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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래? 당연하잖아, 그렇게 하는 게."

 "그건 니 생각이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었어?"

 "티끌만큼도 생각해본 적 없는걸요, 그런 거."


 바리와 진연이 번갈아 부정적인 답을 내었다. 마녀는 묘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명백히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그런 시선이었다. 진연이 먼저 울컥 마녀에게 화를 냈다. 


"아니, 그럼 사람들이 전부 너같이 무모하고 막나가는 인종인 줄 알고?"

"그래, 실수였단 건 인정할게. 내가 너무 너희를 과대평가했던 것 같네."


 무슨 말이냐고 묻는 진연 목소리가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대답하는 마녀 태도는 놀랄 만큼 태평했지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잖니? 우린 겨우 넷이지만 상대는 적게 잡아 수십 명이야. 상대는 우리가 원하는 걸, 왕좌를 가지고 있지. 우리가 그들이 원하는 걸 가진 것처럼."


 너 말이야, 하면서 마녀는 진연을 가리켰다. 진연은 마녀가 자신을 왕좌와 마찬가지로 물건 취급하는 것 같아 그렇잖아도 언짢았던 기분을 완전히 잡쳤다.


 "그러니까 우리 쪽에서 공격해 들어가는 게 당연하잖아? 수적으론 불리하고, 너 외에 딱히 잃을 게 있는 것도 아닌데 여기 자리나 지키고 있어봐야 득 될 게 없잖니? 시간과 장소는 공격하는 쪽 편인 거 알지?"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단 얘긴가요?"


 바리 말에 마녀는 무릎을 쳤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이제야 얘기가 통하네. 바리 태도가 조금 누그러진 것처럼 보여서 진연 역시 덩달아 마녀 제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척해야 했다. 비록 마녀 말이 여전히 그녀 자신에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조금만 더 서로 생각해보죠."


 진연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바리가 먼저 마녀에게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속으론 고마워하면서도 진연은 겉으로 태연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무슨 꿍꿍이였는지 마녀 역시 순순히 바리가 꺼낸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녀 저 여잔 그럴듯한 이유를 내건 것뿐이야. 너도 알지?"


 마당으로 나온 바리를 뒤따라나와 진연은 대뜸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진연이 무슨 얘기를 할 지 미리 알았다는 것처럼 바리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진연의 말을 경청했다.


 "그럴듯하게 들린단 건 나도 인정해. 여기 있던지, 우리가 저들에게 가던지 내 한 몸 지키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란 것도 잘 알아. 하지만 왠지,"

 "왠지 마녀를 믿기가 어렵단 말이죠?"


 바리는 정확하게 진연이 하려던 얘기를 집어냈다. 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리는 솔직하게 제 심정을 털어놓았다.


 "실은 저도 그래요. 아니, 누구라도 그럴 걸요? 저 마녀가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 앞에서 순수했던 적 있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저 여잔 분명 싸우고 싶어 하는 거야."

 "아마도 왕좌도 자신이 가지고 싶어 하겠죠."


 바리가 태연히 하는 얘기에 진연은 깜짝 놀랐다. 마녀가 왕좌를 바란다고? 분명 바리는 진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진연이 왕좌를 구하도록 도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마녀뿐일 거라고.


 "왕좌를 갖길 바라 마지않는 그녀가 어떻게 왕좌를 되찾는 걸 도와준단 말이야?"


 진연은 보다 목소리를 낮춰 바리에게 물었다. 바리는 난처한 듯 보였다. 진연과 마녀 사이에 끼인 자신의 처지를 난처하게 생각한 다기보단, 진연에게 어떻게 제 생각을 전해야 할지를 두고 난처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해되지 않으실 걸로 알아요. 그녀는 분명 진연에게 그렇게 말했다.


 "진연 씨에게 왕좌를 가져다줄 사람은 마녀밖에 없어요. 그건 분명해요. 간절히 바라는 사람밖엔 얻을 수 없는 물건이니까요."

 "네 말이 맞는다고 쳐. 그래, 마녀가 왕좌를 빼앗아낼 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녀가 내게 그걸 고스란히 가져다줄 리 없잖아?"

 "그건 걱정 마세요."


 바리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진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그녀가 그렇게 웃는지 진연은 이해하지 못했다. 바리는, 그런 진연을 위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 마녀에게 그건, 우승 트로피 정도 의미밖엔 없을 테니까요."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진연은 묻지 못했다. 질문하려던 찰나, 집안에서 누군가 인기척을 내었고 금방 마당으로 누군가가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다행인지, 마당으로 내려온 건 마녀가 아니라 그녀의 반려란 젊은 여자였다.


 "시골 동네라 날이 많이 춥죠?"


 바리와 진연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평범해 보였다. 바로 그 날 칼을 휘두르고 적을 베던 사람과 동일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였을까. 물어온 말에 대한 형식적인 대답 대신 진연 입에서 나온 건 마녀와 반려 여자 사이에 대한 질문이었다.


 "대체 저 마녀와는 무슨 관계인 거예요. 그러니까, 아가씬?"


 성숙해 보이는 인상 탓일까. 무심코 진연은 반려 여자를 '아가씨'라고 불렀다. 그날 이후 줄곧 그대로 굳어져 바뀌지 않을 호칭이었다.


 "신랑이 얘기하지 않던가요?"

 "신랑?"


 반려 아가씨가 이야기하는 '신랑'이 마녀를 의미한다는 걸 진연이 알아듣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그럼 정말, 마녀랑 사귄단 말예요? 아가씨가?"

 "단순히 사귀는 사이에 '신랑', '반려' 하고 부르진 않잖아요?"


 안 그래요, 하고 묻는 건 진연 곁에 있던 바리였다. 반려 아가씨 얼굴은 불에 달군 듯 붉어졌다.


 "그건, 뭐랄까. 혼인한 뒤로 신랑이라고 부르란 얘기는 들었지만, 저한텐 과분한 얘기고…….근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랑 부탁이라서, 꼭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서."

 "혼인이요?"


 반려 아가씨 말을 듣고서 진연은 어째선지 소름이 쫙 돋았다. 마녀가 봤으면 분명 고리타분한 녀석이라느니 했겠지만 선한 얼굴을 한 반려 아가씨마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리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진연은 반려 아가씨에게 물었다. 처음 만나 소개받았을 때 마녀에게도 묻고 싶었지만, 낌새를 귀신같이 눈치 챈 마녀가 선수를 친 탓에 입 밖에 내지도 못했던 바로 그 의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여자잖아요."


 쿡쿡, 그 말을 듣자 반려 아가씨가 웃었다. 진연은 어리둥절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하지만 그게 어때서요?"


 웃기를 겨우 멈춘 후 반려 아가씨는 그렇게 말했다. 입가엔 아직 미소가 여전히 걸려 있었다. 진연이 뭐라 대꾸할 말을 찾기 전에 먼저 입을 연 것도 그녀였다.


 "죄송해요. 불쾌하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얼마 전 기억이 문득 떠오른 것뿐인걸요. 그 때도 진연 씨처럼 물었던 사람이 있어서."


 괜찮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연은 떨떠름한 기분이 되어 반려 아가씨를 보았다. 종잡을 수 없는 여자였다. 차분한 분위기에 모험 따윈 결코 하지 않을 순진한 얼굴로 마녀와 혼인하고 칼을 휘두르는 그녀를 진연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녀의 반려인걸까? 진연은 어째서 그녀가 마녀와 관계 맺었는지 궁금했다.


 "어째서 저 여자예요?"

 "혼인 말인가요?"


 진연이 머리를 끄덕였다. 대답할 말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반려 아가씨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어째서 저와 신랑이 혼인했는지 물으시는 거냐면, 저보단 신랑에게 물어보는 편이 나을 거예요. 전 선택받은 거지 선택할 만한 입장이 아니었으니까요."

 "선택할 입장이 아니었다뇨?"

 "진연 씨, 전 신랑에게 구원받은 거예요."


 반려 아가씨 목소리는 환희에 차서 조금 떨리고 있었다.


 "신랑을 위해서라면 전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목숨조차 아깝지 않아요. 신랑이 아니었으면 어차피 없었을 그런 목숨인걸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계속 질문만 던지는 건 한심해 보인다. 거듭 반려 아가씨에게 그녀 자신에 대해 물으며 진연은 점점 더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린아이는 좋겠어. 뭐든 신경 쓸 필요 없이 내키는 대로 묻고 내뱉을 수 있으니까. 엄마에 대해서건, 마녀나 바리, 반려 여자가 사는 세상에 대해서건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은 사실상 어린아이나 다를 바 없는데도 어린아이가 아닌 척 체면치레해야 한다. 아는 것도 모르는 척, 모르는 것도 아는 척 꾸미는 게 진연으로선 스트레스 꽤나 받는 상황이 아닐 리 없었다. 더군다나 이 인간들은 하나같이 애매모호한 말밖에 할 줄 모르지 않던가.

 반려 아가씨가 던진 대답만 해도 그랬다.


 "신랑이, 그녀가 자기 심장을 나누어 줬어요. 다시 한 번 살아날 수 있도록, 제가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요."


 심장을 줬단 게 무슨 뜻일까? 다시 한 번 살아날 수 있도록, 이라니? 마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반려 아가씨는 이미 묘한 흥분에 들떠서 진연에게 무아지경으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전 버려진 기사, 과거의 유물일 뿐인데, 믿어준 사람들 어느 하나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잊힌 시체였는데, 신랑이 그런 저를 되살려 줬어요. 자기 심장을 쪼개서 제게 주었고, 나중에 온전한 심장까지 구해 주었죠. 신랑은 생명의 은인이에요. 은인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그건 부부가 아니잖아요."


 상관없어요, 하고 반려 아가씨는 답했다.


 "그런 건 상관없어요. 전 신랑에게 은혜를 갚고 싶고, 그러려면 신랑 가장 가까이에 제가 있어야할 뿐이에요. 만약 그녀가 절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면, 그러면 전 아무 미련 없이 그녀를 떠날 수 있어요."


 마지막에 그녀가 한 얘기에 진연은 어쩐지 소름끼쳤다. 여전히 반려 아가씨와 마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반려 아가씨의 이야기에서 사실과 은유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진연이 이해한 것은 반려 아가씨가 지독히 낭만적이자 맹목적인 노예이자 포로라는 사실이었고 마녀가 순진한 그녀를 제멋대로 이용하고 있다는 정황증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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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크릿> 17화입니다.
 컴퓨터도 고치고, 작성중인 <시크릿> 진도도 어느덧 2/3 가량이 되었습니다. 오늘 8장을 끝까지 써서, 남은 건 9장부터 12장까지 네 개 장 뿐이네요. 4월달엔 좀 더 속도를 붙이고 싶은데 어쩔지는...

 지금 연재중인 7장은 진행 속도도 느리고 주요 이벤트도 없어서 쉬어가는 파트라고 생각합니다. 7장 연재를 마치고 넘어가는 8장은 이제껏 연재한 분량의 절반 조금 넘는 양이고, 치고박는 장면도 많아서 아마 저도 쓰면서 횡설수설한 부분이 많을 거 같네요;; 매번 올리기 전 간단하게 검토해보지만, 일단 초고 완성시키는 게 목표라 부족한 점 적지 않을 거예요;

 그런고로,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이상한 점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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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1.03.31 06:48

    마녀와 반려의 사이가 드러나는 군요...;;

    즉, 반려 여자는 마녀를 생명의 은인이라 하여 자기가 마녀의 수호자이자 파트너로 평생을 살겠다는 의미일텐데...

    (어찌 마스터와 가디언 같은 느낌이...)

  • profile
    윤주[尹主] 2011.03.31 07:28

     그런 관계에요, 두 사람은. 수호자이자 파트너. 괜찮은 표현같네요^^


     약간 다르다 할 수 있는 건, 마녀 태도겠죠. <삼인삼색>에서 다뤘지만, 마녀는 '딱히 네가 필요한 건 아닌데, 보기 재미있으니까 곁에 둔다'는 식으로 반려 여자를 대합니다. 그것까진 뭐 <시크릿>에서 다룰 필요 없는 얘기같아서 따로 적진 않았을 거예요, 아마도;;


     암튼 결론은 결혼했다는 마녀와 반려 두 사람 관계가 정상적이진 않아보인다는 정도일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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