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08 03:22

<마법소녀 공인 1급>(1)

조회 수 644 추천 수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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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수고하셨어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물을게요.'


 면접관의 입에서 과연 무슨 말이 떨어지려는 걸까. 소녀는 다소 쭈뼛대며 긴장 역력한 얼굴로 뒤이어질 질문을 기다렸다. 면접관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책상 위에 놓고 긴장한 소녀에게 싱긋 미소를 보여 주었다. 이어서 그녀가 물은 건 아주 간단한, 이 시험의 응시자라면 누구나 반드시 답해야 하는 질문이었다.


 '당신 생각에 정의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건가요?'

 '그건…….'






 "무~슨 생~각 해~, 예진아!"


 왁, 소리를 지르며 여자는 예진을 확 밀어버렸다. 두 다리를 모아 끌어안은 채 앉아 있던 참이었다. 평지라도 그렇게 밀리면 무릎에 코를 찧기가 십상일 것이다. 하물며 예진은 제법 경사진 곳에서 경사면 아래를 향해 걸터앉은 채였다. 자세가 무너지며 그대로 앞으로 데구루루 구르려는 걸 예진은 간신히 균형을 잡아 버텼다.

 뒤돌아보니 상대는 속없이 낄낄대며 예진 등 뒤에 그대로 있었다.


 "뭐야, 이런 데서 위험하잖아! 굴러 떨어지면 어쩌려고."

 "미안미안~. 그치만 멀쩡하잖아. 결과적으로."

 "그러기에 망정이지. 여기 30층 빌딩 옥상이거든?"


 자신들이 있는 사각뿔 모양 옥상 아래 거리를 가리키며 예진은 말했다.

 빽빽이 늘어선 마천루 사이사이 바둑판 모양으로 그어진 도로 위엔 정체를 맞은 차량들로 가득했다. 출퇴근 시간은 아니었다. 원래도 통행량은 적지 않았지만 교통 흐름은 비교적 원활한 곳이었다. 다른 때처럼 도로가 멀쩡한 상태였다면 교통 정체가 일어날 곳은 분명 아니었다. 갑작스레 차들이 몰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건 도로 상태가 평소와는 뭔가 조금 달라진 탓이다. 예컨대 산더미 같은 컨테이너박스 무더기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도로 한복판에 쌓인 지금 상황처럼.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예진과 티격태격하는 이 여자, 임하린이다.


 "피, 어차피 떨어졌어도 다시 기어 올라왔을 거면서."

 "뭐라고?"

 "참아, 예진아. 하린이도 그만둬."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려 나선 건 또 한 명의 여자였다. 살짝 웨이브를 넣어 풍성하게 부풀린 긴 머리칼을 그녀는 막 뒤로 모아 넘겨 한 갈래로 묶으려 하고 있었다. 능숙한 손동작을 쳐다보던 하린이 퉁명스레 내뱉었다.


 "그냥 나처럼 숏 컷으로 잘라버려. 시원시원하고, 귀찮지도 않고."

 "안 돼. 남친한테 잘 보여야 되거든? 만년 솔로인 누구랑은 달라서."

 "치, 잘난 척 하고는. 윤선도 주제에."


 하린이 하는 말을 듣자마자 머리칼을 매만지던 여자 손길이 흠칫했다. 입이 샐쭉대는가 싶더니 여자는 돌연 하린에게 폭풍 같은 말을 쏟아냈다.


 "누, 누, 누가 윤선도야, 윤선도는! 꺅! 임하린, 너 나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그거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면서 일부러 그러더라? 하여간 기집애가 섬세한 맛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성질머리 안 좋은 건 알아줘야 한대두, 아무렴."

 "야, 말은 바로 해라. 성질 더러운 건 너지, 이 기집애야. 그리고, 그렇게 안 부르면 뭐라고 불러줄까? 이름에 성까지 붙여서 윤선비, 라고 해줄까? 성은 떼고 그냥 선비, 라고 부를까? 네 이름이 맘에 안 드는 걸 날더러 어쩌란 거냐고?"

 "아, 몰라! 하다못해 이상한 별명으론 부르지 말란 말야, 이 싸움닭아!"

 "내가 왜 싸움닭인데!"

 "모르겠으면 그 잘난 머리 갖고 잘 생각해 보셔! 흥, 지 이름은 뭐 얼마나……."

 "야! 자꾸 남 이름 닭집이랑 연관 지을래!"


 금방이라도 머리채 쥐어 잡을 기세로 하린과 선비는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그 둘을 보며 예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상대방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두 사람은 내버려두곤, 예진은 먼 하늘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그런 그녀 눈에 무언가가 들어온 것은.


 "둘 다 이제 그만해."


 그것을 보자 예진은 곧바로 하린과 선비를 말렸다. 방금 전까지 죽일 둥 살릴 둥 하던 두 사람은 예진이 입을 열자 곧바로 잠잠해졌다. 항상 티격태격하긴 해도 어쨌든 10년 지기 세 사람이다. 성격도 외모도 전혀 다른 그녀들도 10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지금이 진지해야 할 타이밍인지 장난 걸어야 할 타이밍인지는 눈치로도 깨달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세 사람은 예진이 입을 열기도 전 이미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을 함께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오네, 걔네들."


 아득히 먼 거리에서 다가오는 물체를 알아보곤 예진은 입에 미소를 뗬다. 보통 사람이라면 형체라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진 거리다. 호주머니에서 예진은 검은 가죽 장갑을 꺼내어 끼었다. 멋을 부리는 건 아니었다. 도중에 손이 더럽혀지면 나중에 집에 가서 변명할 말이 없어서다. 장갑 외에도 세 사람이 몸에 걸친 모든 것이 멋과는 관계없이 실용적인 목적에서 선택되어 있었다. 일부러 시내외 고등학교 교복 가게를 돌아보며 치마 아닌 바지로 된 여자 교복을 찾아다닌 것도 그렇다. 움직일 때 덜 신경 쓰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신분을 위장하는 효과도 있다. 하린이 든 필드하키 스틱도 마찬가지다. 시내 M여고 하키팀 선수가 쓰던 걸 하린이 슬쩍했다. 처음 그녀들이 알려졌을 때, TV에선 당연히 하린이 든 하키 스틱을 주목했다. 결과적으로 죄 없는 M여고 하키 팀 선수들이 한동안 그녀들 대신 의심을 샀다. 고등학교 여자 하키 팀이 있는 여학교는 이 근방에서 M여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복장은 단순히 행동하기 편한 장점만 있는 게 아니다. 선비는 철저히 실용성 위주로 준비한 그녀들 옷차림이 그녀들만의 아이덴티티라고 했다. 다른 이들, 특히 그들의 적과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단 것이다. 문과 출신인 선비가 하는 말이니 맞으려니 하고 예진은 생각했다.

 실제로도 선비 말처럼 효과는 있었다. 그들의 적들은, 매번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천편일률인 차림을 하고 있었다. 나풀나풀 대는 레이스며 장식들, 풍성한 치맛자락, 쓸데없이 화려한 장식들하며 무의미한 무기들까지. 적들은 정말 TV나 만화책에서 볼 법한 차림 그대로를 생각 없이 모방했다. 녀석들을 보면 정말이지, 헛구역질할 정도로 혐오감이 든다.

 세상 사람들은 녀석들을 마법소녀라고 부른다. 오늘 예진 일행의 역할은 단순한 방청객이 아니다. 그녀들은 마법소녀의 적,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악역이라고 한데 묶어 부르는 극중 조연들이었다.


 "가까이 온다. 마스크 써."


 하린과 선비에게 당부해두고 예진은 준비해온 가면을 썼다. 아무 장식 없어 계란처럼 새하얀 얼굴 위에 눈 위치에만 두 개 구멍이 뚫린 것이었다. 다른 것들은 평소에도 쓰던 것처럼 평범하게 준비할 수 있었지만 가면만은 어쩔 수 없었다. 마법소녀들과 상대하려면 얼굴을 가릴 필요가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몰려드는 매스컴들이 자신들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준비를 마친 세 사람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진 있는지도 알아보기 힘들었던 물체들이, 지금은 형체를 대략 알아볼 수 있을 정도까지 가까워졌다. 나풀대는 핑크색 레이스 드레스와 검은 탱크탑 차림 위에 걸친 붉은 겨울 외투 각각 한 기씩.


 "'핑크 엔젤', '레이디 큐어'."


 그 두 소녀 별칭을 곰씹으며 예진은 이를 갈았다. 최근 가장 유명세를 떨치는 마법소녀면서, 국내 최초 마법소녀 공인 1급 자격 소지자 둘이 출격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다.


 "화려하게 저질러버리자!"


 예진이 긴장하는 걸 알아차린 걸까. 하린이 대뜸 일행을 격려했다.


 "저질러버리자, 라니. 여자애가 그게 뭐니 넌? 게다가 화려하게 저지르는 건 또 뭐고? 너 요새 만화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니?"


 하린이 한 말을 트집 잡아 말하면서도 선비는 하린 덕분에 적잖이 긴장감이 풀린 듯 보였다. 예진도 두 사람이 티격태격한 것을 보곤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었다. 그녀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떠올랐지만 가면 아래서 지은 그 표정을 다른 이들이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럼 가자!"


 예진이 신호를 보내자 셋은 일제히 두 마법소녀를 향해 날아올랐다. 하린이 맨 선두에서 하키 스틱을 들고 돌진해갔다. 선비는 조금 뒤에 서서 후속 공격을 준비 중이었다. 예진은 두 마법소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슬쩍 크게 창공을 우회했다. 그녀 역할은 상황 판단, 기습, 그리고 경우에 따른 원거리 지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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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오늘 중 간단히 단편으로 써보려고 시작한 글입니다. 좀 길어질 듯해서 일부 적어 미리 올려봅니다.
 연재 여부는 아직 불투명합니다만... 연재되더라도 5회 내지 10회 내에 끝내려고요;;
 과연 재미있게 봐주시려나요^^;;;

 참고로 자게에서 말한, 구상중인 소설은 이것과 전혀 상관없습니다 ㅎ
?
  • ?
    다시 2011.06.08 03:43

    담백한게 제 스탈ㅋ

    근데 적하고 아군 명칭이

  • profile
    윤주[尹主] 2011.06.08 06:49

     작명 센스는 뭐....;;;;


     그래도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ㅎㅎ

  • ?
    乾天HaNeuL 2011.06.08 04:00

    마법소녀물. 찰떡님이 좋아하시겠.....(으잉!!)

  • profile
    윤주[尹主] 2011.06.08 06:51

     본격적인 마법소녀물이라곤 못 말하겠습니다만....다음 화부턴 경고 문구도 넣어볼까요? '이 글은 본격적인 마법소녀물은 아닙니다. 보다 본격적인 작품을 원하시는 분은 <나노하>나 <마마마>를...';;

  • profile
    클레어^^ 2011.06.08 06:53

    마, 마법소녀?

    몇년 전에 어떤 만화를 보았는데... '한국에 마법소녀가 없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출동해야 하는데 학원에 보충에 야자에... 그래서 마법의 요정은 일본으로 갔다는 소리가...[퍼버벅!!]

  • profile
    윤주[尹主] 2011.06.08 07:34

     그거 저도 봤어요 ㅎㅎ

     한 번 반대로, '한국에 마법소녀가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써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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