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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늘 중으로 리포트 올리겠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올리도록...”

 

 뚜뚜뚜. 아직 말하는 중인데... 나는 씁쓸하게 휴대폰의 통화 종료버튼을 눌렀다. 에휴... 절로 한숨이 쏟아졌다. 벌써 며칠째 버스에 죽치고 앉아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아무리 지도 교수라고해도 이따위로 사람을 무시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야 이 새끼야로 시작해서 세상의 모든 욕을 그 인간의 귓구멍으로 털어내고 싶었지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 졸업하고 그냥 취직이나 할 걸.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 둘수도 없었다. 석사에 박사, 그리고 지금의 박사 후 과정까지. 그동안 피땀으로 쌓아올린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그리고 하는 짓은 아니꼬워도 이 교수가 이 분야의 일인자이기도 하고, 그만큼 학계의 실세인지라 견뎌내기만 하면 나한테 떨어질 콩고물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버텨내는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적절한 샘플이 없는 걸 어쩌라고.’

 

 어두워지기 시작한 거리의 모습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비가 내리는지 빗물이 창가에 부딪쳤다. 아 더워. 끈적끈적한 습기가 한여름의 불쾌함으로 말미암아 온몸을 감싸고돌았다. 이쯤이면 에어컨을 켤 만도 할 텐데. 버스기사는 그저 인상을 팍 찌푸린 채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기름 값 비싼데 아껴야지. 아껴서 국가경제에 보탬이 되야지 씨발. 나는 백미러에 비친 기사의 짜증스러운 얼굴을 그대로 복사했다. 아니 했다기 보다는 이건 거의 강제사항이었다. 그나마 뜨거운 바람이나 들어오던 창문도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에 닫아야만 했으니까. 아 그러니까 제발. 기사양반! 에어컨 좀 킵시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면 도대체가 실험을 할 수가 없잖아. 자 보라고. 다들 짜증스러운 표정에 건드리기만 해도 주먹부터 나올 것 같고. 이래가지곤 도저히 실험을 진행할 수가...

 

 “괜찮아? 계단 오를 수 있겠어?”

 

 누구지 이 목소리는?  치솟는 성질에 머리를 벅벅 긁어대던 내 귓가에 누군가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이런 목소리라니. 나는 기대감으로 소리 난 쪽으로 고개를 향했다.

 

 “두 명이요.”

 

 마침 목소리의 주인공은 버스기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마 50대쯤 됐으려나? 버스카드를 손에든 남자가 버스의 입구에 서있었다. 다른 한손으론 뒤에 선 여자의 손을 꽉 쥔 채였다. 버스기사는 슬쩍 남자와 여자를 훑어보더니 리더기를 조작했다. 삑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 명의 승객을 받아들을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버스의 준비상태와는 달리 버스기사는 여전히 짜증스러운 얼굴로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다인승입니다]

 

 카드를 찍은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은 채로 조심스럽게 버스 안을 걸어 나갔다. 여자도 남자를 따라 한발자국씩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저러다 쓰러지겠네.’

 

 여자는 위태위태해서 뭔가 기운이 없어보였다. 대한민국 버스의 표준 운전에도 여자는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처럼 흔들렸다. 남자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인지 그는 빈자리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남아있는 자리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남자를 살폈다. 다행히 이런 상황에서도 남자의 표정에는 불쾌한 기색이라곤 전혀 떠오르질 않았다. 아마 여자를 걱정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잘하면 오늘 한 건 올리겠는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마음이 훈훈해진다. 다시 그들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간신히 뒷문 근처의 노약자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가방에서 테블릿 PC를 꺼내들었다. 일단 저 남자 정보부터 따내자. 내 손가락이 터치스크린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정보를 따내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다리 사이에 내려놓은 가방을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초소형 슈퍼컴퓨터라고 불리는 장치가 그 가방 안에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수가 나에게 전해준 물건이었다. 게다가 컴퓨터 안에는 근방의 통신망과 전자제품 통제권을 가져올 수 있는 해킹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주변 휴대폰의 소유권을 획득 한 후 통신망을 통해 역으로 그 사람의 정보를 알아내는 방법이었다. 정확한 방법까진 모르지만 아마도 통신사나 정부 관계부처를 해킹하는 듯 했다. 그야말로 내 허접한 프로그래밍 실력으로는 표면 구조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괴물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누가 이런 걸 만들었을까? 이 컴퓨터만 있으면 갑부가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통장의 잔액을 마음대로 하거나 인터넷에서 내 마음대로 화폐를 찍어서 사용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 컴퓨터를 통해 내가 한 모든 일들이 교수에게 즉시 전달되어 버리니까... 이런 제길. 어떻게든 연결은 끊어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강력한 프로텍터가 걸려 있어서 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여기에 앉게.”

 

 그렇게 한창 근처 통신망을 장악하고 있던 바로 그 때, 갑자기 남자 앞 노약자 석에 앉아 있던 노인이 엉덩이를 반쯤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자리를 양보하려는 건가? 나는 잠시 손가락을 멈춘 채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금방 내릴거라서요.”

 

 얼라? 얼씨구나 하고 여자를 자리에 앉힐줄 알았더만?

 

 “여성분이 좀 힘들어 하는 것 같은데...”

 

 노인이 거듭 양보의 뜻을 밝혔다. 오호, 저 사람도 좋은 표본이 되겠는데? 하지만 실험은 한 명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나저나 눈을 키고 찾을 때는 그렇게나 안보이더니 갑자기 이렇게 두 명씩이나 나타나고... 제발 이렇게 한꺼번에 나타나지 말고 틈을 두고 나타나란 말이다. 이렇게 되면 실험 하나에 쓸 만한 표본이 두 개씩이나 날아가잖아! 아이고, 아까워라.

 

 “정말 괜찮습니다.”

 

 거듭된 남자의 거절에 자리를 양보하려던 노인은 머쓱하게 도로 자리에 앉았다. 아마 남자는 고지식하고 자기 주관이 강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노인이 앉아 있던 노약자석을 계속 거절하는 것이겠지. 나는 다시 손끝으로 테블릿의 액정을 톡톡 두들겼다. 화면에는 무언가 복잡한 창들이 아까부터 계속 로딩 되고 있었다. 

 

 [로딩이 완료되었습니다]

  

 ‘어디보자.’

 

 버스안 사람들의 얼굴사진 중에서 나는 남자의 얼굴을 서둘러 찾았다. 나는 화면에 떠오른 남자의 정보를 빠르게 눈으로 읽어나갔다. 이름 유동훈. 나이 52세. 으음, 의외로 나이가 많은데? 직업은 자영업이라... 무슨 장사를 하려나? 가만있어보자. 분식집 장사를 하네? 점포는 2009년에 열었고 매출은 그럭저럭...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현금장사를 할 테니 어느 정도 탈세는 있겠지만 밀린 세금이나 벌금은 한 건도 없었다. 건강정보는... 특별히 아픈 곳 없고 과거에도 별 탈 없이 잘 살아온 모양이었다. 다행히 정신과 질환도 없고. 이정도면 실험을 진행하는데 큰 무리는 없어보였다.

 

 그럼 일단 전화를 걸어야겠지. 우선 저 남자의 전화번호부를 살폈다.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걸어야 의심 없이 받을 테니까. 보통 부모님이나 가족 번호를 이용하는데 아무래도 옆에 여자가 부인인 듯 했으니까... 아, 어쩌면 부인이 아닐 수도 있겠네. 아무튼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나는 다시 화면을 살폈다. 다행히 어머니라고 저장된 번호가 있었다. 이 번호를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공일공 칠오삼팔에...’

 

 나는 터치스크린의 큼직한 버튼을 하나하나 천천히 눌렀다. 그리고 통화버튼을 누르기 전에 잊지 않고 프로그램을 기동시켰다. 자, 이제 저 남자가 전화를 받으면 실험 시작이다.

 

 얼마 안 있어 남자의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특별히 휴대폰 꾸미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지 단순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아아, 이건 그야말로 아련한 음색이다. 우리 아버지도 예전에 이 벨소리 썼었는데. 벨소리 설정하는 방법을 모르셔서 몇 달 동안 애초에 설정되어있는 벨소리를 그냥 쓰셨었지. 그나저나 이 인간... 빨랑 좀 받지? 휴대폰 울리는거 안들리나?

 

 “전화 왔어요.”

 

 남자는 옆에 여자가 알려주고서야 간신히 자신의 휴대폰의 상태를 확인한 듯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손이 바지 주머니로 향했다. 오오. 드디어 하나 걸렸구나. 나는 속으로 쾌자를 불렀다. 바지 속에서 나온 휴대폰의 벨소리가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여보세요?”

 

 남자가 전화를 받자 나는 조심스럽게 핸드폰 카메라를 향했다. 실험의 증거자료를 위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녹화해서 보고해야 했다. 다만 ‘주변에 의심을 살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가 우리 연구실의 모토인 탓에 나는 동영상을 찍으면서도 마치 문자를 보내는 듯, 게임을 하는 듯 현란하게 손가락을 허공에서 허우적거려야만 했다.   

 

 한동안 남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전화기만 들고 서 있었다. 사실 사람마다 프로그램이 침투하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어떨 때는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한참이나 걸려서야 반응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가끔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람도 있고. 뭐, 이런 경우라면 특이 케이스라 납치를 해서라도 연구실에 데려가야 하겠지만 이 남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비록 아무런 움직임은 없었지만 이상한 소리나 흘러나오는 전화기를 저렇게 오랫동안 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반응이 있다는 뜻이었다.

 

 “무슨 전환데 그러고 받아요?”

 

 옆에 서있던 여자가 남자의 태도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보았다. 표정 없는 얼굴로 그는 여자를 내려다본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남자의 반응이 심상치가 앉자 여자가 재차 묻었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전화기를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자, 이제 드디어 시작이로군. 나는 휴대폰의 카메라를 다시 확인했다.

 

 “재수 없어.”

 

 남자가 마침내 작게 중얼거렸다. 두 눈썹도 조금씩 일그러졌다. 

 

 “네?”

 

 여자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재수 없다고. 왜 자리를 양보하는데? 우리가 무슨 장애인이야? 내가 싫다는데 왜 자꾸 지랄이야. 생긴 건 비렁뱅이 같이 생긴 게. 내가 싫다고 하잖아. 무시하는 거야? 지금 날 무시해?”
 
 으음, 이 정도면 꾀나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나는 한손으로 휴대폰을 잡고 다른 손으론 수치를 입력했다. 그러니까 반응 속도는 9초, 반응의 유형은 양성. 반응의 방향은 제삼자를 향하고 있었다. 사실 이 반응의 방향성이란 건 근래에 세운 새로운 가설이라 이제 막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한 항목이었다. 그러니까 반응, 즉 남자에게 주입한 감정이 발현되는 방향성은 가장 최근에 발생했던 부정적인 자극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가설이었다. 다시 말해 그 전까지 아무리 강한 자극이 있었다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자극의 강도보다는 자극의 시간적 차이 수준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거가설. 만약 자극의 강도에 의해 반응이 일어난다면 남자는 앞에 있는 노인이 아니라 옆에 있는 아내인 듯한 여자에게 분노를 쏟아내야 했다. 아무래도 교수가 이번에 설정한 가설은 그럭저럭 적용이 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이제 반응의 강도만 측정하면 되겠네. 나는 다시 시선을 남자로 향했다. 마침 노약자석에 앉은 노인이 안절부절 몸을 옴짝거렸다. 하긴 바로 옆에 선 남자가 저지경이니 놀라기도 놀랐을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남자가 화를 낼 이유는 전혀 없었으니까. 아마 속으로는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무진장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같이 화를 내고 덤벼야 하나, 아니면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나. 그리고 잠시잠깐의 고민 끝에 노인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욕을 견뎌내기엔 가진바 인내심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이 새끼가 왜 또 일어나? 그렇게 내가 만만해 보여? 아까 내가 싫다고 했어 안했어? 이 새끼가 귀까지 쳐 먹었나.”

 

 역시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을 보고 눈이 뒤집힌 듯 했다. 노인의 바로 앞까지 남자의 화난 얼굴이 들이닥쳤다.
 
 “이 양반이? 아까까진 멀쩡하더니 갑자기 이게 무슨 행패요?”

 

 아이고. 결국 저 노인네 일 저질렀네. 지금 상황에서 저런 행동이라니. 혹시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노인이지만 실상은 은퇴한 근육질의 격투가라도 되는 건가? 그런 게 아니라면 항의를 할라쳐도 상황을 보면서 해야지. 하여간 늙으면 다들 쓸데없이 자존심만 강해져서 문제였다. 아무튼 이제 슬슬 반응 수준이 떨어질 때가 됐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치고 박고 싸우면 어떡하지? 아, 진짜. 괜히 복잡하게 만드네 저 노친네. 

 

 “야 이 새끼야 지금 뭐라고 했어.”

 

 아이고 일 났네 일 났어.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노인의 멱살을 잡은 채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노인은 갑작스러운 남자의 공격에 미처 대응을 하질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놀라 소리를 지르며 놀라 물러섰다.

 

 “아악, 당신 지금 뭐하는 거예요!”

 

 옆에 서있던 여자가 기겁을 하며 매달리듯 남자를 뜯어 말렸다.

 

 “이거 놔. 이거 안 놔?”

 

 하지만 남자는 이미 이성을 잃은 듯 보였다. 여자는 매달리듯 남자의 팔을 잡아 당겼지만 남자는 더 강하게 노인을 잡고 흔들었다. 

 

 “이게 지금 무슨...”

 

 노인의 모습은 애처롭기만 했다. 호기롭게 대들었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듯 했다. 노인은 어떻게든 남자의 손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지만 그러기엔 힘이 많이 부족한 듯 했다.    

 

 이 정도면 반응 강도는 10점 만점에 9점 정도 되려나? 사실 이 항목에 9점이나 매겨보긴 처음인 것 같았다. 아무튼 이 정도면 됐다. 이대로 조금만 더 나가면 통제가 안 될 가능성이 있었다. 자, 그럼 실험 종료. 나는 촬영된 동영상 저장한 후 교수에게 송신했다. 이제 며칠은 잔소리에서 벗어나겠군. 나는 서둘러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남자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 미치겠네. 아까도 그렇고 제발 전화 좀 받으라고. 하지만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흔들고 흔들리고 매달리느라 전화가 왔는지 조차 모르는 듯 했다. 어떡하지?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땀이 흘러내렸다. 정말 이러다가 누가 신고라도 해서 경찰이라도 오면 큰일이었다. 옆에 있던 여자라면 남자가 휴대폰을 받고 이상해졌다는 건 바로 알아 차렸을 것이다. 혹시 경찰한테 이야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그럼 발신자 정보를 확인할 거고. 발신자 정보자체가 없는 통화기록을 의심할 텐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싸움을 말려야 한다. 나는 주변 눈치를 살폈다. 누군가 이 상황을 해결해 주길 바랐지만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그저 겁먹은 표정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아, 진짜 돌겠네. 이 인간들은 대체 뭐야? 사람이 지금 치고 박는데 다들 멀뚱히 구경만 하고.  

 

 “아이쿠.”

 

 마침내 남자는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던 노인을 바닥에 패대기쳐 버렸다. 노인은 공포에 질린 듯 아무런 말도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 채 움직이질 못했다. 남자가 성큼 성큼 노인에게 다가섰다. 위급한 순간이었다. 어쩌면 노인을 걷어찰지도 모르고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을지도 몰랐다.

 

 나는 일단 태블릿 PC를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내가 끼어들었다고 하면 나중에 교수한테 엄청 깨질 텐데. 그냥 확 도망쳐버릴까? 하지만 그럼 또 일처리를 그따위로 하냐고 욕먹을게 뻔하고. 에이, 모르겠다. 최소한 경찰이 오는 사태는 막아야 하니까. 이젠 방법이 없었다. 

 

 “잠깐만요. 아저씨. 이러시면 안 되죠.”

 

 그래 정말 이러면 안 된다 너. 나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남자를 잡아끌었다. 다행히 나와 아까부터 매달려 있던 여자가 동시에 잡아당기자 남자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사지를 바동거렸다.

 

 “놔! 놓으라고! 내가 오늘 저 새끼를 죽이고 말테니까.”

 

 아, 이거 완전히 맛이 갔네. 나는 온힘을 다해 남자의 양팔을 붙잡았다. 그 과정에서 남자의 팔에 몇 번이나 얼굴을 가격 당했지만 정신이 없어서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단 이 싸움부터 말려야 했다. 조금 아픈 것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응? 그런데 이 불길한 불빛은 뭐지?

 

 힘겹게 사투를 버리는 내 시야에 갑자기 파랗고 붉은 불빛이 어지럽게 스며들었다. 아, 진짜. 어떤 새끼가...

 

 [34번 버스. 차 왼쪽으로 빼세요.]

 

 경찰이었다. 버스는 천천히 길가에 차를 세웠다. 정신이 멍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조용히 있다가 도망치는 게 나을 뻔 했다. 경찰이라니. 행여 내 정체가 드러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가방수색을 할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누가 봐도 수상한 컴퓨터는 증거물 1호가 될지도 몰랐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이 상태로는 졸지에 감방살이를 할지도 몰랐다. 불안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직 이렇게 젊은데 전과자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무언가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아, 잠깐. 그렇게 하면?’ 

 

 나는 황급히 자리로 돌아가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냈다. 일초가 아까운 순간이었다. 경찰이 들어오기 전에 작업을 마쳐야 했다. 나는 서둘러 주변의 휴대폰 정보를 해킹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새롭게 갱신된 번호가 하나 있었다. 이름 박동수. 직업은 경찰. 순경. 순식간에 경찰의 신상명세가 화면에 떴다. 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어느새 버스 뒤쪽 창문으로 경찰관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제발 이제 조금만 있으면 되는데.  
 
 똑똑

 

 경찰이 버스 앞문을 두들겼다. 문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열렸다. 그리고 열린 문 사이로 마침내 박동수 순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버스에 오른 박 순경은 잠시 쓰러져 있는 노인과 아직까지도 욕지거리를 해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느 분이 신고하셨죠?”
 “잠깐만요!”

 

 일단 이쪽으로 주의를 돌려야 한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박 순경의 반응을 살폈다.

 

 “무슨 일이시죠?”
 
 박 순경이 약간은 짜증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전화 왔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내 휴대폰을 박 순경에게 내밀었다.

 

 “네? 전화라뇨?”
 “김영철 파출소장이라고... 빨리 바꾸라는데요?”
 
 내가 상관의 이름까지 대며 재촉하자 박 순경은 의심스러워 하면서도 결국 전화를 받아 들었다. 하긴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상관의 전화라는데 안 받을 재간은 없을 테지. 그리고 마침내 박 순경이 전화를 귀에 가져다 대는 순간 나는 재빠르게 뒤에 감춰둔 태블릿 PC를 조작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박 순경은 휴대폰을 귓가에 댄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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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드네요. 처음에는 쉽게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분량도 많아지고 잘 써지지도 않고. ;;

게다가 마지막 수정을 하다보니 어느새 새벽 4시가 훌쩍 넘었네..;;

이제 그만 자야겠습니다. 태풍의 직접 영향권 속이지만 여러분도 무사히 좋은 꿈 꾸시길..

?
  • profile
    윤주[尹主] 2011.08.08 14:58

     영화 속 한 장면같은 이야기네요 ㅎ

     잘 봤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태풍 심하지 않았던 거 같아 다행입니다^^;

  • profile
    시우처럼 2011.08.08 19:13

    아침에 바람 엄청 불던데. 잠깐 창문 열었다가 문짝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어요. ㅋ

  • ?
    乾天HaNeuL 2011.08.09 01:40

    .....이건 마치 C앤C 레드얼렛2에 나오는 유리 능력... ㅡ,.ㅡ; 전화를 딱 받은 미군... 핵폭탄 개폐장치를 열기 전에 자신의 부하를 쏴죽이다. 그리고 미국의 모든 핵탄두는 그대로 모두 콰광~~~


    ㅇㅇ


    이것이 바로 영화의 한 장면. ㅋ(응!! 게임이잖여!)

  • profile
    시우처럼 2011.08.09 02:11

    이럴수가!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였을 줄은... ㅋ

  • ?
    모에니즘 2011.08.09 06:41

    내용의 흥미와 비평의 느낌이 와닿는 적절한 글이였습니다.

  • profile
    시우처럼 2011.08.09 16:35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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