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25 11:06

리어랫피(Learretpy)

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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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가 말 했었다.


“…이미 수백만 년을 살면서, 많은 일을 해왔어. 이제는 아무생각 없이 편하게 쉴 때도 된 것 같은데? …물론, 너와 함께.”



이 것 또한, 신의 뜻.


 


 


생활이 궁핍하지도, 그렇다고 풍족하지도 않은 그냥 그렇고 그런 생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 잘 모른다.


인문계열의 공부에는 취미가 없어 진작 때려 치운지 오래지만, 예체능 쪽의 왠만한 건 보통 사람의 기준 이상으로 할 수 있는 편이다.


연기라던가 노래라던가 운동이라던가 그림이라던가...


배우기도 많이 배웠지만, 지구력이 없는 탓에 뭘 진득하게 하고 앉아있을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뭐, 굳이 따지자면 남들보다 잘 한다 -하는 수준에서 그만두는 거니, 한 우물을 못 판다는 말이 정답일 거다.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아니, 사실은 일 하는 것이 싫어.


좋게 말하면, 옅게 (예체능)만능. 현실적으로 말하면, 어쨌든 백수.


현재는, 21세기 정보와 기술의 시대.


앞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라며, 왠지 모르게 낙천적이기만 한, 방년 24세의 백수 여기 있습니다.



“부모 잘 만나서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써대는 것들은 보통 개념이 없지. 하지만, 부럽다.”


거실 소파에 엎어져 TV에서 나오는 부잣집 아가씨, 도련님들 모습을 보며 중얼거리는 나.


뭐, 돈이 많고 적고의 차이일 뿐이지 노는 건 똑같지만.



요즘의 나는 제 2의 사춘기 이다.


몸이 아프면 정신도 비리하다고,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유에서 삶에 대한 의욕상실 중.


주변에서 열심히 일 하고, 배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뭘, 뭔가,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몸이 영 따라주지 않는다.


이런 게 바로 우울증인가….



“머리밀고 절에 들어가고 싶어도, 시험을 봐야 스님을 할 수 있다니…. 세상엔 정말 쉬운 게 없구나. 누가 세상을 이 따위로 만들었을까?”


괜히, 세상 탓으로 돌려본다.


요즘엔(뭐, 굳이 따지자면 멀쩡한 데를 찾기가 더 어렵지만,) 먹는 것도 조금 힘들다.


선천적으로 소화기관이 좋지 않아서 자주 체하는 편인데(남들 먹는 양의 1/4정도의 밥을 1시간 가까이 먹는 편이라 속도와는 관계없다.), 토해내기 싫어서 적게 먹다 보니 그렇잖아도 적은 양이 더 줄어버렸다.


한참 때엔, 피자 L 한판, R 반 정도를 혼자 먹은 기록도 세웠었는데….


지금은 소화제를 비롯한 그 외 등등…, 약통은 핸드폰과 동급의 생활필수품이 된 실정이다.


“나 왜 살지….”


자존심 강한 나…, 약해보이는 내가 싫다.


강해지고 싶어. 뭐든지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느닷, TV가 꺼졌다.


“응?”


뭐지? 꺼짐 기능 돼 있나? 리모컨을 눌러본다.


갑자기 천장에 형광등이 꿈뻑꿈뻑… 얼래, 꺼졌다.


“…어어?”


엄마가 전기세를 안냈나? …지금 전기 끊긴 거야?


정전인가 싶어서 베란다 밖으로 건너편 아파트를 보는데, 저 멀리 하늘에서 새카만 구름 같은 것이 몰려오고 있었다.


동시에, 지구 전체에 행성 그림자라도 지듯, 서서히 집 안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뭐…뭐야 이건! 전등이 어디 있더라? 촛불이 빠르려나?


손전등을 찾자니 건전지가 있을지 걱정되고, 초를 찾자니 라이터가 없다. 돌겠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거실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그러고 보니,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투모로우’였던가? 그대로라면 이제 익사하거나 둘리 꼴 나겠네?


다행인 건, 동네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는다는 거다.


뭐, 다들 나 같은 상황이라면 별로 보이는 것도 없겠지만.


불안해하면서도 왠지 잡생각을 멈추지 않는 이 여유~.


아하하하, 이제 아무것도 안보이네. ……엄마!!!



시야가 보이는 마지막 순간에 초를 찾아낸 것 까지는 좋았는데… 불은 부엌까지 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집에서 10년은 넘게 산 덕분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좀 불안하다는 점만 빼면 이동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눈도 안 뜨고 화장실로 가는데, 뭐.


이제 곧 냉장고… 식탁…, 이쪽에…… 가스레인지 찾았다! 가스밸브 잠겨있나? 어디 있지?


손을 들어서 가스 선을 따라 내짚는데, 문뜩 뭔가가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뭔가가 달라!


10년을 넘게 사는 집인데, 눈 좀 안 보인다고 이제 와서 낯설게 느껴지는 건 뭐냔 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차라리 소리라도 좀 질러줘!


이제야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 내 눈이 먼 건 아니겠지?!


이런 불안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는 머리와는 달리, 손은 착실하게 가스밸브를 확인하고 가스레인지 손잡이에 손을 댔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가스레인지만 키면… 보일거야.


가스레인지 손잡이 힘 있게 돌렸다!


 


- 파앗!!!


새하얀 빛으로 가득해졌다. 하지만, My eye!!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가 폈다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를 몇 번 반복하자 눈을 좀 편하게 뜰 수 있었다.


새하얘… 완전히 새하얗다고.


“…뭐야,…이거.”


눈앞에 있어야 마땅할 가스레인지는 물론, 냉장고… 아니, 집 자체가 아니었다.


무한히 새하얀 것? 앞에 벽이 있는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하얀색 밖에 없어.



“오는 길이 좀 거창했지?”


“으악!!”


난 여자지만… ‘꺄악’같은 비명은 지를 줄 모른다. 안타깝게도….


여튼, 내 뒤에서 들려오는 다른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돌아보며 소리 질렀다.


그러자, 이제 내 (앞으로 넘어지면 닿을만한 거리)앞에 있게 된 중후해 보이는 남자가-


“깜짝이야.”


…그건 내가 할 소리거든요! 누구야, 당신!


“…누, 누구세요.”


처음부터 찌질하게 말 더듬었지만, 그런 것쯤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 앞에있는 이 남자는 모세 코스프레 같은 걸 하고 있으니까.


…몰라! 그게 뭐야, 무서워…!!


그 충격적인 모습에 조금 굳은 몸으로 묵묵히 서 있던 나는, 일단 이 남자와 조금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뒤로 스윽- 한 발짝 물러서는데-


툭-


뭔가가 발에 부딪혔다.


돌아보니 고풍스런 엔틱풍의 의자가 떡하니….


뭐야, 이런 거 좀 전까진 없었다고!


“일단, 자리에 앉아서 얘기 좀 할까?”


생판 모르는 사람이 권하는 자리에 앉을 마음 따위 없었다.


아니, 그 전에 이 의자는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여기저기 눈 굴리며 눈치보고 있던 그 때, 어디선가 의자를 끌어와서 앉는 남자.


저 의자는 또 어디서 생긴 거니?!


“앉아. 시간이 별로 없어.”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하는 통에, 왠지 거부할 수 없는 느낌.


별 수 없이, 의자를 (조금이라도 거리를 둘 생각으로) 좀 뒤로 밀어서 앉았다.


아직도 주변엔 저 사람과 의자를 빼면 하얀 것뿐이지만, 주변을 살펴보며 의자에 앉는 순간, 밀려오는 피로감.


‘자고 싶다…’



“피곤하겠지만 자면 안 돼, 시간이 없다니까?”


엥? 뭐야, 내가 좀 전에 말해버렸나?


“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사람이 나랑 마주앉게 되면 보통 다 피곤해 해. 여기서 중요한 건 정신력이지.”


…뭔 소리야. 혼자 웃는 얼굴로 뭐라고 떠들어 대는 거야.


그래, 정말 피곤하긴 하겠다.


영화에서나 보던 화려하게 잘생긴, 긴 금발의 서양인이다. 눈이 금+갈색이라니….


거기에 모세 코스프레. …피곤하다.



“시간이 없으니 먼저 말하지. 내 대신에 자리 좀 봐줄래?”


“…네?”


“어려운 건 아니고, 그냥 내 자리만 좀 봐주면 돼.”


“…….”


대뜸 지 자리를 지키라니… 게다가 부탁하는 주제에 언제 봤다고 반말로?


자기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설명 할 생각은 전혀 없는 건가?



이 와중에도 어딜 봐도 보이는 흰 색 때문에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흰 색이 사람을 더 정신 나가게 한다는 말이 맞는 듯, 시야에 들어오는 어디를 둘러봐도 나가는 문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이제는 흰색이나 안보였으면 좋겠다.


눈에 부담 안 주는 초록색이라던가, 예쁘게 베이비핑크라던가… 여러 가지 많잖아?


아아, 급박한 상황엔 일단 삐뚤어지고 보는 또 다른 내가 나오기 시작했어.


“아아, 인상 찌푸리지 말고, 너한테도 좋은 조건일거야. 얘기나 들어 보라고.”


감정표현 솔직하기로 소문난 내 얼굴. 이번에도 여지없이 구겨져 있었나보다.


“나는 리어랫피 크라케인델 브라시스. 창조신께서 세 번째로 만들어주신 몸이고, 여기는 내 강림구역. 지금 임 수, 너를 스카웃 하는 상황.”


잘은 모르겠지만, 이 사람 왠지 착실히 설명하고 있어? 리어…메…뭐? 신? 강림??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지?


“…네?”


“그렇잖아도 설명 할 생각 있었어. 더 말해주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궁금한 건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듣고, 시간이 없으니까 내 말부터 들어. 시간은 못 멈추거든.”


아, 미치겠다. 저런 옷 입고 있을 때 진작 알아봤어야 했는데….


원래,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제대로 정신 나간 놈 만난 거다. 스토컨가?


… 엄마, 나 이제 어떻게 하지?


“신이라니까?”


하아… 적당히 맞장구 좀 쳐주면 쓸만한 말 좀 나오려나.


좋아, 일단 맡아둔다.


“…그런데요?”


“흠흠, 내 자리를 네가 대신해주면, 힘을 줄게.”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뭔 소리- 이 말만 수십 번은 말한 것 같다.)


설마, …마약중독자 같은 건 아니겠지?


“…무슨 힘이요?”


왠지 긴장이 됨과 동시에 기운이 빠지는 이상한 현상을 느끼며 물었다.


“아까 강해지고 싶다고 했잖아.”


“그게 무슨…”



-!!!


순간, 머릿속에 스치듯이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아까 생각하고 있었어, 나. TV가 꺼지기 전에! 그거 말 하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앞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니,


“응, 그거.”


맞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뭐야!!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거 알고 끄덕이는 거야?


“나 신이라니까?”


이건 인권침해야! 신이라고 해서, 남의 생각까지 알 필욘 없는 거잖아!!


“신 앞에선 거짓이 없어야 하거든.”


“…….”


나 혹시 죽은 건가? 신 앞에 심판 받고 있는 거야? 조용히 손을 움직여 허벅지를 꼬집어본다. 으악! 아파!!


왠지 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이 신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것 같지만, 아직도 주변에 꽉 차있는 새하얀 흰색들과 느닷없이 나타난 의자, 새까맣게 몰려오던 어두움의 기억이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더구나 난 종교도 없고, 신이라는 것 자체를 믿고 있지 않았기에 더 충격이랄까.


정말 신인건가, 이 사람!… 아, 사람이 아닌가. 아까 미친놈이 어쩌구, 마약이 어쩌구 했는데 어쩌지….


왠지 이번엔 굳이 내 생각에 답변하지 않고 있다. 배려인가. 귀찮은 건가. 모르는 건가.


“…어이어이, 알고 있어. 신으로써의 넓은 마음으로 당황하고 있는 널 배려하고 있다고.”


배려구나.


“…그래…서요?”


왠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신.


“지금까지 뭘 들었어! 나 대신에 자리 좀 지키라니까?!”


“…으음. 언제 오시는데요?”


“…응?!”


“자리 언제까지 보냐구요….”


신이라는 압력이라던가, 압박감이라던가, 그런 건 안보이지만 왠지 기죽어 있는 나.


압박은 이미 받고 있는 건가?


“무슨 놀이동산에 줄 서는 거 맡아달라는 거 아니다. 스카웃이라고 말 했잖아?!”


와우! 적절한 예신데?!


“…그게 무슨….”


“기한은 정확히 말해줄 순 없지만, 나 대신에 신 행세 좀 하라는 말이야. 쉬워.”


와, 자리 막 넘겨준다, 이 사람. 아니, 이 신.


신의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는 걸까-라며 새삼 걱정하게 된다.


“…저기, 그런 거 막….”


“아아, 괜찮아, 원래 후임은 직접 정하는 거니까. 진짜야? 정해져 있어.”


옛날에 판타지 소설이었던가, 만화 같은 거 보면, 신들도 일 하느라고 야근하는 직장인마냥 피곤에 절어있고 그랬던 것 같은데….


신이 되면 좋은 점이 뭐지?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천둥, 번개 같은 거 칠 수 있게 되나?


나름대로 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려던 참에-


"근데 말이지, 아까부터 뜯고 있는 게 뭐지?"


내 손을 빤히 쳐다보며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본다.


“네?”


시선을 따라가 내 손을 보니, 집에서 불을 밝히려던 초가 손 안에서 여기저기 뜯겨 나가있었다.


초초했던지 나도 모르게 손톱으로 긁어내고 있었던 것.


근데, 왜 초를 갖고 온 거지?


“기도할 때 쓰는 초 같은데, 순간적으로 그 초에 의지를 많이 했나보군.”


할 말 없다.


“뭐, 어쨌든 네가 나 대신에 좀 해.”


귀찮은 거 떠넘기듯, 순식간에 혼자 결정?! 내 의견은 안 물어 보는 건가요?!


이제 좀 생각해 볼까 했는데…. 헉! 설마, 지금 깊게 생각 못하도록 초 얘기를 꺼낸 건가- 의심하고 있을 즈음, 또 시간 타령 하고 계시다.


“시간이 없다니까. 강림 시간이 정해져 있어. 게다가 이번이 마지막 기한이라고.”


왠지 씁쓸한 미소가 감도는 표정. 죽는 다는 소린가? …응? 신들도 죽나!


“…저기, 마지막…이라면….”


저 표정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앞으로 여생을 위해 쉬고 싶다- 라던가 이런 노인네 같은 말이라도 한다면, 마음약한 나는 홀랑 넘어가서 괜한 오지랖에 허락하고 말게 틀림없어!


“휴가 가야돼! 내 친구는 벌써 출발 했다고. 그래서 시간 없다고 말 했잖아.”


ㅅㅂ. 흔들린 거 취소. 점점 스토리가 아주그냥 만담하고 있구나.(….)


불쑥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누르려고 애쓰며 다시 말 했다.


“저기요.”


“어. 케인이라고 불러. 넌 특별하니까.”


그것 참 고맙네요. 자기 휴가 갈 때, 땜빵자리 시키려고 하면서 퍽이나 특별하다.


“저기…, 왜 저예요?”


신이라는 거, 같은 신이나 천사들한테 물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나지? 생각해보면 세상 사람들 중에,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없진 않았을 텐데.


신에게 가까운 사람이 있다는, 그런 건가? 신에게 보살핌 받는 그런 인생? 정말 난 특별한 건가?!


“랜덤이다.”


이런 류인 것이다. 이 소설은. 그냥 막장.


“…(랜덤…) 아깐 특별하다매요.”


“네가 뭐든지 하고 싶다고 했잖아. 때 마침, 네 목소리가 제일 가깝게 들렸을 뿐이야.”


한마디로 운이 좋았단 소리군.


아니, 휴가 가는 신을 대신해서 일이나 해야 되는 거면 운이 완전 나쁜 거잖아!


전생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최대한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거야!


그렇잖아도 일이 하기 싫어서 놀고 있었던 건데, 남 좋은 일 시킬 필요 뭐 있어?


내가 언제부터 착하게 살았다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자.


… 설마, 거절했다고 천벌 내리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뭐든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뭐든 할 수 있는 능력이 갖고 싶단 말이었는데요.”


“그 말이 그 말이지 뭐. 그리고 거절하면 천벌 내릴 거야.”


아놔, 이 신, 완전 진상이네! 고발센터 같은 거 없나?


“너 지금 나 들으라고 일부러 생각한 거지.”


네.


“잘 생각해 봐, 너 좋고 나 좋은 거라니까?”


그러니까- 그 나한테 좋은 거. 그게 뭐냐고요.


“…제가 그 일을 하게 되면, 제게 돌아오는 이득은요?”


“뭐든 할 수 있는 힘을 주잖아! 신의 권능이라고! 그게 싫다 이거야?!”


점점 나에게 화내고 있다? 신으로써의 넓은 마음은 어디 갔나요.


이렇게 되면 같이 화낸다!


“그건, 당신 대신에 귀찮은 일을 하기위한 기본적인 거구요. 제가 얻는 건 뭐냐고요.”


“귀찮은 일이라니! 그냥 존재자체로 된다니까? 업무는 밑에 애들이 다 한다고!”


아. 서류정리라도 해야 되는 줄 알았지. 그런 건 딴 사람이 한다는 소린가? 근데, 존재 자체로 있으라니… 무슨 일을 하라는 거야.


사실….
일을 안 해도 된다는 말에 홀랑 넘어가 귀 기울여 들은 이 시점에서 나는 이미 틀렸었다.


“말 그대로 존재 자체면 돼.”


“…그럼 그냥 하고 계시면 되지 않아요? 그냥 있기만 하면 되는데.”


“이유야 어찌됐든 싫어.”


“어쨌든, 지금 당신이 하기 싫어하는 거, 저보고 하라는 거잖아요.”


“그럼 아무것도 못하는 너로 만족할 테냐? 나는 굳이 너 아니어도 괜찮아.”


신이 뭐 이래! 사람 제대로 간보고 있는데?


“신이 어린양한테 협박해도 되요? 그리고 저 아무것도 못하는 거 아니거든요?!”


“뭐…, 너나 나나 좋은 조건이잖아.”


같이 화내놓고는 갑자기 정색하고 날 진정시키고 있다.


“됐어요. 아직 잃은 것도 없고, 아쉬운 거 없으니 다른 녀석 고르시던가요.”


“이거 왜이래~ 튕기지 말고! 아쉬운 게 왜 없어? 뭐든 할 수 있는데.”


듣다보니 이 신, 말투 좀 이상한데?


왠지 나도 당당히 따지고 있어?!



아무튼, 따지기는 잘 하지만, 거래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나는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돈도 펑펑 쓰고 다닐 수 있는 걸까? (초급 백수에겐 좀 더 그럴듯한 야망은 없다.)


세계 온갖 맛집을 다 돌아다니며 먹을 수 있는 걸까? (상상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아아- 소녀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갑자기 나레이션.)


“…정말 뭐든 할 수 있어요?”


“그래, 뭐든. 너는 신이 뭐 못해서 쩔쩔 매는 거 봤냐?”


“정말 못하는 거 없는 거죠?”


순간 뚫어져라 내 얼굴을 쳐다보는 신.


“…왜 그렇게 자꾸 물어보는 거냐?”


“그냥… 못하는 거 있을까봐서요.”


왠지 내 대답에 뚱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무는 신.


덕분에 잠시 동안 흐르는 침묵 속에 조용히 내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게 꿈이라면, 개꿈일까?


이 신 이름이… 뭐랬더라?….


“…흠, 사실은 몇 가지 있어.”


보아라!


도장은 함부로 찍는 게 아니고, 계약서는 꼼꼼히 따져봐야 손해가 없다.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어른들 말씀은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엄마, 저 잘하고 있어요!


비록 저는 신에게 협박당하고 있지만.



“그럼 지금 저한테 사기치실라고 그런 거네요?”


“…너 자꾸 나한테 점점 따진다? 잠깐 잊었나본데, 나 신이야!”


신으로써의 넓은 마음은 요-만한 소심중의 소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듯.



그래도 나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다(보기엔 20대 중후반 정도였지만), 명색이 신인데, 말 좀 주고받다 보니 친구 같아서 말이 너무 편하게 나온 것 같다.


근데… 따져보면, 당신 말투도 신 치고는 정상은 아니거든요.


완전 성인판 떼쟁이 수준이면서, 자기 아쉬울 때만 신이래….


“죄송해요. 하지만, 전 아쉬울 게 없잖아요. 휴가 못가는 사람이 아쉽지. (신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지는 게 보인다.) 저는 단지 정확하게 해두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집에 멀쩡히 있다가 영문도 모르고 끌려왔는데, 그 정도도 못 물어봐요? 다른 사람 같으면 처음부터 말도 안 들어 볼걸요?”


내 말이 그럴 듯 했는지, 접대용 미소를 지으며 친절한 말투로 바뀐다.


“알았어, 알았어. 일단 들어봐? 응?


“…말씀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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