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21 16:15

나와 그녀의 생존전략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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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여자친구, 소리를 닮은 아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섰다. 그것으로 아이는 나와 도깨비 가면 여자 사이를 가로막는 형세가 되었다. 아이의 등 뒤에 나는 꼴사납게 주저앉아서, 그녀의 곱게 단정히 따인 댕기머리와 아얌드림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남반에게는 그 모양새가 심히 불쾌했던 모양이었다.


 "다시 묻겠다. 너는 누구냐? 틀림없이 인간은 아니렸다!"


 인간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 애가 소리일 리도 없다. 분명 소리는 그 때 내가 보는 앞에서 죽었으니까. 설령 새초롬한 눈매가, 왼눈 가장자리 작은 눈물점이, 콧볼의 모양새나 목덜미의 가녀린 선이 소리와 닮아 보인다고 해도 이 애는 소리가 아니다. 소리 그녀라기엔 이 아이는 너무나도 작고 또 어리지 않는가.


 남반의 질문에 소녀는 계속 묵묵무답이었다. 그게 남반, 방상시 탈을 쓴 여자의 울화통을 부추긴 듯했다.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것마냥 침묵이 이어지자, 여자는 기어이 소녀를 향해 칼날을 돌렸다.


 "형리! 대명률에 따라 곤장 세 대를 저 자에게!"


 널찍한 막대기 셋이 공중에서 나타나 소녀를 향해 쏟아져내렸다. 소녀는 오른팔을 앞으로 한 번 내어 저었다. 곤장들은 소녀에게 가 닿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보이지 않는 벽이 그것들을 튕겨낸 듯했다.


 그것을 본 남반 여자가 다시금 명령을 내렸다.


 "형리! 대명률에 따라 저 자에게 압슬을!"


 이번엔 커다란 돌덩이들이다. 소녀는 한 손을 뒤로 뻗어 나를 밀어내려 했다. 다른 한 손은 자신의 머리 위로부터 바닥을 향해 호선을 그어내렸다. 쏟아져내리던 돌덩이들은 곤장과 똑같이 무언가에 부딪쳐 소녀에게 가 닿지 못했다. 조금 전과 다른 건, 소녀가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조금 물러섰다는 점이다. 거의 뒤에 있던 내 품에 안길 정도까지 그녀는 뒷걸음질쳐 물러섰다. 소녀가 물러난 직후, 그녀가 있던 자리 위로 새하얀 화강암 덩어리들이 떨어져 내리며 쿵, 하는 충격음을 냈다.


 "짐작했던 대로, 서쪽 그 녀석처럼 '철벽'인 건 아니로구나."


 서쪽 그 녀석이란 게 대체 누구지? 그때까지도 소녀의 정체를 짐작하지도 못한 나는 남반의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와 생각해보면, 그 때 남반은 소녀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 말을 할 때, 남반이 머릿속에 염두해 둔 건 분명 서구의 '철벽'으로 불리는 볼가-돈 강이었을 테니까.


 남반 여자가 다가오자, 소녀는 경계하면서 다시 손짓을 했다. 그녀 앞에 커다란 짐승 하나가 나타났다. 전체적으론 사자나 호랑이같은 인상이었지만, 온몸이 비늘로 뒤덮인데다 머리에 한 쌍 작은 뿔까지 달린 이상한 형상이었다. 그것을 본 남반은 콧방귀로 바로 응수했다.


 "흥, 이번엔 조잡한 요술이냐."


 짐승은 남반을 머리로 받을 양 달려들었다. 남반은 그것을 가만히 보더니, 손에 든 철 막대기를 들어 내리쳤다. 남반이 휘두른 막대에 정수리를 얻어맞은 짐승은, 그대로 멈춰서더니 연기로 변해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소녀에게 남반은 실망의 기색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그녀들끼리는 알아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남반이 한 말의 의미를 조금도 알 수 없었다.


 "수법도 어설픈대다 상대도 틀렸다. 법도와 예의 괴수로 나를 상대하려 드느냐? 해치 따위로 이 몸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릴 수 있을 성 싶으냐?"

 "..."

 "그 쪽이 수가 떨어졌다면, 이 쪽에서 가마."


 흠칫, 놀라 물러서려는 순간, 이미 상대는 눈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소녀가 두 팔을 펼치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상대 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을, 남반은 너무도 가볍게 손에 든 막대를 휘둘러 깨뜨렸다. 장벽이 부서진 순간, 소녀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 몸을 받아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왕방울만한 눈동자 네 개가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나무를 깎아 만든 가면이었지만, 진짜 얼굴인 양 귀기가 넘쳐 흘렀다. 우리를 내려다보며, 남반은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무어냐? 이 어설픈 술수가 다 뭐냔 말이다. 아까의 '철벽'에 방금 전의 '요술'까지, 전부 다른 '강'들이 부리는 수법이 아니더냐?"

 "..."

 "남을 따라하는 것조차 만족스럽지 못하고, 게다가 자기 고유의 수법이란 기대할 수조차 없다. 거듭 묻는다. 넌 대체 무어냐? 네녀석도 저 '강'들 중 하나라면, 조금은 그럴듯한 모습을 보이지 그러냐?"

 "'강'이라고? 이 어린애가?"


 남반의 얘기에 나는 화들짝 놀라 소녀를 보았다. 외양도, 마주 닿는 손끝의 감촉과 그로부터 전해져오는 체온도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 없다. 그러면서도 인간으로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수법들을 구사한다. 남반은 어설프다고 했던, 조금 전의 방어벽이나 괴물을 불러내는 요술 따위 말이다. 분명 내가 아는 한 이런 걸 쓸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딱 그들, '강'들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소녀가 '강'이라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전세계적으로 유력한 강들, 우리 인근의 강들은 대체로 그 얼굴이나 모습이 잘 알려져 있다. 신문이나 TV 뉴스, 혹은 교과서 등에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소녀는 그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그건 장담할 수 있다. 죽은 여친과 닮은 얼굴이 화면상이나 지면상 어딘가에 실렸더라면, 내가 놓치고 지나가지 않았을 테니까. 더군다나 색동저고리에 주름치마 차림을 하고 머리에 아얌까지 얹은, 전통 한복 차림을 한 '강' 얘기따윈 들어본 적도 없다. 이 나라의 강들은, 북으로는 두만강, 압록강으로부터 남으로는 섬진강까지, 단 한 번도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눈 앞에 있는 이 소녀는 대체 뭐란 말인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곧바로 남반이 다시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형리!"


 멀리서, 예이~, 하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반은 주저없이 다음 말을 내뱉었다.


 "이 자를 내가 보는 앞에서 봉하라. 사지를 찢어발기고 흔적을 남기지 마라."

 "뭐라고?"

 "뭔가 불만이라도 있느냐?"


 무심코 입에서 새어나온 말이 남반의 시선을 끌고 말았다. 소녀가 등장한 후 처음으로, 남반은 내게로 주의를 돌렸다.


 "너는 벌레들, 하루살이나 모기, 바퀴벌레 따위가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걸 보면 어떻게 하느냐?"

 "이 애가 벌레나 마찬가지란 거야?"

 "방해가 된다면 제거한다. 거리낌이 된다면 제거한다. 그렇게 해온 건 너희 인간들이 아니더냐? 이제와 우리가 같은 행동을 한대도 너희가 반발할 이유는 없을텐데?"

 "누가 그 따위 말을 납득할 거 같아?"

 "그래, 납득하지 않아도 좋다.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너와 난 영원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


 시행하라, 라는 한 마디가 남반 입에서 떨어지자, 작은 종이 조각이 날아와 소녀에게 달라붙었다. 처음엔 입에, 다음엔 두 눈에. 들러붙은 종이조각 위에는 한자로 봉(封) 한 글자가 먹으로 적혔다. 소녀는 그것을 어떻게든 떼어내려 발버둥쳤지만 종이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다른 조각들이 더 날아와 소녀의 두 귀를 막고 코와 입을 덮었다. 곁에서 나 또한 어떻게든 종이 조각들을 떼어 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겨우 한쪽 귀를 덮은 조각 하나를 떼어내는 데 그쳤을 뿐이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말하라고!"

 "...계속하라."

 "!!"


 내 항변은 한 귀로 흘리곤, 남반은 다음 단계를 지시했다. 소녀의 양 손목과 발목에 새끼줄이 날아들어 단단히 묶였다. 이윽고 소녀의 목을 감아매려는 새끼줄이 날아들었다. 몇 번 헛손질을 한 끝에 나는 그것이 소녀에게 가 닿기 전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양 손아귀 안에서 꿈틀대는 그것을 붙잡은 채 나는 남반을 향해 소리쳤다.


 "어떻게 이 어린 애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지? 어떻게 이런 잔혹한 짓을 할 수 있냔 말야! 산왕의 백성이란 모두 다 그런 거야?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같은 건 전혀 느끼지 않는 거냐고!"

 "가책이라고? 적을 죽이는데 일일히 가책 따위를 느껴야 하는 건가?"

 "뭐라고?"

 "여긴 이미 전장이다. 네녀석들이 과거처럼 평화로운 양, 아무런 문제도 없는 양 우리들을 무시하며 소꿉놀이하는 것까진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그 소꿉놀이에 우리까지 어울려야 할 필요는 없겠지.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겠다면, 이제부터 새겨듣거라. 너희들의 시대는 끝이 났다. 오로지 인간만이 잘난 세계는 오래 전에 망해 사라졌단 말이다. 솔직히 너희들의 그 소꿉놀이엔 신물이 난다. 위험한 싸움은 저 '강'들에게 맡겨두고, 옆에서 뭐가 박살나건 말건, 누가 죽건 말건 예전처럼 평화로운 세상인 양 믿고 사는 너희들의 그 한심한 작태가 짜증이 난단 말이다. 솔직히 그게 더 소름끼치는 것이 아니냐? 그게 더 잔인한 게 아니더냐? 너희 인간들의 그 지독히도 개인주의적인 무책임과 무관심 말이다."

 "잘난 듯 떠들어대지 마!"


 화를 내며 소리치는 순간, 몇 가닥 새끼줄이 다시 날아들었다. 아차, 하고 돌아봤을 땐 이미 그 새끼줄들은 소녀의 목을 단단히 조르고 있었다. 조금 느슨히 매어 있던 새끼줄들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서서히 당겨져 팽팽해져갔다. 나는 더욱 흥분해 남반에게 소리질렀다.


 "대체 뭐야!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고!"

 "능지처참이다. 그 육신에서 혼백조차 떠나지 못하게 봉하고 사지와 함께 산산조각나도록 찢어발겨버리겠단 말이다. 저 계집애는 애초부터 태어난 적조차 없는 것이 되어 버리겠지. 물론 혼백이 없으니 다시 태어나는 것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끔찍한 얘기를 입에 담으면서도 남반의 목소리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 목소리에 분노하고 또 기겁하면서도, 나는 비굴하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남반이라는 저 도깨비 가면 여자가 얼마나 강한지는 이제껏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저 어린애 하나를 구하기 위해 내가 암만 발버둥친대도, 저 남반이란 여자에겐 손끝 하나도 댈 수 없을 거다. 애당초 무의미한 저항이란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걸까?


 ".....으윽...."


 괴로웠던지, 소녀는 신음을 흘렸다. 처음으로 들어보는 그 아이의 목소리였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으로 듣는 그녀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정말 괜찮은 건가? 무책임하고 무관심하게 모른 척해도 상관없는 걸까?


 줄은 금방이라도 소녀의 온 몸을 갈라놓을 양 팽팽했다. 소녀의 몸은 이제 바닥에서 조금 떠올라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예전에 보았던 익숙한 장면을 떠올렸다. 정확히 같은 장소에서, 지금과 같은 한밤중에, 소녀와 닮았던 내 연인은 형체도 없이 산산조각나 버렸다...


 "그만둬...제발 그만 두라고..."

 "형리,"


 남반은 입을 열어 나지막하게 말했다. 다음 말이 떨어지면 소녀는 죽고 만다. 그때 내 애인이 그랬듯, 산산조각나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아무렇지도 않느냐고? 이대로 방관해도 좋냐고?


 그럴 리가 없잖는가!


 "젠장, 그만 두란 말야!"


 몸을 일으켜 남반에게 곧바로 달려들었다. 예상밖이었는지, 남반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남반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방상시 도깨비 가면을 쓴, 바로 그 얼굴을 말이다.


 퍽, 소리와 함께 격렬한 통증이 손가락 뼈를 통해 전해져 왔다. 나는 외마디 비명을 내뱉으며 휘둘렀던 주먹을 거둬들였다. 얼마나 세게 휘둘렀는지 손목이 다 시큰거릴 정도다.


 "네 이놈...."


 잔뜩 화가 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조금 전 내가 때린 상대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있는 건, 도깨비 가면을 쓰지 않은 낯선 여자의 얼굴이었다.


 바짝 당겨 모아 하나로 묶은 머리채, 흐트러짐 없이 상대를 똑바로 응시하는 두 눈동자. 필시 심지가 굳고 드센 사람이리라. 솔직히 조금 놀라고 있었다. 흉흉한 도깨비 가면 아래 감춰진 얼굴은, 내가 생각했던 '인류의 적'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뭐랄까, 예상보다 훨씬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할까?


 가면이 벗겨지며 드러난 자신의 맨얼굴을, 남반은 어째선지 한 팔로 가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면서 다른 한 팔로는, 들고 있던 쇠막대를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반격한다기보단, 가까이 있던 나를 멀찍이 쫓아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기세에 눌려 나는 자리에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벗겨진 채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남반의 가면이 보였다. 남반 역시 자기 가면이 바닥에서 뒹구는 꼴을 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자못 매서웠다. 나는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그녀 시선을 피했다.


 "형리!"


 다시 한 번 남반의 입이 떨어졌다.


 "저 자의 목을 베어 효수하라!"


 예이~, 하고 멀찍이서 대답이 돌아왔다. 그와 함께 남반의 앞에, 난데없이 커다란 사람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2m? 아니, 3m는 되어 보이는 키에 우람한 체격을 하고, 허름한 바지저고리를 걸치다시피 입은 정체불명의 남자였다. 상투를 틀었다 풀어헤친 양 어지럽게 산발한 머리에 흉흉한 눈빛을 한 남자는, 손에는 거대한 체구에 어울리는 커다란 칼을 들고 있었다. 남자는 칼을 들어 나와 소녀를 바라보더니, 대뜸 그 묵직한 칼을 우리를 향해 휘둘렀다.


 "!!"


 소녀가 다시 손을 펼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냈다. 남자가 든 칼은 그 벽에 부딪쳐 잠시 움직임을 멈춘 듯해 보였다. 남자는 당황해하는 기색도 없이 그대로 힘을 주어 아예 소녀가 만들어낸 벽을 산산조각내버렸다. 칼끝은 여전히 우리 두 사람을 향해 있었다.


 거대한 칼날이 거침없이 바로 눈 앞까지 날아들자, 나는 소녀를 끌어당겨 품 안에 품듯 껴안았다. 나는 찌질하고, 또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한 남자지만, 이번만큼은 어떻게든 그녀를 보호하고 싶었다. 소리를 닮은 그녀를, 아니 소리 그 자신을 또 한 번 눈 앞에서 잃고 싶지 않았다.


 소녀는 당황했는지 품 안에서 버둥거렸다. 나는 눈을 꼭 감고 칼날이 내 목만을 치고 지나가길 바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기다리는 그 수 초가 내게는 수 분이나 다름없었던 탓이다.


 아니, 어쩌면 정말 눈을 감았던 건 수 초가 아니라 수 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기척을 느껴서 와 봤더니, 이게 다 무슨 일이람?"


 어디선가 들었던 낯익은 목소리에 눈을 떴다. 사내가 휘두른 커다란 칼날을 한 손으로, 그것도 맨손으로 막고 선 여자가 눈에 띄었다. 화려하게 붉은 차이나 드레스 차림을 한 그 여자는,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멀뚱히 쳐다보는 거야? 방해되니까 저만치 물러서있지 못해!"


 차이나드레스 차림의 여자, 양쯔 강은 우리를 한 번 쏘아붙인 뒤, 손에 받은 칼을 밀어내고 맹렬한 기세로 사내에게로 달려들었다. 상황은 그녀로 인해 완전히 반전되었다. 순식간에 망나니 사내는 쓰러지고, 남반 여자도 혀를 차며 자리를 피했다. 어느새 그 자리에 남은 건 나와 정체불명인 소녀, 그리고 양쯔강 이 셋뿐이었다.


 "자, 그럼."


 파죽지세로 상황을 정리해 버린 양쯔강이 다시 우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 눈은 이제 막 내 품 안에서 벗어난 낯선 소녀에게로 향해 있었다.


 "넌 대체 누구야? 어째서 내 영역에 나도 모르는 '강'이 있는 거지?"


===============================================

 무대와 인물이 대충 정리됐으니, 슬슬 사건을 전개시켜 보죠 ㅎ
 반쪽짜리 인간과 반쪽짜리 강의 생존 전략이 얼마나 재미있을 지 모르지만,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회사일이, 월말마다 바빠서 정신 차리고 챙기지 않으면 주기적으로 이번처럼 연재가 연기될 거 같네요;
 물론 웬만하면 그런 일 없도록 해야겠죠; 기왕 정기 연재하기로 한거니까요

 다시 한 번 연재가 미뤄져 오늘에야 올리는 데 사과를 드립니다. 
?
  • profile
    욀슨 2012.07.21 23:04
    한국적인 소재가 좋네요. 주인공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렇고, 매번 적절한 위치에서 끊으시는 것도 그렇고요. 재미있게 봤어요. 다음 주도 기대할게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07.22 06:27
    감사합니다. 남녀 두 주인공이 점차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생각처럼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것도 포함해서 소재나 연재량도 신경쓰는 부분입니다. 모자라고, 보시기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런 부분들은 주저없이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 profile
    클레어^^ 2012.07.22 06:49
    헉! 조선 시대에 나오는 형벌들이...;;
    혹시 저 적이 우리나라 강과 관련된 건가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07.23 06:47
    상식이 많거나 조예가 깊은 게 아니라서 생각나는 대로 쓰고 있네요; 조선 시대, 를 상정하고 쓰긴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중국풍이 된 거 같아요 ㅎ

    이전까지의 연재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남반'은 산왕의 백성입니다. 나중에 다시 얘기 나올지 모르겠지만, 산왕의 백성들은 강보다는 산과 좀 더 가까워요.
    물론 '양쯔강'처럼 특정한 지명과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요^^
  • profile
    yarsas 2012.07.24 08:29
    절망적인 분위기가 지속되다 양쯔가 나오자 마자 순식간에 급반전이 되어버린! 단 세 줄로 끝나버리니 조금 아쉽군요. 잔뜩 긴장하다가 힘이 쫙 빠져버렸습니다 뉴_=..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_+! 이제 메인 인물이 다 나왔으니 본격적인 전개 기대할게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07.24 16:39

    화려한 전투신은 연출을 잘 못하겠더군요;; 전투신을 그릴까, 축약해 버릴까 고민하다가 짧게 가기로 했어요. 아직 초반인데 길게 늘여 쓰는 것도 보기 부담되지 싶어서요....야르사스 님 말마따나 좀 썰렁하긴 하네요 ㅎ
    댓글 감사합니다. 이번 주 올리실 새 화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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