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06 07:10

시크릿Secret(19) - Ch. 8 속죄

조회 수 585 추천 수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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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Secret>


 바리는 오전 내내 돌아오지 않았다.

 분명 저 마녀 탓일 거야. 방 안에 틀이 박혀서 진연은 그렇게 단정 지었다. 지난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부엌에 나왔다가 우연히 바리가 마녀와 얘기하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바리는 뭔가를 계속 캐물었고 마녀는 애써 대답을 회피했다. 그러다 바리가 무언가를 말했고, 뒤이어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대청마루를 가로질러 마당으로 나와 대문 밖으로 사라진 그 발자국 소리가 바리 것이란 걸 깨달은 이유는 단순했다.


 '이제 그만 들어가지 그래?'


 처음부터 마녀는 진연이 엿듣고 있었단 걸 깨달았던 눈치였다. 진연은 엉겁결에 부엌 한쪽에 있던 양동이를 건드렸다. 달그락, 소리가 난 건 그러니까, 진연에게 있어 가장 안 좋은 타이밍에서였다.

 혼비백산 자리를 피해 방으로 들어가 누운 채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날이 밝아오고, 부엌에선 밥 짓는 냄새가 풍겨왔다. 처음에 반려 아가씨가 부르러 왔을 때, 진연은 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후에 그 아가씨가 돌아와 뭐라도 좀 먹어 보라고 말을 걸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상 무시하는 것도 쉽지 않겠구나 했을 때 마침 누군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걸로 벌써 세 번째야. 반려 아가씨라고 생각한 진연은 머리 꼭대기까지 이불을 끌어 덮은 채 상대에게 짜증을 내었다.


 "제발 좀 그냥 내버려둬, 날."


 스스로 생각해도 좀 심하다 싶은 말이었다. 진연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개를 살짝 놀려 곁눈질로 상대를 보았다. 재수 없게도 그녀 시선은 능글맞게 눈웃음 짓는 마녀의 것과 공중에서 마주쳤다.


 "방금 그거 누구 들으라고 한 소리야?"


 바로 마녀는 꼬투리를 잡고 늘어졌다. 진연은 당황해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무언가 이불 아래로 쑥 밀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녀는 더더욱 놀랐다.


 "꺅! 뭐야, 이거?"

 "놀래기는."


 자신이 덮고 누운 이불 아래 마녀가 밀어 넣은 팔을 쳐대느라 진연은 발버둥 쳤다. 마녀는 끈질기게 손을 집어넣어 진연을 괴롭혔다. 할 수 없이 진연은 이부자리를 빠져나왔다. 벽에 등을 딱 붙여 기댄 채, 마녀를 노려보는 진연 눈초리가 제법 매서웠다.


 "뭐 하러 왔어?"

 "반려가 좀 보고 오래서."

 "흐응, 그것 참 뜻밖이네. 남 얘긴 신청도 않는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들어 처먹을 귀는 있거든."

 "그럼 좀 들어나 주지 그랬어!"


 대뜸 진연이 소리를 질렀다. 마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싶은 얼굴이었다.


 "바리, 걔 말이야. 어젯밤에 뭐라고 한 거야? 어째서 집을 나간 거냐고."

 "아, 그거 말야?"


 마녀는 피식 웃었다. 그 행동이 진연을 더 화나게 했다.


 "지금 웃음이 나와?"

 "뭘 그렇게 화내고 그래? 걔에 대해서라면, 난 한 점 흠 없이 결백해."

 "결백하다니?"

 "걘 자기 볼일 때문에 나간 것뿐이야. 나랑은 관계없어."


 마녀 말에 진연은 반신반의했다. 그녀 말대로라면 지난밤 자신이 들었던 건 다 뭐였을까? 틀림없이 바리는 마녀와 얘기를 나눴고, 도중에 잠깐이지만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바리가 마녀에게 화를 내었던 이유는 대체 뭐였을까? 지난밤 일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걸까?


 "아까 네가 그랬지? 바리에 대해서라면, 넌 결백하다고 말이야."

 "응, 그랬지."


 돌연 진연이 화제를 바꾸자 마녀는 더더욱 영문을 모르겠단 듯 굴었다. 진연은 조금 뜸을 들여 마녀에게 물었다.


 "나에 대해서라면 어때?"

 "뭐가?"

 "결백하냐고 묻는 거잖아. 나에 대해서라면 어때? 나에 대해서도 넌 흠 없이 결백할까?"

 "괜히 꼬투리 잡으려 들지 마. 할 말 없으면 갈께."

 "나한테 뭐 감추는 거 없어?"


 뭔가 눈치 챈 진연이 마녀에게 직구를 던졌다. 마녀는 인상을 살짝 구겼다. 진연은 한 발 더 나아가 마녀에게 따지고 들었다.


 "적어도 나에 관한 일이라면, 내게도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지 않아? 본인이잖아."

 "특별히 할 말 없어."

 "엄마에 대해 뭔가 숨기고 있지?"

 "네가 알 바 아니야."

 "내 가족에 관한 일이야. 나와 관계없는 얘기가 아니라.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거잖아, 그런 건."

 "당연한 건 없어. 당연한 건."


 마녀는 대뜸 딴 소리를 했다.


 "내게 있어선 이 세상에 있는 것조차 당연한 일이 아니야. 너를 보호하는 것도, 당연히 그래야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윤주 그 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거고. 신부나 그 귀신 딸내미하고 싸우는 것도 그것들이 널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라서 할 수 없이 맞붙는 거지."

 "그게 지금 무슨 상관있어?"


 상관이야 있지. 마녀가 대답했다.


 "상관이야 있고말고. 윤주 걘, 널 보호해 달라고 말했지 뭘 가르쳐 주라고 한 적은 없거든."

 "뭐라고?"

 "진짜 당연한 건 말이야, 인위적이거나 작위적이지 않단 거야. 내가 여기 있는 것도, 너를 보호하는 것도, 그들과 싸우는 것도 원래는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지. 네 엄마, 아니지, 우리 위대하신 엄마만 아니었으면 애초부터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니까.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그러면 다른 녀석한테나 물어보지 그래? 당연한 경우였다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내게 답을 바라지 말고."

 "저기 말이지……."


 진연이 뭔가 말을 걸려 했다. 마녀는 그녀가 아예 입을 열지도 못하게 말을 가로막았다.


 "난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죄를 짓는 존재야. 이미 지은 죄에 또 다른 죄를 더할지 말지 결정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야, 너나 다른 녀석들이 아니라. "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마녀는 등을 돌려 방을 나왔다. 대청마루를 가로질러 마녀는 곧장 안방으로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 반려 아가씨가 앉아 있긴 했지만 마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정좌하고 앉아 그녀는 TV 화면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선 흡사 테러 현장이나 전쟁지대처럼 부서진 건물들과 처참한 몰골을 한 사람들이 연이어 나왔다. 해설을 하는 아나운서 목소리는 다소 격양되어 있었다.


 "속칭 웨딩마치, '신부'를 따라다니는 정체불명의 무리는 미 동남부를 휩쓸고 중부 대평원 지대를 향해 계속 북서진하며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 백악관은 오늘 긴급 기자 회견을 소집, 향후 전망과 정부 대응에 대한 브리핑을 실시했습니다……."

 "젠장."


 구석에 풀썩 주저앉아 마녀는 TV 전원을 껐다.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당연히 신경쓰고 걱정해야 돼? 그딴 녀석을 누가! 마녀는 낮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꺼진 TV 화면에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반려 아가씨는 어째선지 시선을 그대로 둔 채였다.
 젠장, 마녀는 다시 한 번 나직이 읊조렸다. 이 세상에서 저주받을 자식이자, 저주받을 자식의 연인, 저주받을 자식의 어머니로서 그 정도 불만 터트릴 자격은 충분치 않느냐고 자조적으로 물으면서.

 그 같은 조소는 마녀에겐 사실 제법 잘 어울려 보였다.


 =============

 시크릿 19화, 8장 첫 화입니다.

 조금 뜬금없긴 하지만, 그동안 얘기된 적 없었던 웨딩마치, '신부'를 따라다니는 무리들에 대해 언급이 나왔네요. 어차피 얘네들은 이 이후론, 최소한 8장 내에선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신부'가 다시 등장하는 것도 한참 후이거든요; '웨딩마치'에 대한 얘기는 그 때 가능하면 풀어보려고요; 아마 마녀와 신부의 관계도 그 때 가서 다시 이야기하게 되지 싶습니다;;

 8장, 속죄는 이전까지 나왔던 인물들, 마녀며 반려며 바리, 진연의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사랑하는 딸'이 새로 등장하고요. 제목에 걸맞는 내용을 쓰려고 하긴 했는데, 분량이 늘어나면서 제대로 통제못한 감도 없지 않네요;; 암튼 그건 차차 연재하면서 확인해볼 일이니까....

 뭔가 요즘 자꾸 싱숭생숭 합니다. 봄을 타는지...아무쪼록 다른 분들은 저처럼 늦게사 봄 타는 일 없길 바라요^^;
 좋은 밤 되세요 ㅎㅎ
?
  • profile
    클레어^^ 2011.04.07 07:16

    마녀씨, 어서 불지 그러셔요? 진연씨 화 나면 무서운 사람이니까.

    참 오랜만이에요^^ 전 역시 진연이란 이름하면 그 빼빼로 집 만들어 선물해 준 그 동창이 먼저 생각납니다.

    윤주님은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나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4.07 07:54

     부족한 글 계속 보면서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쎄요...떠오른 대로 지은 이름이라 특별히 생각나는 건 없네요;; 굳이 생각나는 거라면, 클레어님 소설 속 주인공 정도일까요? 이름이 비슷해서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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