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8 03:36

프리라이더 (3)

조회 수 493 추천 수 2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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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마을 전체가 때 아닌 축제로 들썩였다.

 선술집 드웬이 꺼내온 술독은 빠르게 비었고, 급기야는 마을 사람들이 각자 집에서 담근 밀주까지 꺼내어 내놓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마을 출신인 요한조차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축제는 일찍이 추수감사절 외에는 열리지 않았다. 이 정도 융숭한 환대가 오로지 한 사람, 그것도 베른스크 출신도 아닌 자에게 향한 것 또한 이 지방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하하하, 그런가, 그런가. 좋은 것을 배웠다."


 그 환대를 받는 사람, 야나바는 마을 광장 한가운데 나와 술통에 걸터앉아 사람들과 의기투합했다. 주로 티르빌을 비롯해 마을 남자 여럿이 그녀 주위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따금 그 주위를 오가는 젊은 청년들, 정숙한 부인과 처녀들 또한 그녀 얘기에 귀를 기울이느라 잠시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실로 야나바는 마을 사람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누군가 한 사람의 제안으로 팔씨름 대회가 시작되었다. 야나바는 앉아 있던 술통에서 내려와 기꺼이 자리를 양보했고, 힘꽤나 쓴다는 사내들이 그 술통 위에 팔을 올려놓고 제각기 기량을 뽐냈다. 모두의 시선이 그 쪽에 쏠린 틈을 타, 야나바는 묵직한 나무 술잔을 들고 무리 한 편에 서 있던 요한 곁으로 다가갔다. 요한의 표정이 썩 밝지 못한 것을 본 야나바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즐겁지 않느냐? 이런 축제가 말이다."

 "..."

 "아무래도 내게 불만이 있는 모양인데, 시원하게 털어놓아 보지 그러느냐?"


 요한이 대답하지 않자, 야나바는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보더니 사람들 시선을 등져 요한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가느다란 검지를 들어올려 제 입술 위에 대었다. 그러고는 요한이 든 빈 잔에 자기 잔에 든 술을 조금 덜어내 부었다.


 "무슨 짓이야!"


 깜짝 놀라면서도, 요한은 행여 주위 어른들에게 들킬 새라 목소리를 최대한 죽였다. 야나바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마치 나쁜 장난을 모의하는 어린아이처럼 그에게 속삭였다.


 "적당히 술을 마시면 혀를 놀리는 데 도움이 된다. 괜찮으니 먹어보지 그러느냐?"

 "하지만 마시면 안된다고..."

 "마셔도 될 지 안 될지, 스스로 판단조차 못하는 어린애인 건 아닐 테지?"


 어떠냐, 마실 테냐? 마시지 않을 테냐? 요한을 시험하듯 야나바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도전적인 태도가 도리어 요한에게서 경쟁심을 자극했다. 요한은 그녀를 살짝 째려보더니, 야나바가 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기세좋게 말간 액체를 들이키는 요한을 야나바는 흥미진진하단 양 눈을 빛내며 지켜보았다. 순간 목이 타는 듯한 느낌에, 요한은 기겁하며 들이키던 액체를 모조리 입 밖으로 뱉어 놓았다.


 "캑, 캑, 콜록!"


 요한이 질겁하는 모습을 보며 야나바는 깔깔대며 웃었다. 주위 사람들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단 건 아랑곳없었다. 한참 동안 낄낄대며 웃던 야나바의 등 뒤로, 누군가 다가오는가 싶더니 그녀 머리를 무언가 묵직한 것으로 가볍게 툭 쳤다.


 "아얏!"

 "요한에게 무슨 짓이야!"


 아픈 머리를 쓰다듬으며 야나바는 고개를 돌려 상대를 보았다. 요한이나, 그와 비슷한 신장인 야나바보다 조금 더 큰 키인 여자아이가 눈살을 찌푸린 채 거기 서 있었다. 새빨간 머리를 양 갈래로 따 묶은 여자아이는 야나바보다 체격이 큼에도 소박한 옷차림이나 몸짓 탓에 더 귀엽고 여성스러워 보였다. 그녀는 야나바를 지나쳐 요한 곁으로 다가가 물이 담긴 컵을 건넸다. 요한은 그 물을 단숨에 들이키고서야 겨우 진정된 듯 입을 떼었다.


 "고마워, 뮬리나."

 "괜찮아, 요한? 저 여자가 대체 뭘 준 거야... 설마, 이거 술이야?"

 "뭐 그런 걸 가지고 호들갑은,"


 야나바의 말에 뮬리나는 고개를 홱 돌려 그녀를 노려보았다. 여전히 야나바는 뮬리나가 때린 부위를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단, 태도만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노려보지 마. 난 어디까지나 호의로 살짝 맛보게 해준 것 뿐이니까."

 "호의로라면 설령 사람을 죽여도 용서가 된단 말야?"

 "그렇게까지 얘기하진 않았잖는가?"

 "했어! 지금 분명 그런 말투였다니까!"


 목소리를 한껏 높이는 뮬리나 탓에 주위 분위기는 어느새 싸늘하게 식었다. 때마침 챔피언이 정해져 한껏 환호성을 내던 팔씨름 관람자들은, 어째선지 주위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단 걸 깨닫고는 머쓱해져선 입을 닫았다. 야나바가 무언가 한 마디 하려는 찰나에야, 겨우 티르빌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상황을 정리했다.


 "뭐 이런 막무가내인 여자가,"

 "이런, 이런. 둘 다 그만 두게. 다들 놀라지 않았나? 이 좋은 날 다투는 것도 보기에 썩 좋지 않으니 우선은,"

 "좋은 날이라뇨! 오늘이 무슨 명절이었던가요?"


 뮬리나는 분노의 화살을 즉각 티르빌에게로 돌렸다. 말하던 도중에 끼어든 뮬리나 탓에 티르빌은 더 얘기를 하지 못하고 그저 크흠, 헛기침만 뱉었다. 티르빌을 향한 뮬리나의 말이 계속되었다.


 "갑자기 술이다, 음식이다 준비할 새도 없이 내오게 하고는, 남자들끼리만 신나서 떠들어대고, 저 여잔 안하무인이고, 그러니까 요한을 부추겨서 술 따위나 먹인 거 아니에요! 아빠도 정말 너무하세요!"

 "아빠, 라고?"


 야나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티르빌을 바라보았다. 티르빌은 뮬리나 눈치를 보면서 야나바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내 딸자식일세. 참, 지 엄마 닮아서 얼굴은 이쁘장한데 성질머리가 좀..."

 "누가 성질머리가 어떻다고요?"

 "됐어, 뮬리나."


 살벌한 분위기 틈에 요한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뮬리나는 곁에 있던 요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요한? 이제 괜찮아? 안 좋은 데는 없어?"

 "뮬리나는 너무 걱정이 많아."

 "하지만 요한이 아까,"

 "괜찮으니까. 다들 즐거워하는데 분위기 엉망으로 하고 싶지 않아."

 "분위기라면 이미 저 여자 때문에 엉망이 됐다만,"


 쓸데없이 한 마디 끼어들던 야나바가 뮬리나의 싸늘한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야나바는 칫, 하고 혀를 차더니 큰 소리로 티르빌을 불렀다.


 "이봐, 틸!"

 "틸? 나 말인가?"

 "뭐라 부르건 상관없잖아! 그보다 뭔가 재주 하나 보여 주라고. 당신 신정관이잖아!"

 "아니, 신정관이라 해도..."


 티르빌이 당황해하자, 야나바는 그에게로 다가가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얘기를 듣던 티르빌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수긍했다. 야나바는 광장 한쪽에 놓여진 빈 술통을 능숙하게 굴려 광장 한가운데로 가져오더니, 그 위에 티르빌이 올라가게 하곤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자, 다들 여기 보시라! 내 탓에 잔치 흥이 깨져버린 모양이니, 사과의 뜻으로 재밌는 걸 보여주도록 하지!"

 "보여주는 건 나지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틸! 그럼 준비하시고, 스타트!"


 야나바가 신호를 보내자 티르빌은 황급히 속으로 무언가를 외우더니 두 팔을 하늘로 뻗었다. 계획이 급조된 탓에 티르빌은 야나바의 신호에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진 광경에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티르빌의 손끝에서 쏘아올려진 불꽃 여럿이 폭발하면서 각양각색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 하늘을 가득 메웠다.


 "와!"


 방금 전까지 분위기도 잊고 사람들은 모두 불빛에 시선을 빼앗겼다. 뮬리나와 요한 역시 그것의 화려함과 황홀함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야나바는 흐뭇한 듯 웃더니, 다시 술통 위에 올라간 티르빌에게 눈짓했다. 그녀가 건넨 술잔을 받아든 티르빌은 사람들을 향해 술잔을 내밀며 외쳤다.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한두 사람이 티르빌에게 호응하자 여기저기서 줄줄이 그 목소리에 따랐다. 분위기는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술잔이 부딪치고, 음식을 차리던 여자들도 모두 나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선술집 드웬은 가게에 들어가 악기를 가지고 나왔다. 그가 익살스럽게 현을 튕기자, 누군가가 피리를 불며 그에 화답했다. 흥겨운 노래가락에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서 즐기고 또 마셨다.


 무르익은 축제는 밤새 이어져 그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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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꿉친구 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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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yarsas 2012.12.28 06:16
    내용을 굉장히 천천히 진행하실 모양이군요. 뒷내용이 궁금해지네요.
    대략적인 인물구도는 다 나온 셈인가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12.28 21:14
    주요 인물은 일단 이 정도에서 다 나온 거 같아요.
    사실 계획했던 것보다 진행이 늘어져 있습니다... 한 장면으로 처리할 얘기들이 두세 화 가량 분량으로 나뉘었어요. 고치기보단, 일단은 이대로 가고 차후 화에선 좀 더 신경써서 진행에 박차를 붙이려고요 ㅎ;

    일단 짤막한 에피소드 정도로 마무리될 계획입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구경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 ?
    카디스 에트라마 디 라이제르 2012.12.28 21:14
    보너스 포인트를 받아라. 네게는 이 포인트를 받을 자격이 있다.
  • profile
    시우처럼 2012.12.28 10:46
    내용이 아주 재밌고 매끄럽게 읽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도 대단하셨지만 이젠 거의 무언가 경지를 이루신 듯. 부러울 뿐입니다 ㅋ
  • profile
    윤주[尹主] 2012.12.28 21:18
    이런 과찬을;;; 감사합니다 ㅎ
    내용은 가급적 매끄럽고 밝게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네요. 그래도 자꾸 분위기가 처지는 건 어쩔 수 없나봐요; 아직 미숙하죠;

    혹시 1화 전에 올린 Pilot 화도 보셨나요? 많은 분들이 선행화를 놓치고 1화부터 보게 되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군요.
  • profile
    시우처럼 2012.12.28 23:30
    네, 전 그때
    두 이야기중에 어떤게 낫냐는 말씀에
    프리라이더가 좋아요 성장물인것 같아서 좋은듯 하고 댓글도 남겼는걸요. ㅋ
  • ?
    카디스 에트라마 디 라이제르 2012.12.28 23:30
    보너스 포인트를 받아라. 네게는 이 포인트를 받을 자격이 있다.
  • profile
    Yes늙은조카Man 2012.12.29 16:56
    잘읽었어용
  • profile
    윤주[尹主] 2012.12.30 05:30
    감사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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