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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본래 백합물(여성간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작품)은 여성 시청자만큼이나 남성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장르입니다. 로맨스라는 한계가 있지만(본래 로맨스 소설이 대부분 여성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타 남성 취향 장르들보다 아기자기하고 덜 공격적이며, 섬세한 정서적 표현 등 매력에 여성뿐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어필하곤 합니다. 물론 같은 백합 소재 안에도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이 있기 때문에 해당 장르가 일괄적으로 모두 이런 특징이 있다, 라고 말하긴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예컨대 <유루유리>는 가벼운 일상 개그물에 연애 전선 분위기를 살짝 가미했을 뿐이고, 만화 <이오노 더 퍼내틱스>는 백합물이면서 하렘 취향인 주연 캐릭터가 등장하고 갖가지 액션이나 소년만화의 전개 등 남성들에게 어필할 만한 요소들을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죠.




 길게 이야기했지만 <스트로베리 패닉>은 바로 그 백합물에 해당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따라서 해당 작품도 백합물이 가진 특징들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인물들은 덜 공격적이며,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연출들이 많이 나타나죠. 대부분의 백합물이 그렇듯 그림체도 순정 만화식으로 선이 가냘프고 예쁘장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전형적인 순정만화, 로맨스지만 등장 인물만이 모두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단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세 개의 학교가 공유하는 '딸기관'이라는 기숙사에 주인공 나기사가 전학을 옵니다. 전학온 첫날, 숲에서 우연히 선배인 시즈마를 만나게 되고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되죠. 이야기는 나기사가 새로운 학교 생활을 해가면서 겪는, 혹은 주변에서 보고 듣게 되는 이런 저런 사건들을 보여주는 동시에, 나기사가 시즈마에게 느끼는 감정이 애매모호함에서 동경으로, 동경에서 애틋함으로, 다시 사랑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야기 자체는 전형적인 학원 로맨스로서, 주인공이 사랑을 통해 외적으로, 내적으로 성숙해가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시청자가 이 이야기를 특이한 것으로 느꼈다면, 그건 분명 백합물이라는 소재 때문일 것입니다.


 백합물은 애당초 설정된 한계가 분명한 장르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동성애를 하지만, 그러한 사랑은 공개적이지 않고 비밀스럽게, 혹은 공개적이지만 특정한 장소에서만 한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트로베리 패닉>은 후자의 경우고, 전자의 경우는 국내 영화 <여고괴담>을 예로 들면 될 거 같네요. 등장인물 사이에 감정 교환이 오가고 사랑이 성장해가긴 하지만, 그것은 일회성일 뿐 장기적으로도 가능한 사랑이긴 어렵습니다. <스트로베리 패닉>에서도, 졸업을 앞둔 선배들이 대부분 명문가 자제들과 혼약을 하고 있다거나 하는 대사가 등장합니다. 극 중 인물들이 나누는 사랑이 가능한 건 학교 부지 내에서뿐인 것입니다. 이렇듯 한계가 명확하기에 등장 인물간의 사랑은 애틋하고, 간혹 그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인물들의 시도는 카타르시스를 주곤 합니다. <스트로베리 패닉!>이 과연 주어진 한계를 어떤 식으로 대면하는지는 직접 확인해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결말과 그 이후에 대한 해석은 조금씩 달라질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스트로베리 패닉>이 장르적 공식에만 충실한 그저그런 작품인 것만은 아닙니다. 흔히 좋은 로맨스는 사랑의 과정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 '나'가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모습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라고들 얘기합니다. 이 말대로라면, <스트로베리 패닉>은 좋은 로맨스에 해당합니다. 사랑을 통해 주인공 나기사가 성장하는 것만큼, 그 상대편인 시즈마 역시 자신의 상처와 감정을 드러내고 극복하며 성장해갑니다. 결국 마지막 순간 둘은 거의 동등한 지위에서 상대를 대면할 수 있게 되죠. 시즈마와 나기사의 관계는, 나기사와 타마오의 관계와 비교해 그 차이를 발견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상처를 내보이고 함께 성숙해가는 쪽이 진정한 커플이라고 할 수 있는 거겠죠.


 <스트로베리 패닉>은 또한, 무언가를 성취한다는 게 한편으론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란 사실도 시청자들에게 의식하게 합니다. 등장인물들은, 주연과 조연을 포함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게 됩니다. 친구의 마음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포기한다거나, 사랑을 위해 명예를 포기한다거나 하면서, 기어이 성취에 이르렀을 때 포기해버린 무언가에 대해 외면해버리지 않고 드러내 보입니다. 애틋한 분위기가 이면에 흐르는 건 감추지 않지만, 그 결과 등장인물들이 행복을 찾았다는 것 역시 억누르지 않고 그들의 입으로 이야기해 줍니다. 등장인물들이 포기한 가능성들은, 어쩌면 시청자와 동인들의 상상력을 통해 다른 형태(동인지 등)로 선택되고 재현되었을지도 모르죠.


 이러한 이유로, <스트로베리 패닉>은 괜찮은 로맨스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백합물이라는 소재가 거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소재 덕분에 애틋함을 살리고 감정 표현이 더욱 섬세해지는 등 일반적 남녀 관계 로맨스가 갖지 못한 장점도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사랑에 대한 동반자적 인식은, 일반적 로맨스와 비교해봐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로맨스 가운데, 사랑이 양자 모두의 성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단 걸 생각하면 말이죠. 성취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 모두를 감추지 않고 보여주는 것도 잘 된 감정 표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간혹 강도 높은 애정 표현이 암시되는 장면이 있습니다만, 몇몇을 제외하곤 수위 걱정 없이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조연들이 나오는 코믹한 장면이나 중간중간 나오는 극적인 전개들, 나기사 - 시즈마 커플과 함께 중요하게 다뤄지는 조연 커플 이야기 등 제가 적은 것 이외에도 다양한 드라마적 재미가 있는 작품이고요. 다만 감정 흐름에 주목을 하다보니 몰입을 하지 못하면 중간중간 느긋하게 진행되는 부분에서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악역으로 등장하는 조연 캐릭터 대사가 횡설수설하는 것같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막으로만 이해할 수밖에 없으니 실제로도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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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딱 이쪽에 꽂혔을 때 봤으면 더 감흥이 있었을 텐데, 최근에 이것저것 보다보니 상대적으로 약간 지루하다 싶어하면서 봤네요...그냥 이삼일만에 몰아봐서 그런 걸수도 있습니다;

 암튼 이것저것 봐보는 건 좋은 거 같아요. 쓸모없는 거 같아도 어디선가 참고가 되니까요. 특히나 이야기 지어내는 문학동 분들에게는 더더욱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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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욀슨 2012.06.07 07:31
    순정만화인가요? 그쪽은 내성도 없고 그래서 잘 건드리진 않았는데, 공부를 위해서라도 볼 필요가 있겠네요. 리뷰 잘 봤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2.06.07 07:43
    순정만화 맞아요. 등장인물이 전부 여자란 것만 다를 뿐이죠;

    위에서 저렇게 말을 써 놨지만, 혹 보시게 되면 가벼운 마음으로 보세요. 내성도 취향도 없는데 괜히 억지로 보는 건 더 안좋을 거 같아요^^;
  • profile
    강유 2012.06.07 22:06
    마리아님이 보고계셔 와 비슷한 종류인가요? ' '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06.08 07:55

    비슷한 종류...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은 많이 들어보고 동인작품도 봤지만, 정작 <마리아님...>본편은 안봐서 모르겠네요; 소재가 많이 비슷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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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PESyndrom 2012.06.08 13:30
    가..감상문까지! 재미있게 보셨다니.. 추천(엄밀히 말하면.. 그 반대였지만)한 사람으로서 기쁘네요 ㅋㅋㅋ
  • profile
    윤주[尹主] 2012.06.08 15:38
    전 분명 감상 올린다고 했습니다 ㅋㅋㅋ
    덕분에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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