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18 08:56

시크릿Secret(13) - Ch. 6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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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오세요, 진연씨."


 진연의 손을 잡아끈 건 마녀의 '반려'였다. 그녀를 안으로 들이며 반려 여자는 마녀를 보며 말했다.


 "신랑, 손님 너무 오래 문간에 서 계시게 하는 거 아냐?"

 "잠깐만, 얘기 중이었잖아."

 "얘긴 안에 들어와서도 할 수 있는 걸. 안 그래? 바리 양도 들어오세요. 날이 추워요."


 그러고 보니 손이 식어서 감각이 거의 사라질 지경이었다. 신발을 벗고 마루 위로 올라가니 언뜻 들여다보이는 방 안엔 어느새 끓인 찻물과 4인분 다기가 차려져 있었다. 바리와 진연을 방 안으로 안내한 반려 여자는 다기 주위에 그들이 둘러앉도록 자리를 권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차가 입에 맞으시면 좋겠네요."

 "요새 반려가 다도 취미가 생겼거든. 제법 괜찮아, 우리 반려가 타주는 차."

 "요새? 방금에야 도착한 거 아니었나요?"


 바리 질문에 마녀는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은, 집에 오기 전 신혼여행 때 말이야. 잠깐 들렸던 집이 귀족 가였거든. 거기선 매일 새빨간 홍차를 마셨지. 난 와인이 더 좋았지만."


 시뻘겋고, 진득진득하고. 마녀는 키득키득 웃었다. 진연은 기분이 나빠졌다. 마녀가 묘사하는 와인 얘기는 어쩐지 사람 피를 연상시켰다.


 "그럼 이것도 홍차인가요?"

 "아뇨. 녹차에요. 한번 드셔보세요."


 마침 적당히 우러나왔는지 반려 여자가 다기를 들고 각자 잔을 천천히 채웠다. 진연은 한 입 차를 머금었다. 처음엔 긴장한 탓에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근데 이거, 격식 같은 게 있는 거 아녜요? 자세라든지, 행동이랄지."


 진연이 궁금해 하던 걸 바리가 먼저 반려 여자에게 물었다. 반려 여자는 싱긋 웃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도 제대로 배운 건 아닌걸요."

 "뭐 어때, 지 편한 대로 하면 되지. 우리끼리잖아?"

 "그렇다고 모로 누워 잔을 받는 건 좀 아니라고 봐요."


 마녀와 바리가 실랑이벌이는 통에 진연도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진연은 다시 반려 여자가 따라주는 차를 한 입 물었다. 텁텁한 맛 없이 깔끔하지만 뒷맛이 살짝 비렸다. 사무실에서 간혹 마시는 티백에선 그런 맛 느끼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있으니까 왠지 마음이 차분해져요."

 "추모식 같지 않아? 이런 분위기."

 "그러네."


 보기 드물게 마녀 말에 동의하면서 진연은 잔을 내려놓았다. 상대가 무심코 꺼낸 추모식이란 말에, 진연은 다시 엄마 윤주에 대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른 세 사람에게 물었다.


 "엄만 왜 내겐 아무 말도 안 해준 걸까?"


 아무도 섣부르게 대답하려 들지 않았다. 진연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정말 엄마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거든? 어릴 때부터 그랬어. 딴 애들은 몰라도 나랑 엄마 사이에 비밀 따윈 없다고, 항상 그렇게 여겨왔어. 성적표건, 첫사랑이건, 처음 생리한 기억이건. 내가 알고 있는 걸 엄마도 알고 있었으니까. 왜냐면, 굳이 숨길 필요 없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솔직했으니까요, 윤주 씨도. 자신에게든, 다른 사람에게든."

 "나도 그렇게 믿었어."


 진연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바리는 엄마 윤주가 생전 솔직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제 딸에게조차 사실을 밝히지 않은 그녀가, 진짜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근데 엄만 내가 못 미더웠나봐."

 "그건 아닐 거예요. 진연 씨."

 "왜? 엄마가 내게 가르쳐준 게 뭔데? 마녀에 대해서도, 신부에 대해서도, 난 오늘에야 처음 알았는걸. 바리 너에 대해서도 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 엄마가 얘기해준 적 없었으니까."

 "알면, 네가 어쩔 건데?"


 보다 못한 마녀가 진연과 바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젠 전부 알잖아? 자, 보여줘.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내 멱살이라도 잡을 셈이야? 아님 신부와 싸우기라도 하려나?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사실을 안다고 뭐가 바뀌겠어?"

 "적어도 하나는 할 수 있어."


 진연은 마녀에게 대꾸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마녀가 어라, 하는 사이에 진연은 마녀 머리채를 드잡이고 엉겨 붙었다.


 "아야! 이거 못 놔!"

 "진연 씨, 그만 해요!"


 마녀가 비명을 지르고, 바리가 진연을 말리려 했다. 진연은 마녀 위에 올라타 그녀 머리칼을 붙든 채 놓아주지 않았다.


 "뭐? 아무 것도 못 해? 그래, 너 잘났다 이거지? 너, 다 안단 식으로 그렇게 사람 얕잡아보지 마!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우리 엄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데!"


 고래고래 진연이 지르던 소리는 어느 순간 비명으로 바뀌었다. 어느 샌가 마녀 역시 그녀 머리채를 붙잡아 흔들어댔던 탓이다.


 "기집애, 너도 윤주 자식이다 이거야! 그래, 똑같네. 모녀지간 성깔 더러운 건! 근데 이건 알아야지. 나도 윤주 딸이거든, 따지고 보면!"

 "누구 맘대로 엄마 딸이래! 웃기지 말라고!"


 집안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도둑고양이처럼 서로 엉겨 붙어 긁고 깨무는 두 사람 사이에 차마 끼어들 수 없어서 바리는 안절부절못했다. 그 와중에도 반려 여자는 요령 좋게 다기 세트와 함께 방 한 구석으로 옮겨가 점잖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야! 너 지금 깨물었어!"

 "아프면 빨리 놔! 확 긁어놓기 전에!"

 "누군 가만있는데? 더 다치기 전에 너나 손 놓지 그래!"

 "웃겨! 끝까지 가보자 이거니? 그래, 너도 죽고 나도 죽자!"

 "꺅! 이거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두 여자가 소란피우는 소리는 집 담장을 넘어 골목길에까지 퍼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희멀겋게 죽은 눈을 뜨고서 멍청히 제 조금 앞을 응시할 따름이었다. 그 사이 골목길을 따라 뭔지 모를 시커먼 것들이 서서히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마녀와 진연 일행이 있는 바로 그 기와집이었다.


 "너 고집 정말 장난 아니다."

 "누가 할 소릴."


 그 거뭇거뭇한 것들이 담장 아래 에워싸듯 몰려들 때서야 진연과 마녀는 겨우 싸움을 그쳤다. 서로 화해를 했다거나 누가 말렸기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지쳐서, 서로 드잡이고 몸부림치는 것도 힘에 부쳐 양쪽 다 방바닥에 쓰러져 누운 탓이었다.


 "아, 진짜. 손가락 하나 움직이고 싶지 않아."

 "떠들 힘은 아직 남아 있나봐?"

 "물에 빠져도 입만 살아 둥둥 뜰 거란 얘긴 들어본 것도 같네."

 "그거 암만 봐도 칭찬은 아닌 거 같은데."


 칭찬 아니면 어때. 혼잣말이었는지, 아니면 힘에 부쳐 목소리가 가라앉은 탓인지 진연에게 대꾸하는 마녀 목소리는 상당히 잦아들었다. 귀찮다는 듯 몸을 억지로 일으켜 앉은 마녀가 반려 여자를 불렀다.


 "왜, 신랑?"


 반려 여자가 대답하는 소리는 방 안이 아니라 문 너머 부엌에서 들려왔다.


 "반려, 나 좀 일으켜 주라."

 "조금만 기다려. 설거지 마무리하고."

 "그건 좀 있다 하고, 응?"

 "안 돼. 손에 물 묻은 채란 말이야."


 한가롭게 두 사람 대화가 오가는 사이, 담장 너머 거무튀튀한 녀석들은 구렁이 담 넘듯 스멀스멀 돌담을 타고 마당으로 조금씩 새어들었다. 진연은 물론이거니와 함께 방 안에 있는 바리나 마녀 역시 이 같은 바깥 사정을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반려! 선택해! 나야, 접시야!"

 "마녀 씨, 괜히 무리수 던지지 마시고."

 "뭐가 무리수야! 반려, 이거 진지하게 묻는 거다?"


 부엌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마녀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두 팔과 다리로 기어서 부엌과 통하는 문으로 다가가는 마녀를 보며 진연은 비웃음을 흘렸다.


 "저거 봐, 저거. 기어이 남 고생시켜야 직성 풀리겠단 저 심보. 나 같으면 그냥 일어나서 갔지, 참."

 "그야 그렇겠지, 넌. 엉덩이 가벼운 년이니까."

 "뭐야?"


 진연이 언성을 높일 때쯤 담장을 넘어온 그것들은 마당을 통과해 대들보 기둥을 타고 올라 마루 위를 점점 더 시커멓게 채워나갔다. 소리도, 냄새도 없는 그것들이 접근해오는 걸 눈치 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방 안 사람들 신경은 전부 마녀와 진연이 다투는 데에만 쏠려 있었고, 마당으로부터 들이치는 찬 공기를 막으려고 방문도 살짝만 열어 둔 탓에 안에선 마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의 검고 커다란 덩어리 같았다. 간혹 방울져 흩어졌다가도 다시 한데 모이고, 길었다가도 짧아지고, 마당 전체를 덮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로 넓어졌다가 A4 종이 한 장 크기로 줄어들기도 했다. 

 마루에 올라온 그것들은 얇고 넓게 퍼져 마루 위를 서서히 채워나갔다. 가장 먼저 그것들이 주목한 건 마루 한 구석에 놓인 윤주의 유골함이었다. 검은 그것의 몸 일부가 뱀처럼 변해 유골함을 감싸 안으려 했다. 하지만 별안간 흰 유골함이 환하게 빛나며 그것들을 물리쳐냈다. 녀석들은 금세 유골함은 포기하고 대신 방 안에 있는 세 사람을 노렸다. 마루 위에 넓게 퍼져 있던 녀석들이 하나둘 바닥에서 솟아올라 인간과 다름없는 형상이 되어갔다. 어떤 놈은 창을 들고, 또 다른 놈은 칼을 들고서 마루 위를 빼곡히 채운 시커먼 그것들은 모두 하나같이 왼손잡이였다.

 문제는 전혀 없었다. 접근하긴 생각보다 쉬웠고, 상대방은 아예 그들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아무런 대비도 안 된 여자 셋이서 스물 남짓 되는 완전무장한 그들과 상대가 될 리 없다. 그것들이 인간이었다면 그 순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손님인가요?"


 갑자기 마당 쪽에서 누군가 그들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것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상대를 보았다. 청바지에 하얀 스웨터를 입은 여자, 마녀의 반려는 거기 서 있다가 일제히 쏟아지는 시선을 받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무칙칙한 그것들 얼굴엔 모두 눈코입이 달려있지 않았다.


 "그 얼굴은 어쩌다……."


 반려 여자가 되묻기가 무섭게 검은 그것들은 일제히 무기를 겨누고 마당에 있는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을 피해 반려 여자는 몇 걸음인가 뒷걸음질 쳤다. 벽에 기대놓은 빗자루 하나가 그녀 손에 잡혔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얼굴 없는 그들에게 반려 여자는 애원했다. 눈도 귀도 없는 자들이 그 말을 들어줄 리 만무했다. 잠시 흠칫대던 녀석들 가운데 하나가 경계심 없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시커먼 그것은 손에 든 칼로 금방이라도 반려 여자를 내려칠 것처럼 높이 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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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크릿> 13화입니다^^;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시크릿>은 최근 2, 3년간 써오던 마녀 얘기들을 한 편으로 정리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혹 알고 계신 분들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랄까, 예전에 썼던 글에 나왔던 장면이나 인물들이 <시크릿>에서 간혹 회상 등으로 처리되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은, 되도록 <시크릿> 내용과 상관없이 넣어지는 삽화 정도로 넣으려고 합니다. 혹시 전에 쓴 글 아시는 분들은 소소한 재미로 볼 수 있고, 모르시는 분들은 모르시는 분들대로(아마 대다수 분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게 간간히 써볼게요;;

 무슨 소린가 하면, <마녀의 심장, 정령의 목소리>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이번 화 내용보고 아실 법도 합니다....그걸 누가 기억하긴 하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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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백수묵시록 2011.03.18 09:20

    읽다보니 눈물을 마시는 새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대화를 하는 것도 마치 내 눈앞에서 실제로 대화를 하는 것을 듣는거 같고 묘사를 하는 것을 들어보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눈 앞에 상상이 갑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소설입니다. 내공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ㅎㄷㄷ

  • profile
    윤주[尹主] 2011.03.18 16:51

     그렇게까지......과분하네요;;;;;


     자연스럽게 쓰려고 하지만 대사도, 묘사도 부족한 게 많습니다. 제일 중요한 이야기가 재미가 없는게 문제지만요 ㅠ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profile
    클레어^^ 2011.03.19 05:17

    허걱, 진연씨, 마녀씨와 맞짱을...;;

    그나저나 저 검은 녀석들의 정체는 뭐고, 왜 윤주 여사님 유골함을 건드리려고 했을까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3.19 07:43

     검은 녀석들이 유골함을 건드린 건, 본능적으로 끌렸다고 보는 게 맞겠네요; 그만큼 엄마 윤주에게 힘이 있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에요...


     검은 녀석들의 정체는 추후 밝혀질 겁니다. 다만 신부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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