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2 03:07

이야기꾼 (1)

조회 수 321 추천 수 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야기를 꾸며내는 사람엔 두 종류가 있다. 사기꾼과 작가. 그 둘에 차이를 따지자면 남에게 피해를 주냐 안주냐의 문제일텐데..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에 속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누구냐고?

 나는 이야기꾼이다.

 

 말해놓고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오는군. 뭘 하는건지 설명해야된다는 것 부터가 진짜 없어보여. 그래, 상식적으로 이건 직업하곤 좀 거리가 멀다. 취미이자 의무라고 하면 되겠지. 직업이라 함은 아무래도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니 말이다.

 

 내 직업은 탐험가다. 세상에 아직 알려지지않은 유적이나 동식물을 찾아내고, 그에 관련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파는 것이지. 뭐 멋지게 말하자면 미지의 것을 탐구하는 사람이니까, 찔러보면 머리 위로 화살이 날아다니는 무용담이나 동료의 희생, 찾아낸 것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둘 쯤은 나올거라 생각하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곤란하다. 왜냐고 해도.. 발견물에 대한 정보란건 목적이 연구든 개인 소장이든 암거래든 간에 그게 독점적이어야 의미가 있는거다. 안그러면 경쟁이 있을거고, 경쟁이 과열되어 누군가는 죽거나 다치고, 정보를 지멋대로 왜곡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 커리어엔 먹구름이 끼고, 하여튼 종합적으로 뭣 되는거다. 이렇게까지 설명했으니 이해하리라 믿는다. 탐험가로서 겪은 이야기는 내가 무덤까지 가슴에다 묻어두고 가져가야될 것이란 걸. 아니면 내가 무덤에 들어가게 될 거야. 아니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댁이 들어가던지. 동반 입장이면 화풀이할 대상은 있어서 덜 슬프겠군. 사실은 그게 훨씬 더 슬픈 일이지만.

 

 사람을 놓고 하는 이야기에서 직업의 중요성은 큰 듯 크지 않은 애매한 것이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직업이라는건 사람을 판단할 때 중요한 잣대가 된다. 하지만 잣대로서만 기능할 뿐, 그 사람이 일하면서 겪은 사건이나 일화에 관심을 갖는건 괜한 참견 같아 꺼리게되기 마련이다.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꽤 있고. 몇 년 지기 친구라면 모를까, 대화 면에서는 비중이 거의 없기 마련인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엔 직업 자체가 발바닥에 굳은살 벗겨질 날이 없으니 그런 단짝조차도 없지만. 하여튼, 직업은 그저 잣대에 불과하다. 그 직업군에 속한 이에게 뭔가 물어보거나 협력을 요할 경우가 아니고서야, 일반적인 대화에선 기피하게 되는 화제란 말이다.

 어찌되었든 내가 탐험가라고 했으니, 사람들은 이미 나에게 '상식이 풍부한/용감한/위험한/' 같은 수식어를 무의식중에 붙였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니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야할게 있다. 내가 항상 탐험가로 일하진 않는다. 돈이 많지도 않다. 평상시의 나는 백수에 더 가깝다. 그러니 돈 문제는 제발 나한테 상담하러 오지 마라.

 

 이런 이야기를 끼적댈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한 시간을 맞는건 처음인 것 같다. 나는 한자리에 정착하는 일이 별로 없었으니까. 자는 시간을 빼면 항상 움직이고 있었다고 해도 좋겠지. 하지만 이젠 그것도 힘들게 느껴진다. 감성에 젖어가는 건지 창 밖의 야경이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다. 물론 여기가 깔끔하고 평판좋은 호텔이기 때문에 야경도 아름다워보이는거겠지만..

 요근래 들어 자꾸만 내가 곧 죽을 거라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물론 죽으면 그냥 끝이라 후회할 겨를 조차도 없겠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사라지기 전에 반드시 뭐 하나는 남겨야한다고 종족 보존의 본능 같은 뭔가에 사로잡혀버린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는 아마도 자식 대신 남기는 거라고 봐야겠지. 켁, 그럼 내가 잡고 있는 펜은 그거고 잉크는 그건가.

 갑자기 때려치우고 싶어졌다. 내 손이 더럽혀졌어! 몹쓸 연상능력 같으니라고.

 

 난 아직 한참 젊다. 사람이 25세까지 성장한다는 누군가의 지론을 빌린다면 난 아직도 성장중이지. 벌써부터 죽음을 생각하는건 궁상이요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놈의 생각은 도무지 떨쳐내지질 않아! 자려고 누우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답도 나오지않는 무섭고 답답한 의문만 나타나지. 그것들은 품고있는 한 언제고 날 찾아와 괴롭힌다. 정답이 없기에 다른이와 대화를 해봤자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고, 만성적인 정신병이라고 해도 될 성 싶다. 이렇게 적어내려가는걸 대화로 칠 수는 없겠지만, 뭐라도 털어놓는건 털어놓는거니까 이전보다는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한다. 게다가 여기엔 내가 겪었던 모험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털어놓을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겐 여전히 보여주기 껄끄럽겠지만..

 룸서비스라면서 톡쏘는 과일주스가 올라왔다. 지금도 빨대로 쪽쪽 빨아올리는데 맛이 꽤 좋다. 딸기향이 맴돌지만 맛은 라임이다. 캔디로 만들면 혀가 쓰라려서 도저히 상종못할 과일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지배인은 솜씨가 좋다. 그녀의 호의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노숙을 하고있었겠지.


 내가 이 도시에 도착한지는 2주일 정도 된 것 같다. 도착할 당시의 상황이 정신없었던 터라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그 쯤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체류하고 있는 것도 다 그 상황 때문이다. 이 도시에 아주 목적이 없이 온 건 아니지만, 애초엔 '여기에 이런 곳이 있다니까 일단 들러볼까' 정도였으니까. 여독만 풀면 바로 떠났을 게 뻔했다. 이게 다 녀석 때문이지 뭐.

 

 지금 내 방 침대엔 관계를 설명하기 애매한 일행이 앓아누워있다. 감시자? 동료? 보디가드? 젠장, 내가 작가인지 사기꾼인지 말하기 어려운 만큼이나 이 녀석도 참 처치곤란한 녀석이다. 관계만 난감한게 아니다. 존재 자체가 난감해! 이 놈은 악마다. 성격이나 흉악한 정도를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뿔 나고, 날개 돋친, 꼬리도 쭉 뻗은 레알 악마라고! 같이 걷다가 말고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2미터도 넘는 멀대같은 녀석을 데리고 오는 것도 큰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얘를 봐줄 의사를 찾는 거였다. 애초에 인간 상식으로 악마를 진찰한다는 것 자체에 에러가 있긴 하지만.

 

 결국엔 의사는 못찾고 웬 지나가던 오덕을 만났다. 악마에 빠져있는 오덕이니까 뭘 알가 싶어 상대를 하긴 했지만.. 시발 얘기하다 말고 지 놈의 '여왕님'이 자기를 아홉꼬리고양인지 뭔지로 때렸다는 이야기를 황홀경에 빠져서 지껄일 적엔 미간에다 총구 겨누고 빵야빵야 해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내 기대가 틀리진 않았는지 '지금 이 악마님은 단순히 힘이 약해져 있는 상태니까, 악마와 관련된 영물을 잘 배치하시면 호전될겁니다' 라더라. 나한텐 그런게 없다고 했더니 자기가 빌려주겠다고, 동지를 만나서 기쁘다고 하더라.

 

 사람 목숨은 모두 귀하다고 했지만, 그 순간은 진짜 '빵야빵야' 따위의 해학을 거칠 이성도 날아가서 총 꽂아둔 홀스터에 손이 갔다. 마샬, 이 망할 놈. 너 나한테 큰 빚을 진거야.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깨어날 것 같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시 적어야겠다.

 

 

?
  • profile
    클레어^^ 2012.03.24 04:31

    주인공인 탐험가는 프리랜서인가요?

    여기의 배경은 현실이나요? 아니면 판타지인가요?

  • ?
    드로덴 2012.03.25 10:26

     읽는 이와 쓰는 이의 교류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코멘터리로 글이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건 자살행위 같습니다. 미안해요.


  1. 이야기꾼 (4)

  2. [드디어 여주인공이!!]그래도 별은 빛난다 - 3. 어색한 만남

  3. 이야기꾼 (3)

  4. 나의 사랑 아버지 -4-

  5. 무녀전설-달빛공주의전설-카츠키 신사 대나무숲

  6. 현실과 꿈-4

  7. 나의 사랑 아버지 -3-

  8. 『각자의 시각에서 보는 감각 로맨스』횡단보도 24화!

  9. 이야기꾼 (2)

  10. 나의 사랑아버지 -2-

  11. 프리휴먼 마지막화

  12. [늦을 뻔 했네요.]그래도 별은 빛난다. - 2. 새 친구와 비밀

  13. 현실과 꿈-3

  14. 현실과 꿈-2

  15. 이야기꾼 (1)

  16. 현실과 꿈 -1

  17. 현실과 꿈 - 프롤로그 1

  18. 프리휴먼 대대적인 프로토스의 침범

  19. 피그말리온【#7】

  20. DEAD CASE

Board Pagination Prev 1 ... 136 137 138 139 140 141 142 143 144 145 ... 220 Next
/ 220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