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1 05:34

시크릿Secret(14) - Ch. 6 마녀

조회 수 506 추천 수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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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이 오지 마세요."


 얼굴 없는 그들에게 반려 여자는 애원했다. 눈도 귀도 없는 자들이 그 말을 들어줄 리 만무했다. 잠시 흠칫대던 녀석들 가운데 하나가 경계심 없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시커먼 그것은 손에 든 칼로 금방이라도 반려 여자를 내려칠 것처럼 높이 쳐들었다.

 그 순간 반려 여자가 손을 재빠르게 놀렸다.


 "!!"


 칼을 쳐든 녀석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리듯 쓰러졌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반면 뒤에서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본 녀석들은 알았을 것이다. 반려 여자가 대빗자루를 휘두른 순간, 빗자루는 마치 칼날처럼 깔끔하게 그녀 앞에 선 녀석 허리춤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러기에,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는데."


 반려 여자는 다시 빗자루 손잡이를 단단히 붙들었다. 그녀가 든 빗자루는 사실 아무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싸리비였다. 대나무로 자루를 만들고, 싸리나무 가지를 볼품없이 엮은 마당 쓰는 대빗자루였다. 그것만 가지고 뭔가를, 마치 진검으로 볏짚 베듯 잘라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행여나 반려 여자가 아무리 특별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당신들 같은 것들과 상대해본 적 있어요."


 대치하던 중에 반려 여자가 별안간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알아요. 당신들은 실체가 없죠. 실체가 없으니까 온갖 형태로 바뀌어 사람들을 겁주지만 그렇다고 당신들이 특별히 강한 건 아녜요. 그저 무리지어 떠돌고, 어둠 속에 숨어 남을 위협하는 것뿐이죠. 당신들 같은 존재는 정말이지, 질리도록 봐 왔어."


 상대방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대답뿐 아니라 자기들끼리 웅성이는 소리도, 그 흔한 기침 소리조차 없었다. 소리 낼 수 있는 입조차 그들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반려 여자는 그들을 이렇게 불렀다. 그림자, 라고.


 "당신들은 그림자죠? 다투긴 싫지만 어쩔 수 없겠죠. 당신들은 오로지 시킨 대로 따르기만 할 수 있을 테니까."


 시킨 건 아마 '그 여자'겠지. 반려 여자는 속으로 생각하는 것 전부를 굳이 겉으로 떠들지 않았다.


 "평범한 그림자라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빗자루를 치켜세우며 반려 여자가 말했다. 그녀 역시 빗자루로 짚단을 베는 건 불가능하다. 형체 있는 것을 벨 수 있는 건 날이 바짝 선 진검뿐이니까. 다만 상대가 실체 없는 허상이라면 몇 번이고 베어줄 수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차피 저도 물러설 순 없는 입장이니까. 어쭙잖게 봐주는 일 따윈 기대 마세요!"


 온갖 무기를 든 그림자들에게 반려 여자는 거꾸로 먼저 치고 들어갔다. 허술하게 겨누어진 창들 틈새로 파고든 그녀는 다짜고짜 맨 선두에 있던 녀석을 찌르고 다시 크게 옆으로 자루를 휘저었다. 그렇잖아도 허술하던 빗자루 싸리비 자루가 떨어지고 반려 여자 손엔 긴 대나무 자루만이 남았다. 도리어 반려 여자 몸은 더 가벼워져서, 방금 전 치고 드는 과정에 쓰러진 녀석들이 만든 빈자리로 파고들어 주위 녀석들을 향해 닥치는 대로 찌르고 휘둘러댔다.


 "!!"


 그림자들은 우왕좌왕하면서도 반려 여자를 어떻게든 막기 위해 분주하게 창을 놀리고 칼을 휘둘렀다. 서툰 칼질이 옆 동료를 베고, 무모하게 휘두른 창이 앞에 선 동료 목을 꿰뚫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몸부림을 멈추지 않았다. 반려 여자가 휘두른 자루에 한 녀석이 쓰러지면, 곧이어 그 주변 두세 녀석이 동료 창과 칼을 맞고 쓰러져갔다. 반려 여자는 더 빠르게 그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빠져나오길 반복했다. 혼전을 처음 겪어본 사람 같지 않게 반려 여자는 냉정하고 또 노련하게 상황을 제 유리한 쪽으로 만들어갔다. 결국 남은 그림자는 겨우 세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여기서 그만둘 생각은 없죠?"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반려 여자와 그림자 사이에 거리를 둘 여유 공간은 충분했다. 반려 여자에겐 그 상황이 더 불리했다. 살아남은 녀석들 중 창 든 녀석 둘이 자기들 유리한 거리를 벌여 두곤 계속해 그녀를 경계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 녀석은 칼을 들고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며 그녀 주위를 넓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어떻게 할까? 반려 여자는 고민에 빠졌다. 한 녀석을 먼저 치고 나갈까, 아니면 두 녀석 호흡이 안 좋기만을 기대하고 걸어볼까. 주변 생각에 골몰해 있느라 그녀는 제 발 밑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죽은 줄만 알았던 그림자 파편들이 슬금슬금 그녀 주위로 모여들어왔다. 처음엔 그녀 등 뒤로 천천히, 나중엔 그녀 발치 바로 앞까지 영역을 넓혀 가면서.

 그녀가 알아챘을 땐, 이미 늦은 후였다. 아차, 하는 순간 그림자들은 파도처럼 일어나 그녀를 집어삼켰다. 손쓸 새도 없이 반려 여자는 그림자들의 몸속에 갇혀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성질 급한 녀석이 먼저 칼자루를 쥐고 마루 위로 올라섰다. 안에선 여전히 세 여자가 도란도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림자 녀석은 서슴없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새된 비명소리와 함께 방 안을 가득 채운 잿빛 무언가가 그의 위로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 무게에 짓눌린 녀석은 아예 흔적 없이 사라졌다.


 "뭐야, 방금 비명소린?"


 바로 곁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소리에 혼비백산한 진연이 경황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조금 떨어져 앉아 있던 바리는 한숨을 쉬곤, 


 "마녀 씨, 알고 있었으면 진작 나가 보시지 그랬어요?"


 하고 물었다. 마치 자기가 소리 지른 게 아닌 양 시침 뚝 떼고 앉아있던 마녀가 어깨를 살짝 들썩였다. 


 "그러는 너도 알고 있었으면서."


 변명처럼 마녀가 투덜대는 말에도 바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을 채근하는 듯 눈초리가 바리에게서 쏟아지자 마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마루로 나갔다. 그림자 속에 갇힌 자기 반려와, 그녀를 둘러싼 두 마리 그림자를 보면서 마녀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실례 아닐까? 여자들 방에 흙발 들이미는 거."

 "귀청 떨어질 뻔했잖아……. 꺅! 뭐야 저건!"


 귀를 문지르며 방에서 기어 나오던 진연 역시 마녀 눈앞에 놓인 광경을 똑같이 보았다. 눈코입이 없는 시커먼 사람들, 뭔가 시커멓고 반투명한 젤리 덩이 같은 것 속에 갇힌 반려 여자.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진연은 어쩔 수 없이 비명을 질렀다. 마녀는 그것마저 킬킬대며 비웃었다.


 "네 목소리도 만만찮네, 이 아가씨야."

 "뭐야? 무슨? 이건 대체?"

 "마침 잘 됐네. 봐두는 게 좋을걸."


 벌벌 떠는 진연 앞에서 마녀는 뻐기듯 말했다.


 "앞으로 네가 상대해야 할 녀석들이니까, 왕좌를 되찾으려면 말이야."

 "들었어? 바리한테서?"


 왕좌에 대해 자신이 마녀에게 얘기한 적은 없었다. 진연은 당연히 바리에게서 들었으려니 싶어 물었다. 진연 말을 듣고 마녀는 씨익 웃었다.


 "들을 필요도 없었지. 애초에 그 의견을 낸 건 나인걸."


 살아남기 위해선 왕좌를. 이야기의 출처에 대해 마녀에게서 듣고 진연은 괜스레 섬뜩해졌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했다는 느낌이 기분 좋을 이유는 없으니까. 혹 바리도 그런 걸까? 그 바리조차 마녀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왕좌가 어디 있는지 알아, 넌?"

 "물론 나도 모르지."


 하지만, 하고 마녀는 덧붙였다.


 "저 녀석들이 괜히 여길 온 건 아닐 거 아냐."


 진연이 나온 뒤로, 마녀와 대치하던 그림자들의 기색이 변했다. 먹잇감을 눈앞에 둔 맹수처럼, 눈도 입도 없는 그것들이 으르렁대면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아 진연은 불안해했다.


  "저거 봐, 쟤들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니? 왕좌를 온전히 저들 것으로 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먼저 처리해야 할 상대가 누군지 말이야."


 그 와중에도 마녀는 어느 누구보다도 여유로웠다. 반려 여자가 붙들려 있고 여전히 그림자 두 마리가 제각기 무기를 자신에게 겨누고 있지만 마녀에겐 그 중 어느 것 하나 문제되지 않는 듯했다. 진연은 인정해야만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건 그 자리에 오로지 마녀뿐이었다. 바리조차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마녀야말로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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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크릿Secret 14화입니다;

 최근엔 시크릿 8장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얘기입니다만, 딱히 할 얘기가 있는 게 아니라서;;;

 글을 쓸 때, 기왕이면 처음엔 설정 부담 안 느끼고 읽을 수 있게 쓰려고 합니다. 그게 잘 안 되긴 하지만요^^;;
 그런데 8장을 쓰면서 느낀게, 왠지 이전 챕터에서 너무 설정 얘길 안 한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조금씩 들더군요...매 장별 이야기 분량 조절도 뭔가 잘못된 거 같고;;

 암튼 그래서, 8장은 내용이 좀 많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아직 쓰는 중이라 확실진 않지만 대략 6장과 7장 합친 것보다 좀 못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대략 아무래도 상관없는 떡밥과, 알 필요 없는 설정과, 하고 싶은 얘기였는데 굉장히 미뤄오던 얘기들까지 한꺼번에 쏟아져서 묘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어차피 총 12장 정도로 생각하고 쓰는 거니까, 저쯤에서 분량이 느는 게 맞는 걸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좀 더 빠릿한 인물이었다면 더 나았을걸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리버리까지 한 인간처럼 자꾸 되가서, 미리 내놨어야 할 얘기들을 못내놓는거 아닌가 싶기도 해서요;

 암튼 결론은, 글쓰는 것도 고민의 연속이란 거죠; 직업인 분들은 훨씬 심하겠죠;;
?
  • profile
    클레어^^ 2011.03.22 04:25

    으아악~! 반려 여자가 위험해요!

    아무래도 이 쯤되면 진연씨가 각성이라도 하려나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3.22 08:28

     쓰면서 갈등했던 건데 정확하게 짚어내시네요;;


     다음 장면 어떻게 할지 저도 꽤 고민했어요; 진연이 각성하는 걸로 할지, 다른 장면으로 할지. 다른 장면으로 한대도 금방 떠오르는 아이디어도 없었고...;


     그런 이유로, 결과는 삼 일 후에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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