건 씨.”

 

 루즈라벤이 경악하며 물었다.

 

 “크, 클로드! 어떻게 여기에?”

 

 그들 앞에 나타난 이는 넘버 1 클로드였다. 지금 이 장소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무생궁으로 입주하기 전까지 하루에 한 시간은 산책해도 된다면서요.”

 

 그랬지. 단 그를 제어할 조건이 붙는 한에서. 루즈라벤은 목 졸린 까마귀
처럼 말했다.

 

 “루만은!?”

 

 “제가 따돌렸습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십인장들 모두가 순식간에 무기를 빼들었
다. 방안이 흉흉한 살기로 가득 찼다. 엘헤미아의 북벽 하이막스라 할지라
도 단신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인물들이 가득한 방 안에서 그의 태도는
정말이지 산책하는 이처럼 평화로웠다. 튜더는 목이 막히는 것을 느끼며
루즈라벤과 비슷한 목소리로 물었다. 놀랍게도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대체 왜? 히, 히브레 때문에 온 건가?”

 

 “산책할 때 뭐 달고 다니는 편이 아니라 서요. 돌아다니다 보니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이런 날카로운 분위기 좋아하지 않는데 그만 무기를
거둬주실래요? 궁성 안을 산책하는 거라 저는 무기소지를 하지 않았어요.
산도적도 아니고, 떼로 덤벼들 기세군요.”

 

 루즈라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클로드를 쳐다보았다.

 

 “어째서 얌전히 루만과 산책을 하지 않았지? 우리를 향한 반란으로 간
주해도 될까?”

 

 클로드는 히브레가 부서트린 소파를 대충 앉을 수 있게 옮겨 그 위에 우
아하고도 느린 자세로 앉았다. 그 태연자약함이 십인장들을 미칠 것 같은
기분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루즈라벤 씨. 내가 그쪽들 편을 들지 않기로 마
음 먹었다면 진작 결판을 지었을 겁니다.”

 

 클로드의 어조는 지극히 평온했지만 듣고 있는 이들은 겨울의 땅 루이즈
번에 와있는 것 같은 냉기를 느꼈다. 십인장들은 긴장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마른 체격의 심중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 그가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압박감은 산전수전 다 겪은 십인장들에게조차 낯선
것이었다. 튜더와 루즈라벤은 손에 땀이 차는 것을 느꼈다. 언데드를 만들
면서 그들의 지휘권을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만들어질 거라고 예상했던
가. 언데드를 괴물이라 한다면 클로드는 악마였다. 클로드는 쓰러져 있는
히브레를 딱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히브레 씨. 안타깝군요. 비인간적인 그들의 태도는 심히 유감입니다만
힘을 가지지 못해 대우를 못 받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억울하면 힘을
키우세요. 세상이 넘보지 못할 힘을 가지세요.”

 

 히브레는 쓰러진 채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클로드는 세이건에
게로 고개를 돌리며 무미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세이건 씨. 저 역시 언데드입니다만 같은 언데드 족속들한테 딱히 애
착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런 대우는 너무 하군요. 마음대로
만들어 마음대로 순위를 매기고 마음대로 품평 질이라니. 신이라도 된 것
같은 어설픈 착각을 거둬주셨으면 좋겠군요. 우리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당신들 생각에 동의합니다만 그렇다고 ‘도구’는 아닙니
다. 오히려 인간보다 훨씬 우월한 생명체라면 모를까. 약자한테만 강한 척
하는 비겁한 모습이 보기 역겨울 정도니 부디 품위를 지켜주시길.”

 

 클로드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저는 원래의 목적대로 다시 산책을 해야겠습니다. 슬슬 루만이 절 찾
아올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제 말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클로드는 유유히 방을 걸어 나갔다. 세이건을 더불어 십인장들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었던 존재의 뒷모습을 혼이 빠져 쳐다
보았다.

 

 

 


 인실롭은 공중에서 날아오는 리더스카이를 포착했다. 그 역시 클라보의
물기둥을 보고 황급히 방향을 튼 것이 분명했다. 물기둥은 먼 곳에서도
잘 보였기에 그들은 어려움 없이 방향을 잡았다. 리더스카이가 인간의 모
습으로 돌아오며 부드럽게 땅에 착지했다. 묘사하기는 쉬워도 분명 상상
하기 힘든 비행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불행히도 발락은 그런 비행술에 조
금도 관심이 없었고, 그대로 그를 향해 역정을 냈다.

 

 “짜식아! 왜 변신을 푸는 거야! 빨리 날 태우고 저 쪽으로 날아가야지!”

 

 “안 돼! 그대는 그렇게 당해놓고도 모르는가? 반드시 단체로 싸워야 한
다.”

 

 “제길! 저기엔 물인간이 있잖아! 나조차도 어쩌지 못하는 그 짜식과 함
께라면 충분히 둘만으로도 박살낼 수 있어!”

 

 인실롭은 심히 짜증이 남을 느꼈다. 이건 진짜 어린애로군. 루즈라벤 그
개 같은 새끼는 왜 하필 이딴 녀석을 보내서!

 

 “그 쪽에는 염능력자가 있다! 클라보라 해도 혼자선 그들을 못 잡아!
신호를 보냈으니 우리 쪽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을 거다. 지휘관은 나야!
제발 말 좀 들어!”

 

 발락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인실롭은 결국 자신이 이 말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말을 꺼냈다. 본인으로서도 심히 자존심 상하는 말이었다.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면 클라보에게 그대를 맡기겠다!”

 

 “아아악! 안 돼! 그건 안 돼! 알았어! 달리자! 달리자! 달리자고!”

 

 발락은 발작했다. 몬반은 정말 별 진기한 광경 다 본다는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았고 리더스카이는 들리지 않게 키득키득 거렸다. 안타깝게도 몸이
들썩거리는 것은 숨기지 못했기에 그는 발락의 벼락응징을 맞았다. 몬반
은 금속으로 된 자신의 도끼를 황급히 숨기며 버럭 화를 냈다. 발락은 그
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계속 신경질을 냈다. 끔찍한
소음 때문에 심히 화가 난 인실롭은(클라보한테 너를 닥치라고 교육시켜
야겠다!) 보다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몬반을 선택했다(아악! 나 닥
칠게!).

 

 “히브레가 지금쯤이면 알자로의 능력을 전해주었겠지.”

 

 “그 능력일거라고 확신하나?”

 

 “왜? 아닌 것 같나?”

 

 “솔직히 말해 다른 능력이라 반론할만한 게 없군.”

 

 “그래, 그 자의 능력은 공간이동이 분명하다.”

 

 인실롭은 알자로의 능력을 공간이동이라 판단했다. 그것도 타인까지 옮
길 수 있을 정도의. 그 능력의 범위와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정확하게 규
정할 수는 없다 해도 능력 자체가 충분히 특수하다 할 수 있는 능력이었
다. 그 능력이라면 모든 게 명확해진다.

 

 현월단이 어떻게 지하관리실에서 나와 활동을 해 왔는지.

 

 그들이 어떻게 원년제 때 테러를 일으켰는지.

 

 그 능력이라면 알자로가 궁성에서 오큐벨라스를 훔친 후 로한을 데리고
사라졌던 것도, 엘몬데드 협곡을 넘은 것도 모두 다 가능해진다. 범위가
무한대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 것이 가능했다면 오큐벨라스를 훔친 후에
지금처럼 계속 도주할 리는 없었으니까. 인실롭은 그 능력일 것이라 확신
했지만 몬반은 여전히 석연치 않았다.

 

 “그게 정말 가능할까?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뭐가 말이지?”

 

 “평범한 인간들이 보면 우리의 능력이 신기해 보이겠지만 말이야. 우리
의 능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식의 것이 아냐. 화염을 만들어 내거나
전기를 일으키는 건 대단하긴 해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 누구라도 마찰열
을 낼 수 있고 정전기를 낼 수 있듯이 말이야. 육체와 영혼의 강화로 인
해 남들보다 조금 더 우월해진 것뿐이라고 말하면 이해가 쉬울까? 신이
정해놓은 법칙을 파괴하는 종류의 능력이 아니란 말이다. 텔레파시나 염
력 같은 것은 좀 특수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초인(超人)이라는 단계에서
보면 꼭 불가능 할 것도 아니지.”

 

 인실롭은 몬반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탄소조작이나 클라보의 액체능력도 몸속에 있는 성분을 생각해본
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몸이 사라졌다가 다른 장소에서 몸을
나타낸다는 건 초인적인 능력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 엘몬데드를 넘었다
는 걸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까지도 옮길 수 있다는 얘기인데 상대방 몸을
다 분해시켰다가 재조립한다는 게 가능한지 묻고 싶군.”

 

 분명 몬반의 말은 타당했다. 그들의 능력은 분명 한계를 가진다. 재채기
한 방으로 세상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괴물이 만들어 질 수 없듯이 말이
다. 초인의 단계에서 본다면 늑대나 조류로 변신하는 게 특별히 물리적으
로 불가능할 것은 없다. 리지가 다루었던 속도 강화만 봐도 그렇다. 분명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식은 아니다.

 

 “인실롭. 공간이동 능력이 있다면 분명 그가 이제껏 해왔던 일들에 대
해 설명할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공격도 수차례 피했었고 우리
능력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고 있었지. 그 능력이라면 루즈라벤의 실험
실에 들어가 우리 차트를 뒤지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가 그 능력을 가지
고 있다는 점에는 부정할 수 있는 요소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난
언데드가 그런 능력을 부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선 회의적이야.”

 

 인실롭은 그의 말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는 우리가 만들어냈다는 기록도 없는 언데드다. 분명 그 능력의 비
밀이 거기에 있을 텐데…….”

 

 특수한 능력을 가진 언데드 알자로. 대체 어디서 그란 존재가 나타난 것
일까? 갑자기 역사의 표면에 나타나 엘헤미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그
는 대체 누구인가? 인실롭은 굳게 입술을 다물었다. 고민은 그와 어울리
지 않는 일, 결론은 간단하다. 그를 잡으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인실롭 일
행은 다시금 폭발적인 속도로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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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연재 11화에 도달했습니다. 10화를 넘긴 기념으로 드디어 단장
의 능력이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네요. 비밀이 많은 친구입니다. 그
의 정체는 한 화 한 화 전개를 통해 벗겨드리겠습니다.

 

알자로.jpg

 

 기념으로 알자로 그려서 올립니다. 단편도 얼른 완성해야 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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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욀슨 2012.08.03 10:38
    강자 등장이군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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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rsas 2012.08.03 17:07
    클로드 말씀이신가요 ㅎ? 언데드 서열 정점에 있는 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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