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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뭔가를 보고 시현이 깜짝 놀라 사랑하는 딸에게 외쳤다. 시현이 가리키는 걸 보려고 고개를 든 진연 역시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사랑하는 딸 머리 위 하늘에서 커다란 뭔가가 내려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갑자기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 그것이 무엇인지 진연이 깨닫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그것은 밑바닥부터 나타났다. 이어서 사면 벽과, 발로 가린 문과 창문이 차례차례 드러나고서야 진연은 그 물체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커다란 가마였다. 무려 여덟이나 되는 가마꾼이 그 가마를 들고 천천히 땅으로 하강해왔다. 가마꾼 모두가 옛날 갑주에 짐승 가죽을 뒤집어쓰고 눈이 네 개인 험상궂은 도깨비 얼굴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 때 사랑하는 딸이 뭔가 이야기하기 시작했으므로 진연은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째선지 사랑하는 딸 얼굴에 눈이 여섯 달린 것처럼 보였다.


 "이제 됐어요오. 왕좌니, 당신 엄마 죄니 하는 것들은 죄다 잊어버려요오. 이젠 그런 핑계 더 이상 안댈 테니까아. 방해하려는 자들은 모두 없애고오, 전 제 사명을 이룹니다아. 마녀나, 저 반려란 여자처럼 당신도 이젠 제 적이네요오. 축하드려요오."

 "저 '유령 가마'가 완전히 땅에 발을 딛게 하면 안 돼요!"


 시현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건 옛 귀신 군대를 불러내는 거예요. 그림자들과는 질이 다르다고요!"

 "내가 어떻게 해야 돼?"


 진연이 한 질문에 시현이 답했다.


 "당장 저들에게 추방을 명령하세요. 여긴 당신 세계예요. 당신이 원하면 저들은 이 세계에서 곧바로 사라질 거예요."

 "추방하면 어떻게 되는데?"

 "다시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갈 거예요. 사랑하는 딸도, '유령 가마'도. 물론 정식으로 주인 권한을 받은 게 아니라 영영 오지 못하게 할 수는 없지만, 한동안은 저들 세계에 발목 묶어둘 정도는 되겠죠."

 "그럼 좋아. 어떻게 하면 되지?"

 "이렇게 하면 되요."


 시현은 손을 뻗어 허공에 네모난 판을 그렸다. 그 네모 판에서 불쑥 무언가 튀어나오는 걸 시현은 양 손으로 받아 펼쳤다. 시현이 받아든 건 넷북이었다. 화면에 무언가를 띄우곤 자판을 두들기며 시현은 진연에게 말했다.


 "기술적인 서포트는 제가 해요. 진연 씨는 마지막 승인만 해주시면 되요."

 "승인이란 건?"

 "그건,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해주세요."


 시현이 넷북을 다루는 동안 진연은 그 화면을 들여다보았지만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시현이 화면에 띄운 건 언뜻 보기엔 프로그래밍과 유사해 보였다. 규칙도, 문법도 알 수 없었지만 일정한 형태로 뭔가를 적어 넣고 있어서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면엔 그녀가 쳐 넣은 명령어 이외에 알 수 없는 수열들이 있었고, 생전 처음 보는 낙서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각각의 페이지는 반투명한 층을 이루며 다른 페이지들과 겹쳐 있어 문서라기보단 그림판이나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시현이 무언가를 하는 걸 사랑하는 딸도 보았다. '유령 가마'는 벌써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 바닥에 내려앉기만 하면 되었다. 시현이 무엇을 하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자신을 방해하는 것임엔 틀림없다. 이렇게 생각한 사랑하는 딸은 창을 들고 진연과 시현에게 다가갔다. 눈치 채지 못하게 조심히 다가서다가 어느 정도 거리에 들면 반격할 수 없을 정도로 재빨리 뛰어들 생각이었다. 다행히 시현은 작은 넷북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고 진연도 생전 처음 보는 그것에 정신이 팔려 사랑하는 딸을 보진 못했다. 불과 열 발자국 밖까지 다가와 사랑하는 딸은 그들을 향해 창을 겨누곤 몸을 날렸다. 그녀는 거의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


 "!!"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며 누군가가 시현과 진연 앞에 뛰어들어 사랑하는 딸 창을 쳐냈다. 사랑하는 딸은 물론 시현과 진연 역시 깜짝 놀라 잠시 고개를 들었다. 불꽃이 일렁대는 형상을 한 칼날을 사랑하는 딸을 향해 겨누곤 그는 시현과 진연에게 물러서라고 말했다.


 "좀 더 물러서세요. 제가 막아볼 테니까요."

 "아가씨! 괜찮으세요? 몸 아프지 않아요?"


 진연이 호들갑떠는 걸 반려 아가씨는 웃음으로 받아주었다.


 "괜찮아요. 그러니까, 서둘러서."

 "비켜!"


 사랑하는 딸이 다시 창으로 반려 아가씨를 찌르고 들어왔다. 반려는 검을 휘둘러 막고는 거꾸로 사랑하는 딸을 향해 매섭게 치고 들었다.


 "크윽, 어떻게."


 사랑하는 딸은 잠시 뒷걸음질 쳤지만 곧바로 역공을 취했다. 제법 사납게 달려들긴 했지만 반려 몸은 역시 온전치 않았다. 쓰러지기 전보다 공격은 매섭지 않았고, 방어하는 동작은 군데군데 틈이 있었다. 사랑하는 딸은 그 틈을 봐주지 않고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힘겹게 몇 번 공격을 막아내고 난 뒤로 마녀의 반려는 아슬아슬하게 사랑하는 딸 공격을 피하고 흘리며 시간을 끌기에 바빴다.

 그 사이 '유령 가마'도 완전히 전체 모습을 드러내 놓았다. 진연은 조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굴렀다.


 "언제 끝나는 거야! 이러다 시간 못 맞출 거야!"

 "거의 됐어요. 이제 조금만 더……."


 그 때 우당탕 소리와 함께 반려가 진연 발치에 쓰러졌다. 진연은 놀라 뒤로 물러섰다. 반려는 어깨에 피를 흘렸고, 사랑하는 딸은 잔인한 미소를 띤 채 그들에게 다가왔다.


 "이제 포기하시지 그래요오. 끝난 모양인데에."

 "웃기지 마. 그런 일 절대 없을 테니까."

 "허세 부려 봐야 의미 없어요오. 결국 이긴 건 당신들이 아니라 저니까!"


 사랑하는 딸이 곧바로 진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연은 반사적으로 팔을 올렸다. 그 순간 시현이 진연에게 자기 넷북을 내밀었다. 디스플레이 화면을 사랑하는 딸 방향으로 한 채 억지로 진연 손을 끌어다 넷북을 잡게 하곤 시현이 말했다.


 "다 끝났어요! 이제 그들을 추방시켜요!"


 아무 설명도 없이 나더러 어쩌라고! 속으론 비명을 지르면서 진연은 넷북을 무심코 강하게 움켜잡고 빌었다. 자신이 달려드는 사랑하는 딸을 향해 뭔가를 외쳤던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물러나! 어쩌면 외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불과 몇 초 동안 있었던 일들이 진연에겐 수분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수 초 사이, 사랑하는 딸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순간 진연이 쥔 넷북 화면에서 별안간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뭐, 뭐야!"


 사랑하는 딸이 몸을 움츠려 그 빛을 피하려 했다. 그녀는 곧 깨달았다. 그 빛으로부터 피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빛에 닿는 모든 부위가 조금씩 흐릿해지며 서서히 사라져갔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딸은 '유령 가마' 쪽을 보았다. 거의 땅을 디딜 것처럼 보였던 '유령 가마'도 괴로운 듯 비명 지르며 하늘로 도로 끌려올라갔다. 그걸 본 사랑하는 딸은 이를 갈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눈을 살그머니 뜨던 진연과 그녀가 언뜻 시선이 마주쳤다.


 "두고 보세요오. 이번 일은 반드시 기억할 거예요오. 그리고 꼭 다시 돌아와 당신들에게 복수하겠어요오."


 저주와 함께 사랑하는 딸은 하얀 빛줄기에 완전히 파묻혀 사라졌다. 이윽고 빛 또한 사라지자 그 자리에 남은 건 다리가 반쯤 풀린 진연과 한숨을 돌리는 시현, 그리고 반사 상태로 자리에 누운 반려 여자 셋뿐이었다.


 "다행이네요, 진연 씨. 어머니 덕분에 살았어요."


 숨을 돌린 시현이 진연에게 말했다. 어머니 덕분에? 진연은 잠시 말뜻을 고민했다. 하긴 엄마 덕분이긴 하지. 그렇게나 엄마가 유난떨며 자식에게 비밀을 감추지 않았더라면 자기가 시현을 묶은 사슬을 풀어내진 못했을 테니까. 주술이라곤 전혀 모르는, 순수한 인간만이 풀 수 있었던 그 사슬을.


 "우연이지 뭐. 설마 엄마가 이런 상황이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어?"


 그래, 이건 다 우연이야. 진연은 그렇게 단정 지었다. 자기 죽을 날도 몰라서 여러 사람 당황하게 만들어 논 사람이 어떻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날 줄 알았겠느냐고.

 그래도 엄마 윤주 덕분에 목숨을 건진 건 사실이었다. 그녀가 마법에 대해 진연에게 감추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진연이, 시현 말을 빌리자면, 순수한 인간이 되지 못했더라면 사랑하는 딸과 싸움에서 꼼짝없이 죽어야 했을 테니까.

 게다가, 사랑하는 딸에게 저 잘난 양 설교해대며 느낀 것도 있었다. 아직 뭐라고 딱 집어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다만 엄마 윤주가 그렇게까지 매정한 인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진연 자신도 모르게 자기를 위해주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던 탓에 진연은 이전보단 조금 더 엄마 윤주에 대해 느꼈던 서운함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일단 집으로 가요. 나머지 얘기는 거기서 하게요."


 시현 말에 동의하며 진연은 반려 아가씨를 부축해 일으켰다. 시현이 조금 손을 쓰자, 축 쳐져 있던 반려 아가씨 몸이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지친 몸을 끌며 세 사람은 터벅터벅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갔다. 커다란 문이 그들을 위해 잠시 열렸다 닫히고, 그리고 문 안은 아무도 없이 텅 빈 공간이 되어 버렸다. 마녀를 삼킨 뒤, 죽은 듯 꿈쩍도 않는 거대한 삽살개 적막이 바닥에 퍼져 있는 걸 제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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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크릿> 9장이 끝났습니다.

 본래 <LDK>를 올리려고 했지만, 개인적인 사정 탓에 <시크릿>을 먼저 올립니다. 다음 주 화요일엔 제가 글 올리질 못할 것같거든요.
 다음 주 목요일에 <시크릿> 10장 올리겠습니다. 이제 슬슬 마무리되어가네요, 이 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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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1.05.16 08:14

    엄마야~! 넷북...;;

    (으윽, 본인은 노트북 있던 것도 고장나고 그랬는데 ㅠㅠ)

    그나저나 일단 고비는 넘겼군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5.19 16:27

     위시현은 전자기기를 좋아합니다;; 갤럭시탭 같은 걸로 할까 했지만, 무난하게 넷북으로 표현했어요;;


     남은 얘기는 금요일에 올릴 10장에서부터 풀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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