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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끄러워!"


 마녀는 소리를 질렀다. 기세 좋게 떠들어대던 '사랑하는 딸'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 자리에 있던 이면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마녀는 사랑하는 딸을 노려보며 혼자 씩씩대기만 했다.


 "뭐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진연이 마녀에게 물었다.


 "뭐야, 방금? 엄마가 어쨌단 거야? 초월이라니? 방관했다느니, 버렸다느니 하는 게 다 무슨 소리냐고?"

 "모르고 있었나요오?"


 진연이 보인 반응에 사랑하는 딸은 의아해했다.


 "분명 저는 당신이 이 얘길 모두 들었을 거라고오……."

 "닥치라고!"


 마녀 서슬에 사랑하는 딸도, 진연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녀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그들은 계속 침묵했다.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왕좌'는 어떻게 했는데?"

 "걱정 마세요오. 잘 보관하고 있답니다아."


 사랑하는 딸이 손짓하자 멀리 어둠 속에서 뭔가가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그 속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드러나 차차 선명해져갔다. 바퀴 달린 뭔가를 바닥에 밀고 끄는 모양인지 덜컹대는 소리가 간간히 일행에게 들려왔다. '왕좌'란 건 사무용 의자처럼 바퀴도 달려 있는 걸까? 엉뚱하게도 그 소리를 듣고 진연이 떠올린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왕좌'는 삐걱대는 소리를 내면서 밀려 나와 사랑하는 딸 옆에서 멈췄다. 사랑하는 딸은 그것을 가리키며 뽐내듯 말했다.


 "보세요오. 멀쩡히 잘 있죠오?"

 "뭐라고?!"


 유독 진연만이 사랑하는 딸이 가리킨 '왕좌'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황당함에 진연이 주위를 둘러보니 마녀도, 반려 아가씨도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진연은 사랑하는 딸 표정도 살폈다. 진연이 소리친 탓에 다소 놀란 듯했지만 어딘지 능글맞은 미소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건 짓궂은 장난일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하지만 다른 세 사람 태도는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진연은 다시 '왕좌'를 보았다. 이게 정말 '왕좌'라고? 진연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 복잡한 얼굴로 그것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모두다 '왕좌'라고 부르는 것이, 온 몸을 안대나 재갈, 쇠사슬 따위로 결박당한 어린 여자아이 모습이라면.


 "설마 '왕좌'에 대해서도 모르나요오, 이 아가씨인?"


 사랑하는 딸이 말하자 마녀가 반려 아가씨를 보며 물었다.


 "알지 않아? 반려가 전에 설명해줬잖아."

 "신랑이 가르쳐준 게 아니고?"

 "아닌걸. 아, 혹시 바리 그 애였나?"

 "저기, 나 아무 얘기도 못 들었거든?"


 진연이 끼어들자 마녀도, 반려도 아무 말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들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던 사랑하는 딸이 키득대며 웃자,  마녀가 혼자 발끈해 말했다.


 "웃지 마! 일일이 하나하나 다 설명해주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 말은, 저 아가씬 정말 아무것도오, 모른다는 거네요오?"


 사랑하는 딸은 노골적으로 진연을 비웃었다. 마녀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진연을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얘기 안 했었구나……."

 "한숨만 쉬지 말고 얘기를 해 주라고."

 "얘기해주나마나, 보는 그대로야. '왕좌', 우리는 아틀라스ATLAS 라고도 부르는데, 한 마디로 주인의 비서, 혹은 실무 관리자인 셈이야. 이쪽은 아마 위시현, 윤주의 비서였어."


 대충 설명을 해놓고 마녀는 온 몸이 단단히 묶인 '왕좌' 시현을 큰 소리로 불렀다.


 "어이, 위시현. 안 죽었으면 움직여봐."


 마녀가 소리치는 걸 들었는지 줄곧 가만있던 그것이 갑자기 몸부림을 쳤다. 쇠사슬이  서로 부딪치며 쩔렁이는 소리, 그것이 앉은 사무용 의자가 덜컹대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게 주위를 울렸다. 그걸 본 진연이 마녀에게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근데, 저건 다 뭐야? 쇠사슬이니 안대니 하는 건."

 "원래 저런 옷차림이냐고? 아닌데."

 "그럴 리 없잖아. 나도 알아."

 "그건 제 쪽에서어,"


 취향이냐? 일시에 마녀도, 진연도 같은 생각을 한 건, 대답하는 사랑하는 딸 얼굴이 묘하게 상기된 듯 보인 탓이었다.


 "참고로요오, 그 사슬 당신이라도 억지로 어떻게 할 순 없어요오. 그거, '존재할 수 없는 사슬'인걸요오?"


 상기된 얼굴로 사랑하는 딸은 마녀에게 으스대며 말했다. 여자의 긴 콧수염, 뱀의 다리, 물고기의 숙면 등등 괴상한 레시피까지 줄줄이 읊어 가면서.

 그런 그녀 말을 끊고 든 건 역시나 마녀였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아틀라스를 사로잡다니."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오? 물론 세상의 주인이 되려는 거죠오."


 사랑하는 딸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 여자, 예전 주인이 죽은 뒤 곧바로 모셔왔어요오. 하지마안, 다른 후보가 있기 때문에 저는 주인이 될 수 없다는군요오."

 "당연하지. 정신 제대로 박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랬을 거야."


 마녀를 잠시 쏘아본 뒤 사랑하는 딸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어, 결심했답니다아. 제가 주인이 되려며언, 그 후보를 죽이면 되는 거예요오.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를 없애고, 그 다음 후보, 그 다음 다음 후보, 이런 식으로, 제가 가장 세상의 주인에 적합한 후보가 될 때까지 말예요오."

 "그리고 진연이가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였다는 거야?"


 네, 사랑하는 딸이 대답하는 걸 듣고 진연은 소름이 쫙 끼쳤다.


 "무엇보다 그 '대단하신' 윤주 씨 친 혈육이니까요오. 전 인정하지 않지만, 다른 분들은 그게 마치 주인 보증인 양 대하시더군요오. 그건 옳지 않아요오. 적어도 주인이라면, 이 세상을 지금보다 훨씬 낫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되요오."

 "그리고 네가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고?"

 "물론이죠오.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세상, 아무도 상처 입히지 않는 세상. 얼마나 멋진 세계인가요오. 제 그림자들은 모두 제 꿈이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이상적인지 알아주신 분들이랍니다아. 이제껏 제 이런 생각을 이해해주지 못한 분은 거의 없는 걸요오?"

 "난 이해한 적 없어."

 "네, 당신을 빼놓고요오."


 마녀를 바라보는 사랑하는 딸 눈에는 적개심이 가득했다. 그녀가 탄 삽살개 역시 그녀 기분에 맞추듯 으르렁대며 마녀를 향해 사납게 짖었다. 거대한 삽살개 등 위에서 사랑하는 딸은 마녀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당신에겐 예전에 진 빚이 있었죠오. 덕분에 굴욕을 겪었어요오. 당신 하나 때문에, 설마 우리 그림자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토대가 그렇게 일거에 무너질 줄이야.

 그래서어, 당신에겐 더 이상 설득하려 들지 않을 거예요오. 어떤 방법으로도 설득할 수 없다며언, 당신을 없애지 않고선 제 꿈을 이룰 수 없겠죠오."

 "이제껏 뭐 하고 있던 거야! 빨리 어디로든 숨어!"


 등 뒤에서 우물 쭈물대던 진연을 밀쳐내곤 마녀는 향을 꺼내 불을 붙였다. 동시에 삽살개가 자리에서 도약하듯 뛰어나와 마녀를 덮치려 들었다. 등 뒤에 있을 진연을 의식했는지, 마녀는 개를 피하지 않고 안식향 연기를 끌어 모아 벽을 만들었다. 연기 벽에 부딪친 개가 뒤로 물러서면서, 순간 균형을 잃은 사랑하는 딸을 반려 아가씨가 달려들어 재빨리 낚아챘다. 바닥에 내던져진 사랑하는 딸이 몸을 일으키자, 반려 아가씨는 사랑하는 딸과 삽살개 사이를 가로막고 그녀에게 칼을 겨눴다.


 "당신의 상처 입은 추억은 괜찮나요오?"


 사랑하는 딸 말에 반려 아가씨는 잠시 흠칫거렸다. 이내 자세를 바로잡은 그녀는 사랑하는 딸을 향해 칼을 겨누고 서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신랑 그 이의 반려고, 살인자지만 그 이전에 신들의 기사였었죠. 기사라면, 제 감정과 추억에 앞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전 생각해요."


 그리고 말투를 바꾸어 단호하게, 사랑하는 딸을 똑바로 마주본 채 다시 말했다.


 "이번엔 실패하지 않아. 반드시 지켜 보이겠어."

 

* * * * *



 "왜 그래? 우물쭈물 말고 덤벼 보란 말야!"


 한편 마녀는 한껏 기세를 올리는 중이었다. 향 연기로 만들어낸 거대한 뱀이 사랑하는 딸의 삽살개를 칭칭 감고 깨물고 덤비는 바람에 커다란 청삽살개는 몸부림만 쳐댈 뿐 좀처럼 뱀의 품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싸움이 벌어지자 진연은 황급히 멀찍이 뒤로 몸을 피했다. 덕분에 마녀는 마음껏 공간을 쓰면서 제 실력을 발휘했다. 마녀 손짓에 따라 뱀은 머리를 두 개, 세 개까지 자유롭게 수를 늘이고 줄이며 삽살개가 닿지 않는 등이나 배를 끈질기게 공격했다.

 조금 기묘한 건, 지금쯤 상처가 가득할 삽살개 몸에서 피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마녀는 손쉬운 승리에 도취되어 별 생각 없이 연기를 다루며 삽살개를 농락했다. 피는 설령 흘리지 않는대도 저 녀석도 결국 제 풀에 지쳐 쓰러질 게 분명하다고, 마녀는 확신을 가졌다.

 그 때문이었을까, 돌연 주위가 고요해지자 마녀는 평소 같지 않게 당황해했다. 눈앞에선 여전히 삽살개와 자신이 불러낸 뱀이 싸우고 있었고, 한 쪽에선 자기 반려가 맹렬한 기세로 사랑하는 딸을 압박했다. 사랑하는 딸이 잠시나마 반려를 피해 진연에게 달려들기란 불가능하리라.

 그렇다면, 마녀는 일순간 냉정을 되찾았다. 모든 상황이 지나치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자신은 삽살개와 싸워서 이기고 있었고, 반려는 사랑하는 딸을 압도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딸 저 애가 원래 이렇게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애였나? 마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보다, 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지?

 문득 마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기억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삽살개, '사랑하는 딸'이 뭐라고 불렀더라?


 '이 애, '적막'도 여전하답니다아.'


 아차, 하고 마녀는 손에 든 향을 보았다. 향에 붙어있던 불씨가 모조리 꺼져 있었다. 마녀는 서둘러 새 향을 꺼내 품 안에서 불을 붙였다.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마녀 주위로부터 시야가 조금씩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상하게 여겼어야 했다. '사랑하는 딸' 같은 녀석이 평범한 개를 가지고 있을 리 없다. 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그림자라고 생각해야 옳았을 것이다. 그림자라면,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게 당연하다. 윤주 집에 쳐들어온 녀석들이 형체를 바꾸었듯이.

 시야가 완전히 현실로 돌아왔을 때, 마녀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커다란 삽살개가 입을 쫙 벌리고 그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길고 풍성한 털들이 날리는 탓에 마녀는 일순간 그것이 사자 같다고 생각해 버렸다.


 "저 입 크기면 나 정돈 통째로도 삼키겠는데?"


 제 마지막 말처럼 마녀는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삽살개 '적막'에게 통째로 삼켜졌다.

 마녀를 삼키고 난 뒤 '적막'은 몇 걸음인가 앞으로 내딛더니 몸뚱이를 부르르 떨며 풀썩 제자리에 쓰러져 누웠다. 커다란 개의 긴 털들은 어느 부위 가릴 것 없이 모두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마녀가 사라지고 개가 쓰러지자, '적막' 주위에 덩어리져 흩어졌던 뱀 잔해들이 연기로 변해 공중으로 사라져버렸다. 자리에 남은 것은 오로지 커다란 개의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

 ...마녀는 약했습니다.


 마녀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다음 화에, 반려 여자가 싸우는 장면에서 나올 겁니다. 그리고 아마 다음 화가 8장의 마지막 화가 되겠네요;;


 <시크릿> 다음 화는 다음 주 월요일에 올릴게요. 토요일엔 <LDK>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공휴일이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 profile
    클레어^^ 2011.05.06 02:11

    헉! 마녀씨~~!!

    마녀씨 안 죽었겠죠? 마녀씨, 지금으로써는 마녀씨 아니면 반려씨 밖에 전투 인력이 없다고요...;;

    어서 다시 나타나서 시현씨 구해주세요~.[퍼버벅!!]

  • profile
    윤주[尹主] 2011.05.06 06:59

     괜찮습니다. 반려 아가씬 강해요...아마도;;;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질 전개도 읽어주세요. 매번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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