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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검사 인데요.

 여자 잖아.

 현실성이 떨어지는 걸요.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낫지.

 …….

 

 퇴짜를 맞았다.

 열심히 디자인한 캐릭터 인데, 여검사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분명 큰 검을 차고 있었는데.

 검사의 느낌은 좋다고, 잘 살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문제는 였다. 활동성이 좋고 신체를 보호해야 하니까 바지를 입혔다. 게임 배경에 눈이나 얼음이 많았기 때문에 단추 여섯 게가 달린 코트를 입혀주었다.

 분명 여잔데. 작은 얼굴하며 서글서글한 눈매, 묘하게 드러나는 신체라인. 분명 매력 있는 여자캐릭터인데.

 화가 났다. 나름 열심히 만든 작품이었는데. 다행이 컴퓨터 그래픽까지 하지는 않았다만, 손으로라도 꼬박 일주일이 걸린 그림인데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것이, 까인 적이야 많았지만 이런 이유로, 야하지 않다는 이유로, 겨우 그 따위 이유로 까였다는 것이 억울했다. 겜하는 남자들이 무슨 다 짐승 들인가. 꼭 쭉쭉빵빵 여자들만 인기 있는 건 아니라고! 어린 소녀 캐릭터도 얼마나 인기있는데……. 그 쪽이 더 짐승 같지만, 아무튼! 나는 화가 났으므로, 대충 작업하기 시작했다.

 우선 스캔을 하고, 캐릭터의 몸통 부분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다시 그렸다. 가슴은 주요 부위만 붕대로 살짝 가리고 배꼽은 드러내고……. 히히 기가 막히다. 팔에만 두꺼운 천으로 된 옷을 걸치고 정작 중요한 배와 가슴은 전부 드러낸……. 조끼의 반대 버전 옷이 완성 되었다. 이거 제출하면 반항한다고 엄청 혼나겠지. 하지만 나는 화가 났다. 이렇게라도 내 의견이 전달 된다면, 너무 전달이 잘 되서 짤리면 어쩌지? 그럼 사과해야지.

 

 그래 이렇게 하란 말이야! 벌써 포토샵 작업까지 들어갔네? 완성하고 다시 보자고!

 

 싸인해 주세요.

 싸인을 해주고 편의점에서 나왔다. 작업은 대충 여유가 생긴 것 같으니까, 오늘은 맥주의 날로 정해야겠다.

 원룸에 들어왔다. 깜깜하다. 불을 키고 봉투를 상 위에 올려놓았다. 컴퓨터를 켰다. 내 그림을 보았다.

 하-.

 똑같아. 당연히 똑같지. 다들 벗고 있는데 사람 몸이 다 거기서 거기지. 거기서 거긴데 다 벗고있으니까 당연히 똑같지. 다른 게임 여자 캐릭터들하고 똑같아졌다. 퀘스트 똑같고 몬스터 똑같고 캐릭터 똑같은데 우리 게임을 해줄까? ‘우리 게임’……. 겨우 원화 하나 그리는데 ‘우리’라고 하는 건 좀 그런가. 사실 발을 빼고 싶다. 내가 그렸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다.

 거울을 보고 내 몸매를 보았다. 제법 괜찮은 편 아닌가. 볼륨감은 조금 부족하지만 이 정도면 제법. 게임 캐릭터를 보고 내 몸을 보면 사람 비례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골격은 나랑 비슷한 것들도 있지만 살이 붙는 부분은 과학적이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가슴이 저렇게 나오고 허벅지가 저렇게 두꺼운데 배는 하나도 안 나왔네. 저게 괴물이지.

 남자친구 사귀고 싶다. 소개팅 안 들어오나? 회사에는 노땅들 뿐이고……. 만약 지금 남자친구가 있었다면 하소연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많이 벌진 않지만 직장도 있으니까 아마 쉽게 연결 되겠지? 외모도 대충 그럭저럭 보통 이상 같으니까.

 맥주 캔을 깠다. 아주 큰 소리가 났다. 예전 고삼 때 독서실이 생각난다. 캔커피를 참 좋아해서 자주 마셨는데 하루는 밖에서 딴다는 것을 까먹고 안에 가지고 들어온 적이 있었다. 한참 공부하다 끊기는 게 싫어서 안에서 땄는데, 진짜 농담 안하고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어찌나 부끄럽던지! 지금 이 소리처럼 크게 났었지. 다행이 지금은 부끄럽지 않지만. 모니터를 봤다. 반라의 여자가 검을 들고 서있다. 부끄럽다.

 받아 놓은 쇼프로그램을 재생시켰다. 여자 아이돌이 나왔다.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외모 때문에 가수가 됐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서 많이 서운했어요.

 소녀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자막에는 ‘망언 스타 등극!이라는 문장이 뜬다.

 가수가 예쁜 게 잘못인가? 예쁜 사람이 부르면 노래가 더 사랑스럽게 들리지 않을까? 진한 커피를 마시며 이소라를 들으면 좀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만약 쟤가 얼굴이 못생겼다면 아니, 이소라만큼 생겼다면 데뷔할 수 있었을까? 이소라 만큼 노래를 부를 수도 없을 텐데.

 한 캔을 더 땄다. 방청객 소리에 묻혀 전보다 작은 소리가 났다.

 망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서운했다니.

 사실이라고 다 말해도 좋은 건가?

 사람마다 숨기고 싶은 사실들이 있을 텐데.

 만약 살인자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람들이 그를 볼 때마다.

 니 아들 살인마!

 이렇게 말하고 다녀도 되는 건가?

 권장할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에겐 숨기고 싶은 사실들이 있다.

 알트텝을 누르자 내 그림이 나왔다.

 나에겐 숨기고 싶은 그림이 있다.

 맥주 한 캔을 더 깠다.

 내 그림은 까이지 않았었다.

 아, 졸려.

 갑자기 컴퓨터에서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뭐지? 동영상을 열어보니, 그 가수가 울고 있다. 시간을 돌려 어떻게 된 연유인지 확인해 보았다.

 아 흔한 이야기였다. 노래 실력에 대한 네티즌의 질책. 그렇게 싫어하는데 왜 저들의 노래가 거리에 울려 퍼지고 음원차트에서 내려오지 않는 거지?

 예쁜 사람이 부르면, 노래가 좀더 달달하게 들리지 않을까?

 어쩔 수 없기보단 당연한 세상 같다. 잘못된 점은 없다. 그냥 당연하게, 모든 것이 당연하게 흘러간다. 컴퓨터를 껐다.

 정말로 슬퍼서 운 거겠지? 하지만 ‘쇼 프로그램 아닌가. 보여주기 위한 방송. 설령 억지로 짜낸 눈물이라 해도 거짓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쇼’아닌가? 애초에 말이다. 보여주기 위해 만든 건데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는가. 대본이 있으면 무슨 상관이고 대본이 없더라도 무슨 문제인가.

 내일 아침 뭐 입지.

 지난 주에 산 보라색 치마는 예쁘지만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으니 초록색 면바지를 입고 나가야겠다.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림을 그리고는 있지만, 내가 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사회 생활이 그렇고 프로의 세계가 그런 거지만. 당연한 거지만. 참 거지 같아. 당연한 것들은 다 거지 같이 생겼다. 천 살 돈이 없어서 헐 벗은 모니터에 서있던 여자도 거지 같고 모두 다 거지 같아. 근데 세상은 당연하게 생겼으니까, 세상도 다 거지같아. 거기 사는 나도 당연히 거지같고. 내일의 거지 같은 아침을 위해서 지금 자야지. 거지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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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2.05.26 07:28
    헉! 반전... 주인공이 여자였다니요...;;
    전 남자인 줄 알았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2.05.27 03:27
    다시 님 평소 글보단 좀 어수선해 보이네요... 짧은 글에서, 이리저리 소재를 옮겨 타는 식인데 좀 더 자연스러운 연출이었으면 좋았을 거 같습니다. 근데 어떤 연출을 하는 게 더 좋은 결과가 나올까요;;;

    독백이나 혼자만의 사고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대화, 혹은 남 얘기를 엿듣고 거기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방식이면 더 나으려나요?
    어쩌면 지금처럼 주인공 한 명만 등장시키려면, 몇몇 불필요한 소재를 쳐내는 게 더 좋아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우리의 주인공이 굉장한 달변가가 되어, 지금 글 분량이 좀 더 많이 는다면 또 좋아질 지도 모르죠.

    어떤 방법이 있을지, 어떤 방법이 좋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보다 더 좋은 연출법이 있을 거같단 생각이 드네요.
    아무쪼록 계속 건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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