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0 02:44

성배:2번 기록

조회 수 407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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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녀석들이 나에게서 내 기록장을 빼앗아갔다. 대신 이것을 주었다. 스프링에 고정된 손바닥 크기의 수첩이다. 지구에서 보던 것과 같다. 그리고 볼펜도. 우주에서는 중력이 없기 때문에 볼펜을 사용할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 여기엔 중력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우주치고 무중력상태가 아니라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하는 기록 행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되지만.. 왜 그런지도 모르겠거니와, 왜 하필이면 지구에서 쓰는 것과 같은 물건이 이들에게 있는 것일까? ..문득 이들이 지구인의 가죽을 뒤집어쓰고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MIB? 어릴 때 나 개미 많이 죽였는데.. 젠장.

 

 2. 괴물.. 아니 이제는 외계인이라고 해야겠지. 그들은 세 명만 남고 나머지는 다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쫓아갈 엄두가 안났으니까. 나머지 셋은 계속해서 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무언가 말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게 통할 지..

 

 3. 눈을 어디다 둬야할 지 모르겠다. 하나같이 다 헐벗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좇같군. 이건 뭐 3D AV도 아니고..

 

 4. 내가 움직이자 그들도 따라서 움직인다. 멈추는 것도 마찬가지다. 순간적으로 장난끼가 발동해서 DDR을 치는 액션을 취해볼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추락하지는 않았다. 무리수도 이만하면 전자발찌다. 무엇보다도 이건 누군가를 웃길만한 성질의 장난이 못된다.

 

 5. 나는 복도(?)를 살펴보기로 했다. 방을 이루는 물질과 같은 매끄럽고 튼튼한 재질로 되어있다. 하지만 내가 있던 방의 벽이나 바닥보다는 좀 더 단단하고, 광택이 있다. 조명에 대한 이야기를 깜빡했는데, 내가 갇혀있던 방의 조명은 윤곽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밝았던 반면 복도는 은은한 수준이다.

 

 6. 나를 납치한 존재들이 왜 갑자기 접촉을 시도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하나만은 단언할 수 있다. 이 일은 절대로 지구에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전할 생각도 없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한 적이 없다.

 

 7. 나는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내가 이동하는 것을 제지하는 것 같지는 않다.

 

 8. 10m 정도 걸었을 것이다. 다른 방을 발견했다. 하지만 들어가는 방법은 여전히 모른다. 그들이 문을 열어주기를 살짝 기대도 해봤지만, 그들은 그저 나를 관찰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9. 의사소통을 시도해봐야겠다. 하지만 몸이 심하게 움직이는 보디랭귀지는 자칫 공격의사로 판단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를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과 나에게 있어 가장 적절한 형태의 의사소통은.. 그림을 이용한 것이다.

 

 10. 만약 그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면, 내가 소리를 지르며 공격적으로 행동했던 것도 포착했을 것이다. 그들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정말로 위험할 것 같다.

 

 11. 나에게 있어 이 외계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죽음과 직결된다. 친구나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는 다른, 한 차원 더 높은 고립감이 느껴진다.

 

 12.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나는 나와 관찰자 셋을 지칭할 단어를 정하기로 했다. 왼쪽부터 끼프, 옴노, 베투라고 부르기로 했다. 부르기 좋은 이름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이건 그들이 서로 확실히 구분지어지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말귀가 어두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원래 이름대로 준호라고 해야겠다. 아니면 주노. 나는 이 단어들을 소리내어 말하면서 그들과 나를 차례대로 손짓할 것이다.

 

 13. 그들은 의사소통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나를 부를 이름을 찾아서 기분이 좋은 것 같다. 그들은 지금 자기들끼리 내 이름을 되뇌이고 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그들은 내 이름을 똑바로 부르지 못한다. 주노, 쭈노, 유우노.. 추노가 안나온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14. 다시 한번 그들의 가짜 가죽에 시선이 미쳤다. 이 외계인들은 우리 사회, 별에 언제부터 얼마나 깊이 침투해있었을까? 그들이 그런 것을 알려주리라는 생각은 안하지만,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15. 그들은 나를 왜 죽인걸까.

 

 16. 나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 맞는건가?

 

 17. 기억을 저장하는 뇌라는 이 고깃덩어리에 나의 실체가 있는걸까? 아니면 영혼이라는 것이 나의 실체일까? 나는 죽음을 기억하지만 사후세계를 본다던지 그런 신비의 베일 너머의 체험을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무섭다. 무섭고 미치겠다. 결국 태어나서 살고는 죽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우주의 진실이라면?

 

 18. 나는 복제인간 영화가 무섭다.

 

 19. 난 이기적인건가?

 

 20. 아직도 이 상황이 몰래카메라일 거라는 희망이 남아있다. 난 글러먹은 놈이야.

 

 21. 복도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22. 배가 고프다. 이런 걸 기록으로 남기는건 우스워보이겠지만, 지금처럼 삶이라는 것에 충만하게 살아본 적도 없는 것 같다.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23. 복도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쪽으로 향하는 외계인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멋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뒀는지도 모른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면..? 내가 있었던 곳 까지는 괜찮을 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의 진행은 제지받을 가능성이 높다. 시험해볼까?

 

 24. 방으로 되돌아갔다.

 

 25. 씨발년놈들. 내가 방으로 들어오니까 책상을 밀어버리고 문을 다시 닫았다. 다시 갇혔다.

 

 26. 문은 미닫이나 여닫이가 아니라 벽의 일부가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수동인지 자동인지는 모르겠다. 그들이 문을 닫는 것도, 여는 것도 내가 보지 않을 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여닫히는 순간이라도 포착했으니 망정이다.

 

 27. 추가로, 아까는 문이 옆으로만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걸 포착했다. 만약 아까 책상을 끼웠을 때 위에서 내려왔다면, 난 절대로 못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책상에 손상이 가해지지 않았고 소음도 별로 나지 않았던 걸로 짐작컨대, 내가 그 사이에 끼여서 몸이 절단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요컨대 작은 틈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힘으로 열어버리는 시도가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기기 고장으로 갑자기 엄청난 힘으로 문이 닫힌 다던지.. 그럴 경우엔 뭐, 죽기 밖에 더 할까..

 

 28. 웃겨죽겠다. 지구에 있었을 때에도 이런 허세를 부릴 줄 알았더라면 그 따구로는 안 살았을텐데. 왜 나란 놈은 다 끝나고 나서야..

 

 29. 벽과 바닥의 특징을 하나 포착했다. 오물을 흡수하는 순간, 흡수하는 부위 근처가 연해진다. 이 가설은 내가 혀에서 긁어낸 설태로 시험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틈새에다 핸디를 집어넣자 그 부위에 한해서는 벽이 그 자리를 메우지 않는다는 사실도 포착했다. 물론 빼내면 다시 메워진다. 아마 이것은 핸디가 오물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결과일 것이다.

 

 30. 문을 열 수 없다면 문을 만들어버리면 된다.

 

 31. 성공이다!

 

 32. 벽을 절단하는 데 사용한 핸디를 전부 회수했다. 이걸 이용해서 선내를 탐색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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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1.07.24 02:33

     미처 못본 내용이 있었군요;; 뒤늦게 봤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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