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12 18:31

돔모라 2

조회 수 337 추천 수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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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블럭이 지나고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돈 뒤에 그러니까 도로의 풍경이 지루해질 즈음, 택시는 낮고 낡은 건물 앞에 멈췄다.

 "다왔어."

 미터기에 표시된 만큼의 돈을 지불하고 짐을 내려놓자, 택시는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사라진다. 이제 그의 앞에는 '이브'라고 적힌 아이보리색 칠이 드문드문 떨어져 나간 빌라 만이 남았다. 높지는 않앗다. 창문은 앞에 큰 것 네 개 작은 게 두개로 2층이엇고 오른ㅉ고 맨 위 창문이 반쯤 들어올려진 상태로 노파가 앉아 있다.

 "네가 롯이니?"

 큰 목소리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길가까지 똑똑히 들린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그렇다고 대답했으나 바람이 불어 그 소리가 들렸을지는 의문이다. 

 "이리 올라와."

 알루미늄으로 된 대문은 삐걱이며 열린다. 나무로 된 손잡이를 따라 단단해 보이는 콘크리트 계단 틈틈이 깨진 나무조각이나 파편이 있었다. 한 번 꺾어져 위로 올라갈 수록 계단의 폭이 들쭉날쭉 하다는 걸 알았다. 층의 외부 복도는 사람이 눕지도 못할 만큼 좁아 복도라고 부르기도 무색했다. 2층으로 올라와 오른쪽 문을 열자 생각보다 넓은 집이 있었다. 방 두개에 화장실, 부엌이 딸린 평범한 살림집이었다. 동쪽 창문에는 짙은 보라색 커튼이 햇빛을 가리고 작은 탁자에 곧은 자세의 노파가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앉으렴."
 희끗한 머리카락을 곱게 넘겨 단정하게 묶어올리고 감색 셔츠는 맨 끝까지 확실하게 잠겼다. 무슨 광장에 선 반듯한 기념비석을 본 것 같았다.

 "마녀...님?"
 적당한 호칭을 찾는 데 실패했다. 롯은 저도 모르게 부끄러운 낯으로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본다. 벽에 걸린 오래된 듯한 나무시계와 어느 시대 양식인지 모를 짐슴 모양 장식이 보였다. 마녀는 보일 듯 말듯 입가에 고운 미소를 띄운다.

 "주인 할머니면 충분해. 짐은 그게 전부니?"
 집에서부터 들고 온 것은 옷가지와 전화, 몇 분의 비상금. 그리고 롯의 모험이라 쓰인 종이뭉치 뿐이었다. 여행가방 하나에 모두 들어가지는 간결한 짐에 두 형제는 충분히 만족했었다.

 "예, 필요한 게 있나요?"

 "글쎄, 뭐가 필요할 것 같니."

 "뭔가 필요하다면 사려구요."

 종이가 탁자 위에 놓여있다. 갑이니 을이니 하는 단어가 쓸데없이 복잡한 공식을 이루고 있다. 

 "여기 싸인하면 일층에 있는 방이 네거란다."

 옆에 펜이 놓여 있었다. 촉 끝이 검게 물들어 있고 자루 끄이 깃털로 장식되어 있다. 그것은 무패를 자랑하던 용맹한 장군의 칼처럼 보이다가도 시대를 풍미하던 어느 문인의 유품 같기도 했다. 비로소 입주자의 손에 쥐어졌을 때에는 평범한 깃펜이었다.

 "펜은 선물이야. 호실은 102호."

 매끈하게 다듬은 펜의 자루가 손가락 끝에 딱 맞아 뻘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롯은 진심으로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짐 풀고 올라와 이웃을 소개해주지."

 처음 들어왔을 때와 어느 하나 달라진 것 없는 꼿꼿함으로 손을 훠이 젓는 모양새로 더 이상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롯은 방을 나와 일층으로 내려와 102호의 문을 연다. 문을 열기 전에 아주 잠깐 망설이기도 햇다. 첫 집의 설레임을 만끽하려는 속셈이었는데, 금새 마녀가 위층에서 기다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침없이 문을 열어 젖히고 붉은 벽돌로 된 현관에 신발을 벗어 방을 둘러본다. 위층과는 사뭇 다르다. 긴 일자형 부엌 왼쪽에 아주 큰 방이 있고 부엌 끝에는 사워하기 알맞을 정도로 좁은 화장실이 붙어있다. 방에는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위 아래로 여닫는 창문이 두개, 맞은 편 벽에는 닳아 부서질 듯 오래된 벽장이 있다. 일단 가방을 벽장에 넣어두기로 한다. 부엌 싱크대 위에 놓인 열쇠로 문을 잠그고 계단을 오르는데 가슴 언저리가 뿌듯하다.

 2층으로 올라와 소근거리는 이야기 소리가 벌써부터 들렸다.

 "왓네."

 시간이 멈춰 버린 듯 변함이 없는 집 주인이 가장 먼저 알아봐준다. 그녀 양 옆으로 큼지막한 남자와 금발의 늘씬한 미녀가 앉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롯은 숨도 못 쉴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다. 간이라도 떼어 준대도 모자라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늙은 목소리가 찬물처럼 끼얹어진다.

 "이리 앉거라."

 연장자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창 밖을 보고 있다. 턱ㅇ르 괴고, 하늘 높이 뻗친 승강기를 보는 듯 하다.

 "이 애는 101호 벨라야." 소개를 건네고 

 "안녕하세요."

예의 있게 받는다. 그러나 정작 벨라는 대답이 없다.

 "못된 계집이야. 마주살기 싫다면 내 방과 바꿔줄까?" 

 소년은 어울리지 않는 손사레를 친다. 여자가 찌릿한 눈빛으로 봤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개는 끝나지 않았다.

 "이쪽은 인사. 보기 어려운 도깨비지."

 "안녕하세요."

 "잘부탁해 윗마을에서 왔다며? 거긴 어때?"

 시원시원한 목소리. 대답거리가 딱히 떠오르지 않아 표정으로 대신하고 입을 다물기로 한다. 인사는 호쾌하게 웃는다.

 "그래그래, 낯을 좀 가리는 거 같네. 가자 탁자 같은 가구가 하나도 없겠지? 내가 도와줄께 도깨비들은 만드는 걸 아주 좋아해! 잘하기도 하고."

 큼지막한 손이 덥석 어깨를 붙잡는다. 억센 힘에 끌려 방을 일어서는데, 집주인과 미녀를 보고 애써 고개를 꾸벅이고 나왔다.

 인사는 아주 키가 컸다. 이제 성인인 롯보다도 머리통 두개쯤 차이가 나고 어깨도 훨씬 넓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덩치 때문에 몸을 웅크려야 했다.

 "그릇도 하나 없네."

 들어오자마자 부족한 걸 찾아내기 시작한다.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눈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둘러본다.

 "여기 오신지 얼마나 됏어요?" 롯이 묻는다.

 "한 십오년? 이 빌라 지을 때부터 지냈지. 탁자랑 의자도 있어야겠다. 냉장고도 없구나? 뭐 해먹을 도구같은 것도."

 "그 전엔 어디 계셨어요?" 궁금한 게 늘어난다.

 "글쎄, 그 땐 그냥 몽키스패너였어서 잘 모르겠는걸? 침대도 필요해? 아, 바닥에서 자겠다구...난 이 부근에서도 굉장히 어린 도깨비야. 만들어진 지 백년 도 안되었거든, 깨어난 건 이십년도 안됐고. 전등 같은 것도 있으면 좋겠지. 여긴 더우니까 선풍기도 필요해."

 구석구석 보물을 찾듯이 살핀 뒤에 또 롯을 붙잡고 방에서 끌어낸다. 

 "어딜 가요?"

 "재료가 있어야 뭘 만들지."

 덧셈뺄셈 가르치듯 알려주고 길가로 나선다. 신호등과 횡단보도 두개 씩 건너 강가의 나무로 된 건물 앞에 섰다. 마라의 돔에서와 다르게 모두 각이 져 있다. 돔에서는 둥글하고 굽어지는 흐르는 맹물이었는데, 이건 그저 바다 위에 올려진 철판이 만들어낸 겉모습만 강일 뿐인 짠 물길이었다. 나무집에는 '성룡 목재소'라는 간판이 내걸려 있었다.

 "들어가자."

 목재소 안은 굉장히 조용하다. 또 매우 넓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이브 빌라 정도였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승강기 절반만했다. 뿌연 먼지가 듬성듬성 떠다니고 딸막하거나 길죽하거나 한 나무 판자들이 세워져 있고 굴러다닌다. 그 건녀펀으로 슥삭거리는 대패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인사는 덩치값 하는 목소리로 불렀다. 시야를 가리던 먼지들이 순식간에 날려가고 안이 맑아졌다. 그리고 키 작고 배나온 특징도 없고 단점도 없는 아저씨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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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2.06.13 04:57
    아시아라이 저택? 왠지 그런 분위기네요 ㅎ
    낯선 일상 이야기가 매력적이네요. 느긋하게 읽고 갑니다^^;
  • ?
    츤데레 포인트걸 2012.06.13 04:57
    따, 딱히 윤주[尹主]님이 좋아서 10포인트를 지급하는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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