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25 04:36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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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기억상실이라는 건가. 하지만 유정이 말로는 분명히 어제 집에서 공부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다고 했고. 뭐 나중에 한번 어떻게 된 건가 자세히 알아봐야지.


유정이가 평소에 식당에는 안 가는데 오늘 나랑 같이 간다고 하니까 다들 유정이 본다고 정신이 없네. 그런데 도대체 왜 나를 전부 벌레 보는 눈으로 쳐다보는거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래도 다행이예요. 밥 안먹으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요."
"누가 밥 안먹는다고 안했는데."
"어제 윤민오빠가 그랬는걸요. 오빠 짝인 언니가 몸매관리 한다고 식당에 안 온다고."
"내가 그런적이 없는데.. 윤민이가 그랬어?"


정말 유정이 얘 기억상실이라도 걸린건가. 어떻게 된 거지.


뭐 자세한 건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그냥 밥이나 먹어야지.


유정이가 밥을 먹는 모습은 처음 본다. 그냥 다른 애들하고 별로 다른건 없네.


'민군. 유정이 쟤.. 뭔가 이상해.'
'나도 알아. 하지만.. 나중에 얘기하자.'


서연이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얘기할 상황이 아니니까. 다들 유정이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있지만, 유정이 본인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혜인이라도 있었으면 한번 혜인이한테 어떻게 된 건가 물어볼 수 있겠지만 혜인이는 정말 그 마도서 찾으러 갔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지 이틀째 학교에 결석중이니까. 왜 평소에는 잘 있었으면서 정작 필요할 때는 없는 것일까.


"언니들.. 그리고 윤민오빠. 왜그래요?"
"아냐. 아무것도."


새롬이도 지금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겠지.


"윤민아. 지금 얘.. 누구야?"
"새롬이라고, 이래보여도 우리랑 같은 고1이야. 새롬아. 이쪽이 내 짝 유정이야."
"안녕하세요, 유정언니."
"안녕. 참 귀엽구나, 새롬이는."


확실히 새롬이는 귀엽다. 아니, 아직 나이가 어려서 천진난만하다고 해야 하나. 어리다고 해도 머리가 좋아서 지금 이렇게 고등학생이 되었긴 하지만,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아직 영락없이 애다. 내 동생인 윤화도 이렇게 귀엽고 착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 새롬이도 자기 반으로 돌아가고 나랑 서연이, 그리고 유정이 이렇게 우리 반으로 가는데..


"윤민아."
"응?"
"내가.. 그렇게 어색해?"
"응. 오늘 유정이가 좀 많이 이상해."
"이상하네.. 나 그냥 평소처럼 한 건데."


하지만 유정이를 매일 학교에서 본 내가 보기에는 절대 '평소처럼'이 아니다. 정말 유정이 얘 기억상실에라도 걸린 것일까.


남은 수업이 다 끝난 뒤에 학교는 끝났지만, 유정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그냥 집에 가야지. 그런데 혹시나 해서 유정이가 가는 방향을 눈여겨봤는데, 평소하고는 가는 방향이 달라. 정말 얘 어딘가에 홀린거 아냐? 아니면.. 혜인이같은 마녀가 또 있는걸까.


"민군. 지금 어디 그렇게 보고 있는거야?"
"유정이가.. 가는 방향이 평소랑은 달라서."


그리고 오늘도 학교에서 마중나온 윤화. 내가 '실종'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면서 매번 학교 끝날 때 내가 나오기만 기다린다고 했다.


"난 괜찮으니까. 조공명 때문에 윤화가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오빠. 난 괜찮아. 두번씩이나 오빠 잃어버렸는데, 더이상 오빠를 잃어버리도록 놔둘 수 없어."


그러니까 나한테 설마 또 그런 일이 생기겠어. 지금 위험한건 내가 아니라 윤화니까. 조공명이 이 유일동을 뜨지 않는 한.


일단 이상해진 유정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고, 집에나 가야지. 그런..데?


"잠깐.. 거기."
"네?"


누가 날 부르고 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도대체 누구지.


"너가.. 주윤민 맞지?"


날 부른 저 여자. 나보다도 키가 커. 그리고.. 내가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인데, 날 어떻게 알아보고 있지?


"저.. 어떻게 알았어요?"
"소문 듣고. 유일동에서 여자애 여러명 끼고 하렘을 만든 남자애가 한명 있다고 해서."


도대체 그런 헛소문은 도대체 어떻게 퍼지고 있는거냐. 소문이 와전되는 것은 순식간이라지만.


"하렘이라니.. 우리 오빠는 그런 사람 아니예요. 제가 가만히 안 있어요."
"'우리 오빠'라니.. 그럼, 이쪽은 윤민이 동생?"
"맞아요. 그리고 얘는 저랑 오랫동안 친한 친구고요. 애인은 아니예요. 그런데.. 누구세요?"


모르는 사람이 왜 나한테 말을 걸고 있는건지. 내 와전된 소문만 듣고 나를 알아봤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아, 난 신지수라고 해. '힐링비전'이라고 하면 알거야."
"힐링비전이면.. 그 조공명을 고발하려고 한 그 분이요?"
"맞아. 조공명, 나한테도 스크류 드라이버를 먹이려고 했어. 난 금방 알아봤지. 내가 술이 좀 세서 넘어가지도 않았고."


상대가 여자면 그게 누구든지 추태를 보이는 조공명. 심지어 자기를 고발하려는 사람을 스크류 드라이버를 먹여서 취하게 해서 작업을 걸다니. 괜히 막장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구나.


"오빠. 그 나사못 조이는 스크류 드라이버를 사람한테 먹이다니.. 너무 잔인해."
"윤화야. 그 스크류 드라이버가 아냐. 칵테일 이름이야. 나도 인터넷에서 봤는데, 맛은 오렌지주스 맛인데 도수가 세서 먹는 사람이 금방 취한다더라."
"칵테일에 그런 이름은.. 왜 붙였어?"
"나도 몰라. 만든 사람 마음이겠지."


뭐 나라고 칵테일에 그런 이름을 붙인 이유를 알겠냐. 게다가 난 아직 어른이 아니라 그런거 전혀 마시지도 못했는데.


"너네.. 많이 어리구나. 조공명이 지금 윤민이 너 노리고 있다는건 알고 있어?"
"저를.. 왜요?"
"조공명이 다른 곳이 아닌 이 유일동에 왜 왔겠어."
"그 파라파라 파라다이스인가.. 거기서 파라모임인가 하는거 아니예요?"
"파라파라도 있지만, '유일동의 하렘'에 대한 소문을 조공명이 들은게 가장 커. 그리고 그 하렘메이커만 없다면, 그 하렘을 다 자기것으로 하려는 거겠지. 조공명이 이 유일동에서 무슨 짓을 하는가 감시하려고 온거야."


정말로 조공명이 노리는 게 다른게 아니라 내 주변의 여자애들이란 말야?


섬뜩하다. 무섭다. 나.. 정말 왜 저런 녀석한테 제대로 걸려버린걸까. 정말 이 세상에 신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걸까. 그리고 신이 존재한다면 왜 그런 녀석에게 천벌을 주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왜 내 주변 여자애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조공명이 수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이메일로 나한테 전해줘. 내가 할 수 있는한 조공명을 최대한 막아볼테니까."


글쎄. 믿을 수 있을까. 힐링비전 자신도 인터넷에서 그렇게 평이 좋지 않으니까.


"그럼, 난 바빠서 이만. 그리고 하렘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사실이면, 주윤민 너도 끝이 좋지는 않을거야."


힐링비전 저사람 묘하게 기분이 나쁘네. 도대체 왜 멀쩡한 사람을 하렘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몰아세우는거야. 정말 조공명이 노리는게 나랑 내 주변의 여자애들이라는 것도 무섭지만, 힐링비전한테도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닐까.


뭐 요새 세상이 하도 험해서 서로 속고 속이기 때문에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내가 처음 아름선배한테 찍혀버린 것도 아름선배한테 낚여서 그랬지. 그 때는 아름선배 얘기만 들었고 어떻게 생겼는지를 몰라서. 그 뒤로 내 고교생활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민군. 궁금한 게 있어."
"응?"
"아까 그 이상한 여자가 말한 '하렘'이라는 거 뭐야?"
"응. 한 명의 남자한테 많은 수의 여자가 몰려들어서 경합을 벌이는 연애 전개를 말하는 거야.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 그런 하렘을 다룬 것들이 많이 있다고 들었어."


내가 엔젤헤일로 위키에서 어째 이런것들을 보다보니 쓸데없는 것만 알아서 문제다. 아까전 스크류 드라이버도 엔젤헤일로 위키에서 본 거였고.


"미니도.. 따지고 보면 그 '하렘'인가 뭔가.. 아냐? 미니한테 여자애들이 많이 몰리니까."
"에이, 설마.. 아닐거야. 그냥 친구들일 뿐인걸."
"후우.."


서연이는 또 왜 거기서 한숨을 쉬는거지.


"왜, 서연아?"
"민군.. 너무 대책없이 둔한거 아냐?"


그러니까 다들 나보고 왜 둔하다고 하는지를 모르겠다니까. 이런 얘기 자주 듣긴 하지만.


"내가 왜 이런 얘기를 듣는지 모르겠어."
"휴.. 민군은 역시 둔해."
"맞아. 오빠 너무 둔해."


서연이 뿐 아니라 윤화마저 맞장구를 치다니. 정말 내가 왜 둔한거냐구.


집으로 돌아간 뒤에 윤화한테 유정이가 이상해진 것을 얘기했다. 정말 기억상실에라도 걸린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아까전 조공명이 나를 노리고 있다고 얘기한 힐링비전도 걸리고.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들어가보니까, 정말로 '유일고의 하렘마스터' 얘기가 있었다.


'서울의 유일고등학교에 다닌다고 하는 하렘마스터. 본래 유일고등학교가 평범하지 않은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고등학교이지만, 미연시 부럽지 않은 하렘을 차리고 있는 학생이 하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소꿉친구라던가, 아이돌급 얼짱이라던가, 왕따 여자애라던가, 심지어 월반으로 고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애라던가 여튼 많은 애들이랑 사귄다. 요염한 조공명은 현재 이 하렘의 구성원을 뺏기 위해서 유일동으로 자취방을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시 막장.'


인터넷에서 잘못된 소문이 와전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의 일이다. 특히 누구나 자유롭게 항목을 작성하고 수정할 수 있는 엔젤헤일로 위키에서는 그게 더 심하다. 덕분에 항목들의 내용이 금방금방 차긴 하지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집어넣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자정작용으로 수정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알아서 수정하고 있지만.


이곳에서의 얘기에 따르면 힐링비전은 다른 네티즌들과는 완전히 따로 일당백으로 조공명을 상대하고 있다는데, 정말 힐링비전을 믿어도 될지 문제다. 아까전에 나보고도 별로 좋지 않다는 얘기를 한게 자꾸 걸려.


"그래서.. 내가 오빠 곁에서 오빠를 지켜준다는거야. 오빠가 위험하니까."
"하지만 조공명이 노리는 건 여자애들이잖아. 나보다 윤화가 더 조심해야할 것 같은데.."
"아냐. 난 괜찮아. 오빠가 당하는 걸 많이 봤고, 그 모습을 더 이상 내 두 눈 뜨고 볼 수 없어. 요새도 그 마녀가 오빠 괴롭히는 거 아니지?"


여전히 혜인이한테는 민감한 윤화. 왜 윤화는 혜인이를 특히 싫어하는 것일까.


"요새.. 혜인이 계속 결석중이야. 왜 그런지 모르겠어."
"정말이야?"
"응. 정말이야. 혜인이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오빠는 안 그렇다고 하지만 마녀한테 홀렸다니까. 마녀가 오빠 안 괴롭히는건 좋은건데, 왜 그 마녀를 걱정하는거야."


도대체 언제쯤 윤화가 혜인이를 좋게 바라볼지 걱정만 된다. 날 지켜준다고 하는건 좋지만, 그게 과하면 오히려 병만 되는데.


솔직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말은 없다. 단지 모두가 무사하길 바라는 것 뿐.


윤화도 조공명 때문인지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고, 덕분에 내가 컴퓨터를 할 시간은 많이 뺏겼다. 책을 빌려보고 싶긴 하지만 윤화가 나보고 밖에 못나가게 하고. 이럴 때면 나도 남들 다 있는 NDD를 갖고 싶다.


밤이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풀리지 않은 의문은 너무 많다. 여러 가지 생각들 때문에 잠이 들지 않는다. 도대체 오늘 유정이의 평소와는 너무 다른 행동은 무엇이며, 또 자신을 '힐링비전'이라고 자처하면서 나타난 알 수 없는 여자는 또 뭐지.


"꺄아아아아악!"


뭐야. 밖에 무슨 일이야. 웬 여자 비명소리가 들리는거지.


하지만 창문을 열고 바깥을 둘러봤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아까 그 비명은 그냥 기분탓인걸까. 요새 조공명 때문에 동네가 정말 불안해져서.


에이. 그래도 잠은 자야지. 그렇다고 잠을 안 자면 내일 학교에서 고생하니까.


"너가.. 윤민이.. 맞아?"


뭐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요새 왜 이렇게 헛것이 보이고 헛소리가 들리는걸까. 혜인이가 전에 이렇게 나타난 적이 있었지만, 만약 혜인이라면 내가 알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야.


"네.. 맞아요. 그런데 누구세요?"
"내가 누군지는 지금 알려줄 수는 없어. 하지만.. 윤민이 너한테 말해야 할 것이 있어서 목소리만 들려주는거야."


뭔가 이상하다. 또 혜인이같은 마녀가 나한테 나타난건가.


"요새.. 낯익은 사람으로 변해서 사람을 홀리는 '도플갱어'가 나타나고 있으니까, 조심해."
"도플갱어..라니요?"
"그럼.."
"이봐요!"


하지만 더 이상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번엔 도대체 누굴까. 아니면 그냥 꿈을 꾼 것에 불과할 뿐일까.


"오빠. 무슨 일이야?"


그리고 뒤이어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윤화.


"아냐.. 아무것도. 꿈꿨다가 잠꼬대했나봐."
"마녀가 그때처럼 또 온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오빠 혼자 놔두면 안심이 안돼. 나도 여기서 잘래."


쟨 또 왜 저래. 하지만 여기서 뭐라고 했다가는 또 내일 어떻게 당할지 모르니까, 그냥 자야지.


"오빠.. 또 잃어버리는건.. 내가 눈 뜨고 못 보니까."


하긴 아름선배가 날 코믹월드 데려간 일이라던가, 블랙스퀘어 사건이라던가.. 둘 다 눈 깜짝할 틈도 없이 당했지만, 그것 때문에 윤화한테 걱정을 많이 끼쳐서 그저 윤화한테 미안할 뿐.


그리고 또다시 날이 밝았다. 꿈도 정말 이상한 꿈이 다 있다. 도플갱어라는게 현실에 있긴 한 걸까. 그 꿈 속의 목소리대로 도플갱어가 정말로 있고, 조공명이랑 손을 잡았다면?


가만. 그렇다면.. 어제 유정이가 이상해진게, 박찬녀석 말대로라면 유정이같은 사람이 납치되었다지만 유정이가 멀쩡히 학교에 있다는데.. 그러면 유정이가 납치된 게 맞고, 어제 학교에 나타난 건 유정이가 아니라, 유정이로 분한 도플갱어?


조공명이 이미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막장이라고 하지만, 정말로 도플갱어가 있고 그 도플갱어가 조공명과 손을 잡고 조공명을 도와주고 있다면, 도대체 이건 뭐하자는거지.


이쯤되면 정말 장난이 아니게 무섭다. 하필 이럴때 혜인이가 없을게 뭐지. 혜인이가 있었다면 도플갱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물어볼 수 있었을텐데.


밖에서 서연이가 기다리고 있긴 했지만..


"많이 기다렸어, 윤민아. 가자."


아냐. 내가 알고 있던 서연이가 아냐. 어제의 유정이랑 비슷한 위화감이야. 정말 그 도플갱어가 맞는걸까.


"왜, 윤민아? 내 얼굴게 뭐 묻었어?"
"아냐.. 아무것도."


일단 정말로 도플갱어가 맞다고 해도, 지금은 서두를 때가 아냐.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 도착해보니, 유정이는 결국 학교에 결석했다. 만약 어제의 유정이랑 오늘의 서연이가 도플갱어가 맞다면, 이제야 이 모든것이 맞아떨어진다. 조공명은 유정이를 납치한 뒤에, 도플갱어에게 유정이 행세를 하게 해서 어제의 유정이가 내가 알고 있던 유정이랑은 달랐던 것이고, 그런 짓을 서연이한테도 한 것이다.


조공명. 정말 용서못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친구들을 건드리다니.


"윤민아, 무슨 걱정거리 있어?"
"아냐. 아무것도."


지금 여기 있는 서연이는 진짜 서연이가 아니라, 조공명과 손잡고 서연이 행세를 하고 있는 도플갱어다. 내가 알고 있는 서연이랑은 확실히 달라. 내가 알기로 서연이는 분명 나를 '윤민아'라고 안 불렀지.


조공명이 인터넷에서 아무리 악명이 높다고 해도, 그냥 나랑 관계없이 지내고 있었다면 내가 이 일에 끼어들 이유는 없지. 하지만, 조공명은 내 일상을 망가뜨렸어. 그리고 도플갱어를 이용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날 속였어.


조공명. 용서 못해. 오늘은 내가 어떻게든 나서야겠어.


오전 수업이 다 끝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혜인이는 결석. 정말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것을 이럴 때 느끼는구나. 이럴때 혜인이가 있었다면 정말 도움이 크게 될 것 같은데.


새롬이는 오늘도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등장. 새롬이도 서연이가 이상해졌다는 걸 눈치채려나.


"윤민오빠, 서연언니. 같이 가요."


셋이 이렇게 식당에 오긴 했지만, 이번엔 새롬이도 뭔가 어색한 걸 느낀듯 말이 없었다. 어제 유정이가 따라온 건 그렇다 쳐도, 지금은 유정이는 없지만 서연이가 이상해졌으니까.


아니, 지금 내 옆에 있는건 서연이가 아니지. 서연이 행세를 하고 있는 '도플갱어'지. 정말 어쩌다가 이런 것까지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린건지.


"새롬아. 혹시 '도플갱어'라는게 뭔지 알아?"
"네. 들어봤어요. 분명히 다른 사람인데 자기랑 완전히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말하는거 아니예요? 세상에 똑같이 생긴 사람이 2명 있으며 그게 도플갱어라고 들었고, 자기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대요."


역시 새롬이 얘가 애답지 않게 머리는 좋다. 물론 이런 지식이 쓸 데 있는건 아니지만. 그런데 왜 난 이런걸 알고 있는걸까.


"윤민오빠. 정말.. 도플갱어 만나면 죽는 거예요?"
"글쎄. 만약 그 사람이 정말로 도플갱어 만나서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게 도플갱어 때문에 죽은 것인 줄 알까? 그리고 도플갱어라는 게 정말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 뒤 서연이랑 새롬이 둘 다 말없이 식사가 끝났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분위기가 어색한거야. 이건 내 옆에 있는 서연이가 진짜 서연이가 아니라는 것이 크지만.


새롬이는 자기 반 교실로 돌아갔지만, 돌아가면서 뭔가 한 마디를 남겼다.


"윤민오빠.. 서연언니 조심하세요. 뭔가.. 이상해요."


평소같았으면 그냥 뚱딴지같은 소리로 넘겨들었겠지만, 오늘은 상황이 달라. 새롬이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게 분명하니까.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서연이랑 같이 가려고 했지만..


"미안해, 윤민아. 나 먼저 가봐야 할 곳이 있어."
"거기가 어딘데?"
"윤민이한테는 지금 말 못해. 내일 알려줄께."


역시 뭔가 이상하다. 오늘도 혹시 윤화가 데리러 오면 곤란하니까, 오늘은 윤화한테 미리 문자 보내야지.


'서연이가 오늘 뭔가 이상해 나 서연이 몰래 따라가볼테니까 오늘은 학교에 데리러 오지 말아줘'


하지만 이렇게 문자 보낸다고 해도 안 올 애가 아니라는게 걱정이다.


그리고 서연이가 가는 방향. 역시 예상대로 어제 유정이가 가는 그 방향이다. 서연이 몰래 한번 따라가봐야지.


서연이가 뭔가를 느낀 듯 가던 중간에 계속 뒤를 돌아봐서 숨는것도 쉽지가 않다. 그나마 길가 이곳저곳에 불법주차된 차들이 고맙다. 물론 불법주차는 교통에 심하게 폐를 끼치는 행동이지. 특히 이렇게 좁디좁은 골목길에서는 더더욱.


서연이, 아니 도플갱어가 가는 곳. 역시 내가 평소에 못 가봤던 곳이다. 이 유일동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유일동에 이런 곳이 있었나. 아니, 이미 여기 유일동에서 벗어난 곳 아닐까.


그런데.. 아얏.


웬 이상한 아줌마랑 부딪혔다. 이 아줌마도 뛰어온 것 같은데, 제발 다닐 때는 앞을 좀 보고 걸으라구요. 아프다구요. 정장입고 도대체 무슨 꼴이야.


"야, 이 재수없는 xx가! 눈은 폼으로 달고 다니는거야!"


지금 누가 할 소리를 하고 있는건지. 하지만 지금 내가 쫓아가야 할 대상은 서연이, 아니, 서연이로 분한 도플갱어니까,


"전규빈.. 감히 이 신유리를 놔두고 그 악녀 민수희랑 바람을 펴? 내가 가만 안둬. 내 아들 인호를 봐서라도."


역시 어딜가나 남자가 그것 관리를 못하는게 문제야. 조공명도 그래서 지금 천하의 몹쓸 것이 된 거지만. 하지만 조공명이 내 일상을 망쳤으니, 이번엔 가만 두려고 해도 정말 가만히 둘 수 없어.


그런데.. 이런. 아까 그 이상한 아줌마랑 부딪힌 사이에 도플갱어를 놓쳐버렸다. 다행히도 길이 갈라지진 않았으니까 계속 따라가다보면 나오겠지.


이렇게 계속 따라가고 있는데..


뭔가 뒤에서 크게 한방 맞았다. 그리고 그 뒤로 정신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고 깨어나보니.. 여긴 웬 어두컴컴한 방이다. 그리고..


"호랑이 굴에 제발로 기어들어오다니."


바로 그 '조공명'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다음회에 계속 -


26. 신지수 : 20세. 키가 무려 174cm에 여자 연예인 못지 않은 몸매를 가진 여성으로, 그 동안 많은 산전수전을 겪었다는 듯 하다. 인터넷에서 '힐링비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게 그녀로, 현재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 조공명을 쫓아서 유일동으로 왔으며, 조공명 뿐 아니라 윤민이 역시 별로 좋지 않게 보고 있는데, 과연?


27. 조공명 : 27세. 과거에 인터넷 정모를 통해서 만난 어떤 여자애한테 일을 저지른 뒤 군대로 도피하고, 그 뒤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추종자를 이끌면서 여전히 여자한테 추태를 보이고 있는 인물이다. 이번에 윤민의 하렘을 직접적으로 노리고 있는데.


네. 이번회에 이상해진 유정이를 보고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챈 윤민이. 그리고 자칭 힐링비전이라고 하는 여성이 조공명을 쫓고 있다고 얘기했고, 밤중에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듣고 '도플갱어'에 대해서 알게 된 윤민. 그리고 이번에는 유정이 결석하고 서연이 이상해진 걸 느끼게 되고, 그래서 서연을 따라가봤더니 결국 조공명과 일대일로 대면을 하게 된 윤민. 과연 윤민의 운명은?


이번 회 후반부에 윤민과 부딪힌 아줌마는 모 명품막장드라마의 패러디입니다. 그 드라마 보시는 분은 언급된 이름을 보면 아실듯? (실제로 그 드라마 배경과 이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의 배경이 같은 성북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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