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09 07:39

시크릿Secret(20) - Ch. 8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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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마녀는 정신을 차렸다. 깜빡 잠든 것일까. 드문 일이다. 잠이 덜 깨 흐릿한 눈에 바리 얼굴이 들어왔다.


 "신경 쓰지 마. 잠깐 잠들었어."

 "아직 덜 깬 건가요? 당신 말고 진연 씨 말예요."


 아아, 그 아가씨. 마녀는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바리 말마따나 자신은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착각도 착각 나름이지, 저 꼬맹이가 무려 자기를 걱정해 묻는 걸로 오해하다니.


 "아까 보니까 괜찮았어. 최소한 윤주에게 화난 건 다 풀린 모양이야."

 "그럼 뭐가 안 풀렸는데요?"

 "대신 나한테 다 뒤집어씌웠거든. 무슨 소린지 알겠지?"

 "말하자면, 지금 당신이 진연 씨를 부르러 가긴 좀 껄끄럽단 말이죠?"

 앉아 있던 바리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를 보고 마녀는 문득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결과는?"

 "뭐가요?"

 "어떻게 됐냐고. 보러 간 거 말이야."

 "아, 그거 말이죠."


 바리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마녀는 씨익 웃었다.


 "그 년이 가지고 있나보네."

 "맞아요. 그 애가 직접 지키고 있어요."

 "왕좌는 어땠어?"

 "아직 '사랑하는 딸'에게 넘어간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다는 건, 대충 짐작하면서도 마녀는 추가 설명을 요구했다.


 "'왕좌'는 그녀에게 붙들려 있어요."

 "예상대로네."

 "어쩌실 거죠?"


 바리가 묻자, 마녀는 이상하단 듯 쳐다보았다.


 "어쩌긴, 당연하잖아."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인 마녀에게 더 이상 우물쭈물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어.


 "빼앗아야지. 마녀답게."


 마녀가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던 반려를 깨우는 동안 바리는 방에 들어가 진연을 깨웠다. 원망과 이유 모를 죄책감이 애매모호하게 뒤섞여 찜찜한 표정으로 진연은 바리를 맞았다.


 "좀 괜찮아요, 진연 씨?"

 "응."

 "어젠, 제가 미안했어요. 괜한 말을 꺼내서."

 "아니, 그건 네가 미안해할 필요 없으니까. 그냥, 왠지 속상해서 그런 거고."

 "지금부터 '왕좌'에게로 갈 거예요. 진연 씨도 따라갈 건가요?"

 "따라가면, 뭔가 알 수 있을까?"


 엄마 윤주에 대해서. 진연이 굳이 하지 않은 말을 바리는 미루어 알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바리는 진연에게 뭔가 얘기해주고자 했다. 자식 있는 부모 맘을 가장 잘 아는 건 같은 처지인 부모일 테니까. 부모 입장에서 바리 자신이 조언해 준다면 진연 또한 뭔가 조금이나마 엄마 윤주에게 아쉬웠던 감정이 풀어지진 않을까 싶었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마녀가 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여기서 이렇게 수다만 떨래, 아니면 직접 가서 확인할래?'

 "……."


 뭔가 결정적인 순간 대화가 끊어졌단 기분에 바리도 진연도 잠깐 기분이 상했다. 자신을 노려보는 두 사람에게 마녀는 태연히 말했다.


 "윤주라면 과연 여기서 어떻게 했을까?"

 "가자."


 망설임 없이 진연이 답했다. 바리가 수긍하면서 몸을 일으키고, 어느새 반려 아가씨도 채비를 마치고 방에서 나왔다. 그들을 둘러본 마녀가 기세 좋게 외쳤다.


 "좋아. 까짓 거, 화끈하게 벌여 보자고. 어디로 가면 돼, 우리는?"

 "아, 그게 실은,"


 바리가 코끝을 만지며 난감해했다. 마녀는 조금 맥이 풀려 상대를 쳐다보았다. 바리가 그들 일행을 안내해 도착한 곳에서, 마녀는 더더욱 힘이 빠진 눈치였다.


 "여기야?"

 "좀 의외죠?"

 "아니, 의외라기보다 이건 뭐랄까."


 난감해진 마녀는 곁에 있던 진연을 보았다. 진연 역시 당혹해하다가 마녀와 바리가 쳐다보자,


 "그, 그러게. 설마 이런 곳일 거라곤 상상도……."


 역시 별 말 하지 못하고 제 옆인 반려 아가씨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나른한 목소리로 반려 아가씨는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를 입에 담았다.


 "폐가네요."

 "응, 폐가네."

 "완전히 버려졌어."

 "그, 뭔가 지적하는 포인트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넘어갈래요."


 일행이 도착한 곳은 모두가 잘 아는 곳, 심지어 진연 또한 낯익은 곳이었다. 마을 초입 가까이 있던 버려진 폐가. 바리를 만나기 전, 진연이 어쩐지 안으로부터 섬뜩한 분위기를 느끼고 골목길 반대편 벽에 붙어 지나가게 한 바로 그 집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겠죠?"


 바리가 먼저 대문 안에 발을 들이밀었다.


 "마치 올 테면 와 보란 식이네."


 마녀도 투덜대며 그 뒤를 따랐다. 진연이 두 사람 다음으로 대문을 통과하며 말했다.


 "근데 왠지 너무 조용하지 않아? '사랑하는 딸'도, 그림자들도 있다면서."

 "여긴 그냥 '문'이라서 그런 거예요."


 반려 아가씨가 답한 것을 바리가 추가로 설명해 주었다.


 "그림자들은 진연 씨나 우리와는 또 다른 세계에서 살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자투리 세계, 틈바구니 세계에서 살죠. 다른 차원이라고 이야기하면 더 알아듣기 쉽나요?"

 "이 집이 문이라면, 어디로 통하는 건데?"


 설명을 듣고 진연이 물었다. 대답한 것은 바리가 아닌 마녀였다.


 "'그림자'들의 심장부. '사랑하는 딸'이 '왕좌'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어."

 "그 말은 즉,"


 맞아. 마녀가 도중에 끼어들었다.


 "사랑하는 딸과 싸울 거야. 왕좌를 빼앗으러."

 "그건 생각해보자 더니?"


 진연이 바리에게 물었다. 바리는 주눅 들어 말했다.


 "상황이 안 좋아요, 진연씨. 여느 때라면 저도 진연씨 말대로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어떤 상황 말야? 대체 무슨 일인데?"

 "그 녀석이 확인했어. '왕좌'는 사랑하는 딸이 가지고 있대."


 진연이 묻자 마녀가 대신 대답했다. 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만이 아녜요. 신부가 자기편을 불러 모으고 있어요. 조만간 이쪽으로 치고들 거예요."

 "이쪽이라면, 우리 집 말이야?"

 "네. 오는 도중에 확인했어요. 이번엔 꽤나 본격적으로 해볼 모양이에요."

 "그럼 역시 돌아가서 집을 지켜야,"

 "아니, 그 반대지."


 진연이 반발해 봤지만 마녀 역시 바리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그 반대라고, 아가씨. 이번 일은 최대한 빨리 끝내야 돼."

 "어째서?"

 "머잖아 '웨딩마치'가 이쪽으로 올 거야."


 진연에겐 뜻밖인 얘기였다.


 "정말이야?"

 "미국에 있던 녀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여기선 신부가, 갑자기 총력전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어. 왜 서두르려 들겠어? 녀석들이 여기, 한국에 상륙할 테니까 그런 거라고."

 "그게 무슨 뜻이야? '웨딩마치'가 뭔데? 왜 신부가 서두르는데?"

 "신부 뒤를 쫓아다니는 괴물 무리들에 대해선 아시죠?"


 바리가 설명을 맡아 물었다. 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뉴스로 봤어. 신부가 끌고 다니는 녀석들이잖아? 신부는 사실 그 유명한 재해의 전조고, 실제 파괴 행위를 하는 건 그녀 방문 뒤에 이어지는 그 무리가 벌이는 거라지?"


 도시든 시골이든, 육지든 바다든 가리지 않는 파괴. 그들이 처음 북해 상에 진출했을 때 유조선, 벌크선 등을 포함해 상선 십 수 척이 반파되거나 침몰했다. 개중에 일부는 진연네 회사 모기업과 관계가 있었고, 대형 컨테이너선 한 척은 진연네 회사에 보상 책임이 확정되어 있었다. 전부 진연이 여기 오기 전, 제 앞에서 울고불고 생난리를 피우던 친구한테서 들은 얘기였다.

 바리는 진연이 알고 있는 사실이 대체로 맞는다고 했다.


 "그건 그렇죠. 아무런 생각도, 의사도 없이 그저 가로막는 것들은 전부 부수고 뭉개 버리는 건 사실 전부 웨딩마치가 벌이는 일이죠.

 다만 신부와 그들과의 관계는, 아마 진연 씨나 다른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과는 많이 달라요. 사실은, 신부가 그들에게 쫓겨 다니는 거죠."


 쫓겨 다닌다? 진연은 더욱 더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괴물들, 우리가 '웨딩마치'라고 부르는 녀석들은 신부를 증오하고, 그녀를 집어삼키려고 그녀를 쫓아다녀요. 그들이 여기에 오는 중이라면, 신부는 최대한 빨리 우리 일을 정리하고 싶어 할 거예요. 그녀에게 있어 최대의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되니까요."

 "어째서 그 웨딩마치는 신부를 싫어하는데?"

 "그들 자신을 낳은 게 바로 신부기 때문이에요."

 "무슨 뜻이야?"


 신부가 '웨딩마치'란 괴물들을 낳았고, 그 괴물들은 바로 그 신부를 미워해 쫓아다닌다고? 바리가 하는 말은 전혀 논리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진연은 좀 더 명확한 설명을 원했다.


 "이상하게 생각되는 거 알아요, 진연 씨."


 난감해하는 건 바리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들 사고가 우리와는 다르다는 걸 이해하셔야 해요. 애초부터 그들은 태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그들 입장에서 신부는, 자신들에게 원하지도 않았던 생명을 휙 던져주고 나 몰라라 떠나버린 것처럼 여겨지는 거죠."

 "낳고 버렸다고?"

 "그게 아니지."


 마녀는 답답하단 듯 한숨을 쉬었다.


 "신부가 낳은 게 아니야. 그 녀석들이 멋대로 태어난 거지. 멋대로 태어나고, 멋대로 앙심품곤 쫓아오는 거야. 지긋지긋할 정도로 끈질기게."

 "잘 아시네요, 경험담이신가?"


 바리가 못마땅한 듯 툭 던지는 말에 마녀는 움찔했다. 그 묘한 반응이 진연에게 힌트를 주었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진연이 말을 걸어오자 마녀는 뜻밖이란 듯 쳐다보았다.


 "너는 어땠어? 태어났을 때 말이야. 무슨 생각이 들었어?"

 "무슨 생각이 들다니? 혹시 방금 얘기 때문에 묻는 거야?"


 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는 빤히 진연을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생기는 있지만 좀처럼 의도를 읽을 수 없는 표정을 마녀는 짓고 있었다.


 "죽도록 싫었어. 뭐 윤주 그 년은, 그런 내색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까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너……. 이기적이네, 기가 막힐 정도로."

 "몰랐어? 마녀란 본래 그런 존재란 걸."


 기가 막힐 정도로 태연스레 말을 받곤 마녀는 앞장서 허름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걸 본 진연은 자연스레 입이 떡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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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크릿> 드디어 20화 돌파입니다!!

 이번 화에선 신부와 웨딩마치 얘기가 나왔습니다. '웨딩마치Wedding March'는 잡다한 괴물들이 펼치는 퍼레이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본문에도 나오지만 이런 괴물들이 전부 신부 자식이고, 자기들을 낳은 신부를 원망해 쫓아다닌다는 이야기인데요. 보시는 것처럼 전세계적으로, 민폐 잔뜩 벌이고 다니는 가족들입니다;

 어쩌다 신부와 웨딩마치 괴물들이 저런 관계가 되었는지는, 차후에 다시 적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힌트를 드리면, 자식들은 모두 부모를 닮는 법이죠. 어느 정도씩은, 다들 마찬가지로요; 그건 저들도 마찬가지겠죠^^;;

 어차피 이들 아니고도 얘기할 가족들은 몇몇 남아 있군요...제일 중요한, 진연과 엄마 윤주 얘기를 포함해서 기타 등등;;
 그건 또 암튼 다음번에 이어할 얘기겠네요. 다음 화엔 진연 일행이 그림자들의 세계, 즉 사랑하는 딸이 지배하는 세계에 돌입하게 됩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또 벌어지게 될지, 기대해 주세요^^;
?
  • profile
    클레어^^ 2011.04.10 00:35

    헉, 결국은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군요...;;

    과연 진연씨와 바리들은 웨딩마치에게서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4.10 03:20

     그렇다기보단, 자기 사정 때문에 발등에 불붙은 신부가 앞뒤 안가리고 덮치기 전에 미리 선수 놓겠다는 거죠..

     웨딩마치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지구상을 떠도는 태풍, 자연재해 수준으로 보셔도 상관없을 거예요. 아무리 강도 높아도 어차피 자연재해는 자연재해일 뿐, 인류 문명을 멸망시킨다거나 하는 정도 힘은 없거든요.


     암튼, 그래서 신부를 부추기고, 진연을 죽이려 한 모양인 사랑하는 딸을 잡으러 갑니다...웨딩마치가 밀려오는 것도, 신부가 엄마 윤주 집에 쳐들어오는 것도 사랑하는 딸이 왕좌를 차지하려는 것보단 상대적으로 위기 정도가 낮거든요.

     결론적으로 지구를 지켜라, 하는 얘기인 건 맞지만, 그 상대가 웨딩마치가 아니라 사랑하는 딸이란 겁니다.


     수정하면서는 이 부분을 좀 더 확실히 해야겠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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