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Secret (9)

by 윤주[尹主] posted Mar 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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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저기 너희 외할머니 동생분이셔. 맘껏 먹으렴."
 "어딜!"


 괴물들이 진연을 향해 달려들자, 바리는 그들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녀 등 뒤에서 진연은 바리에게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보았다. 짙은 연기는 괴물들을 감싸고 돌며 뱀처럼 그들을 휘어감았다. 괴물들이 몸부림치며 그것을 흩어냈지만 연기는 다시 그들을 애워싸며 조금씩 옥죄었다.


 그 광경을 본 신부는 이를 갈았다.


 "설마 창세잔재에게 이런 힘이 있는 줄은 몰랐어."
 "수만 년 살다보면 잔재주 한둘쯤 배우는 건 일도 아니거든."


 너스레를 떨면서도 바리는 전혀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신부가 보낸 괴물들은 연기가 붙잡아두고 있었지만 아직 신부 자신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신부의 힘이 겨우 이 정도였다면 전세계를 떠돈 그녀라도 21세기 파괴와 재해의 대명사가 되진 못했을 것이다.


 "쓸모없는 것들, 터져라."


 바리 예상대로 신부는 곧바로 다음 동작에 들어갔다. 그녀가 엄지와 검지를 튀기자, 연기에 붙들려 있던 괴물들 몸이 일제히 터져 나갔다. 깜짝 놀란 진연이 몸을 웅크리고, 바리가 연기로 자신들을 둘러싸 보호했다. 아까보다 훨씬 짙고 농밀한 연기들이었다. 괴물 파편들은 그 연기 장벽에 튕겨나가거나 두 사람과 떨어진 바닥에 튀었다. 그 연기조차 뚫고 들어온 것도 몇몇 있었다. 파편이 손등을 스치고 지나가자 바리는 살짝 신음을 흘렸다. 그녀 상처를 본 진연은 깜짝 놀랐다. 긁힌 자국 중심으로 서서히 상처가 벌어져갔다.


 "괜찮아?"
 "만지면 안 돼요!"


 진연이 손을 대려 하자 바리가 그녀를 피했다. 아픔을 참고 바리는 일어섰다.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신부를, 바리는 똑바로 응시했다. 한 손에 총을, 반대편 손에 펜싱 경기에서나 볼 법한 칼을 들고 신부는 으스댔다.


 "마음에 좀 들었나 몰라?"
 "물러서! 더 이상 다가오면 가만 두지 않을 거니까."
 "대체 왜 저 아가씰 보호하는 거야?"


 신부는 멈춰서서 바리에게 물었다. 아직 둘 사이 간격은 제법 떨어져 있었다.


 "너도 알겠지? 저 아가씬 아무것도 몰라. 네가 목숨걸고 지켜야 할 가치는 없을걸?"
 "그러는 넌 왜 이 아가씰 죽이려는데?"


 신부가 뭔가 말하기에 앞서, 다시 바리가 말했다.


 "변명하려거든 집어치워. 어차피 너도 알고 있지? 여기 진연 씨가 유일한 후보라는 걸 말야. 윤주 씨를 이은, 세계의 주인이 될 운명이란 거."
 "그게 무슨 소리야?"


 처음 듣는 얘기에 진연이 끼어들었다. 그녀를 보고 신부는 혀를 찼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네. 좋아, 다들 알고 있는 얘기로 의뭉떠는 그런 짓 그만하기로 하자. 저 아가씨가 살아 있는 건 곤란해. 유력한 '왕좌'의 주인이니까."
 "경쟁자는 미리 제거하시겠다? 하지만 넌 세계 정복 따위엔 관심없지 않았어?"


 신부가 대답을 얼른 하지 못하자 바리는 슬쩍 그녀를 떠 봤다.


 "진연 씨를 제거하겠다는 생각, 네 생각이 아니지?'
 "아니, 그건 내 생각이야."
 "'그건' 네 생각이라고? 다른 사람도 있단 얘기네."


 신부는 역시 말을 아꼈다. 바리는 그녀를 비웃었다.


 "금세기 최고의 핫이슈인 분께서 다른 사람 개 노릇을 하고 계신다? 재밌네. 그럼 뒤에 계신 그 분은 얼마나 대단한 거물이시려나?"
 "그깟 놈 하인 취급 하지도 마! 난 그저 이해관계 때문에 손을 잡은 것뿐이야."
 "그럼 걘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데?"


 바리 질문에 대답하려던 신부가 입을 다물었다. 뭔가 눈치채고서 웃는 얼굴이 능글맞았다. 


 "지금 날 유도심문하겠단 거야? 그래봤자 뭘 얻을 수 있을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이미 드러날 건 다 드러났는걸 뭐. 지금 와서 허세떨어봐야 소용 없어. 네가 기껏해야 남 졸개 노릇이나 하고 있단 건 사실이니까."


 그 말을 듣고 신부는 화를 냈다. 그녀가 들고 있던 칼을 바리에게 휘둘렀다. 바리는 어느샌가 꺼낸, 검고 장식 없이 단순한 흑단 지팡이를 들어 칼을 쳐냈다. 그러면서 그녀는 뒤에 있던 진연에게 말을 걸었다.


 "진연 씨, 들으셨겠지만 진연 씬 윤주 씨 뒤를 이을 수 있는 유력한 후계 중 한 명이에요. 하지만 그것 아니고도 진연 씨에겐, 윤주 씨 '왕좌'를 반드시 이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얘기는 나중에 해. 그것보다, 지금은 저 여자부터 어떻게!"


 긴 칼로 바리 이곳저곳을 노리고 찌르고 들어오는 신부 공격은 옆에서 진연이 보기에도 무섭게 여겨졌다. 바리가 제법 잘 공격을 막고 피해내긴 하지만, 신장 차이 탓에 신부 공격에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진연은 바리가 자신에게 얘기를 하려다 자칫 다칠까봐 조마조마해했다.


 "아뇨, 지금 해야 되요."


 진연의 생각과는 달리 바리는 굳이 지금 당장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연 씨는 꼭 '왕좌'가 필요해요. 윤주 씨의 강력한 보호를 받아왔기 때문에, 진연 씬 지금 세상에서 살아갈 면역력이 없어요. 이 세상엔 진연 씨가 생각하는 현실들, 눈에 보이는 것들 외에도 저희 같은 사람들, 주술들이 많이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이 주술에 대해 어느 정도 저항력이 있죠.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주술 속에 노출되면서 생긴 거예요. 다만..."


 다가오는 공격을 살짝 피한 뒤 바리는 신부에게 일격을 먹였다. 흑단 지팡이의 손잡이가 신부 배를 때렸다. 신부는 조금 비틀댔지만 금새 다시 자세를 잡았다. 코르셋 탓인가? 바리는 혀를 찼다.


 "다만 진연 씨는 그게 없어요. 하지만 '왕좌'가 있다면, 생전 윤주 씨 힘이 깃든 그게 있으면 진연 씨도 저항력을 얻게 될 거예요."


 다시 몇 차례 맹렬한 공격을 막느라 바리는 입을 열지 못했다. 불편한 드레스를 입고서도 신부는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바리는 다시 거리를 벌여 공격을 피했고, 진연은 그 때마다 더 많이 물러서야 했다. 잠시 여유를 찾은 바리가 진연에게 물었다.


 "진연 씨, 대답해 봐요. 평생 자기도 모르는 힘에 눌려 사실 생각인가요? 아니면 단 한 번이라도,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르는 도전을 해보시겠어요?"


 도전한다면, 어쩌면 '왕좌'를 찾아 엄마 윤주처럼 '세계의 주인'이란 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별로 진연이 바라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포기한다면, 바리 말이 사실이라면 진연은 살아있는 동안 내내 그녀가 비현실적이라고 여겼던 온갖 종류의 힘들에 농락당하고 압박당할 것이다. 진연도 그것은 원치 않았다. 그렇다면 대답은 정해진 거였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선택하는 수밖에.


 "피해!"


 진연이 외치는 소리에 바리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서 있던 자리서 몸을 피했다. 신부가 곧바로 뒤쫓으려 했지만 어디선가 날아온 돌팔매질에 주춤대느라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신부에게 돌을 던진 건 바로 진연이었다.
 "도망치자, 지금! 빨리!"
 "그렇게 쉽게 따돌릴 수 있는 상대가 아녜요."
 진연에게 바리가 씩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그
녀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방법도 분명 있겠죠?"


 바리에게서 다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순식간에 신부는 연기에 둘러싸여  갇혔다. 칼을 휘둘러 연기를 흩어내자 또다른 연기 자락이 빈 자리를 채웠다.


 "이게 다 뭐야! 눈이라도 가려 보겠단 거야? 비겁하게 기습이라도 하려고?"


 신부가 고래고래 악을 썼다. 대답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 대책 없을까봐?' 신부는 자기 총을 얼굴 앞에 똑바로 세워 들었다. 총구는 하늘 위를 향해, 그리고 철제 판 위에 돋을새김으로 장식된 장미 문양을 입술 조금 앞으로. 그 차가운 장미 송이에 그녀가 입을 맞추자 주위 공기가 한순간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그녀를 둘러싸던 연기 역시 얼어붙은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자신을 둘러싼 얼음 벽에 신부가 명령했다.


 "무너져."


 와장창, 유리장 깨지는 소리와 함께 얼음 덩이들이 무너져 내렸다. 주위를 둘러싼 연기들도 얼어붙은 채 조각조각 신부 발 아래 깔렸다. 앞을 가로막은 것들이 모두 사라지자 신부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도망쳤구나. 사태를 깨달은 신부는 곧장 머리 위 건물 지붕을 쳐다 보았다. 까마귀 모습을 한 신부의 괴물 하나가 처음부터 줄곧 거기 앉아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애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신부가 물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그것은 지붕에서 툭, 떨어져 신부 발 아래서 굴렀다. 죽은 괴물 시체 입에서 바리가 다루던 시커먼 연기가 조금씩 새어나왔다. 신부는 주먹을 꽉 쥐었다. 도망치면서도 바리는 신부가 자신을 뒤쫓을 수단에까지 전부 손을 써두고 있었다.


 "그 녀석들, 다시 만나면 절대 가만 안 두겠어!"


 뒤쫓을 방법은 전혀 없었다. 신부는 이를 갈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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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 번째 시크릿입니다.
 ...상당히 오랜만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