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08 04:53

술, 담배, 커피같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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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짝]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혀가 데일 듯이 뜨겁다. 쓰다. 맛이 없다. 그녀가 커피를 샀다. 아직 취직에 성공하지 못한 그녀의 경제력을 알고 있기에 평소 지출은 내가 담당했었는데 오늘은 그녀가 시켜 놓은 아메리카노 두 잔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확실히 일상적인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단 음료가 아니면 마시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표정 또한 일상적이지 않다. 밝은 사람이었는데.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어떻게 할까. 근처 친구들을 모아 술이나 한 잔 할까?

 

"무슨 일이야. 나중에 일 끝나고 보지."

 

"그러는 편이 좋았겠네. 역시 오빠는 합리적이야."

 

묘하게 비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별히 화가 날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우린 최근 들어 싸운 적이 없었다. 물론 그것은 사이가 좋아서가 아니라 만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위기가 느껴졌다면 나는 그녀를 불러 만났을 것이다.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상황인데 그녀의 얼굴은 왜 이렇게 차가운 걸까?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옆 테이블에서 진동밸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곳에 앉아있던 남자가 카운터로 갔다. 딸과 함께 온 듯한 아주머니는 팥빙수를 드시다 두 잔의 생수를 따르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우리는 그때까지 아무 대화가 없었다. 내가 말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궁금할 게 없다. 그녀는 여전히 취업 준비 중 일 것이다. 면접도 일주일이나 남았으니 당락은 그 후에 물어보면 그만일 테지. 나를 부른 것은 그녀였다. 그녀가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침묵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원래 목적대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씁쓸한 일이다. 만약,

 

"오빠, 오빠는 나를 사랑해?"

 

그녀가 물었다.

 

"사랑하지. 혜수야,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봐?"

 

왜 이딴 질문을 하는 거지. 그걸 수시로 확인해야 아는 건가? 아무튼, 만약 이 대화에서 반전을 구할 수 있는 행동이 있다면 난 바로 행할 것이다. 그러나 모르겠다. 이별은 많이 겪어봤지만 멈춰본 적은 없었다. 왜 지금일까? 회사 끝나고 만나자 했잖아? 왜 바쁜 사람을 불러서. 애초에 생각이 길고 사려 깊은 친구는 아니었다. 나보다 어리지만 그것도 결국 세 살 차이. 성인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너무 어린 부분이 항상 걸렸었다. 나도 이제 평생 볼 사람을 찾을 나이인데, 자기는 그걸 모르는 걸까?

 

"이게 사랑 하는 거야?"

 

뭐가? 내가 아니면 네가? 잠자코 그녀가 다음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한단 말인가. 서로 좋지 않다면 짝이 아닌 것이다. 어떤 이유도 없고 행여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헤어져."

 

의외로 빨리 말했다. 다행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또 아무 말도 없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나갔다. 나도 쟁반을 들고 일어났다. 카운터에 쟁반을 가져다 놓자 카운터를 보는 직원이 어쩔줄 모르는 표정으로 쟁반을 받아 씽크대에 담았다. 왜 평소처럼 '감사합니다.'하지 않는 걸까? 실연당한 남자가 주는 컵은 감사하지 않다는 것일까? 이곳에서 일하는 것도 힘들 것 같다. 별에 별 사람이 다 있다. 그리고 카페는 그들이 모이는 곳이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무슨 말을 더 한단 말인가.


 

사랑.

 

나는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덕분에 몇 개월 전에는 담배를 쉽게 끊을 수 있었다. 담배를 무슨 맛으로 피는 지 모르겠다. 그냥 습관적으로 피다 내년부터 가격이 오른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끊었다. 뭐, 이건 몰라서 좋은 일화니까 그냥 넘어가고, 술 맛도 모르겠다. 취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몇 잔을 마셔도 내 정신은 온전했다. 다만 비틀거릴 뿐이었다. 물론 그 알딸딸한 기분이 얼핏 좋다고 느낀 적도 있다. 예전에 공장에서 일 할 때는 노동 후 마시는 맥주에 매달리며 산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청량감이 좋았을 뿐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는데. 술. 술하면 역시 소주 아닌가? 소주에선 공장 맛이 난다. 좋은 느낌이 아니다. 대학 시절 같이 소주잔을 채우던 친구들은 나중에 돈 벌어서 똥술 말고 위스키 좀 마셔 보자며 건배를 했었다. 지금 와서 마시는 위스키, 외국 공장 맛이 난다. 그나마 칵태일로 섞어야지 좀 마실만 하다. 술 맛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모르겠는 것이 있다.

 

커피.

 

특히 아메리카노! 나는 카페에 꽤 자주 가는 편이다. 고등학교 때 커피를 마시며 공부하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지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졸리다. 집에 있으면 뭘 해도 졸리는 것 같아서 책을 읽거나 자료조사를 해야 할 때 카페로 갔다. 무작정 자리를 축낼 수는 없으니 라떼를 주로 마셨다. 커피의 향과 우유의 부드러움, 달콤함이 조활르 이루어 아주 맛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아메리카노! 도대체 무슨 맛으로 마신다는 말인가. 향은 라떼보다 더 강하다. 그리고 담배 맛이 난다.

 

나는 아직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의 음식들이다. 술, 담배, 커피. 모두 맛을 잘 모르겠다. 내가 이걸 좋아서 피고, 마시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마시고 피고 있다. 다들 그러니까. 정말 나만 모르는 것일까? 혹시 남들도 나와 같은 처지인 것은 아닐까?

 

"어이 김의로 사원, 오늘 끝나고 한 잔 할까?"

 

내 바로 위에 안부장이 물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업무를 보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 싱숭생숭한 날이다. 이래서 일 끝나고 만나자 했던 것인데. 술. 직장 상사와 술이라. 이건 의외로 편하다.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좋죠."


 

바는 어두웠다. 나는 일반적인 소줏집보다 바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이유는 당연히 맛있으니까. 회사의 일 얘기나 내 장래에 관하여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부장이 말했다.

 

"잠깐만."

 

안대희 부장의 표정이 굳었다. 윙윙 울리는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아마 그의 와이프에게 전화가 온 것 같았다. 결혼에는 어떤 즐거움이 있을까? 혹시 그것도 술, 담배, 커피 같은 것일까? 그냥 남들이 하니까....... 물론 시작할 때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내가 불러 놓고 미안하구만. 이만 일어날까? 애가 아프다네?"

 

부장님은 회식 자리를 지킨 적이 없는 공처가로 유명했다. 결혼에 관련된 얘기만 나오면 미간을 찡그리곤 했다. 지금 부인과 같이 사는 이유는 단지 이혼을 했을 때의 괴로움의 지금의 괴로움보다 클 것이라는 예상 때문 아닐까, 생각했다.

 

"아뇨. 저는 조금 있다 갈게요. 근처에 아는 사람 만날 일이 있어서."

 

"그래.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내일 보세."

 

부장이 나갔다. 꽤 급한 걸음이었다.

 

"저기요?"

 

바텐더를 불렀다.

 

"블랙 러시안으로 한 잔 더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바텐더는 여러 술을 조합하여 내가 주문한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참 편하게 번다는 생각이 든다. 봉급이 얼마인지 들어봐야 합당한지 알 수 있겠지만 정말 땅값이랑 전기세 말고는 들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안 좋은 일 있으셨나 봐요?"

 

그러고 보니 테이블이 아니라 바에 앉아 있었다. 이건 잠정적으로 말을 걸아 달라는 걸로 봐도 무방하겠지. 실수를 했다. 뭐, 이 자리를 잡은 것은 내가 아니라 부장이었지만.

 

"아뇨. 술을 좋아해서요."

 

거짓말을 했다. 나는 바텐더와 대화하고 싶지 않으니까. 돈 내고 대화하는 것은 왠지 좀 그렇다. 내가 그렇게 외로운 사람은 아닌데. 나는 칵테일을 소주보다 덜 싫어할 뿐 좋아하진 않는다. 그나마 칵테일은 맛있으니까. 맛있으니까....... 그럼 좋아하는 건가?

 

"아, 예."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잔을 건낸 뒤 그는 말이 없었다. 손님과 많은 대화를 해봤겠지. 내 의도 쯤은 한번에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텐더를 앞에 두고 단 둘이 멀뚱멀뚱 있는 불편한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잔을 한번에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야 한다.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보다시피 일상이다. 헤어질 사람이었다. 헤어졌으니까.

 

집까지 가는 길은 순식간이었다. 약간 술기운이 올라와서,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생각하는 데에는 별 영향이 없지만 인지하는 데에는 꽤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술 아닌가. 그렇게 순식간에 집까지 도착한 나는 침대에 벌렁 누웠다.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다. 어차피 내일 아침 다시 할 일이다. 지금 급선무는 술기운을 떨쳐내는 것이었다. 머리 속이 온통 회사 일 뿐이다. 중요한 프로젝트에 들어갔으니까. 뭐, 언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었냐마는. 그러니까, 이혜수. 아니, 아니다.

 

목이 마르다.

 

물로는 해결되지 않는 텁텁함이었다. 항상 술을 먹으면 따라오는 이 느낌이 싫다. 이럴 땐 톡 쏘는 탄산보단 부드럽고 달달한 음료가 잘 맞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라떼. 라떼가 마시고 싶다. 서둘러야 했다. 늦을 수록 내일 생활에 지장이 있을 테니까. 옷도 제대로 입고 있겠다, 바로 밖으로 나갔다. 카페. 내 집과 카페는 걸어서 10분 거리로 가는 데에 부담이 없었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하루에 두 번 같은 곳에서 같은 음료를 마시는 것은 조금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좋을까. 코 앞에 편의점이 보인다. 같음 음료를 싼 가격에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1600원 입니다."

 

"감사합니다."

 

계산을 마치자 마자 바로 뚜껑을 따서 마셨다.

 

다르다.

 

다르다! 너무 달잖아? 아닌가? 비슷한가? 단 정도는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다르다! 우선 가장 큰 차이는 역시 향이다. 하지만 향을 크게 기대하진 않았는데. 어차피 내가 후각과 미각에 민감한 편도 아니고. 하지만 이 차이는 너무나 분명해서 만족과 불만족을 가르는 수준이다. 뭐가 문제지? 충분히 부드러운데? 시원해서 인가? 아, 부드러워서! 너무 부드럽다! 카페의 라떼는 약간 거친 맛이 있는데 이건 힘아리 없이 너무 부드럽기만 했다. 같은 원두 가루로 만들었다고 믿을 수 없는 차이. 이건....... 이건 안된다. 편의점을 나와 카페로 향했다. 왠지 생쑈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낭비를 하는 느낌도 있지만 어쩌랴. 그 음료를 마셔서 내가 좀 더 즐거워진다면, 덜 텁텁해진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내가 좋으면 그것으로 더 고민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떼 한 잔 주세요."

 

"따뜻하게 드릴까요?"

 

"네. 따뜻하게 주세요."

 

"예. 벨 울리면 가지러 오세요."

 

그가 나에게 벨을 주며 말했다.

 

"오래 걸리나요?"

 

"아뇨. 그다지."

 

"그럼 기다릴게요."

 

“예.”

 

카페를 보던 사람이 뒤 돌아 원두를 받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네?”

 

 “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로 주세요.”

 

돈이 아까워진 내가 말했다. 아무리 가짜 라떼라지만 하루에 라떼 세 잔은 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싫어하는 아메리카노. 사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커페를 자주 갔고, 그곳의 가장 저렴한 음료가 아메리카노였으니까. 그때는 억지로 싫어하는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지금은 비싼 라떼를 마시고 있다.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다.

 

“여기 있습니다.”

 

항금빛 크래마가 돈다. 좋아하고 싶어서 공부도 많이 했다. 하지만 도무지 맛이 없는 걸 어찌해야 하나. 쓰다. 그리고,

 

“홀짝-.”

 

향이 좋다. 향이 좋구나. 왜 몰랐을까. 나는 정말 커피를 싫어 했을까.

 

“여보세요?”

 

“혜수야.”

 

“무슨 일이야?”

 

“너는 알아?”

 

“뭐?”

 

“나, 너 사랑 한다니까? 내가 사랑 한다는 데 왜 자꾸 아니라는 거야? 네가 알아? 그렇게 똑똑해? 너만 잘났어?”

 

“늦었어. 내일 얘기해.”

 

희미한 웃음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토익 책을 보던 여자, 아들과 팥빙수를 먹던 아주머니, 카페 주인, 모두 나를 쳐다 봤다. 카페를 옮기던가 이사를 가야겠다. 쪽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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