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29 12:09

<시크릿Secret> (完) -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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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지난 밤 그 모험은 기껏해야 전부 반나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겨우 반나절 만에 사람을 이렇게까지 녹초로 만드나. 창문을 통해 얼굴 위로 쏟아져 내리는 아침 햇살을 피해 진연은 머리끝까지 이불을 잡아당겼다. 기껏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누군가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와 소란을 피웠다.


 "아침 먹어, 아침! 이 시간까지 뭐하는 거야, 대체."

 "아이, 씨…….넌 피곤하지도 않아? 내버려 두라고, 좀."

 "아직 앞날 창창한 청춘이 왜 이리 늘어져 계시나. 자, 자. 이제 정신 차리고, 밥 먹으러 갑시다, 동생 씨?"

 "아, 근데 왜 내가 동생이야!"


 우당탕탕 발을 구르며 방을 뛰쳐나가는 마녀를 쫓아 진연은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순간 쏟아진 아침 햇살이 사흘 야근한 상태나 다름없는 진연 눈 위로 쏟아져 내렸다. 햇살을 피해 부신 눈을 비비고 있으려니, 온갖 음식 냄새가 진연 코를 자극했다. 갑자기 허기가 진 탓에, 진연은 얌전하게 상을 차려놓은 대청마루로 나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진연 씨."


 먼저 인사를 건넨 건 반려 아가씨였다. 진연이 조그맣게 안녕하세요, 하고 건성으로 인사를 하는 걸 웃는 얼굴로 받아주곤 곧바로 밥을 퍼 진연이 앉은 자리 앞에 놓아 주었다.


 "근데 너, 왜 눈은 그렇게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어?"


 밥을 앞에 두고 진연이 멍때리는 것을 보고 마녀가 물었다. 얘기하는 중에도 손으론 쉴 새 없이 먹을 걸 입 안으로 퍼 나르는 모습이 굳이 볼 필요도 없이 상상이 갔다. 진연은 부신 눈을 다시 비볐다. 그제야 슬슬 아침 밥상 차려놓은 모양이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뭐해요, 언니. 빨리 안 먹으면 이 마녀 씨 입으로 다 들어갈 걸요?"


 응 그러니, 하고 별 생각 없이 젓가락을 집었던 진연이 깜짝 놀란 눈으로 방금 말을 한 상대를 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세 사람 식탁에 끼어 밥을 먹는 건 다름 아닌 아틀라스 위시현, 그 여자애였다.


 "너 무사했구나? 어떻게 빠져나왔어, 거기선?"

 "별거 아니었어요. 어차피 신부는 마녀나 진연 씨한테만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요."


 시현이 미소를 띠는 걸 진연은 빤히 쳐다보았다. 밥상 주위에 둘러앉은 건 이 네 사람이 전부였다. 문득 진연은 바리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바리는? 결국 걘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아직 찾아내지 못했어요."


 대답해준 건 시현이었다. 아틀라스, 세상의 주인이 가진 의지대로 세상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관리자인 그녀가 찾지 못했다는 건,


 "적어도 지금 이 세계엔 존재하지 않는 걸지도 몰라."

 "설마 죽은 건 아니지?"


 진연은 마녀에게 물었다. 마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무얼 생각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시현도, 심지어는 반려라는 아가씨조차도.


 "지금 여기 없다고 해서 꼭 죽었단 법은 없어."


 생각을 마친 마녀가 이렇게 말했을 때 진연은 조금 안도했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약간 기대를 품었다.


 "물론 마녀 씨 말도 일리는 있지만요."


 다시 입을 연 건 시현이었다. 바리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고, 진연에게 미리 당부해 놓고는 시현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니, 이건 윤주 씨 얘기에요. 마녀 씨 말대로라면 윤주 씨도 지금 여기 없다고 해서 꼭 죽었다고 보긴 어려워요. 하지만 세상의 주인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해서 언제 돌아올지 모를 윤주 씨를 기다리느라 마냥 공석으로 놔두긴 그렇죠."

 "그래서? 누굴 주인으로 삼을 건데. 나?"


 마녀가 장난 섞인 말투로 물었다. 시현은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이미 다른 세상 주인이잖아요. 게다가, 당신이라면 알고 있죠? 윤주 씨 뜻이 어땠는지. 저는 그녀 뜻을 기꺼이 따를 생각이에요. 별 문제가 없는 한은."

 "자기 뒤를 이을 게 마술사일 필요는 없단 얘기 말이지? 하긴 그래. 그런 힘없이도 여태껏 주인 역할 잘 해냈으니까, 윤주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마녀도 자신이 주인이 될 수 없단 건 알고 있었던 눈치였다. 도리어 결과가 그렇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아, 역시 내겐 세상의 주인 같은 건 어울리지 않아. 떼어 준 자리 지키고 앉아 있는 거 마녀한텐 안 어울린단 말야. 빼앗고, 혼란시키는 게 더 잘 어울리지, 마녀한테는."

 "전 기왕이면 당신이 사고 좀 그만 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시현과 마녀 얘기를 들으며 진연은 그제야 바리가 했던 말이 옳았단 걸 알았다. 왕좌를 되찾아줄 사람이 있다면 마녀뿐이라던가, 엄마 윤주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마녀라던가 하는 얘기들 말이다. 여전히 의뭉 떨고, 속을 알 수 없는 구석이 많긴 해도 그녀가 결코 엄마 윤주 기대를 저버리진 않을 거란 생각이 진연에겐 들었다.


 "기왕 얘기 나온 김에 어디 한 번 말해봐. 다음 번 주인은 누구야? 진연이야? 아니면 달리 생각해둔 사람이 있어?"


 대화중에 마녀는 시현에게 직접적으로 세상의 주인 자리에 대해 물었다. 시현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 자리에 당사자인 진연이 있기 때문에 말을 꺼내기 불편해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결국 시현은 사실 그대로 털어놓았다.


 "아직은 생각해둔 사람 없어요. 찾는 중이라고 해두죠."

 "왜? 진연이는 안 되려나?"


 마녀가 묻자 시현은 잠시 진연 쪽을 흘끗 쳐다보았다. 괜찮나요? 그녀가 눈빛으로 그렇게 묻는 것 같아 진연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은 그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아쉽지만 당장은 안 돼요. 진연 씨는 자격이 있지만, 주인 삼기에는 다소 모자라지 않나 판단하고 있어요. 이건 물론 진연 씨에게 문제가 있단 얘긴 아녜요. 단지, 단 하나뿐인 주인 자리인 만큼 신중하게 자격을 갖춘 사람을 골라야 하지 않나 싶어서……."

 "난 괜찮아."


 진연이 바로 답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나한텐 너무 버거운 일인걸."

 "칫,"


 진연이 하는 말을 듣던 마녀가 혀를 찼다. 나머지 세 사람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꽂혔다.


 "아니, 난 왕좌를 찾아오면 진연이가 금방 주인이 될 줄 알았지. 주인이 되면 나 좀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주라고, 그렇게 부탁하려 했었고."

 "혹시 그게 목적이었어? 왕좌를 되찾으려고 그렇게나 애를 쓰더니?"


 당연하지, 하고 마녀는 답했다. 사실 거기까지만 말했어도 진연은 역시나, 하고 생각하는 걸로만 끝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내가 왜 너를 지키고 구해내려 별 짓을 다했겠어? 신부랑 싸울 때만 해도 그래. 가만 보다보니 짚 이고 기름통 속으로 뛰어드는 것 같던데, 그런 애를 뭐가 이뻐 내가 구해줬겠어? 어쩔 수 없으니까 도와줬지."

 "뭐라고? 야!"


 마녀가 무심코 한 말에 진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시현이 그녀를 뜯어 말리고, 마녀는 그런 진연을 비웃고 놀리며 자리에서 빠져 나갔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반려 아가씨는 홀로 차분하게 식사를 마쳤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침 식사 시간 모습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온 진연은 문득 엄마가 남긴 편지를 보았다. 그러고 보면 자신은 그걸 찢고 불태우기만 했지 내용을 읽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편지는 분명 마녀에게 보내는 것이겠지만, 진연은 아직 마녀에게 그 편지 얘기를 꺼낸 적인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침 방에는 자기 혼자뿐이다. 진연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뒤 편지를 꺼내어 내용을 확인했다.

 편지는 아무래도 유언장인 듯했다. 엄마 윤주가 죽기 전날 밤, 마녀에게 보라고 남긴 모양이었다. 어째선지 마녀는 발견하지 못하고 장례식 준비하던 상조회사 직원이 찾아낸 것 같지만.

 편지에는 마녀에게 다시 한 번 진연을 부탁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재산 분배 얘기도 짧게나마 남아 있었다. 재산 일체는 진연과 남동생 둘에게 동등하게 나눌 것. 다만 자기가 살던 옛 집은 진연도, 남동생도 아닌 마녀에게 준다고 편지에는 적혀 있었다. 조금 분하긴 했지만 뭐, 받아들이자고 진연은 생각했다. 이제 막 도시에 직장을 잡은 자신이나, 미국에 유학중인 동생이 쓰기엔 지나치게 과분한 집이었다. 마녀에게 준다면 결코 어딘가에 팔리거나 무너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란 막연한 예감이 진연에겐 들었다. 정 못미덥다 싶으면 한 번씩 자신이 집에 내려와 보면 될 거고.

 방에서 나오는 진연을, 때마침 마당에 서 있던 마녀가 보았다. 창백한 피부 위에, 머리에 쓴 챙 넓은 모자부터 겉에 걸쳐 입은 롱코트며 구두까지 평소처럼 온통 검게 차려 입은 채였다. 옷차림 탓에, 혹은 이국적인 외모 탓에 그녀는 햇빛 속에서도 마치 흑백 영화 속에서 홀로 튀어나온 등장인물인 양 어색해 보였다. 오랜만인 따뜻한 햇살도, 선선한 바람도 그녀로부턴 빗겨 지나가는 듯했다. 온 세상이 그녀를 낯설어하는 것만 같았다.

 진연만큼은, 엄마 윤주와 자신 사이 유일하게 남은 접점인 그녀가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무슨 일이야?"


 그 흑백 인물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진연은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마당으로 내려와 마녀 곁에 나란히 섰다.


 "뭐 하고 있었어? 마당에서 혼자."

 "아무 것도. 그냥 둘러보고 있었을 뿐이야."


 그러더니, 마녀는 정말 천천히 고개를 돌려가며 집 안 곳곳을 훑어보았다. 맵시 있게 뻗은 처마며, 그늘졌지만 음침하단 생각은 들지 않는 대청마루 따위를 그녀는 유심히 바라보았다. 대문 옆에는 벽돌로 쌓은 단 위에서 커다란 장독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마녀는 그것에도 시선을 건넸다. 진연은 마녀를 보다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예전부터 느낀 건데 너, 네가 말하는 것보단 엄마 좋아했지, 그렇지?"

 "갑자기 무슨 말이야?"

 "솔직히 말해봐. 너 엄마 그렇게 미워하진 않잖아. 억지로 끌고 왔다고 하면서도, 네 살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주지도 않았다고 하면서도 속으론 생각하고 있잖아. 보고 싶다, 혹은 그립다. 그런 거."

 "……은근 얄밉네, 이 기집애. 지 엄마랑 아주 빼 닮으셨구만? 귀찮게 굴지 말아줄래?"


 으르렁대는 모양새가 꼭 작은 짐승과 닮았다. 마녀를 보고 떠올린 생각에 진연은 웃음을 터트렸다. 마녀는 웃지 마, 라고 소리치며 고개를 홱 돌렸다. 창백한 그 얼굴에 잠깐이나마 홍조가 돌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역시 너도 평범한 사람이구나."

 "어딜 봐서?"

 "그렇잖아? 제멋대로고, 가끔 생각 없이 말하긴 해도 감정이 아주 메마른 건 아닌걸. 기뻐하고, 부끄러워하고, 그리워하고. 그런 건 마녀라 해도 우리랑 다르지 않나봐?"

 "상처만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없어."


 진연이 하는 말을 부루퉁해 듣던 마녀가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인가 싶어 진연은 마녀를 쳐다보았다. 마녀는 한 번 더 그 말을 되뇐 후에야 설명을 해 주었다.


 "상처 입은 만큼 성숙한다잖아? 상처를 입기 전엔 한 인간이, 자기 주위를 돌아보기란 쉽지 않아. 상처 입은 후에야 기댈 곳을 찾아내고 솔직하게 의지하거든. 한자로 사람(人)은 마주 기댄다는 의미고, 인간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人間)는 의미야. 상처입고 서로 기대야 인간은 확실히 인간다워져. 걔네들, 사랑하는 딸이나 신부 녀석들은 그걸 몰랐던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진연은 살짝 가슴이 찡했다. 마녀도 사실은 자기 자식이 걱정되긴 했던 걸까? 인간에게 복수하겠다고, 기적이나 신비로운 힘에 기대 위안 받겠다고 떠벌리던 그들이 저 마녀에게도 안쓰럽게 여겨진 걸까?


 "네 엄마 얘기잖아. 못 들어봤어?"


 물론 마녀는 진연이 품었던 작은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알 게 뭐야? 걔네가 인간답건 그렇지 않건. 오히려 어설프게 흉내 낸단 녀석들이 더 위험하다니깐? 겉으론 아무 문제없는 척 하다가 막판에 뒤통수를 친단 말이야."

 "그러면 네 생각은 뭔데? 하긴, 어차피 별 생각은 없었지? 너한테는 한 때 재미거리밖에 안 되었을 테니까, 이번 일."

 "너무하네. 나도 걔네들이 옳다곤 생각 안 했어. 나름대로 생각은 있었대두?"

 "어, 그래?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마녀 머리로 생각했다는 것 말야."


 실컷 비아냥대면서도 진연은, 한편으론 이게 아닌데 하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애써 억눌렀다. 애초에 마녀와 싸우려고 말을 건 게 아니었다. 엄마 얘길 잠시 듣다가, 아직 마녀는 모를 엄마 유언 얘길 은근슬쩍 꺼내려던 게 처음 계획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얘기가 꼬인 거람?


 "이거."


 대뜸 마녀가 진연 앞에서 입을 쩍 벌렸다. 깜짝 놀라 진연이 뒷걸음질 쳤다. 가만 보니 마녀는 검지로 제 송곳니를 가리키고 있었다.


 "뭐야, 사람 놀라게!"

 "놀라긴 왜? 들어본다기에 얘기해주려는데."

 "얘기해주긴 뭘?"

 "이거, 이거라고. 인간이란 건."


 진연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안 된다. 이 마녀 녀석은 도무지 얘길 풀어내는 재주가 없다.


 "좀 설명을 덧붙이면 어떨까?"

 "송곳니 말야. 다들 있잖아. 고기를 찢고 깨무는 이, 가장 날카로운 이. 그게 인간이라고. 송곳니를 가진 짐승 말야."

 "휴, 됐다. 내가 너한테 뭘 기대한 건지."

 "들어보기나 해. 솔직히 사람 인이라느니, 인간이라느니 하는 복잡한 얘긴 이해 잘 안 가. 그래도 왠지 난 사랑하는 딸이나 신부가 하는 말이 옳단 생각은 들지 않았어. 상처 입히지 않는다니? 그림자들은 어떤지 몰라도, 인간은 짐승인걸. 송곳니를 가진 짐승. 선천적으로 상처입고 상처 입히는 게 인간에겐 본성이란 말이야. 그런데 거기에 다치기 싫으니, 아예 이빨을 갈아 없애자고? 그게 답이 아니란 건 뻔 하잖아."


 설명을 듣고 나니 진연은 마녀가 무슨 얘길 하는지 이해가 됐다. 거칠게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마녀도 엄마와 크게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진 않았다. 도리어 엄마 윤주 말보다 현실적인 얘긴지도 몰랐다. 서로 기대는 게 인간이란 공상적인 설명보다 본성에 호소하는 말이 더 와 닿을는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다.


 "인간은 인간답게, 뜯어 고치건 새로 만들건 진흙탕 싸움을 하건 맘대로 하면 돼. 마녀는 마녀답게, 지루할 새 없이 내키는 대로 웃고, 비틀고, 잔뜩 곤란하게 할 테니."


 쓸데없이 허세부리길 좋아하는 것도 마녀답다. 어째서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마녀라고 부르는지 진연은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얘기 끝났으면 들어가 봐. 난 근처 나들이 좀 할 테니까."

 "아냐, 안 끝났어. 아직 할 얘기 조금 남았어."


 대문을 나서려는 마녀를 엉겁결에 붙잡아놓고 진연은 당황해했다. 방금 전까지 실컷 기세 좋게 떠들어대던 마녀에게 집 얘길 하고 싶진 않았다. 얘길 듣고 마녀가 콧대가 높아져 으스대는 꼴이 상상이 간 탓이다. 문득 그녀 머릿속에 엉뚱한 화젯거리 하나가 생각이 났다.


 "유골함 말야, 우리 아직 집에 놓고 있는 거."

 "아, 그거 이제 뿌리려고?"

 "아니."


 진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 묻어주면 안 되나? 다른 무덤처럼, 봉분도 세우고 비석도 놓고."

 "윤주 걔가 별로 안 좋아라 할 걸? 너무 거창하다고."


 마녀가 우려했지만 진연은 구태여 괜찮다고 했다.


 "엄마 맘에 들 만한 장소가 떠올랐거든."


 마녀에게 그렇게 얘기하면서, 진연은 머릿속으로 무덤을 만들 장소를 떠올려냈다. 이 집에서 조금 더 위쪽, 영유산 자락 중턱 양지바른 땅이었다. 위로는 산자락이 포근하게 감싸고, 아래로는 엄마 윤주가 살던 집으로부터 마을 전체가 모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거기라면 분명, 엄마라도 봉분을 세우는 정도 소소한 사치는 받아주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이 평화롭고 평범한 시골 마을이 바로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다. 임기응변으로 떠올려낸 구상 치곤 꽤나 좋지 않은가? 기쁜 마음으로 진연은 마녀에게 제 생각을 그 자리서 이리저리 털어놓았다.


 새로이 마녀 집이 된 기와집 위에 엄마 윤주 무덤이 들어선 건 이로부터 그리 머지않은 때였다.


 - END -
=============================================

 <시크릿> 최종화입니다. 본래 이 장도 장제목이 있었지만, 그냥 에필로그라고 쓰는 게 깔끔하네요.

 이 시간에 올리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자정쯤 올리려 했는데 중간에 깜빡 잠들어버려서;; 그나마 불을 켜고 잠들어 새벽 시간에 깬 모양입니다만...

 이로서 작년 12월부터 끈질기게 연재했던 <시크릿>도 끝이 났습니다. 여태 인터넷에 올린 것중엔 제일 많은 분량이었고, 나름대로는 한 세계를 정리한다는 의미도 있었던 거 같네요. 2007년 말부터 줄창 써왔던, 마녀와 정령 얘기를 <시크릿>으로 일단 통합하려 한 것이니만큼...

 <마녀의 심장, 정령의 목소리> - <시크릿>을 거치며 진행된 마녀 이야기는, 향후 두 편 정도 장편을 더 써보려고 생각중입니다. 새 두 편에 대해선 아직 제대로 잡힌 그림이 없긴 하지만요.;; 그림이 잡히기까지, 오랜 시간 다시 단편들로 되돌아갈 것 같습니다. <시크릿> 쓰기 전 그랬던 것처럼 말예요;

 지금으로썬 아무 계획 없습니다. 단편이건, 장편이건. 장래도 제 인생에서 이보다 심한 적 없을 정도로 불확실하고. 그래도 글을 쓸지 묻는다면, 글쎄요...자신은 딱히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든 다시 쓰게 되더라고요;; 마이너하단 얘기 듣고서도 썼고, 글 때문에 지나치게 시간 많이 뺏긴대로 썼고, 글 쓰지 말라고 갈굴때도 그 시기 지나서 다시 썼고.

 완결내면 감계무량할 줄 알았더니, 그냥 별 느낌 없네요. 끝내면 뭔가 있을까 싶어 끈질기게 매달려온 글입니다만....현재 수정작업 중이고, 오늘내일 중에는 그것마저 일단락할 생각입니다. 그래도 별 느낌없으려나요? 그래도 여지껏 혼자 줄곧 연재해온 걸 보면 그 동안은 나름대로 즐거웠던 것도 같지만서도...

 꾸준히 댓글 달아주신 클레어 님이나 몇 차례 댓글 남겨주셨던 반님, 시우님껜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님 댓글도 본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네요;; 다시 님 취향 글은 아니었나 봅니다 ㅎㅎ 그 외에도, 이 글 끝까지 따라와 주시며 재미있게 읽어주신 분들 있다면 감사드립니다. 어설프디 어설픈 글인데도요;;

 마지막이라 길게 떠들었습니다. 당분간은 <LDK> 연재를, 4일에 한 번 꼴, 혹은 그보다 더 짧은 주기로 계속하겠습니다. 모쪼록 좋은 시간 되세요^^;


 - P.S. 미셔넬 님께, 제안해주신 거 감사합니다. 저도 해보고 싶긴 하네요.

  다만 최근같은 활동량은 보장 못해드립니다. 개인 사정도 별로 안좋고, 구상해논 것도 없고;; 혹시나 활동량을 보고 제의해주신 거라면, 죄송하지만 다른 분께 제안주시는 게 더 나을 것 같네요. 그런 게 아니라면, 저도 괜찮습니다 ㅎㅎ 받아주실 거라면,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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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다시 2011.05.29 12:35

    으으 완결 축하드립니다

    이제 다른 세계관에 집중하시겠네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5.29 12:59

     글쎄요, 마녀 얘기를 계속 쓸 생각이니, 세계관은 뭐 계속 이쪽 걸 사용한달까요...


     당분간은 뭐, 이런저런 단편 계획밖에 없으니까, 거기선 마녀 얘기 아닌 다른 얘기 쓸지도 모릅니다. 생각나는 대로 써볼 예정이에요. 언제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 ?
    미셔넬 2011.05.29 22:10

    윤주님 감사합니다. 사실 미흡하다면 미흡할 수 있고 개인사정이 불확실하기로는 당분간 군대에 있는 저도 마찬가지 인지라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 같이 해 나갈 팀원 분을 모시는 데 있어서 단지 활동량을 보고 제의 드린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3개월 가량 창조도시나 조아라 등에서 글을 읽으면서 세련됨이라던가 틀이잡혀있는 수준있는 글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윤주님께 제의 드린 이유도 그런데에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앞으로의 일에 관해서는 팀 홈페이지가 이 곳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http://cafe.naver.com/dantarian 이 곳을 통해 연재중이신 소설을 개재하고 연결고리로서 사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어려운 제의에 응해 주신것에 대해 감사하고 환영합니다 ^^

  • profile
    윤주[尹主] 2011.05.30 08:41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주엔 저도 좀 사정이 그래서 인사라도 드릴 수 있는지 불확실하지만, 돌아오는 일요일쯤엔 인사드릴 수 있겠네요.


     허술한 점 많지만, 암튼 잘 부탁드립니다;;

  • profile
    클레어^^ 2011.05.30 02:03

    오호~. 드디어 완결이네요.

    일단 해피엔딩인 듯 하군요. 바리양은 행방불명 되었지만...;;

    이제 LDK에 매진하는 건가요?

    (예희양과 미르세린은 과연 언제쯤 친해지려나? 아마 그들의 모습 보고 진연씨와 마녀씨의 모습이 떠오르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5.30 08:51

     당분간은 합평 쪽과 LDK 위주로 갈까봐요.


     마녀 - 진연 쪽이 주연인만큼, 다른 인물들의 관계는 아직 해소되지 않은 채 남겨놓았습니다. 이걸 풀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간 풀어내야겠죠. 미래를 기약해봅니다^^;



     마녀, 진연보단 영 미지근한 두 사람이지만, 의외로 닮은 구석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미르세린 일행도 조금씩 이야기 진행시켜가야죠;;


     연재 동안 꾸준한 격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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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시크릿Secret (30) -Ch. 11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지는 않아서 2 윤주[尹主] 2011.05.25 535 1
29 시크릿Secret (29) - Ch.10 저주 받은 신부 2 윤주[尹主] 2011.05.21 472 1
28 시크릿Secret (28) - Ch. 9. 열쇠 2 윤주[尹主] 2011.05.15 493 1
27 시크릿Secret (27) - Ch. 9 열쇠 2 윤주[尹主] 2011.05.13 484 0
26 시크릿Secret (26) - Ch. 9 열쇠 1 윤주[尹主] 2011.05.09 669 1
25 시크릿Secret (25) - Ch. 8 속죄 2 윤주[尹主] 2011.05.09 572 1
24 시크릿Secret (24) - Ch. 8 속죄 2 윤주[尹主] 2011.05.05 531 1
23 시크릿Secret (23) - Ch. 8 속죄 4 윤주[尹主] 2011.05.02 709 1
22 시크릿Secret(22) - Ch. 8 속죄 2 윤주[尹主] 2011.04.16 486 1
21 시크릿Secret(21) -Ch.8 속죄 2 윤주[尹主] 2011.04.11 498 1
20 시크릿Secret(20) - Ch. 8 속죄 2 윤주[尹主] 2011.04.09 550 1
19 시크릿Secret(19) - Ch. 8 속죄 2 윤주[尹主] 2011.04.06 585 1
18 시크릿Secret(18) - Ch. 7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2 윤주[尹主] 2011.04.03 459 1
17 시크릿Secret(17) - Ch. 7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2 윤주[尹主] 2011.03.31 585 0
16 시크릿Secret (16) - ch. 7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2 윤주[尹主] 2011.03.27 51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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