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11 20:34

마법소녀 공인 1급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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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그건 역시 방전 현상이었던 걸까?"


 커피숍 안에서 한 소녀가 넷북으로 웹서핑을 하고 있었다. 머리는 양 갈래로 모아 묶었고, 귀여운 인상인 얼굴엔 아직 어린 티가 묻어났다. 거기에 인근 교대부속 초등학교 교복 차림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5, 6학년쯤 되려나? 모니터를 쳐다보면서 그녀는 무심코 테이블에 놓인 커피 잔을 집어 들었다. 빨대에 입을 대려는 순간, 누군가 그녀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넌 자기가 뭘 한 줄도 몰라서 이제와 찾고 앉았니?"

 "아, 예진 언니."


 머쓱한 듯 헤헤 웃는 소녀를 예진은 온화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녀는 손을 들어 소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자상한 손길에 소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어쩐지 손이 허전해졌다 싶어 눈을 떠보니, 예진이 제가 방금 전 마시려던 커피를 든 게 눈에 띄었다.


 "어? 어라?"

 "커피 마시면 안 좋다고 내가 말했지? 한창 성장기인 애가 이런 거 마시면 어쩌자는 거야?"

 "헤헤헤, 그래도."

 "그리고 네 건 저거."


 소녀가 앉은 자리 맞은편에 놓인 스무디를 가리키며 예진이 말했다.


 "이건 언니 거잖아. 자, 슬슬 내 넷북도 돌려주지 않을래?"

 "피, 알았어요."


 소녀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맞은편 자리에 가 앉았다. 쀼루퉁한 얼굴로 스무디에 꽂은 빨대를 입에 문 그녀를 보며 예진은 미소를 지었다. 참 평화로운 오후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근데, 언니. 이러고 있어도 돼요? 야자는요?"


 조금 지나 소녀가 예진에게 물었다.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던 예진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오늘은 땡땡이칠래. 어차피 다들 형식적으로 자리만 지키고 있는 거, 지루하기만 하고."

 "우응, 그치만 언니도 이제 수험생이잖아요. 성적 관리도 해야지, 수능 준비도 해야지. 제 친구 언니는 논술 학원도 다닌대요. 원래 10시까지 야자 끝나면 곧바로 학원에 갔는데, 내년부턴 11시까지 야자를 하니까, 주말 반으로 바꾼다던데요?"

 "그런 건 천천히 할래. 지금은 일단 눈앞에 닥친 일만 신경 쓰려고."


 틱틱, 몇 차례 키보드를 두들기던 예진 손이 멈췄다. 그녀는 조금 주위 눈치를 살피다, 소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근데 그 친구란 거, 레이디 큐어말야?"

 "아뇨, 걔 말고 다른 친구에요. 마법소녀 말고, 그냥 평범한 애."


 소녀 말에 예진은 그렇구나, 하고 건성으로 답했다. 틀림없이 다른 생각을 하는 거야. 소녀는 잠자코 예진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뭔가 고민하는지 살짝 찡그린 얼굴엔 얕은 주름살이 패었다. 한참 후 예진이 소녀에게 물었다.


 "걔는, 레이디 큐어는 좀 어때?"

 "걱정 마세요. 걘 건강 빼면 시체니까. 여전히 팔팔하죠, 뭐."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는 소녀가 답했다.


 "오히려 제가 걔 남아도는 기력 좀 빌렸으면 싶다니까요. 세상에, 오늘 걔가 또 무슨 사고를 쳤는지 아세요? 요전번 애들이랑 같이……."


 소녀의 이야기는 그 후로 한참 동안 이어졌다. 예진은 질린 기색 없이 그 얘기를 전부 들어 주었다.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예진은 생각했다. 소녀를 위해, 또 자신의 친구를 위해 그녀는 소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 저희 언니는요? 잘 지내고 있나요?"


 한참을 떠들던 소녀가 갑자기 풀이 죽어 물었다. 예진도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이윽고 그녀는 소녀에게 억지로 미소 지어 보였다.


 "응. 잘 지내, 하린인. 언제고 한 번 연락 주라고 할게."

 "괜찮아요,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소녀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곤 말했다.


 "언니 맘 풀릴 때까진 아무 말 하지 않고 내버려두셨으면 해요. 기분 풀리면 언니도 다시 집에 들어올 테고요, 그러니까……."

 "……."

 "언니 좀 잘 부탁드릴게요. 예진 언니."


 소녀 말에 예진은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성실하고 자상한 아이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 심지 굳은 아이에겐 결코 자기가 경험한 것과 같은 배신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소녀가 상처 입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내가 뭘.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채린아."


 임채린, 핑크 엔젤이란 예명을 가진 마법소녀 앞에서 예진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 자기 모습을 소녀에게 보일세라 그녀는 한동안 고개를 떨어뜨린 채 채린 시선을 피했다.






 "빌딩 근처로 언니가 다가갔을 때, 푸른 번개 줄기 같은 게 건물 쪽으로 빠져나가는 걸 봤어요."


 어느새 화제는 지난날 사건에 대한 걸로 바뀌어 있었다. 채린은 자신이 기억하는 그대로를 예진에게 설명했다.


 "언니는 마력을 번개 형태로 바꾸어 흘려보낸다고 했었죠? 그걸로 그 마력 덩이를 조종한다구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언니가 마력 덩이를 조종하기 위해 흘려보내는 마력을 무언가가 훔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찾은 게 피뢰침이었어?"


 예진 말에 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피뢰침하고 안테나 따위가 번개 형태가 된 언니 마력을 빨아들이고 있었어요. 어쩌면 피뢰침이나 안테나 따위가 많이 있어서 언니 마력을 좀 더 빼앗아낼 수 있다면, 조금만 언니와 마력 덩이 사이 거리를 벌려 놓아도 통제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거죠."

 "통신 탑으로 유인한 것도 그래서였고?"

 "거기라면 피해도 조금이나마 덜 입히고 끝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야기를 들으며 예진은 그 날 사건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레이디 큐어를 뒤쫓아 통신 탑까지 다가간 그녀는, 옆에서 무언가 강한 마력이 분출되는 걸 깨닫곤 황급히 몸을 뒤로 피했다. 핑크 엔젤, 채린이 자신을 겨냥해 마력포를 쏘았다고 그녀는 생각했지만 정작 날아드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채린이 쏜 건 일종의 공포탄, 허세만 좋은 공포탄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상황은 채린이 원하는 대로 전개되었다. 예진이 번개 형태로 방출한 마력은 마력 덩이로 향하지 않고 가까운 안테나와 피뢰침, 통신 탑 자체로 흘러들었다. 통제력을 잃은 마력 덩이는 거기서부터 일직선상으로 날아 허공으로 향했다. 문제가 일어난 건 통신 탑에서였다. 예진이 방출한 마력을 충분히 다 땅으로 흘려내지 못한 통신 탑이 과부하를 일으키면서 축적된 마력이 폭발적으로 역류했던 것이다. 역류한 마력은 적과 아군 가릴 것 없이 사방으로 방출되었다. 다행이도 피해를 입은 건 깜짝 놀라 도망치려다 통신 탑 철골에 머리를 들이박고 기절한 레이디 큐어 혼자뿐이었다. 역류 조짐이 보이자마자 예진과 채린은 그 자리를 떠나 화를 피했다.


 "결과적으로 다 잘 됐잖아. 그치?"

 "휴대전화만 다시 원상 복구된다면 말예요."


 TV를 보면서 채린은 한숨을 쉬었다. '휴대전화 일부 불통'이라는 문구가 화면 하단에 흐르고 있었다. 그걸 보던 채린이 예진에게 말을 걸었다.


 "만약 제가 그런 거 친구들이 알면 죽이려 들겠죠?"

 "잘 숨기면 되지. 지금까지처럼."


 고민하는 채린을 보며 예진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었다. 이럴 땐 아직 어린애구나 하는 걸 실감하게 된다.


 "채린아."


 그녀를 바라보던 예진이 문득 말을 걸었다.


 "고민하게 놔둬서 미안해. 진작부터 마법소녀 따위 되지 말라고 널 설득했어야 했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건 역시 내 욕심 탓이었는지도 몰라. 널 상처 입혀서라도, 원하던 목표를 이루려던 이기적인 욕심 말야."

 "그런 소리 마세요."


 자책하는 예진을 채린이 두둔했다.


 "언니는 잘못 없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요, 뭐."

 "그렇지만……."

 "언니. 언니는 제가 마법소녀가 된 게, 정의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가짐 탓이라고 했죠?"


 전날 기억을 떠올리며 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얘길 듣곤 생각해 봤어요. 대체 내가 무엇이든 하면서까지 지키려는 정의란 게 뭔지. 언니는 제 정의란 게 정부에서 세뇌시킨 결과라고 했지만, 그건 아니라고 봐요. 마찬가지로 언니 목표를 위해서 제가 희생하는 것도 아녜요. 전 사회나, 언니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게 아녜요. 제가 좋아서 하고 있는 것뿐예요. 하고 싶어서 하는 거고, 지키고 싶어서 지키는 거예요."

 "……."

 "전 언니도, 이 세계도 반드시 지켜 보일 거예요."


 언뜻 채린의 눈이 반짝이는 걸 보았다고 예진은 생각했다. 그만큼 열의에 차서 말하고 있는 걸까? 지금 눈앞에 있는 이애는?


 "그러기 위해서 딴 걸요. 이 자격증은."


 지갑 속에서 마법소녀 자격증을 슬쩍 내보이며 채린은 예진에게 윙크를 하였다. 예진은 또 한 번 고개를 떨어뜨렸다.


 "자, 이제 저도 슬슬 학원 가볼게요. 언니도 공부……."


 뭔가 말하며 채린이 일어서려던 찰나, 채린의 가방 속에서 휴대전화가 시끄럽게 울렸다. 채린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예진에겐 낯선 남자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네? 그럴 리가. 지금 이게 오늘 처음 벨소리 울린 건데요? 네. 아, 그랬죠. 통신 탑이……. 어쨌든 지금 당장 오라구요? 저 지금 막 학원 가려던 참이라구요!  …피,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네~,"

 "일이야?"


 채린이 전화를 끊자 예진이 물었다. 채린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소녀, 정의와 사랑을 지키기 위해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봐요, 예진 언니."

 "기왕이면 이 차림으로 만날까?"


 자신의 교복 치맛자락을 가리키며 예진이 물었다. 채린은 배시시 웃으며 그 말에 답했다.


 "악역일 때 바지 차림도 잘 어울리지만요. 히힛."


 손을 흔들어 보이곤 채린은 가게를 빠져 나갔다. 그 모습이 사라지기까지 예진은 그녀 뒷모습을 죽 지켜보았다. 마법소녀로서 지켜야 할 정의를 스스로 찾아내었다는 그녀는 어쩐지 눈부시도록 빛나 보였다.

 그런 그녀를, 자신들의 어설픈 정의를 지키는 데 이용하려는 인간들을 예진은 도저히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바꾸어 놓겠어. 앞으로 1년도 채 안 남았지만, 채린이나 다른 애들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할 거야. 어쩌면, 목숨을 걸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눈을 감고 예진은 속으로 하린과 선비를 불렀다. 먼저 응답한 건 가까이에 있는 선비였고, 하린도 곧 그녀 부름에 대답을 해 주었다. 두 사람에게 예진은 지시를 내렸다.


 '채린이, 아니 핑크 엔젤이 출동했어. 하린이가 적당히 상대하면서 시간을 끌어줘.'

 '세 명 다 나가는 게 아니고?'


 선비 질문에 예진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갈 곳은 따로 있어.'


 넷북에 띄워 올린 사진을 보면서 예진이 말했다. 새로 지은 듯 깔끔한 3층 건물 전경과 부근 위성사진이 그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예진이 찾아낸 정보엔, 마법소녀에 대한 관리감독 및 연구가 이루어지는 한 정부출연연구기관 부속건물인 듯했다.


 '통신 탑이 망가져 마법소녀 비상연락망을 제대로 운영하기 힘들 거야. 지금 아니면 습격할 기회는 달리 없어.'

 '계획은?'

 '가면서 설명해줄게.'


 자리에서 일어나 예진은 계산대로 향했다. 그녀가 나가고, 빈 테이블엔 두 개 잔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또르르륵. 스무디를 담았던 빈 잔에 맺혔던 이슬이 잔 표면을 굴러 떨어졌다. 물기는 마치 눈물 자국처럼 테이블 위를 촉촉이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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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여놓은 이야기가 제대로 봉합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암튼 <마법소녀 공인 1급> 이것으로 마칩니다.
 제목 탓인지, 예상외로 많은 분들이 봐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별 의미는 없는 뻘글이었는데 말예요;; 보시는 동안 재미라도 있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재미라도 있으면 그나마 본전은 건진 기분이 드니까요;;

 이 소재로 장편 쓰기엔 제 역량도 부족하고 손봐야 할 설정도 많아 어렵지 싶습니다. 여기서 이어지는 과거 얘기, 미래 얘기 등을 다룬 단편이라도 써볼까요? <마법소녀 공인 2급> <...3급> 이런 식으로요 ㅎㅎ

...죄송합니다, 농담이었습니다;

 이 글 쓰면서 참고로 적었던 메모를, 오늘이나 내일쯤 대충 정리해 올려 볼게요. 얼마 안 되는, A4 1페이지나 채울까 싶은 거긴 합니다;; 내용 보시면서 아쉬웠던 점들은, 그걸 보시며 '이 인간이 이런 생각으로 글을 썼구나' 하면서 조금이나마 채우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원래 설정따위 따로 공개 안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재미삼아 쓴 글이니까요. 머리 복잡하게 생각 안하렵니다 ㅎㅎ

 또 뭔가 생각나면 그때 글로 뵙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요, 시험보는 분들껜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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