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4 06:14

(단편) Pedestrian 보행자

조회 수 810 추천 수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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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destrian 보행자


 



덜컹거리는 흔들림 속에서 책을 덮었다. 부랴부랴 가방을 들고 내리는 문 가까이에 와 섰다. 손가락이 차임벨의 불빛에 빨갛게 물들고, 나는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매서운 겨울 바람이 나를 때렸다. 목에 두른 검은 목도리를 좀 더 추켜올리곤 무단 횡단을 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다. 오늘 따라 차들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한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를 보는 순간 숨이 헉, 하고 막혀왔다. 검은색 트렌치 코트에 깡총하니 짧은 꽁지머리. 말끔하게 앞머리를 뒤로 넘긴 남자. 예감이 좋지 않다.


 


급히 길을 건너려던 나는 남자를 발견하곤 발걸음을 늦추기 시작했다. 그가 두 발짝 걸을 때 나는 한 발짝. 그가 세 발짝 걸을 때 나는 한 발짝. 차가운 바람에 얼어버린 마음은 이미 바닥에 떨어졌는데, 눈동자는 그의 검은색 트렌치 코트에서 떨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뒤통수에 내리박혀있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가 갑자기 나를 돌아봤다. 움찔. 태연한 척 앞을 보고 걷고는 있지만 이미 머리속에선 비극의 결과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가 발걸음을 슬쩍 늦추는 것이 보였다. 지레 겁을 먹은 나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아무 키나 누르고 통화하는 척. 사실 통화 버튼은 누르지도 않았으면서.
그의 발걸음이 더욱 더 느려지자 나는 아예 걸음을 멈추어버렸다. 광고 게시판 앞에서 멍하니 포스터와 포스터 사이의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가 저 멀리 점으로 보일 때 까지 나는 그 자리에 못박히듯 서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을 밟으며 샛길에 들어섰다. 머릿속은 예의 그 남자 생각 뿐. 뒤를 힐끗 쳐다보던 눈동자가 머리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이상한 걸 떠올렸다.



남자는 골프채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골프장이 없는걸.



내 예감이 맞는 것 같다. 그 남자는 누군가를 죽이려 골프채를 들고 가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내린 결론에 만족스러워 하며 비탈길을 올라갔다. 결론을 내리고 나자 마음 한 켠에서 뿌듯함이 치밀어올랐다. 만약 내가 걸음을 늦추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것에 맞았을지도 몰라.
휴대폰은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내 손안에, 내 귓가에 머물러 있었다.


십여걸음 앞에 항상 주차되어진 지프 차가 보였다. 잰 걸음으로 저것을 지나쳐 버리겠다, 하곤 빠른 속력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프 차의 뒷바퀴 옆에 내 발이 닿을 때, 누군가가 툭 튀어나왔다.



단순히, 지나가는 할아버지.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내 손은 점점 더 휴대폰을 조여왔다. 휴대폰이 마치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 마냥. 초겨울의 메마른 날씨처럼 내 입안도 바싹바싹 말라왔고, 차갑게 휘몰아치는 바람마냥 발걸음은 빨라져갔으며, 간혹 내리는 이 계절의 비처럼 손에서는 땀이 솟았다.


 


현관문을 열었다. 안도감이 나를 감쌌다. 휴대폰은 수갑에서 풀려나 책상 위를 스르륵 미끄러졌다.
목도리를 벗으며 나는 결론을 정정했다. 그는 그냥 걸어가던 사람일 뿐이었어.
거실로 나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오늘 이상한 사람을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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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언제나‘부정남’ 2009.03.04 06:14
    과거라는건 미묘한게 진실로 기역되는 경우는 드물고 미화되거나 혹은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 ?
    핑거프 2009.03.05 07:13
    맞는 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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